사직동 본당

社稷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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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2동 6-84 소재. 1974년 9월 28일 수동(壽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야고보. 1990년 6월 3일 '사직2동 본당' 으로 개칭했다가 1998년 2월 11일 설립 당시의 이름인 '사직동 본당' 으로 다시 바꾸었다. 관할 구역은 사직2동 전 지역과 모충동, 개신동 일부 지역. 〔교 세〕 1974년 1,401명, 1980년 1,981명, 1982년 1,263명, 1987년 2,463명, 1992년 2,239명, 1996년 2,740명. 〔역대 주임〕 초대 주노(M. Zunno, 주은로) 미카엘(1974. 10~1976. 11), 2대 더간(M. Duggan, 강덕현) 미카엘(1977. 1~1978. 2), 3대 나모스키(J. Najmowski, 나현철) 야고보(1978. 2~1982. 8), 4대 곽동철(郭東喆) 요한(1982. 9~1986. 4), 5대 김동일(金東一) 요한 보스코(1986.4~1991. 5), 6대 이현로(李賢魯) 토마스 아퀴나스(1991.5~1995. 11), 7대 송열섭(宋悅燮) 가시미로(1995. 11~1996.4) , 8대 김권일(金權壹) 도나도(1996. 4~현재) .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수동 본당 관할 구역인 사직동과 사창동 일대의 거주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교구에서는 본당 신설을 목적으로 현 충북 체육관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나 도시 계획으로 인해 성당 신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교구에서는 다시 청주시와 협의하여 기존의 부지와 사직2동 일대의 부지 1,500평을 맞바꾸고, 1974년 9월 28일 사직2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첫 미사를 봉헌할 장소가 없었으므로 신자들은 우선 10월 16일에 교구청 별관 지하실을 빌려 첫 미사를 드렸고,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1월 10일에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75년 3월 2일에는 <천주교 성신 주보>를 창간하였고, 9월 25일에는 성당(103평)과 사제관(42평)을 완공하여 성신' 을 주보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0년 5월 5일에는 주보 성인을 '사도 성 야고보' 로 변경하였으며, 이듬해 3월 1일에는 본당 주보와 교구 주보를 통합하였다. 이후 사직동과 사창동 지역의 개발이 계속되면서 신자수가 증가하자 1981년 7월 3일 사창동(司倉洞) 본당을 분리하여 933명의 교적을 이관시켰으며,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6년 5월 18일 사창동 본당에서 봉명동(鳳鳴洞) 본당이 분리 · 신설되자 다시 한번 관할 구역을 조정하여야만 했다. 1988년에는 구역별 미사와 신자들간의 친교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모충 회관을 건립하였고, 이듬해 10월에는 '가정 성화' 를 위해 3년여에 걸쳐 본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묵주 기도 100만 단 봉헌 운동을 완료하였다. 1990년 3월에는 예수 성심상과 성모 동산을, 4월에는 150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인 성 도미니코 교육 회관을 건립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3일에는 다시 사직1동(현 흥덕동) 본당을 분리하여 1,5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근래 들어서는 성당 건물의 노후화와 협소함으로 사목상 어려움이 증대되자, 1994년 3월 6일 성당 신축 기공 미사를 봉헌한 후 1년여 만인 1995년 4월 22일 330평 규모의 단층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부속 시설 마련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1997년 10월에 성모 동굴을 조성하였고, 평신도 단체의 활성화와 신앙의 내실화에도 힘쓰고 있다. (→ 청주교구 ; 사창동 본당 ; 흥덕동 본당)
※ 참고문헌  《청주교구 연감》, 청주교구청, 1995/ 천주교 사직동 교회, 《社稷洞本堂十年史》, 198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