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본당

泗川本堂

글자 크기
6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사천시 사천읍 수석리 192-1 소재. 1962년 6월 옥봉동(玉奉洞) 본당 관할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사천읍 수석동, 정의동, 평화동, 선인동, 축동면, 정동면 전 지역과 서포면, 진주시 예하리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서포(西浦) · 정동(正東) 2개소. 〔교 세〕 1961년 468명, 1966년 1,010명, 1973년 933명, 1980년 806명, 1987년 669명, 1992년 848명, 1996년 1,074명. 〔역대 신부〕 초대 라우리올라(G Lauriola, 安) 굴리엘모(1962.6~1964.7), 2대 필라(A.PIlla, 진) 안젤리코(1964.7~1967. 8), 3대 빌라(A. Villa, 위세훈) 아우렐리오(1967.8~1968. 1), 4대 장덕범(張德範) 바오로(1968. 1~1971. 11), 5대 김석좌(金錫佐) 베드로(1971. 11~1976. 2), 6대 현기호(玄基浩) 시몬(1976. 2~1977. 1), 7대 임상엽(林尙葉) 마르코(1977. 1~1980. 1), 8대 조규성(曹圭聖) 베드로 (1980. 1~1982. 9), 9대 드 피노(J. de Fino, 지대건) 야고보(1982. 9~1986. 4), 10대 허철수(許哲洙) 미카엘(1986.4~1989. 7) , 11대 정영규(鄭玲圭) 마르코(1989. 7~1992.8), 12대 김남엽(金南燁) 안토니오(1992. 8~1994. 8), 13대 정현태(鄭玹泰) 타대오(1994. 8~현재). .
[공소 및 준본당 시기] 사천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시기는 1866년의 병인박해 이전으로, 진양군 문산면(文山面)과 하동군 옥종면(玉宗面)의 신자들이 1860년대에 들어와 산간 지대인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박해 때 체포되었거나 순교한 신자는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1897년에 부산(현 凡一) 본당의 우도(P. Oudot, 吳保祿) 신부가 배춘(培春, 杻洞面 培春里, 일명 응치)에 공소를 설립했는데, 당시 신자수는 16명이었다. 이 공소는 1899년 6월에 진주(晋州) 본당으로, 이듬해 6월에는 마산(완월동 본당의 전신)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03년 11월 18일에는 경남 지방을 순회하던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40여 명에게 성사를 줄 만큼 신자수가 증가하였으나 이후 신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폐쇄되고 말았다.
사천 지역은 1905년 9월에 문산(文山) 본당으로, 그리고 1926년 5월에는 옥봉동 본당으로 사목 관할권이 이관되었는데, 이 무렵 축동면의 동티(東峙)와 사천에 새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에 옥봉동 본당 2대 주임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는 1935년에 이 두 공동체를 합하여 '사천 공소' 를 설립하였으며, 공소 신자들은 평화동 김화영(니콜라오)의 사가(私家)에서 모임을 갖다가 8 · 15 광복을 맞았다. 이후 김화영 · 박성갑 · 김봉국 등 공소 신자들은 사천면 수석리에 있는 적산(敵産) 가옥을 매입하여 공소 강당으로 개수하였으며, 1954년부터는 인근 공군 부대의 군종 신부가 사천 공소에 주재하면서 신자들을 보살펴 주기도 하였다.
옥봉동 본당의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 신부가 장차 사천 지역에 본당이 설립될 것에 대비하여 1957년 2월 현 성당 부지 1,250평을 매입한 데 이어 그 해 6월 '작은 형제회' 가 옥봉동 본당의 사목을 맡게 되면서 본당 설립 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성당 신축 공사는 당시 사천 공소에 거주하고 있던 서울교구 소속 김희선(金喜善, 요셉) 군종 신부의 주도 아래 추진되었는데, 같은 해 12월 100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자 부산교구에서는 1959년 10월 사천 공소를 준본당으로 설정함과 동시에 작은 형제회의 라우리올라 신부에게 사목을 위임하였다. 라우리올라 신부는 이후 본당 승격에 노력하는 한편, 옥봉동 본당의 주포니(C. Giupponi) 신부와 함께 공석 중이던 문산 본당의 사목도 담당하였다.
〔본당 승격과 변모〕 사천 준본당은 1962년 6월에 마침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라우리올라 신부가 임명되었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필라 신부는 성 프란치스코 유치원을 개원하였고, 축동면 탑리산 19번지 일대의 부지 4,555평을 매입하여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에 들어와 외국으로부터 구호 물자 지원이 단절되면서 신자수가 급감하자 이를 계기로 4대 주임 장덕범 신부는 그 동안에 보여 왔던 양적 팽창 대신 내실 있는 사목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어 5대 주임 김석좌 신부 때에는 수녀원 신축 및 유치원 교사를 증축하였으며, 1972년 5월 9일에는 서포 공소의 강당을 건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옥과 부지 259평을 매입하여 정동 공소를 이곳으로 이전한 뒤 1974년 2월에 강당을 신축하였다.
이후 역대 주임 신부들은 성령 기도 모임과 레지오 마리애 등 여러 신심 단체를 활성화시켰으며, 신자들의 소극적인 신앙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중 1989년 말에 이르러 인근에 사남 농공 단지가 조성되면서 신자 유입이 예상되자 11대 주임 정영규 신부는 본당 분할을 예상하고 이듬해 6월 사남면 월성리에 새 본당 부지 1,025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현 본당 주임 정현태 신부가 부임한 뒤인 1996년 8월 6일 공사에 착수하여 1년여 만인 1997년 11월 26일에 성당(165평)과 교육관(215평)을 완공함으로써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본당이 분할될 것으로 예상된다. (→ 마산교구 ; 옥봉동 본당)
※ 참고문헌  부산교구사 편찬 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뮈텔 주교 일기》 Ⅲ, 천주교 명동 교회, 1993/ 김구정, 《천주교 경남 발전사》, 천주교 부산교구, 1967/ 천주교 사천 교회, 《사천 본당 30년사》, 1992/ 《빛》 12호(1984. 4), 천주교 대구대교구.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