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추덕

四樞德

[라]virtutes cardinales · [영]cardinal virtues

글자 크기
6
사추덕의 하나인 용기의 덕의 최고 표현은 순교이다.

사추덕의 하나인 용기의 덕의 최고 표현은 순교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현명(賢明, prudentia) , 정의(正義, justita) , 용기(勇氣, fortitudo) , 절제(節制, tem-perantia) 등 가장 요긴한 네 가지 덕.
〔개 념〕 윤리적으로 선한 일을 쉽고 항구하게 할 수 있는 습성인 덕(德)은 자연덕과 초자연덕으로 구분된다. 자연덕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습득덕(習得德)이라고도 하며, 초자연덕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무상으로 베푸는 덕이기에 주입덕(注入德)이라고도 한다. 한편 자연덕은 인간의 지성이나 영혼의 욕구적인 부분을 완성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지성덕 또는 윤리덕(Vintutes Morales)으로 구분된다. 모든 일에 있어 이성의 선을 추구하도록 욕구적 부분에서 인간을 완성하게 하는 윤리덕은,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340~397)를 비롯하여 교부들과 신학자들에 의해서 네가지 추요덕(樞要德)으로 구분되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제2권 2부에서 먼저 세 가지 대신덕(對神德)에 대해 논한 후 사추덕을 제시하였는데, 이 같은 사추덕의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와 플라톤(기원전 427?~347)에게서도 발견된다. 성서에도 이 네 가지 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지혜보다 더 값진 재물이 있겠느냐? · 만일 사람이 덕을 사랑한다면 온갖 덕은 지혜의 노고의 산물이다. 지혜는 사람에게 절제와 현명과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 준다. 현세에서 사람들에게 이러한 덕보다 더 유익한 것이 있겠느냐? 사람은 누구나 풍부한 지식을 원한다"(지혜 8, 5-7).
성 암브로시오는 사추덕의 배열에 있어서 외형상으로는 스토아 학파의 순서를 따랐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하느님 사랑의 길이고, 입구이며, 도덕적 활동에 있어서 하느님 생명의 첫 빛"이라고 하였다. 사추덕이 그리스도교적인 형태를 갖추고 체계화된 것은 히포의 주교성 아우구스티노(354~430)에 의해서였다. "덕은 하느님 께 대한 최고의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본인이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네 개의 덕은 동일한 사랑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 본인은 이 네 개의 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절제는 사랑의 대상을 손상 없이 보존하는 사랑이고, 용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감내하는 사랑이며, 정의는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올바른 질서를 견지하는 사랑이고, 현명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되고 방해가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랑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대상은 어떤 것이든 다 말하는 것이 아니고 최고의 선, 최고의 지혜, 최고의 평화인 하느님만을 말하는 것이다."
〔구 분〕 현명 : 윤리적인 특성인 현명으로써 인간은 먼저 어떤 윤리적인 선을 추구할 수 있기 위해 자신이 취해야 할 방법을 생각한다. 심사숙고한 후에 실제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하에 있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또한 현명은 행위자의 올바른 이성이다. 즉 목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를 올바로 지도하기 위한 실천적인 지성을 완성하게 하는 덕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의무를 올바로 식별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하고, 구체적인 경우에 해야 할 일, 그리고 노력과 결단을 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현명을 행동의 올바른 규범이라고 하였다. 이 현명의 덕으로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윤리적인 원칙을 올바로 적용하며 이행해야 할 선과 피해야 할악에 대한 의구심을 극복하게 된다.
정의 : 일반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때, 정의는 우선 직접적으로 사물에 대한 질서와 물질적인 재물에 대해서 타인과의 관계 등을 균형 있게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사랑에 있어서 인간의 내적 가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나를 그대에게 제시해 주는 것은 사랑이며, 그대 안에 살아 있는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도 사랑이다. 이차적인 것으로 나와 우리 사이, 즉 나와 사회 사이의 정의, 개인과 사회와의 소유물에 대한 올바른 질서를 정하는 정의가 따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의는 확고하고 항구적인 의지로서 각자에게 속하는 권리를 각자에게 부여하는 습성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의 덕의 체계에서 정의의 덕은 내용이나 덕의 서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정의보다 한층 고상하다. 그리스도교적인 덕으로서의 정의는 대신덕,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의 덕[愛德]에 온전히 봉사하는 덕이다. 정의란 모든 사람과 사람 집단에게 그들에게 속하는 것을 부여해야 한다는 넓은 의미의 덕, 즉 의지의 상태를 말한다. 한편 정의의 덕은 인간의 사랑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활력이 주입되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정의는 하느님 사랑을 나누어 갖는 덕이며 하느님 사랑에 참여하는 덕이다.
용기 : 용기의 덕은 정의를 위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또 자기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 어떤 고통이나 죽음까지도 감수할 각오와 힘을 부여하는 덕이다. 또한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감정이 드러날 때 이를 억제하고 불안이나 공포의 감정을 억제하는 훈련을 하여 만일 이러한 것들이 아낌없는 마음으로 선에 봉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 생명까지도 버리게 할 힘을 주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고통이나 죽음을 혐오하기보다는 자신의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의 박해보다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를 무서워하여 이를 피하는 것이다. 고통이나 박해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용기의 덕을 갖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용기에는 두 가지 면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능동적인 면과 공격을 방어하고 악에 대해서 용감히 방어하는 수동적인 면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와 선의 승리를 위해서 하느님의 적, 정의의 적에 대항해서 투쟁할 줄 안다. 그는 가장 적절한 무기를 가지고 적에 대항하지만 폭력적인 수단에 의해서 하느님 나라의 영적 이익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 특히 적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용기의 덕의 최고 표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또 그리스도교의 덕을 위해서 죽음을 감수하는 순교에 있다. 순교에 버금가는 것은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의 영웅적인 죽음이다. 죽음을 감수하는 마음은 용기의 덕의 완성이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환난을 겪겠지만 힘을 내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요한 16, 33)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절제 : 현명은 실재의 현실 전체에 대해서, 그리고 정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덕이며,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을 잊고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생명까지도 희생한다. 한편 절제는 각자 자신을 대상으로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두 가지 형을 나타내는데 하나는 자기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중심주의이다. 자기 보존에 소용이 되는 것은 전자이고, 후자는 파멸의 길이다. 절제는 자신을 잊음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나 부절제는 자기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능력을 이기적으로 타락시킴으로써 자기 파멸로 인도한다. 음식에 대한 본능은 개인의 육체적 생명의 보존을 지향하고, 성(性)의 본능은 인류 보존을 지향한다. 이들 본능은 수단으로서 그 목적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본능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되어 하느님의 계획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 그것은 파괴의 힘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 보존과 인류 보존의 본능과 목적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인간전체의 목적에 맞게 통제하는 것이 절제의 덕의 목적이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감각적 및 정신 생명 전체를 평형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절제의 역할이다.
원죄에 의해서 생겨난 혼란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특별한 덕이 절제이다. 최초의 범죄 후,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 그와 같은 일들을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서에서는 절제를 자주 칭송하였다. "네 정욕을 따라가지말고 네 욕망을 억제하여라"(집회 18, 30). 한편 신약성서에서는 절제를 중용 또는 소박함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끊어 버리고 지금 이 세대에서 절도 있고 의롭고 경건하게"(디도 2, 12)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 용덕 ; 의덕 ; 절덕 ; 지덕 ; → 덕 ;윤리덕)
※ 참고문헌  St. Ambrosius, Exp in Luc., 《PL》 15 Col, 1649/ St.Augustinus, De moribus ecclesiae Catholicae, lib. 1, (PL》 32, 1322/ St.Thomas Aquinas, Sumuma Theologica, Ⅱ- Ⅱ / Bernard Haring, Das Gesetz.Christi, vol. 1, Freiburg in Breisgau, 1965/ Tullo Goffi · Giannino Piana, Corso di morale, vol. 2, Queriniana, 1983/ Dizionario Teologico Interdis-ciplinare, vol. 3, Marietti, 19771 Dizionario Enciclopedico di Teologia Morale, diretto da Leandro Rossi e Ambrogio Valsecchi, 1973/ K.H. Pesch-ke, S.V.D., Christian Ethics, vol. 1, 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1986/ 유봉준, 《기초 윤리 신학》, 가톨릭출판사, 1978. 〔俞鳳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