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死海

〔히〕יָם הַמֶּלַח · [그]Μέρας τῆς Θαλάσσης · [라]Mare mortuum · [영]Dead Sea

글자 크기
6
1 / 4
이스라엘의 요르단 골짜기 중에서 가장 낮은 해저 408m에 위치한 내륙 호수. 그 명칭이 적어도 그리스 시대(기원전 323~30)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해는, 소금 농도가 보통 바닷물의 10배쯤 되는 33%에 달하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이다. 터키 동남부의 타우루스(Taurus) 산맥에서부터 동아프리 카의 탄자니아(Tanzaia)에 이르는 소위 '시리아-아프리카 대단층'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며, 약 12,000년 전에 형성된 비교적 젊은 호수에 속한다. 사해 북쪽은
요르단령이고 남쪽은 요르단령과 이스라엘령으로 나누어지나 1967년에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이 서쪽 기슭 전체를 계속 점령하고 있 다.
높이와 성분 : 기원전 4000년경에는 사해의 수면 깊이가 해저 760m로 지금보다 무려 250m나 낮았으며, 1890년대에는 해저 393m로 최고치를 기록하였다가 이후 차층 낮아지는 추세이다. 1980년부터 사해 수면의 깊이가 해저 403m로 낮아지면서 리산(Lisan) 반도를 동서로 잇는 육지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 결과 최고 깊이가 350m에 달하는 북사해와 10m 이내의 남사해로 분리되었다. 사해는 남북의 길이가 76km, 동서의 폭이 평균 15km, 전체 면적이 약 1,000㎢인데, 이 중 북사해의 면적이 800km²를 차지한다.
요르단 강을 비롯하여 사해로 흘러 드는 하천들의 물속에 녹아 있는 염분과 기타 광물질은 출구가 없는 사해에 들어온 후 섭씨 40도에 달하는 이 지역의 높은 기온 때문에 물기가 대량으로 증발되면서 짙은 농도의 호수를 형성하였다. 사해의 물 3분의 1은 북쪽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요르단 강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동쪽의 아르논 강과 우기(雨期)에만 흐르는 사해 주변의 와디들, 그리고 해변에 위치한 여러 샘들로부터 흘러 나온 것이다. 사해의 물 속에는 소금 외에도 마그네슘 · 염화물(鹽化物) · 브롬 · 나트륨 · 칼륨 · 칼슘 등의 광물질이 많이 녹아 있어 오늘날 소돔 지역에 위치한 '사해 공장' (Dead Sea Plant)에서는 이 성분들을 추출하여 의약품 · 화장품 · 비료 · 기타 공업용 원료 등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특산물 소금과 역청(asphalt)은 성서 시대부터 외국으로 수출되던 것들인데 특히 역청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제작의 방부제로 많이 사용되었다. 사해변의 엔게디(En-Gedi)와 조하르(Zohar)에는 질 좋은 유황 온천이 있어 오늘날 이스라엘 관광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변 배경과 성서 시대의 흔적 : 사해 서쪽에는 해발 1,000m 높이의 유대 산지가 자리잡고 있고 동쪽으로는 해발 1,300m 높이의 모압 산지가 있다. 리산 반도에 위치한 밥 에-드라(Babed-Dhra)에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1,500여 년 동안 주거지가 형성되었었고, 남쪽의 누메이라(Numeira)와 사피(Safi) 등에서는 성서 시대 주거지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사해는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시띰 골짜기에 속한 호수이기도 했으며(14, 3), 시띰 골짜기의 다섯 도시들(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의 역사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의 고대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행위를 하여 하늘에서 내린 불로 멸망되었다고 전하는데, 이 두 도시 터는 현재 사해의 남쪽 수역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사해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의 성서 내용과도 관련되어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사해는 아모리족들(아라바 호수 : 신명 4,49 ; 여호 12, 3), 베냐민 지파(짠물 호수 : 여호 18, 19), 르우벤 지파와 가드 지파(사해 : 신명 3, 17), 유다 지파(짠물 호수 : 여호 15, 2. 5), 이스라엘 백성(사해 : 민수 34, 3. 12; 2열왕 14, 25 ; 에제 47, 18) 등의 차지가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에제키엘서에서는 메시아의 땅에 있는 사해에 성전에서 솟는 물이 흘러 들어와 짠물을 단물로 만든다고 하였다(에제 47, 8-12 ; 즈가 14, 8).
또한 사해로 유입되는 강들 주변의 황무지들은 이스라엘 왕 다윗과 헤로데 대왕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40년 적대 세력으로부터 쫓기던 헤로데 왕은 사해의 서쪽 해변가에 위치한 마사다에 가족들을 숨겨 두었었고, 마사다는 73년에 로마에 대항하던 열심당원들이 3년 간에 걸친 포위 공격을 받은 끝에 집단 자살을 한 곳이기도 하다. 쿰란 문서로 알려진 성서 사본을 남긴 유대교 종파(쿰란 공동체)도 사해 북서부의 동굴을 은신처로 이용하였었다. (→ 마사다 ; 소돔과 고모라 ;쿰란)
※ 참고문헌  M. Bayet, Geomorphology,
Geology, and Limnology of the Dead Sea, M. Naor ed., Dead Sea and the Judean Desert, 1900~1967, Jerusalem, Yad Ben Zvi, 1990, pp. 16~221 R.Freund et al., ge and Rate of the Sinistral Movement along the Dead Sea Rift, Nature 220, 1968, pp. 253~255/ C. Klein, Morphological Evidence of Lake Level Changes : Western Shore of the Dead Sea, Israel Joumal of Earth Science 31, 1982, pp. 67~94/ E. Orni . E. Efrat, Geography oflsrel, Jerusalem, Israel Univ. Press, 1980/ J. Rullkötter · A. Nissenbaum, Dead Sea Asphalt in Egyptian Mummies : Molecular Evidence, Naturvisen-schaften 75, 1988, pp. 618~621/ J.L. McKenzie, S.J. (DB), pp. 182~183.〔金 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