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社會

[라]societas · [영]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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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란 모든 인간의 사회적 삶이 영위되는 장소로서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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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란 모든 인간의 사회적 삶이 영위되는 장소로서의 세상이다.

공통된 문화와 지역적 토대를 갖고 있으며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 개인 및 집단들로 구성된, 거대하게 조직화된 인간 연합. 즉 본성적으로 요청되는 또는 자유로이 의욕되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간들의 항구한 연합이다. 더 엄밀한 의미에서는 실존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한 사람들의 항구한 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 사회 교리의 입장에서는 인간 개개인을 초월하는 일치의 원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총체가 곧 사회이며, 이 사회는 인간의 소망을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 동시에 인간 삶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I . 개 념
인간은 사회를 이루면서 생활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지칭하였다. 여기에서 사회라는 용어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모든 실제들을 포함한 것이지만, 그 실제들이 어떤 범위로부터 형성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파악되지 않는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 사회라는 말은 사회학 또는 사회 과학의 중심이 되는 개념이면서도 이들의 사회에 대한 연구는 다소 불확실한 담론과 허구적인 과학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회는 미정형·비조직적인 것과는 달리 인간 상호간에 어느 정도의 결합 관계가 있는 가족 · 민족 · 국가 정당 · 조합 등 여러가지 구체적인 집단이고, 또한 거기에 따르는 행동의 방향이 조직화되고 정비되는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정의해 왔는데, 그 공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는 자연과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비록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사회는 모든 인간의 사회적 삶이 영위되는 장소로서의 세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사회는 가시적이며 동시에 정신적인 집합체로서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시간 안에서 영속한다. 둘째,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그 구성원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을 하면서 함께 생활을 영위하는 본성을 지녔는데, 바로 그 집단 혹은 온갖 형태의 인간의 집단 생활이 곧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이기에, 인간은 사회의 주체이지만 주변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 인간은 단지 어느 하나의 집단이 아닌 수많은 집단에 소속되어 생활한다. 그리고 이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 혹은 집단들 상호간의 관계는 반드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마땅히 헌신해야 하고 공공의 선악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교황 23세(1958~1963)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4. 11)에서는 "사회 생활은 진리의 빛 안에서 지식을 교환하는 일이며,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일이고, 도덕적인 선을 추구 하기 위해 경쟁하는 일이며, 일치하여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정당한 표현을 고상하게 누리는 일이고,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이며, 정신적으로 부유해지려는 공통적인 갈망이다. 문화 활동, 경제 생활, 사회 조직, 정치 운동과 체제, 입법, 그 밖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생활의 다른 모든 표현을 고무하고 지도해야 하는 가치들은 이러한 것들이다"라고 표명하였다.
셋째, 사회는 '봉건 사회' 나 '산업 사회' 혹은 '중세사회' 나 '근대 사회' 등과 같은 역사적 발전 단계를 통해 나타나는 특정한 사회적 혹은 경제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는 것이다. 넷째, 사회는 동일한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한 무리라는 것은 민족(또는 국민)이나 종족뿐만 아니라 직업이나 신분(또는 계급)상의 동일한 무리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사회의 개념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사회 현상의 복잡성 때문이다.
II . 본 질
[사회 현상의 복잡성] 카스토리아디스(Cornélius Casto-riadis)는 그의 저서 《상상적 사회의 형성》에서 사회 현상이 단일성을 보유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언급하였다. 인간의 행동에 질서를 부여하는 법률적 · 도덕적 규범들은 내면적으로 노동 양식 및 생산 양식에 귀속되어 있는 규범들의 인과 관계와 상호 결합되어 있다. 더욱이 그 규범들은 각 개인 · 가족 및 집단의 생활 방식 즉 문화와 상응하는 동시에 그 문화를 통해서 어떤 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사회 안에는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복잡한 사회를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 즉 하나의 현실적인 전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학자는 사회 속에서 총체적인 삶의 사슬과 줄거리를 형성하는 모든 제도 · 신앙 · 행위들이 집합되는 근본적인 유기체라 할 수 있을 현실이라는 가장 넓고 가장 복잡한 사회 현상을 확실히 탐구할 수 있는가? 독단적인 인식론적인 행위와는 달리 공간적 · 역사적 · 문화적 · 상징적 경계들을 동시에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모든 유기적 존재의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헤겔의 객관적 정신론은 곧 윤리학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헤겔은 "가족 · 사회 · 국가의 영역과 나아가 이 모든 인간 생활 집단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역사의 세계도 객관적 정신계에 속한다. 모든 개개인 속에 체현되어 있는 주관적 정신은 가족 사회 · 국가를 매개로 보다 고차원적인 객관적 질서의 세계로 발돋움한다. 주관적 정신은 바로 윤리학의 총괄 개념인 초개인적인 법칙 속으로 스스로를 고양시켜 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헤겔에게서 사상은 어떤 불명확한 것이 종합되고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발생되는 것처럼, 많은 유형의 사회들은 항상 그 사회들에서 드러나는 이성의 단일성 및 개체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전체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즉 정치 · 경제 · 종교의 차원은 모두 완벽하게 서로 부합하며, 그 각각은 나름대로의 질서 속에서 전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헤겔적 개념을 새롭게 수용하는 사회학자는 동일한 역사적 시간에 존재하는 각각의 차원과 실제를 파악하면서 단일한 공리로부터 도움을 받아 사회를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성에 대한 헤겔적인 개념은 모든 차원의 사회적 실체에 오직 내적인 면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인상을 준다.
전체성을 지닌 사회학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자신의 저서 《지식의 고고학》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처럼 가설을 세워야만 한다. 즉 "잘 정의된 공간적 · 시간적 범주에 속한 모든 사건들 사이에 우리는 동질의 관련 체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만 한다. 유일하고 동일한 사실성은 경제적 구조, 사회적 안정성, 심성의 무기력함, 기술적 습관들, 정치적 행위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형태의 변화에 그 모든 것을 종속시킨다. 역사 그 자체는 커다란 개체로 분절될 수 있는데, 이 개체들은 나름대로의 결합 원칙을 보유한다."
그런데 현대의 역사학적 · 사회학적 연구의 발전은 또 다른 방법론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 전망은 연속성 속에서 나름대로의 시대 구분을 보유하고 특정한 변화에 관심을 갖는 역사 사회학적 조직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칸트는 "현상계를 중심으로 보면 인간이 존재하는 모습이나 행하는 모든 것은 거대한 필연적 연관 관계 속에 얽힌 보잘것없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하나의 초감성적인,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자유의 왕국에도 관여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러므로 칸트는 "너는 언제나 너의 의지의 준칙인 동시에 일반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게 행동하라" 라는 실천 이성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실천 이성의 법칙은 요청적 성격 및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는 당위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 법칙은 요구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결코 행동을 강요할 수는 없는 하나의 명령이다. 결국 칸트는 모든 인간들은 절대적 명령' 에 맞춰서 마치 한 개인의 행위가 보편적인 자연법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만 하며, 이 절대적 명령에 일치되도록 살아감으로써만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학적 분석은 바로 이러한 칸트의 주장에서와 같은 주체의 행위를 토대로 사회를 설립하고 그 사회로 하여금 전체성을 지니게 할 필요성 및 불가능성을 말한다. 칸트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간 세계 속에서 형성되는 어떤 세계를 구성하는 상이한 요소들 및 법률에 복종하는 존재인 상이한 주체들에 대해 의식을 부여하는 행위가 곧 정치이며, 그 기원에 관한 질문을 제기할 때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고전적 견해] 사회 현상이 복잡한 만큼 사회의 본질에 대한 대답 역시 역사적 발전 단계에 따라 아주 상이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기딩스(Frankin Henry Giddigns, 1851~1931)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 자신과 동류라는 의식을, 사회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동류 의식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는 사회 생성과 사회 조성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고립 · 분산된 생활을 하던 개인이나 집단이 보다 큰 집단이나 사회로 확대되어 감을 뜻하며, 후자는 사회 집단이 상호 의존적인 계급이나 소규모의 기능 집단 혹은 소집단으로 복잡하게 분화되어감을 의미한다. 결국 사회는 이러한 두 과정을 통해 분화와 재통합을 되풀이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에는 이 분화와 재통합의 과정이 매우 복잡하게 중첩되어 나타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범죄 문제에 대해 중요한 저작을 남긴 타르드(Gabriel Tarde, 1843~1904)는 정신 분석학적 경향을 지닌 사회학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사회의 본질을 모방 심리로 파악하였다. 타르드는 개인의 정신적 과정의 반복, 즉 발명, 한 부분의 창조, 모방,전파, 다른 부분의 전승 등이 반복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통해 사회 문제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어떤 개인(혹은 사회)은 타인(혹은 다른 사회)의 문화를 모방하여 그것에 동질화 · 동일화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우주 현상은 반복 · 대립 · 적응의 세 가지 요소가 상호 변증법적으로 관련성을 맺으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즉 이질적인 것이 상호 대립하게 될 경우 모방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적응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반복을 초래한다. 이는 사회의 발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사회는 발명 · 모방 · 전파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하면서 사회 체제 · 질서 · 조직 및 제도 등이 상호 동일화 혹은 동질화하는 것이다.
한편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퇴니에스(F.Tönnies, 1855~1936)는 사회 형성의 본질은 인간의 정신이나 의지에 있다고 파악하면서 '공동 사회' Gemeinschaft)와 '이익 사회' (Gesellschaf)를 언급하였다. 전자는 유기적 · 감성적 · 정신적인 관계에 근거하면서 인정과 이해와 협동이 존재하는 공동체이며, 후자는 성문법 등과 같
은 합리적인 계약 · 정관 · 협정이나 이해 타산적인 인간 관계에 근거한 도시와 산업 문명 사회인데, 퇴니에스는 후자를 일종의 도덕적 타락의 형태로 간주하였다. 그는인간의 신념 · 심정 그리고 양심에서 나타나는 '존재 의지' 로부터 본질적 결합의 형태가 생겨나고, 그 존재 의지는 공동 사회 내에서 습관 · 신앙 · 협동 · 풍습 · 종교로서 작용하는 반면에, 목적 수단의 관계에 기인하는 '임의 의지' 는 수의적(隨意的)인 형태의 이익 사회를 형성하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퇴니에스는 이 두 사회를 역사적 발전 단계로 파악하여 공동사회로부터 특정한 목적 아래 계획적이고 인위적인 사회인 이익 사회로 발전해 간다고 하였다. 즉 농업 사회에서산업 사회로,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 이런 퇴니에스의 사상은 20세기 초 많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공동 사회화' 와 '이익 사회화' 에 대해, 칸토로비츠(HermannKantorowicz)는 '비합리적 생활 관계' 와 '합리적 목적 관계' 에 대해, 그리고 헬파흐(Wilhelm Hellpach)는 '생식 구조' 와 '규약 구조' 에 대해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본질을 생물 유기체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한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다윈(CharlesRobert Darwin, 1809~1882)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 자신의 논문인 <인구론>과 <진화의 가설>을 통해 진화 사상을 정식화하였고, '생존 경쟁' 과 '적자 생존' 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에 의하면, "진화란 어떤 운동의 투입에 수반되는 물질의 통합이다. 이 진화 과정에서 물질은 불확정적이고 상관성이 없는 동질성에서 확정적이고 상관적인 이질성으로 이행하며, 투입된 운동은 물질의 변화와 병행하여 변화를 당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합 과정과 동시에 또 하나의 반작용, 즉 통합 과정을 거쳐서 다시 그것을 와해시켜 복합체로부터 단일체로의 환원 과정이 전개되기도 한다. 결국 통합과 환원이라는 이 두 작용 결과로 양자간의 평형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다시 동질성 자체의 지속적인 변화 속성으로 인하여 새로운 진화와 발전의 순환이 전개된다. 또한 스펜서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던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우려하였으며, 동시에 영국 사회 내에서 각종 병폐가 나타남을 보고 협동 조합과 같은 자발적인 결합체를 통하여 해당 사회 조직 내에서의 일정한 계획에 따른 자유화와 필연의 여건을 조정하기 위한 올바른 종합화의 기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스펜서는 사회의 본질을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있다고 보았다. 사실상 그는 철저한 개인주의 옹호자였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기술과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지만, 개인이 국가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지원은 사실상 그 개인의 퇴보뿐만 아니라 사회의 퇴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각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한 경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자체가 '군사형 사회' 에서 '산업형 사회' 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조 기능주의적 사회론] 실증주의적 견해 : 19세기의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실증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또 동시에 관념론자들의 '선천적 관념' 과 도덕주의자들의 '규범적인' 주장에 대하여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영원하고도 인간적인' 인식 형식, 즉 과학적 인식에 대한 정태 철학적 관념이야말로 지금까지 자연 과학적 언어 표현 방식과 파악 방식이 사회적 · 심리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가로막아 왔다. 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질문의 제기만이 인간의 사고 및 경험에 있어서의 방향 전환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기는커녕 그것을 단지 '체계' 의문제에 대비되는 단순히 '역사적인' 문제로 취급하여 제쳐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사건들을 '사물' 즉 실제처럼 다루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근본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만약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이 주장하였던 것처럼 '사회' 가 '사물' 이라는 견해는 각각의 특수성을 결정하고 그 연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관찰과 분석을 도구로 사용해야만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실증주의자들이 새로운 분야들에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던 방법들은 오히려 그 타당성과 풍부한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데에는 그들의 사회학적 인식의 객관성에 대한 주장들이 초기 사회학자들의 '의식'에 대한 진화론적인 사변의 영향에서 유래한 것이라는데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실증주의자들은 상대적인 인식 형식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각각의 국면들, 즉 최종적인 한계 및 역사적 과정의 의미 등을 파악함으로써 사회학적 객관성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는 이미 역사주의에서 나름대로의 진화론적인 변형을 통하여 주장하였던 것이었다.
객관성에 관한 문제 : 미국의 사회학자 파슨즈(Talcott Parsons, 1902~1979)가 '사회학을 창시한 대부들' 이라고 호칭하면서 상호간의 일치와 수렴을 과장하였던 학자들, 즉 뒤르켐, 베버, 파레토(Vilfredo Frederico Damasco Pareto, 1848~1923) 등의 세대는 사회학의 황금 시대를 형성하였다. 이 3명의 학자들은 객관성에 관한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한 한 폭 넓은 영역을 언급해야 하는 사회학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에서는 일치하였을 것이다. 즉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회학자들은 우선 자신의 관심 · 참여 · 가치 · 선천적 관념에 대하여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도덕 가치론적 중립' 에 관한 베버의 방법이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사회학자는 자신이 연구하는 사회들과 집단들에 관련된, 충분히 안정된 참고 자료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체계화' 라는 조망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일회적인 경우들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도 구조적인 불변성을 밝히는 것이 사회학자의 중요한 임무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들은 그 사회를 형성하는 공동의 구조적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나타
나기 때문이다.
파슨즈는 정지와 불변성이 한 사회 체계의 정상적인 특성이며, 변동은 다만 사회의 정상적 균형 상태가 교란된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사회의 구조 기능주의적 분석 방법에 있어서 체계 내부의 불변적 요소를 구조라고 보았고, 가변적 요소를 구조 유지의 기능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사회 체계란 일정한 행위를 행하고 있는 다수의 인간들 사이에 있어서의 상호 작용의 체계라고 파악하였다. 사회 체계는 외부적 환경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체계 내에서의 다양한 기능에 의하여 스스로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특정한 사회 체계 내에서 일정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 체계 역시 임무 수행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역할' 의 이론이 나타난다.
파슨즈는 '사회학을 창시한 대부들' 에게서 이러한 불변성을 찾으려고 시도하였으며, 특히 뒤르켐에게서 나타나는 귀납적인 방법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베버 역시 이러한 불변성에 대한 탐구에 전념하였으며, 사회를 상호 의존적인 요소들의 체계로서 다루기를 제안하였던 파레토도 마찬가지였다. 베버는 경험적 자료들을 사고 속에서 체계화한 사회학자이며 사회학의 기초 개념들을 명백히 규정하려고 시도하였던 사상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베버 역시 기본적으로는 고립되고 정체된 것으로 파악된 객체들 사이의, 예컨대 '개인' 과 '사회' 사이의 명확한 상관성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였다. 비록 베버는 경험적인 연구가 아닌 이론적인 연구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사회' 에 대한 모든 언급들을 엄밀한 의미의 실체를 담지 않은 추상화 작업으로 파악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회에 관한 추상적인 사회학적 기술들이 개인 행위의 다양성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밀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사회를 개별적이고 완전히 상호 독립적인 성인이 취하는 행위의 무질서한 집합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볼 때 관찰 가능한 모든 사회의 구조, 유형 및 규칙성 등은 비실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뒤르켐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켰다. 그 역시 개인과 사회를 상호 개념적으로 정립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난 듯하다. 뒤르켐은 이러한 시도로서 결국 '외부적인' 사회 현상들과 '내면적인' 개인 및 그의 의식과의 관련으로 압축되는 오래된 인식론적 문제들을 해명하려고 하였다. 이 인식론적인 문제들은 '외부적인' 객체들이 인식의 주체 및 그의 '의식' · '정신' · '이성' 또는 그와 관련된 내면적인 것들' 과의 관련 속에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기초로 한다. 후에 소위 기능주의와 그리고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하여 이러한 사유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체계에 관한 이론으로서 정의되었으며, 그로 인해 충분한 정확성이 없는 '이론' 이라는 용어는 가설 연역적인 유형의 학문적 인식으로, 그리고 '체계' 라는 용어는 일반화된 상호 의존성이라는 의미로 정의되었다.
비판적 사회학 : 제2차 세계대전 후 15년 동안 이러한 경향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유럽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1960년대부터는 '사회학을 창시한 대부들' 의 유산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학' 이 적극적으로 추구되었다. 그런데 비판적 사회학자들은 1950년대의 기능주의자들이 산업 사회의 기능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도식적이고 낙관주의적인 이미지를 부여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비판적 사회학자들은 기능주의자들의 '보수주의적' 선입견을 비판하면서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확고한 입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이라는 주장에는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비판적 사회학자들은 첫째, 기능주의자들이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충분히 식별하지 않은 채 체계라는 개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적용 영역이 방법론적으로 확인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항상성(homeostasis) , 피드백(feed-back) 등과 같이 언어학에서 차용한 용어들과 규범의 구별이 문학적 사회학의 분야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회적 경험이라는 결정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이미지의 타당성, 이러한 서로 다른 이미지들 사이의 응집력은 거의 검증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사회 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상호 의존성도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이래 이러한 명제들은 환원된 초기능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결국 귀착이 되는 비판적 사회학에 의하여 재개되었다. 이러한 점은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의 저작을 통해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1950년대의 일반적인 기능주의는 비판적 사회학의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학을 궁지에 몰아넣은 원인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우리 사회에 관련된 주제들과 이 주제들을 수용하고 취급하며 분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들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사회학 이론가들은 정체되어 있는 사회의 모델, 즉 '사회 체계들' 의 모델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장기적인 발전의 문제들을 다룰 때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들을 '봉건 사회' ,'산업 사회' 등의 사회 유형으로 귀착시킴으로써 이 문제들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 과정 중에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옮겨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이론 사회학자들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가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불변성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사회 구조' · '사회적 기능' 등과 같은 사회학의 기초 개념들은 바로 이러한 불변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가 지나면서 세 가지 주요한 영역들이 논의의 대상이 되면서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먼저 보다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지닌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체계들의 전후 연결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최근 몇 년 간 활발한 토론을 방해하였던 것은 사회적 충돌에 관한 불충분한 이론과 '구체적인 전체성' 및 '총체적 사회적 사실들' 의 전체화 과정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개념들이었다. 이와 같은 측면은 언어학 혹은 인류학의 영역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적 분석이 어떻든간에 사물들을 더 악화시키게만 할 따름이다. 두 번째로 사회적 조절에 관한 토론, 특히 '재생산' 으로서의 '문화' 에 관한 토론은 학설 속에 묻혀 버렸다. 마지막으로 '사회 변동' 의 과정과 관련해서는 선택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즉 사회 변동의 문제들은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으며, 사회 변동 그 자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 내재적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낡은 관념, 즉 변동은 원래 '정상적인 것' , '구조화된 것' , 즉 불변적인 것에 귀착시켜 설명되어야 한다는 관념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조정의 결과 약간의 변화가 있는 '점진주의적' 시각에 만족하는 것 같다. 또는 '사회적 운동들' 의 창조적 능력에 그 책임을 전가하였던 역사적 단절(후기 산업 사회로의 이행)로 만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Ⅲ. 분 류
[사회 유형학] 현실적인 요소들이 나타나는 사회들을 열거하고 분류하기 위해 사회학자들은 적절한 판단 기준, 다시 말해서 여러 유형들을 만들어 내는 요소들을 재규합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뒤르켐은 자신의 저서 《사회학적 방법의 법칙들》(Règles de la Méthode Sociologi-que, 1894)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회적 현실은 모호하고 막연한 철학자의 연구 혹은 순전히 서술적인 전공 논문의 대상밖에는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역사적 사회들과 인간성이라는 단일하지만 이상적인 개념 사이에 중간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난다. 그 존재는 바로 여러 종류의 사회들이다.
사실상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혹은 사회 과학적 분석은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실체, 여러 관계들의 체계-정치적 · 경제적 · 종교적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는 문화적 질서 -를 형성한다. 특히 사회학적 분석은 가족 · 씨족 · 계급 · 민족 등과 같은 집단들이나 모임들을 연구하는데, 이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부분 사회의 출현, 응집력, 상호 충돌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연구이다. 그러나 여러 관계들의 상호 연관성, 구조화된 수준들, 집단 등과 같은 사회학의 연구 대상들은 하나의 특별한 전체성, 즉 '전체 사회' 속에 포함된다. 이 전체 사회란 사회적 주체들이 자신들을 결집시키는, 혹은 자신들을 결집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각각의 주체들에게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 궁극적 질서를 발견하는 구체적인 개체이다.
전체 사회를 분류하려는 사회학자들의 시도는 가장 단순한 사회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혹은 가장 야만적인 사회에서 가장 문명화된 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회들의 서열화를 전제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회학자들은 이 두 가지 분류 중에서 어느 하나를 취하는데, 이를 뒤르켐도 제기하였다. 이렇게 할 때에 여러 사회들의 유형은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심지어 도식화 경향 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연주의적 사고 방식을 취하는 동시에 실증적인 묘사 · 분석 및 과정에 의해 여러 사회들을 다루는 사고 방식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여러 사회들을 분류하는 유형학은 유명한 사회학 이론들의 아킬레스건이다. 유형학들은 유명한 사회학 이론들이 과학 만능주의 및 역사 철학자들에게서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의 사회 분류] 퇴니에스가 공동 사회와 이익 사회로 사회 유형을 분류하였던 것처럼, 많은 학자들은 주로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쿨리(Charles Horton Cooley, 1864~1929)가 1차 집단(primary group)과 2차 집단(secondary group)으로 구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자는 접촉의 범위가 좁고 그 빈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영구적인 인간 관계를 의미하며, 이 집단 내에서는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 등이 성립된다. 후자는 법적인 관계나 문서를 통한 계약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특정한 목적과 합리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한 공식적인 인간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파슨즈에 의하면 1차 집단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분산되어 있으며, 개별적이고 지위와 직업을 더욱 중요시하며, 타자 지향적 혹은 집단 지향적이고 감정적인 정서가 개입한다고 하였다. 또 2차 집단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특수하고 한정적이며, 보편주의적이고 지위나 직업보다는 업적을 중요시하며, 자기 지향적이고 감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뒤르켐의 환절적 사회(segmental society)와 조직적 사회(organic society)의 구분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외에도 매키버(R.M. MacIver)의 공동체와 결사의 구분, 메이오(G.E. Mayo)의 산업 기구 속의 공식 집단(formal group)과 비공식 집단(infomal group)의 구분, 슈르츠(H. Schurtz)의 자연 집단(Natürlich Gruppe)과 인위적 집단(Artifiziell Gruppe), 채핀(F.S. Chapin)의 은밀한 접촉 집단(intimate contact group)과 인위적 접촉 집단 (artificial contact group)의 구분 등이 있다.
뒤르켐은 다양한 결합이 내재된 여러 사회들의 종류를 설명하는 데 근거가 되었던 단순한 사회적 개체들의 허구성을 제기하였다. 이와 같이 단순성이병치된 개인들을 통해 분석을 할 때 즉각적으로 소산되는 것 같은 집단인 '무리' 가 있으며, 무리들과 병치된 것이지만 최초의진정한 사회인 '씨족' 이 있다. 이외에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단순 사회' , '단순 복합 사회' , '이중 복합사회' ,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복합 사회' 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들은 뒤르켐의 환절적 사회와 조직적 사회라는 이중적 구분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에 의하면인간은 전통적인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다시 오늘의 대중 사회 속에 자신을 예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개인적인 면과 연대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있기 때문에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연대라는 일종의 이율 배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외관상 가장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마르크스(K. Marx,1818~1883)의 유형학은 경제적 하부 구조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고를 토대로 형성되었다. 이 유형학은 계급없는 원시 사회에서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단계를 통해 모든 사회들이 생성되는 사회적 유형의변증법적 연속을 살펴보게 한다. 즉 원시 공동체는 토지의 공동 소유, 친족 관계 및 수렵이나 채집과 같은 자연에 대한 점령 경제를 토대로 형성되었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공동체의 재산과 관료적인 지배 계급이 혼합된형태이다. 그 형태에는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보다 더욱발전된 사회적 세분화를 가능하게 하는 규칙적인 생산잉여가 존재하며, 또한 이 잉여를 사유화(私有化)하는집단이 출현한다. 공적 소유와 사적 소유라는 이중성은 고대의 생산 양식과 함께 발전된다. 노예제적 생산 양식,게르만적 생산 양식, 봉건제적 생산 양식,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 등은 바로 마르크스에 의해 그 특징이 규명된 방식이다.
이처럼 누가 사회의 유형을 분류하였든지 간에 그 유형은 항상 인위적인 구성이며, 사회학자의 선험적인 지식에 매여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르비치(Georges Gurvitch, 1894~1965)는 자신의 저서 《사회적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Déterminismes sociaux et liberté humaine,1955)에서 '보다 실제에 가까운 유형' 을 구성하면서 이전의 범주들을 모방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가장 미세한 차이점을 효과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로 인하여 그가 분류한 유형은 극단적인복잡성을 드러냈다. 귀르비치는 모든 근본적인 전체적구조를 포함하는 고전 시대 사회를 네 가지의 형태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는 여러 가족 집단에 의해 경쟁을 이루는 씨족의 우월성을 지닌 종족(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인디언)이며, 두 번째는 다양하며 거의 서열화되어 있지않은 집단들을 통합한 종족으로 신화적 권력이 부여된족장에 대한 복종에서 그 응집력이 생겨난다(폴리네시아,멜라네시아). 세 번째는 군사적 분화, 가족 및 때로는 씨족들의 대표자에 의해 조직된 종족(북아메리카)이며, 네번째는 씨족적 분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모든 것이 지역적 집단의 우월성을 근거로 설립되며, 사회 구조의 기능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신통계보학적이고 우주 진화론적인 신화에 의해 정당화되는 군주 정치를 하는 국가들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는 종족이다(북아프리카)
귀르비치는 또한 역사적인 전체 사회의 유형을 여섯개로 구분하였다. 즉 권위주의적 사회(이집트, 이슬람의 칼리프 관할구, 히타이트, 페르시아, 일본, 고대 중국), 가부장적사회(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그리스, 구약성서 시대의 유대 사회, 로마의 라티푼디움, 프랑크 왕국의 군주 정치), 다양한 신분이 존재하는 봉건적 사회(유럽, 일본 및 러시아의 중세), 후에 제국이 되는 도시 국가(그리스의 폴리스, 로마 도시 국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들), 계몽적인 절대주의와 자본주의의 탄생을 초래하는 사회들인데, 이 유형은 단지 유럽만이 해당된다.
만약 많은 사회적 유형들이 상대적으로 선사 시대 및역사 시대 사회들에 한정되어 있을 경우, 산업화를 기초로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들에 대한 검토는막연하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귀르비치는자유 민주주의적 사회, 계획 경제적 사회, 기술 및 사무행정적인 사회, 집산주의적 국가 통제의 원칙에 따라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사회, 다원론적 집산주의의 원칙에 따라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로 구분하였다.
Ⅳ. 기원과 형성
[시민 사회론과 계몽 사상] 홉스의 시민적 국가론 :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선》(Leviathan, 1651)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리" 라고 하면서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규정하였다. 그가 이와 같은 자연 상태관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그때까지의 사회관이 규정하고 있던 자연질서에 대한 실재관을 부정하고, 전통적 · 공동체적 연계를 단절한 상태에서 다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부터이루어지는 새로운 사회 관계를 구
상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흡스의사고 방식은 개인의 욕구를 유일한가치 원리로 보는 사고 방식이며, 더욱이 그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일치하는 인간 욕망의 대상을 선이라고 부르고 증오 내지 혐오의대상이 되는 것을 악이라 부름으로 써 선악의 기준 그 자체를 주관적으로 상대화하는 한편, 개개인이 선악의 궁극적 심판자라고 하였다.흡스는 이렇게 자연 상태에서의모든 법의 타당성을 부정한 다음에,인간의 생명 유지라는 자연의 제원리로부터 출발하여 시민 사회의 형성 원리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끊임없는 공포와 무서운 죽음의 위험' 에 직면하게 될 때, 인간의이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의 감정은 결국 자연권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거기에서 발견되는 '평화의 원리' 로서의 이성이 명령하는 것이야말로 흡스가 말하는 자연법이다. 그의 자연법은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한 자연권의 상호 양도를 논술하였는데, 그것은 또한 계약 이론을 중심으로 자연권의 상호양도에서 성립되는 사회의 법적 규범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의 자연법이 '근대 사회의 사법적 규범' 이라고 일컬어지고, 그의 '정의에 관한 자연법은 시민 사회의 원리를 제공하는 것' 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흡스 사상의 시민 사회성은 그가 도덕 자체를, 각자가 자기 보존을 상호 실현하기 위해 지켜야만 할 외적 규범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점에서도 나타난다. 시민 사회사상가인 흡스에게 있어서 문제는 자유 · 독립의 행위 주체로서의 시민 상호간의 사회적 질서 유지와 그를 위한도덕이었는데, 이 도덕의 기준 내지 계율을 이루는 것이'이성에 의해 찾아낸 계율 혹은 일반 규칙' 으로서의 자연법이었다.
로크의 정치 사회론 : 로크(John Locke, 1632~1704)의《정부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90) 제2권의 주제는 근대적인 '사적 소유의 근본법' 을 책정하고, 그 교환관계에서 성립하는 시민 사회에서의 유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그것을 강제하는 전제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그가 이 책에서 전개한 국민 주권, 입법권의 지상성, 권력 분할, 제한론, 신탁, 저항권 등의 관념이 오늘날 민주적 정치 제도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흡스는 각개인의 자기 보존을 위한 자연권에서 출발하여 그 사회적 실현을 정치 사회의 목적으로 하였으나, 로크는 소유에 대한 자연권까지 심화시킴으로써 정치 사회로서의 시민 사회가 각자의 소유를 보호하고 교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구성물로서 사람들의 동의에 기초하여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로로크의 이론은 인간의 사회 관계의 성립이 반드시 계약에 의한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본적 전제인 '위대한 자연 사회' 로서의 자연 상태에서의재산의 소유와 그것의 교환 관계에서 성립하는 사회 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 위에, 그러한 현실의시민 사회에 있어서 각자의 '정직한 근로' 의 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계약에 의한 정치적 결합체의 형성을 요청한 것이 로크의 정치 사회론이다.
로크는 흡스보다 훨씬 명확하게 교환 사회로서의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에서 재산의 소유와 그것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 상호간의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한기관으로서 정치 사회의 설립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로크의 시민 사회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연 상태에 있어서 각자의 자유스러운 계약에 의거한 자발적 · 인위적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 상태라고 하는 이름의 시민사회에 있어서 상품 관계의 존재를 전제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루소의 사회 계약설 : 국가 형성의 설명 원리인 계약설은 부르주아적 사회 질서의 형성 속에서 탄생하였다.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로크의 저항권이론을 계승 · 발전시켜 종래의 이중 계약설에서 볼 수있는 인민 주권과 군주 주권의 혼동을 사회 계약설로 일원화시켜 해소하려 했다. 루소가 《사회 계약론》(ContratSocial, 1762)에서 "정부는 부당하게도 주권자와 혼동되고있으나 정부는 주권자의 공복에 불과하다" , "비록 인민이 세습 정부를 세우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이 일가족에의한 왕정이든 혹은 시민 가운데 한 계급에 의한 귀족제이든 인민이 행하고 있는 것은 결코 '복종' 의 약속은 아니다. 그것은 인민이 다른 통치 형태를 채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통치 기관에 허락하고 있는 형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계약설로 일원화시켜 인민 주권의 불가 양도성과 불가 분리성을 시종일관 전개하여 왔기 때문이다.
자연권 사상에 의거하여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문명상태로의 이행을 '사회 계약' 으로 설명하였다. 자연 상태를 구성하는 인간은 자신의 모든 힘과 함께 "자신의주권을 공동체의 성원 모두에게 양도한다." 이 전면적인 양도 행위의 조건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각 개인은 타인에 대해 상호 전면적으로 양도하기 때문에 어떠한 유보 도 없으며, 또한 "특정의 어느 사람에게도 자신을 양도하지 않는다." 전면적 양도에 의해 '공통의 상위자' 로서의 '일반 의지' 가 형성되어 각 개인은 이 일반 의지에 대한 복종에 의해서 정치체를 구성하는 불가분의 성원이된다. 이 정치체는 "수동적으로 법에 따를 때에는 '국가'라고 불리고, 능동적으로 법을 만들 때는 '주권자' 라고불린다. 또한 각 개인은 주권자의 일원으로서는 능동적인 '시민' 으로, 법에 복종하는 사람으로서는 수동적인'신민' 으로 규정된다. 이 정치체의 본질은 복종과 자유가 일치하는 데 있으며, '신민' 과 '주권자' 라는 두 단어는 서로 동등한 내용을 가진 상관적인 단어로서 양자의 관념은 '시민' 이라고 하는 단 한마디 속에 표명되어 있다.
임시 정부와 민주 정의 설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루소는계몽에 의해 경멸당해 왔던 '인민' 에 의한 자기 통치의사상을 제기하고 있다. 이 자기 통치의 사상은 복종과 자유의 일치로서의 정체의 기본 구조 속에 포함되고 발전된 것이다. 정부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모든 기능을 명백히 할 뿐만 아니라 정치체 속에 있으면서항상 '임시적인 것' 에 불과한 정부의 새로운 설립까지일관되게 해명되어야 비로소 복종 계약설 비판으로서의사회 계약설에 의한 통치의 근거 설정이 가능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시민 사회와 사회 혁명] 마르크스는경험적인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전제' , 즉 시민사회의 현실적인 각 개인의 행위와 그 물질적 생활 조건에 주목하였다. 그는 개인에 의한 직접적 생명의 물질적생산 양식, 즉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양식을 '생산 양식'혹은 '생활 양식' 으로 표현하였고, 이러한 생산 양식과결합하여 여기서 산출되는 유통의 제 형태를 시민 사회로 총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사회적인' 유통형태에서 개인이 영위하는 '생산 양식' 이 획득하는 사회적 능력을 '생산력' 이라고 하였다. 이전의 모든 역사 단계에 존재하였던 생산력에 의해서 규정되고, 이것을 규정하는 유통 형태로서의 시민 사회라고 하는 규정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시민사회는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각 개인의 물질적 유통의 총체를 포괄하고 일정한 단계의 상업과 공업의 전 생활을 포괄한다."
결국 시민 사회를 규정하는 두 가지 개념, 즉 생산력과생산 양식은 유물 사관의 기초 범주가 되었다. 따라서 생산력과 생산 양식의 모순 또는 충돌로서의 사회적 변혁즉 시민 혁명이 필요하게 된다. 근대 시민 사회의 모순은대공업과 자유 경쟁 및 생산력의 보편적 발전과 결부된세계적 유통하에서의 자본과 자본의 대립 중에 자본과노동의 대립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말하는계급 투쟁이란 계급적 개인이 인격적 개인으로 자기를지양하는 대상적 활동이다. 그것은 결합된 각 개인이 생산력 총체를 자기 것으로 획득함으로써 실현된다. 근대시민 사회에서 이러한 각 개인의 자기 획득 혹은 자기 실현으로서의 사회 혁명은 모든 계급간의 투쟁의 형태로전개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 양식 사이의 모순은 현저한 경제적인 사회 위기로 나타나는 동시에 그것은 마찰의 총체, 즉 제 계급간의 충돌, 의식의 모순 즉 사상 투쟁, 정치 투쟁 등의 부차적인 여러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결국 사회 혁명은 그것들의 총체적인 운동인 것이다.
V . 가톨릭의 사회론
가톨릭의 사회론에서는 사회를 "실존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한 사람들의 항구한 연합" 으로 정의하면서, 사회를 개인과 개인의 활동에서 독립해 있으며 영속적인 위계 질서에 따라 철저히 규정된현실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은 공동체와 사회라는 두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데, 공동체가 집단의 내적 발전에 관계되는 사람들의 연합을 의미하는 반면, 사회는 목표 달성을 위한 체계적인 조직과 외적인 제도들로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의 연합을 가리킨다. 그러나 공동체가 사회적기능을 외면하고는 존속할 수 없듯이 사회 역시 공동체적 요소를 부인하고는 존속할 수 없다. 공동체가 보다 감정적이라면 사회는 보다 이성적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양자는 항상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가톨릭의 사회론은 우선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한다.이 사회성은 일시적 우연이 아니라 천성적이며 자연적인본성이다. 이는 결국 이성적 논리의 귀결인 동시에 계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사회론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천적 지시 사항이 아니며, 현대사회학에서 그리스도교적 사회 교육을 위해 일정한 지식만을 정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톨릭 사회론은 그리스도교적 인간론의 주요 부분이다. 교회가 초기 시대부터 널리 알려 온 가톨릭의 사회론은, 산업주의 시대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는 여러 사회회칙 즉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 <어머니와 교사>(Mater etMagistra, 1961),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 그리고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1965)에 의해서 입증된다.
[신학적인 근거] 가톨릭 사회론은 다음의 다섯 가지신학적인 고찰을 근거로 전개된다. 첫째,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되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국가적 · 사회적 · 경제적인 과정의 대상과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신약의 계명이며, 사물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전체로서의 인간을 구원하였다. 그러므로 인간 안의 개별적인 영혼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인간관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셋째, 가톨릭 사회론은 초자연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원죄후에도 인간의 사회적 본질에 기인하는, 즉 하느님의 의지에 기인하는 사회적 공동 생활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회적 질서와 복음의 구원 계획에 따른 회복과 완성,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의한 그 구성이 가톨릭 사회론의 대상이다. 넷째, 인간은그 속에서 살고 어려서부터 그 속에 얽매여 있는 사회적제 관계 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회적 제 관계가 때로는 구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영원한 구원 실현을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같이 구원에 역행하는 상황,예를 들어서 몇몇 저개발 국가에 있어서의 참상 등은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태이나, 그 원조는 단순히 사회 비판이나 자선의 형식으로서만이 아니라 가톨릭 사회론의 제원칙에 근거한 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형식을취해야 한다. 빈곤 · 기아 · 질병 · 재해와 열심히 싸워 이를 강력하게 물리치는 일은 그리스도교적 의무이다. 다섯째, 가톨릭 사회론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육화에근거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받아들이면서 인류의 역사적 · 사회적 생활을 위한 신앙의 질서는 수용하지 않는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인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화로 교회는 인간 사회의 생명 원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신학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가톨릭 사회론은인간 사회의 본질과 질서, 그리고 각 시대의 사회적 관계에 적용될 규범과 질서의 과제에 관해서 사회 철학적 ·사회 신학적으로 획득된 지식의 총체이다.
[기본 원리] 가톨릭 사회론에서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원리는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연대성의 원리 : 연대성이란 사회 안에서 각 개인은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반면에 전체는 개인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사회는 구성원을 돌보고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과 사회와의 밀접한 관련성이 바로 연대성인데, 이 연대성의 원리는 구체적으로다음과 같은 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전체와 개인 간의 상호 관계, 개인이나 전체의 일방적 지배 종속 관계, 개인과 개인 간의 상호 관계가 그것이다. 이 원리는 인간의인격성과 사회성 상호간의 결합과 의무를 뜻한다. 이에따라 인간의 사회적 본질을 부정하고 사회를 개인적 이해의 기계적 균형화를 위한 목적 단체로만 보는 개인주의와, 인간의 인격적 존엄을 박탈하고 인간을 사회적 특히 경제적 과정의 단순한 대상으로 천대하는 집산주의는사회적 질서 원리로서는 인정할 수 없다. 이 원리는 인격의 존엄성 및 인간의 본질적인 사회적 성향에서 비롯되므로 인간과 사회 간의 관계를 규정하게 된다. 즉 이 원리는 개인과 사회의 상호 결합에 바탕을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존재 행동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원리는 존재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연대성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분야는 노사 협력 분야, 일반 분야, 약자 보호 분야, 그리고 국제적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원리를 실제 적용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 요소로 민족주의나 인종 차별주의 등 인간의 이기심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인간 사회의 존립과 인격의 완성을 위협하는 민족간의 불신과 잘못된 이기심은 이 원리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국제 협력에 있어 인류 사회의 공동선 추구가 목적이 되어야 하므로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인류의 지속적 발전과 완성을 가능하게하며, 물적 차원만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의 발전과 완성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동선의 원리 : 인간 사회의 목적을 이루는 데 공동선이 증진되어야 하며, 이 공동선은 사회 정의, 자발성과책임, 평화와 안정, 자유 및 물적 풍요를 전제로 한다.가톨릭의 사회론에서는 사회의 목적과 기능을 이 공동선의 실현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제도의 근원, 주체,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공동선이란집단이나 개인이 보다 완전하고 쉽게 자기 완성을 성취할 수 있는 사회 생활상 여러 조건들의 총체를 말한다.즉 한 사회의 선에 대한 내용으로 사회는 독자적 가치를지니고 있지 못하고 인간의 생존 보장과 계발 육성을 최대한 확보할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가 실현될 뿐이다. 공동선은 바로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우선적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인간의 공동생활 질서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공동선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먼저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들의 전인적 실존을 증진하고가능하게 한다. 또한 공동선은 인간적 본성 안에 있는 반사회적 충동들이 타인들의 권리와 사회 질서를 간섭하지못하도록 방지하게 한다. 공동선의 이러한 측면은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보장함으로써 실현된다. 그러나 공동선은 인간의 목적을 도와 주는 보조 기능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므로 인간이 공동선이나 사회 목적을 위한 수단은 될 수 없다. 결국 공동선은 인간의 인격과 하느님의 창조 및 구원 계획에 봉사하는 데 있다고 할 수있다.
보조성의 원리 : 공동선의 추구라는 의무는 국가적 차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국가는 공동선에 대한 최종적책임자이며,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에는 특별 한 권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공동선을 위해 지나치게 인간의 사회 생활에 개입할 경우 개인의 자유와 자발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대두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톨릭 사회 이론이 내세우는 것이 바로 '보조성의 원리' 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들의 힘에 제약을 가하는 동시에작은 집단들이나 개인들을 보조하고 도와 줄 의무와 자격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이 원리는 당국자들을 구속하는 동시에 그 사회 구성원들과 개인들에게도 의무를부여한다. 주체들의 개인적 권리와 책임들을 보호함에있어서 이 원리는 주체들이 자신의 권리들을 행사하고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책임이많을수록 사회의 개입도 그만큼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권위는 나름대로의 한계를 존중해야만 하며, 사회 구성원들 역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 원리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와 대립된다. 또한 이 원리는 국가 개입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며,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관계 형성과 참다운 국제 질서의 건설을 지향한다.
[실천적인 지향 및 과제] 가톨릭 사회론의 목적은, 특히 그 사회 정책적 · 사회 윤리적 · 사회 교육적인 측면에있어서 현세적인 낙원도 아니고 세속적인 세계가 승리하는 영광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사회적 영역의 질서 능력을 허락하지 않고 세계를 그 운명에 맡겨버리는 공상적 사회론이나 유심론적 · 게토적 그리스도교파는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미래의 일에 대한 희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피하지 않게 하고 내적으로해방시키므로 신앙의 힘을 통해서 현세적 현실을 형성해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 형이상학적 · 사회 윤리적 · 사회 신학적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 가톨릭 사회론의 가장 중요한과제가 되겠지만, 항상 '시대의 징표' 를 이해하는 데 마 음을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칙에는충실할지는 모르나 현실을 떠난 추상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되므로, 가톨릭 사회론은 경험적이고 체계적인 사 회학 · 사회사 · 사회 심리학 · 인구학 등의 확실한 성과를 주의 깊게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특히 급격한 사회적 · 기술적 · 경제적발전이 인간의 생존 양식과 생활 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현대에 와서 더욱 그러하다. 가톨릭 사회론은 교회 안의 신적인 것과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것, 특 정된 것과 부과된 것, 그리고 필연성과 자유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 사회학 ; → 가톨릭사회 교리 ; 공동선 ; 보조성의 원리 ; 연대성의 원리 ;사회 문제 ; 사회 민주주의 ; 사회 사목 ; 사회 신학 ; 사회 윤리 ; 사회 정의 ; 사회화 ; 사회 회칙)
※ 참고문헌  André Akoun, 《EU》21, pp. 177~182/ Raymond Boudon· Frangois Bourricaud, Socialisation, Socialisme, Dictionnaire critique dela Sociologie, Paris, P.U.F. 1982, pp. 527~534, 534~541/ Frangois Bourri-caud, Sociologie, 《EU》 21, pp. 210~226/ Norbert Elias, Was ist Soziologie?,Juventa Verlag, 1978(최재현 역,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비봉출판사, 1982)/ 김낙중, 《사회 과학 원론》, 한길사, 1986/ 김대환, 《사회학》, 현문사, 1979/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 사목부, 《가톨릭 사회 교리》 2(중급 편), 가톨릭출판사, 1996/ 飯島幡司, 조기훈 역, 《그리스도교 사회관》, 가톨릭 출판사, 1982/ Joseph Höffner, 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Verlag Butzon & Bercker, 1975(박영도 역,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85)/ K.H. Peschke, Christian Ethics, vol. 2, C.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86(유봉준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3, 분도출판사, 1992)/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H.J. Störig, Kleine Weltgeschichte der Philosophie(임석진역, 《세계 철학사》 하, 분도출판사, 1983). [邊琪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