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학교

敬愛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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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황해도 장연(長淵) 본당의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설립한 초등 교육 기관으로 1925년 보통학교로 승격하였고 1928년부터는 예비 신학교 역할도 수행하게 되었다. 교육을 통한 복음전파와 애국 계몽의 정신에 입각하여 위로 군주를 공경하고 아래로 동포를 사랑하는 대의로써 세상을 구하고 보국 보민(輔國保民)하는 것을 설립 취지로 하였으며, 국한문, 산술, 지리, 체육 등을 가르쳤다.
〔경애 보통학교〕 경애학교는 처음에 남학생 1개 반으로 시작하여 읍내 중심지에 있었다고도 하고 혹은 장연 읍내 오종석(吳宗錫, 알풍소)의 한문 서당을 하던 사가(私家)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하는데 이때 구학문을 가르친 사람은 김병옥 한 사람이었다. 1908년 여학생 반을 병설하였으며 1910년 읍서리(邑西里)에 있는 성당 옆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1911년 3월에 학생수는 남녀 각각 30명으로 증가하였고 학교 유지비도 개교 당시의 여섯 배인 600원으로 증액되었다. 1916년 6월 김명제 신부가 장연 본당에 부임하여 1935년 1월까지 약 19년 동안 사목활동을 하면서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신부는 1917년 서울에서 샬트르 성바오로 회의 최 골롬바, 황수자(黃修子, 베네딕다) 수녀들을 초청하여 경애학교의 여학생과 유치원 원아들의 교육을 맡겼다. 1922년 학생수는 유치원생을 제외하고 249명(남 175, 여 74)이었다. 당시 학부형들의 학교 후원 성의는 지극하여 교실난을 해소하기 위한 16간짜리 남학생 교사 한 채 신축에 약 1,000여 원을 모금하여 학교 측에 기부하였다. 김 신부는 이때 2,000원의 빚까지 지게 되었으나 남학교를 지으면서 수녀원 건물도 새로 지었으며 손수 목수 일을 하였다. 1925년 6월 4일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는데, 장연군 악대와 해주 성당의 해성 유치원(海星幼稚園) 활동 사진 순업대(活動寫眞巡業隊)도 동원되고 4,000여 군민이 운집하여 마치 장연군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이 운동회를 성공리에 끝마친 후 1개월 만에 보통학교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여 인가를 받았으며, 1928년에는 황해도 지사로부터 김명제 신부가 교육자로 표창되기에 이르렀다. 1928년 1월 뮈텔 주교가 황해도를 감목대리구로 설정하고 김명제 신부를 초대 감목대리에 임명하자 경애학교는 황해도 각 본당 출신의 예비 신학생들을 발굴하여 이들의 사제 성소를 계발하는 예비 신학교의 기능도 담당하게 되었다. 즉 황해도내 여러 본당의 보통학교 4~5학년 신자 학생 중에서 신학교를 지망하는 예비 신학생을 선발하면 대개 경애학교로 전학시켜 5~6학년 과정에서 성소의 유무와 자질을 테스트하고 교육도 시켜 졸업 후 소신학교에 진학시키곤 했던 것이다.
당시의 교직원을 보면 교장으로는 김명제 신부와 오종석 명예 교장이, 교감으로는 장규섭(바오로)이 활동하였다. 교사는 대개가 천주교 신자들로서 임영익(林瑛益, 루도비코), 김상옥(金尙沃), 이진백(李振伯), 최광옥(崔光玉, 루도비코) 등이 1920~1930년대에 남학교에서 봉직하였으며, 여학교의 경우는 처음 시작부터 1945년까지 계속 수녀들이 맡았다. 1931년 경애 보통학교의 재학생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각 학년 1개 학급씩 모두 6학급 338명이었고 그간 졸업생 총수는 800명에 달했다. 1937년 이선용(李善用, 바오로) 신부가 장연 본당에 부임한 후 곡산 공립 보통학교의 교사이던 유영재(柳永載, 미카엘)가 경애학교의 교사겸 교장대리에 취임하여 일제 말기학교가 공립 학교로 흡수되어 일본인 교장으로 교체될 때까지 봉직하였다. 1945년 8 · 15 해방후 공산당국에 의해 수만평의 교회 토지가 몰수되면서 경애학교는 인민학교로 국유화되었다. 경애학교 출신 사제들로는 장금구(莊金龜, 요한 그리소스토모), 김정진(金正鎭, 바오로), 최익철(崔益喆, 베네딕도), 최석호(崔奭浩, 바오로),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신부 등이 있다.
〔경애 유치원〕 장연의 경애(敬愛) 유치원은 경애학교 유치부가 모체가 되어 정규 유치원으로 발전하여 대략 1920년대 중반에 인가를 받았으며, 1922년경에 164명의 유치원생이 있었다. 초창기의 유치원은 개량 서당(改良書堂)의 성격으로 천주교 문답교리, 노래, 유희 등 외에 첫 1년 동안은 천자반(千字班)이라 하여 천자문을 익히고 다음 1년 간은 조 · 한문반(朝漢文班)이라 하여 한글과 한문을 배웠다. 유치원 운영과 교육은 최 골롬바, 황수자, 이일마(李一瑪, 데레사) 등 주로 수녀들이 맡았다. 유치원은 설립자 김명제 신부의 교육 열성 덕택에 많은 유지들과 지역 사회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었다. 1928년 3월에 경애 유치원 후원회가 결성되어 이듬해 유치원 확장을 위해 유희실을 신축할 때 지역 유지들은 자발적으로 많은 액수의 공사비를 모아서 기부하였다. 후원회 회장은 김승애(金承愛)였고 부회장은 심우천(沈禹天), 총무는 최승옥(崔承玉), 김유연(金有淵) 등이었다. (→ 김명제 ; 김문옥 ; 장연 본당)
※ 참고문헌  《황해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p. 205~240/《가톨릭 사전》.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