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정치 사상 체계를 합성한 독자적인 이념 체계. 현존 정치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사회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정치 이념으로, 국유화보다는 국가의 통제를 지향하며 경제 성장과 부의 공정한 분배를 촉진시키는 자유 경제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개 념〕 사회 민주주의를 매우 바람직한 내용으로 인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출발하면 사회 민주주의는 인류가 지상에서 오랫동안 추구하고 있는 기본 가치로서의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체계로 환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두 개의 정치 체계를 결합하고 보완함으로써 부정적인 측면을 지양하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강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량하려는 발상은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지만, 여기에는 간과될 수 없는 결정적인 논리의 비약이 있다.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할 때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은 성급한 결론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합의이다. 특히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정당은 으레 마르크스(K.H.Marx, 1818~1883)와 엥겔스(F. Engels, 1820~1895)의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때로는 명시적 주장은 아니더라도 묵시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사회 민주주의 노선의 추종자나 정당원들이 부인하고 있다 하더라도 명백한 영향이며 전통으로 남아 있다.
사회 민주주의 노선은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같은 내용으로 사유 재산 제도의 철폐와 계급 투쟁을 통해 무산 대중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극좌파 정치 제도에서부터 극우파 보수적인 전제 정치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형태로 세분된다. 따라서 적어도 이러한 양극단의 과격한 정치 형태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수용될 수 없음이 자명하고, 지나치게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적 요소가 소홀히 취급되는 형태나 지나치게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요소가 무시되는 체제 역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극단에 치우친 정치 형태를 피하고 비교적 온건한, 따라서 일반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노선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한다. 중도적 경향의 형태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민주 사회주의' 는 보다 민주주의적인 색채를 우선하고 있으며 '사회 민주주의' 는 사회주의적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면 비교적 무난한 판단이다.
〔정치 역사적 이해〕 사회 민주주의는 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인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나 운동을 총칭하고 있으나, 마르크스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고 이상주의적 휴머니즘의 입장을 취하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역사적으로 여러 대립된 사상과 운동이 긴장 속에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19세기 프랑스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하였지만, 당시의 선거 제도에 따라 이들의 정치 참가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이에 1848년에는 선거권의 확산을 요구하며 이른바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즉 노동자들은 보통 선거권을 요구하며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하였다. 이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당시 '교양과 재산을 가진 시민' 의 자유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와 구별하여 '사회 민주주의' 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것은 각국 국민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한 노동자들의 민주주의 운동, 특히 사회주의 노동 운동의 별칭이 되었다.
사회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노동 운동의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독일에서였다. 1863년 라살(F. Lassalle, 1825~1864)에 의해 최초의 노동자 정당인'전 독일 노동자 협의회' (ADAV)가 창립되고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자, 이에 대항하여 1869년에 마르크스 · 엥겔스 진영에서는 '사회 민주주의 노동자당' 을 창립하였다. 당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사회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두 세력은 1875년에 '독일 사회주의 노동당' 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2년 동안 비스마르크 치하에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890년에는 '독일 사회 민주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이라는 합법 정당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합법 활동의 범위가 의회 활동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거와 의회 활동에만 주력한 결과 1912년에는 의회 제1당으로 부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제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집권이나 정권 참여 가능성은 봉쇄되어 있었고, 훗날에는 사회 민주주의 자체가 분열되었다. 당시의 사회 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 같은 뜻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1884년에 의회 정치에 의해 사회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려는 '페이비언 협회' (Fabian Society)가 등장하였고, 이 기본 원리가 1906년에 창당된 '영국 노동당' (Labour Party)의 강령이 되었다. 사회 민주주의를 표방한 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비슷하지만 이상주의적 휴머니즘을 세계관으로 제시하고 있어, 즉 기존 질서 체계로 민주주의 원리를 주장하고 역사적 유물론이나 계급 투쟁 이론에 반대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주 사회주의' 로 정립된 '사회 민주주의' 의 갈래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로서의 사회 민주주의는 수정주의와 공산주의의 양 진영으로부터 협공을 받아 분열되었고, 제2 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공산주의가 사회주의 노동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자 독일 · 프랑스 ·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사회 민주당을 탈퇴하여 공산당을 결성하였고, 국제적으로도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공산주의와 넓은 뜻의 사회 민주주의의 양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이들은 혁명 방법에 있어서 수정주의 와 페이비언주의(Fabianism)와 비슷하지만, 세계관의 기초로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하였다. 따라서 사회 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내건 오스트리아 사회 민주당, 독일 사회 민주당 좌파, 수정주의와 개량주의, 페이비언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좌 · 우익의 전체주의 독재를 경험한 서유럽의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실현되고, 민주주의도 사회주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라는 민주 사회주의가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 민주당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리고 1951년에 두 당이 중심이 되어 국유화 정책을 후퇴시키고, 소유의 사회주의 대신 기능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등 철저한 반공산주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 형태를 넓은 뜻의 사회 민주주의와 구별하여 '사회 자유주의' 라고도 부른다.
〔가톨릭 교회의 이해〕 사회주의라는 정치 사상 체계가 미분화한 상황에서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을 통하여 사유 재산 제도의 철폐와 계급 투쟁을 주장하는 이념 체계를 과격한 노선에서 온건한 노선까지 동일시하며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즉 교회는 분명히 이러한 이념 노선을 단죄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은 사회주의 노선이 세분화한 이후의 사회 회칙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 1931), <어머니와 교사>(Materet Magistra, 1961), <백 주년>(Centesimus Annus, 1991) 등에서는 비록 온건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사회주의라 할지라도 교회는 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실체를 제대로 식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다만 회칙 <백 주년>에서는 구체적인 전제 위에서 진리에 입각한 자유와 정의 구현 이념 체계는 수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사회주의가 세분화된 후 발표된 회칙 <사십 주년>에서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우선 레오 13세 교황 이후 사회주의라는 사상 체계가 변화하여 과격하고 교조적인 공산주의에서 온건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현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비록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활동하고 있지만 교회로서는 모두 수용할 수 없음을 밝혔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가 사회와 인간에 대해 가톨릭 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겉으로는 온건한 사회주의로 비치고 있는 노선까지도 복음과는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44항). 교황 레오 13세가 단죄한 사회주의는 단일한 체계였다. 그러나 비오 11세 교황 시기에 와서는 두 개의 적대적 진영 즉 과격파 공산주의와 온건한 사회주의로 나뉘어져 대립하고는 있지만 어느 노선도 그리스도 신앙과 정면 배치되는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즉 온건한 사회주의는 계급 투쟁과 사유 재산 철폐를 완화시키거나 폭력 사용을 절제하고 있으므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기울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회주의 기본 원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전략적으로 완화하고 있을 뿐이기에 주의해야 한다(46항)고 하였다. 교회는 인간이 사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인격체인 개인은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간의 부족함을 메움으로써 전인적 완성을 도모한다는, '연대성의 원리' 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물적 측면만을 강조하여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서 개인은 사회에 예속되
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인간 존엄성이 상실된다 하더라도 풍부해진 재화가 피해의 손상을 갚아 준다고 설명하였다. 즉 사회주의는 사회를 위한 도구로 인간을 설명하 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비록 계급 투쟁과 사유 재산 철폐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는 합치할 수 없다(48항)
회칙 <어머니와 교사>에서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비록 사회주의가 온건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하더라도 가톨릭 신자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자들의 견해는 종말이 오면 없어질 현세 생활의 복리만을 추구하고 대인 관계를 오로지 재화 생산 관계만으로 보며 인격의 존엄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 사회주의' 나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모순된 개념이다. 누구도 진정한 가톨릭 신자인 동시에 진정한 사회주의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34항). .
〈팔십 주년> 회칙에서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주의 이론과 노선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정의 · 연대성 · 평등을 실현하려는 운동으로 착각하여 그 바탕에 깔려 있는 폭력 사용이라는 필연성을 간과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 실천의 방법으로 스스로 사회주의 노선에 합류하여 행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우리의 신앙과는 공존할 수 없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왜냐하면 정의 사회 구현이나 인간의 전체성과 자율성의 보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 정의 · 진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지 과격한 폭력이나 증오로는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31항).
<백 주년>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78~ )은 인간을 단순히 사회 유기체의 한 요소로 보고 인간의 권익은 전적으로 사회 경제 질서에 예속되는 존재로 해석하기에 자유로운 윤리 주체로서의 인간 존엄성은 사라진다고 사회주의의 근본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인간 존엄성이 무시되며 참된 인간 공동체의 확립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13항). 참된 정치 체제는 올바른 인간관 위에서 가능하며 법치 국가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므로, 교회는 개인의 사익이나 이데올로기 목적을 위해 정치 체제를 독점하거나 독재자들이 출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특히 무원칙한 민주주의는 쉽게 전체주의로 바뀐다는 경험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명칭이야 어떻든 교회가 인정하는 정치 체제는 생명권, 가정권, 진리 추구권, 노동권, 신앙의 자유가 견고한 기초로 인정 · 보장되는 체제로 특정 형태의 정치 체제를 내세우지 않는다(46~47항)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 민주주의' 이건 민주 사회주의' 이건 교회의 입장은 처음에는 판단의 기준이 엄격한 단죄에서 현대에는 현실을 감안하고 정치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는 교회의 전통에 따라 몇 가지 필수적인 기본 전제만 보장된다면 수용한다는 완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 한 예가 독일의 '사회 시장 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로서 평등과 자유의 요소를 혼합하여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제도의 출현과 이의 수용을 들 수 있다. (→ 가톨릭 사회 교리 ; <노동 헌장> ; <백 주년> ; <사십 주년> ; 사회주의 ; 〈팔십 주년>)
※ 참고문헌 J.D. Forman, Socialism, Capitalism, Communism, New Viewpoints, 1973/ Patsouras . J.R. Thomas eds., Varieties and Problems of Twentieth-Century Socialism, Nelson-Hall, 1981/ K.T. Schuon, Politische Theorie der demokratischen Sozialismus, 1986/ T. Meyer, Soziale Demokratie, 1991/ 비오 11세, <사십 주년>, 1931/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바오로 6세, <팔십 주년>, 1971/ 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1991/ P. Boarman ed., Der Christ und die Soziale Marktwirtschaft, Stuttgart, 1955/ D. Geitner ed., Soziale Marktwirtschaft, Berlin, 1974/ E. Tuchtfeldt ed., Soziale Marktwirtschaft im Wandel, Freiburg, 1973.〔金漁相〕
사회 민주주의
社會民主主義
[라]democratia socialis · [영]social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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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민주주의의 기원은 1848년 2월에 프랑스 노동자들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