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중의 하나. 종교·사상 · 이념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랑과 정의에 입각한 사회 건설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설립당시의 명칭은 인성회(仁成會)였으나 1991년 11월에 사회 복지위원회로 개칭하였다.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37-3번지 소재. 〔역대 위원장〕 초대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1975. 6~1990. 12), 2대 박석희(朴石熙, 이냐시오) 주교(1990. 12~1996. 10), 3대 정명조(鄭明祚, 아우구스티노) 주교(1996. 10~현재).
〔설립과 변모] 한국 교회는 일찍부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회 사업 활동을 전개해왔다. 6 · 25 한국 전쟁 후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 신부는 그 일환으로 '한국 카리타스 (Caritas Coreana)를 설립하였으나, 이 단체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하게 되면서 1970년대 초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는 카리타스의 부활을 위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1974년 11월 추계 주교 회의에서 카리타스의 부활이 원칙적으로 결정되었고, 이것이 이듬해 6월 26일 춘계 주교 회의에서 인준됨으로써 '인성회' 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족하게 되었다.
인성회는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복음화의 차원에서 다루고자 한 것으로, 기존의 교회 가르침을 비롯하여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고려하면서 교회의 제반 사회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기구였다. 즉 교회의 대(對) 사회 사업을 활성화시키고 격려하며 조화시키는 조정 기구로서, 긴급 구호 · 자선 활동 · 복지 사업 ·개발 활동 · 사회 운동과 연관된 의식 계발 등을 관장하였다. 이러한 목적과 기능하에 1978년부터는 각 교구에 교구 인성회의 설립을 촉구하였고, 또 교회 안의 다양한 사회 운동체를 조직화함으로써 교구별 · 분야별로 사회 복지 기구를 통합 조정해 나갔다. 그 결과 각 교구마다 사회 복지회가 설립되면서 전체 사목과 사회 활동이 유기적인 관련을 맺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분야별로는 전국 단위의 '가톨릭 결핵 사업가 협회' (1980. 2), '가톨릭 아동 복지 협의회' (1980. 10), '천주교 도시 빈민 사목 협의회' (1985. 3), '가톨릭 장애자 복지 협의회' (1985. 11), '교회 빈민 의료 협의회' (1986.9) 등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성회와 각 단체들은 보다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통합된 협의체의 구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86년 11월에는 '한국 가톨릭 사회 복지협의회' 가 구성되었는데, 이 협의회는 인성회가 1991년 11월에 '사회 복지위원회' 로 개칭되면서 같은 해 12월에 동 위원회로 흡수되었다. 그 후에도 분야별 협의회의 구성은 계속되어 '한국 가톨릭 무의무탁 복지 협의회'(1987. 11), '한국 가톨릭 장애인 복지 협의회' (1995. 11) , '가톨릭 사회 복지관 협의회' (1996. 3)가 각각 조직되었다.
〔주요 활동〕 사회 복지위원회의 활동은 크게 국내 활동과 국외 활동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국내 활동은 다시 몇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이웃 사랑 실천 교육과 모금 운동이다. 이를 위해 위원회에서는 신자들에게 나눔의 실천을 촉구하고 사회 복지 활동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977년부터 '사순절 운동' (사순 시기)을 실시하고 있으며, 1984년부터는 '자선 주일' (매년 대림 제3 주일)을, 1991년부터는 기존의 '구라 주일' 을 '사회 복지 주일' (매년 1월 마지막 주일)로 변경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둘째 각 교구의 사회 복지 활동 및 분야별 전국 사회복지 단체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셋째 국내의 긴급 재해 때에도 구호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넷째로는 사회 복지 종사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수와 피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다섯째로는 사회 복지와 관련된 연구 조사 및 자료의 발간도 추진해오고 있다. 특히 1996년부터는 21세기의 가톨릭 사회복지 사목 정책의 수립을 목표로 '21세기 가톨릭 사회복지 전국 연수회 준비위원회' 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여섯째는 홍보 업무로, 위원회에서는 이를 위해 1993년 6월에 기관지 《가톨릭 사회 복지》를 창간하였고, 7월에는 해외 원조 현황 보고 및 후원회 회원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후원 회보 <희망>을 창간하였다. 한편 1989년부터는 격년으로 전국 사회 복지 현황을 수록한 《천주교 사회 복지 편람》을 발간하고 있다.
사회 복지위원회의 국외 활동으로는, 첫째 해외 원조사업을 들 수 있다. 즉 1977년 9월에 월남 난민 정착 사업, 1984년 12월에 아프리카 기아민 돕기 모금 운동,1985년 12월 멕시코 지진, 콜롬비아 화산 폭발 긴급 구호 원조, 1991년 걸프전 난민 구호 모금 운동을 하는 등 수많은 해외 원조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는 가운데 주교 회의가 1992년 10월에 공식적으로 해외 원조 사업을 본 위원회에 위임하면서 이 분야의 활동이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둘째로는 국제 기구와의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들 수 있다. 위원회는 1975년 7월에 '국제 카리타스' (Caritas Internationalis) 준회원, '아시아 주교 회의인간 발전위원회' (OHD-FABC)와 '가톨릭 난민 구호위 원회' (ICMC) 회원, 1976년 4월에는 '아시아 인간 발전 협력체' (APHD) 회원, 1979년 5월에는 국제 카리타스의 정식 회원이 되었는데, 사회 복지위원회의 해외 원조 업무는 이렇듯 이들 및 각국 교회의 원조 기구들과의 협력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 인성회 ; →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94. [方相根]
사회 복지위원회
社會福祉委員會
〔영〕Committee for Caritas Core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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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