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와 은총의 초월성이라는 관점에서 현세 질서 안에 존재하는 교회와 이 지상 실재에 속한 인간의 소명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 프로테스탄트에서 이 신학은 1950년대 말 이후 서유럽에서 등장한 정치 신학·폭력 신학 · 혁명 신학과 같이 사회 문제와 그 해결을 주제로 다루는 신학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그러나 사회 신학은 독립적인 영역을 가졌다고 인정할 만큼 고유하게 확립된 신학은 아니며, 내용적으로도 신학의 원리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언급해 왔기 때문에 이 용어는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가톨릭에서는 사회 문제 ·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가톨릭 사회 교리에서,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 주제들을 그리스도교 사회 윤리와 실천 신학에서 다루기 때문에 독립 분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내 용〕 가톨릭의 사회 신학은 인간의 사회적인 의무들을 다루는 사회 윤리의 범주를 넘어 인간이 창조된 본래의 목적을 탐구하고,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입각하여성화되어야 할 현세 질서의 구조를 다루는 신학이다.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를 나누는 구분이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의 차이인 것처럼, 일반 신학과 사회 신학의 차이도 구조에 대한 이해에 달려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사목 헌장> 제1부 '부르심을 받은 교회와 인간' 에 사회 신학의 문제 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여기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고, 하느님의 계획 속에 불린 인간 공동체인 사회의 성격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인간의 활동이 갖는 가치와 교회의 사명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의 근거를 잘 밝혀 주고 있다. 이처럼 교회 또는 신자 개인이 사회 문제에 접근할 때 사회 신학은 그 성찰과 판단의 원리를 제공해 준다.
중심 논거 : 첫 번째로, 사회 신학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 27). 사회 신학은 이처럼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인간의 궁극 목적인 하느님이 사람을 자신의 특별한 상대로 삼고, 말 못하는 다른 피조물 가운데서 사람을 선택하여 친밀한 계약의 상대로 불렀으며, 하느님의 '나' 의 대치할 수 없는 '너' 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추구하는 인간의 근원적이며 궁극적인 목표가 초월자 하느님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기 초월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은총은 인간의 모든 소외 조건을 넘어 세상을 '희망' 으로 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 안에 존재하며 온갖 개인적 · 사회적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개방적인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견디어 나가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두 번째로, 사회 신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개인에 있지 않고 '남자와 여자' 라는 기본적 양성(兩性) , 즉 사회성(社會性)에 있다고 본다. 다른 인간과 공존하 는 사회성이 인간 존재의 기본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사회 신학은 개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도 본성상 사회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신비체인 교회는 "영원하신 성부의 사랑에서 좇아 나고, 구세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간 속에 세워졌으며 성령 안에서 모여 구원과 종말을 목적으로 가진다. 이 목적은 후세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이 지상에 현존하고 있으며 현세 국가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 교회는 구원을 고유의 목적으로 추구하며 인간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이 생명이 반사하는 생명을 전세계에 비추고"(사목 40항)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회 신학의 통찰은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이후 최근 100년 동안의 사회 교리에도 잘 드러나 있다. 사회 교리는 교회의 내적인 본성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교회와 신자 개인의 사도적인 사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교회는 이 사회 교리를 통하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이들과 주변화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인간 존엄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연대성 · 보조성 ·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불의가 만연한 세계에서 자유 · 정의 · 평화를 선포해 왔던 것이다. 특별히 교황 비오 11세(1922~1939) 이후에는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켜 왔는데, 이는 현대 세계의 주요 문제들이 분배 정의의 왜곡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이러한 관심들은 교황 비오 11세 이후의 교황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 지역 주교 회의 등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신자 개인 또는 고위 성직자들에게서도 이러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사회 신학은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판단 근거를 다루는 신학이지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을 다루는 신학은 아니다. 그래서 사회 신학은 사회 교리와 같이 사회 문제의 본질과 이를 위한 실천에 중심을 두는 수단을 필요로 한다.
[방법론] 사회 신학은 이른바 이성과 사회에서 통용되는 객관적인 연구 방법론들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 첫째 이성은 신앙의 조명을 받고 계시된 진리에 충실한 지성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사색하고 이해하며 현상들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고,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세우는 이성이라는 고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신학도 이 능력을 사용한다. 둘째는 "여러 세기의 경험, 학문의 진보, 여러 문화 속에 숨어 있는 보화 등" (사목 44항)을 수단으로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사회 분석 방법을 갖고 있는 사회 과학의 객관적인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하느님이 지은 창조 질서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과학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는 것 을 뜻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개방된 자세를 갖는다고 해서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영원 불변의 요소들까지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연구 방법에 개방하되, 중요한 것은 반드시 포기하지 않고 지킨다는 것이 사회 신학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평가와 전망〕 가톨릭에서 사회 신학은 사회 교리의 기초와 사회 문제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역대 교황들과 공의회의 교부들, 고위 성직자, 평신도들이 보여 준 통찰이라는 면에서 의의가 있으나, 체계가 확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립적인 신학 분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 신학은 사회 교리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교회와 신자들의 노력에 대하여 앞으로도 판단의 기초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독자적인 지위로서보다는 보조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 사회 교리 ; 신학)
※ 참고문헌 D.R. Campion, 《NCE》 13, p. 341/J. 메스너, 강두호 역,《사회 윤리의 기초》, 인간사랑, 1997/J. 파이너 · L. 피셔, 《하나인 믿음 : 새로운 공동 신앙 고백서》, 분도출판사, 1979/ K.H. Peschke, 김 창훈 역, 《그리 스도교 윤리학》 3, 분도출판사, 1992/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David J. O'Brien . Thomas A. Shannon ed.,Catholic Social Thought : The Documentary Heritage, Orbis Books, Mary-knoll, New York, 1992. [朴文洙]
사회 신학
社會神學
〔라〕theologia socialis · 〔영〕social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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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인간 창조의 목적을 탐구하고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입각하여 성화되어야 할 현세 질서의 구조를 다루는 것 이 가톨릭의 사회 신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