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례

削髮禮

〔라〕tonsura · 〔영〕tonsure, hair cutting

글자 크기
6
고대나 중세 때 긴 머리카락은 강력한 힘과 생명의 외적 표지로 여겨졌다.
1 / 5

고대나 중세 때 긴 머리카락은 강력한 힘과 생명의 외적 표지로 여겨졌다.

특별한 때 혹은 특별한 목적과 상징적 의미를 담고 머리카락을 깎는 행위.
① 성서에서의 삭발례고대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단순한 일상사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의 일부이며, 일생 동안 계속 자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이 죽은 뒤에도 잘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머리카락은 젊은이들에게서 왕성하게 자란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머리카락을 젊음과 힘의 표징으로, 사람의 활기와 생명력이 머무르는 자리로, 또 신령스러운 것의 거처로 여겨 특별히 거룩한 것으로 소중하게 다루었다. 삭발은 머리에 머무르는 영을 성나게 하여 위험을 가져올 수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하였고, 대부분 자연 상태 그대로 길게 두었다. 그리고 깎은 머리카락은 반드시 불에 태워 신령을 건드리는 일이 없게끔 하였다. 《동국 세시기》(東國歲記)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설날 저녁에 머리카락을 불에 살랐던 한국의 옛 풍속도 그런 믿음의 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봉헌자가어떤 신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성소에서 제물을 바칠 때 본인을 대신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함께 바쳤던예는 중근동 일대는 물론 그리스에까지 널리 퍼졌던 흔한 제의적 행위였다.
〔구약성서〕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고대의 가나안 사람들과 중동의 셈족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다. 신들과 길가메쉬(Gigamessh) 같은 고대의 영웅들도 긴 타래머리를 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아시리아 왕들도 머리를 길게 길렀는데 긴 머리카락을 강력한 힘과 생명의외적 표지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사람들도 머리를 길게 기르고(2사무 18, 9 ; 에제 8, 3) 이
를 소중히 여겼다. 긴 머리는 아름다움과 힘을 지닌 찬미의 대상이었다(아가 5, 2. 11).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꼽혔으며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한 압살롬이 그 한 예이다.그는 숱이 너무 많아 일 년에 한 번 머리를 깎았는데, 한번 깎은 머리카락의 무게가 2kg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2사무 14, 25-26).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머리와 수염을 짧게 깎이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2사무 10, 4-5).
고대에 머리를 깎는 때는 사회적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는 특수 집단의 입회 예식(예 : 종교 집단의 삭발례), 정화 예식, 혼인 예식, 장례 예식 등 특별한 경우에 국한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머리를 깎는 경우도 이와 유사한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우였다.
나지르인들 :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서원한나지르인들은 서원한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전혀 깎지않고 길게 자라도록 두는 것이 자신이 성별되었다는 주요한 외적 표지였다(민수 6, 5 ; 판관 13, 5 ; 16, 17 ; 1사무 1, 11). 대표적인 예가 판관 삼손의 긴 머리카락이다.비록 그 설화에는 머리카락에 힘이 저장되어 있다는 옛관념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판관 16, 19. 22), 깎지 않은긴 머리카락 자체는 나지르인 서약이 이행되고 있다는표시였으며(판관 13, 5) 카리스마적인 신적 능력을 나타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지르의 어근(נזר, 본래 의미는'갈라놓다' , '떼어놓다' )이 긴 머리카락 자체를 가리키는경우도 간혹 있었다(민수 6, 9 : 예레 7, 29).
머리를 깎을 수 없는 나지르인들이 머리를 깎는 때는두 가지 경우였다. 첫째는 누군가가 나지르인 앞에서 갑자기 죽어 부정을 탄 경우인데, 이때 그 나지르인은 정화예식을 올리고 머리를 깎은 뒤 이렛째 되는 날 다시 머리를 깎고 여드렛날 부정탄 것을 벗기는 예식을 올린 다음주님께 다시 헌신하였다(민수 6, 9-12). 이때 깎은 머리카락은 부정타지 않게끔 땅에 묻는다. 둘째의 경우는 헌신하기로 작정한 기간이 다 찼을 때이다. 이때 나지르인은만남의 장막으로 와서 번제물과 곡식 예물, 속죄 제물과친교 제물을 바친 다음, 장막 문간에서 자신의 봉헌한 머리카락을 깎는다. 그리고 그 봉헌한 머리카락을 친교 제물 밑의 화로 위에 얹어 놓고 불에 살랐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불에 완전히 사르는 것은 봉헌하였던 머리카락이거룩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머리카락에 어떤마술적 힘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오용하거나 모독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불에 살랐고, 땅에 묻거나 숨기는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 다음 사제가 주님께 제물을 올린 뒤 나지르인은 서원을 벗게 된다(민수 6, 13-20).그러나 《미쉬나》 제5부 6편 〈교환〉(הֲמוּרָה)이 7장 4절에서는, 서원을 지키지 못한 나지르인의 경우에는 머리카락을 제단 불 위 화로에 놓아 사르지 않고 반드시 땅에묻게 하였다. 나지르인들 외에도 위험한 긴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거나 순례를 완수한 이들도 봉헌의 뜻에서 머리카락을 봉헌하는 예가 있는데, 이러한 예는 현재 무슬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예언자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놀림을 받은 예를생각할 때(2열왕 2, 23), 초기 이스라엘에서도 사제나 예언자가 될 때 입문 예식으로 삭발례를 행했는지 모른다.고대의 사제들과 주술사들은 삭발하는 예가 많았다.전쟁 예식 : 가나안 정복 전쟁을 벌였던 초기 이스라엘 시대에 거룩한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은 나지르인들처럼 승리할 때까지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서원하는 전쟁예식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신명 32, 42). 판관 드보라의 군대(판관 5, 2)와 평생 불레셋족과 싸웠던 삼손의 경우도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판관 13, 5 : 16, 17).
재앙의 예표 :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이닥쳐오리라는 뜻에서 삭발을 예고하며(이사 3, 24 ; 아모8, 10 ; 에제 7, 18 ; 미가 1, 16), 그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내던지라고 외쳤다(예레 7, 29). 머리 긴 나지르인처럼이스라엘 백성도 성별된 백성이었는데, 이제 그들이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예레 2, 3). 또 예언자에제키엘도 임박한 재앙과 유배를 상징하는 뜻에서 즈스로 삭발하였다(에제 5, 1-4)
장례 예식 :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재앙을 당하거나초상을 당하였을 때, 극도의 슬픔과 애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카락과 수염을 전부 또는 일부 깎았다(욥기 1,20 ; 이사 15, 2 : 22, 12 ; 예레 41, 5 ; 47, 5 : 48, 37). 이관습의 배후에는 죽음의 세계의 힘을 인정하며 죽은 자의 혼이 초래할지 모르는 위험을 피하려는 고대의 관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점차 죽음의세계를 비신화화하고 탈신성화시켜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죽은 자를 경외하거나 교제하는 이방 제의를 일절 금지시켰다(레위 19, 31 ; 신명 14, 1). 특히 사제나 일반 백성이나 모두에게 완전히 삭발하는 것을 율법으로 금지시켰다(레위 19, 27-28 : 21, 5). 하지만 장례예식인 삭발 관습은 뿌리깊은 관행으로 오랫동안 남아있다가(예레 16, 6) 포로기 이후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전쟁에서 포로가 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경우에도 그 여자의 머리를 삭발하였는데(신명 21, 10-13), 이러한 예식도 과거와 결별하는 하나의 상징적인장례 예식으로 볼 수 있다.
정화 예식 : 주님께 성별된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봉헌을 위해 정화하는 뜻에서 온몸을 면도칼로 밀었다(민수8, 5-7). 반면에 후대의 사제들은 머리를 조금씩 손질하여 단정하게 하여야 했다(에제 44, 20). 또 나병 등 악성피부병을 앓다가 병이 다 나아 깨끗해졌다고 선언받은사람들도 정화 예식을 치르면서 삭발을 비롯하여 몸의털을 모두 깎은 다음 자기 천막에서 7일 동안 있다가 다시 7일째 되는 날 온몸의 털을 다 깎았다(레위 14, 8. 9).그런 다음에야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에서는 머리카락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루가21, 18), 아주 많은 것(마태 10, 30)의 상징으로 쓰였을따름이다. 유대인들의 장례 예식도 바뀌어 머리를 삭발하는 예는 사라지고 단지 머리에 재를 뒤집어씌웠다. 다만 일시적으로 나지르인 서원을 하는 예식은 여전하였다. 사도 바오로가 겐크레아(Canchrea)에서 머리를 깎은적이 있는데(사도 18, 18), 이것이 나지르인 서원인지 아니면 특정한 맹세의 표지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몇몇예외는 있지만 대개 나지르인 서원은 팔레스티나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오로일행 중 네 사람이 삭발을 한 경우는 나지르인 예식인 것으로 여겨진다(사도 21, 23-24). 또한 바오로는 남자가긴 머리를 하고 다닌다면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여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자연(自然)이 가르쳐 주었다고 일러준다(1고린 11, 14-15). 다시말해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탐탁하지 않다는말이다. 사실 그가 선교한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미 기원전 5세기 전부터 남자들이 삭발을 해왔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여성들이 긴 머리를 땋거나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 역시 피하도록 권고한다(1베드 3, 3 ; 참조 : 이사 3, 24). 오늘날도 귀밑머리를 깎지 않고 귀 양편으로 길게 늘어뜨리거나 딴 모습을 예루살렘 등지의 정통파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레위기의규정(19, 27)에 따라 주님께 성별된 백성이라는 표식으로 행하는 것이다. (→ 나지르)
※ 참고문헌  R.C. Dentan, 2, p. 512/ W.C. Gwaltney, Jr.,《IDBS), pp. 386~3871 L.H. Gray, 《ERE》 6, PP. 474~4771 W.R. Smith,Lectures on the Religion ofthe Semites, A. and C. Black, 3rd ed., 1927, pp.69ff/ J. Milgrom, Numbers-The JPS Torah Commentory,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0, pp. 355~358/ M. Weber, Dab Antike Judentum(진영석역, 《야훼의 사람들 - 고대 유대교》, 백산출판사, 1989, pp. 110~111)/C.R. Hallpike, (ER) 6, pp. 154~157. [李鎔結]
② 종교에서의 삭발례
머리 〔頭髮〕를 깎는 행위는 위생이나 미용 등의 이유에서 행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일 수 있지만, 특정 종교나 문화에서는 특별한 상징적 행위로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머리의 상징적 의미〕 머리가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는각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심지어 상반되는 내용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성 속에서도 주류를 이루는 공통적인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 몸의 일부이면서도 가장 위에 위치하고 있어 눈에 잘 띈다는 점에서 그 소유자 자신과 동일시한다.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 인류학의 입장에서는 머리 모양이 그 인간이 속한 연령 집단, 성별, 직업, 사회 계층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상태나 신분에 변화가 있을 때 머리 모양을 바꿈으로써 그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상(喪)을 당했을 때나 성인식(成人式) 등의 통과 의례 때에 머리 모양을 바꾸는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초기 프랑크족의 왕들은 긴 머리로 치장을 하였는데, 긴 머리가 바로 왕임을상징하는 것이었으며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따라서 그 긴 머리 치장을 자르는 것은 곧 그 직책과 신분의 박탈을 상징하였다.
또한 머리는 권력과 힘의 원천을 상징하기도 하였다.더욱이 머리 자체가 특정한 주술적 힘을 지닌 소재(素材)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주술이나 의례에서 머리털을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주술적 힘을 이용하여 적대적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자 하는 이른바흑주술(黑呪術)에서 그 적대적인 상대의 머리털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 것에는 머리털이 그 사람의일부분으로서 그 안에 그 사람을 좌우할 수 있는 연결성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14~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 재판에서 마녀를 추방할때 머리카락을 자른 것도 마녀들의 힘이 머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그 힘을 빼앗을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마녀와 같은 주술적인 힘은 아니지만, 구약성서의 삼손이 지녔던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이었던 것도 머리에 대한 같은 맥락에서의 이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로이트식의 정신 분석학에서는 머리를 성적(性的) 상징성과 연관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머리〔頭〕는성기(性器)를, 머리털〔髮〕은 정액(精液)을 상징하고, 머리털을 일정 이상자라지 않도록 다듬는 것은 성적 능력의 억제를, 완전한 삭발은 성적 능력을 제거하는 거세(去勢)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머리와 성적 상징을 연관시키는설명을 깊이 있게 전개하였으나, 사실 머리와 성적 상징과의 연관성은머리가 지니는 여러 상징성들의 한부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실제로 삭발을 거세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해석하기도하고, 더욱이 머리를 길게 기르면서도 전혀 성적인 것과거리가 먼 고행자들의 예도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가설은 극히 몇 가지 예를 제외하고는 사실로서 뒷받침받을 수 없다.
이 밖에도 무성한 머리는 젊음 · 건강 · 활력 등을 상징하고, 반대로 머리털이 없는 것은 노쇠(老衰)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무성한 머리는 세속적인 것을, 삭발은반대로 청정(淸淨)과 근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입장도 있다.
〔삭발의 상징적 의미〕 머리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하였을 때 삭발은 한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 사회적 위치 등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강압적인 박탈일 때도 있지만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는 삭발이 지니는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일종의 의례로서 정형화하여 발전시켰다. 어떤 사회적 위치에서다른 사회적 위치로 이전(移轉)하는 시기를 맞은 사람에게 그 이전이 일어났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삭발이라는 의례 절차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그 이전을 올바로 치르고, 새로이 주어지는 위치를 타당한 마음 자세로 맞이하게 하는 의미에서 삭발이라는 의례 행위를 거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삭발이 지니는 의미는각 문화권이나 종교 전통에 따라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는 예도 있지만, 일종의 통과 의례로서 지니는 의미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삭발은 의례나 형식의 차원에서 거행되는 형태를 취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수동적이 아닌 주체적인의식과 심리의 변화 차원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록 삭발이라는 행위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의례적 행위로서 치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상징적 행위를 치름으로써 그 개인은 심리는 물론 인격 자체에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텁수룩한 머리가 원시성(原始性) 내지는 동물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삭발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할 뿐만아니라 보다 정형화되고 체계와 질서를 갖춘 새로운 상태로 변화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이 머리가 세속성을 상징한다는 점과 연관하여 이해할 때, 삭발은 세속과의 단절 및 자기 정화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몇몇 종교전통에서 수용하고 있는 삭발례는 무엇보다도 세속 단절과 자기 정화의 의미가 가장 큰데, 그 대표적인 예가 가톨릭과 불교에서의 삭발례이다.
〔가톨릭에서의 삭발〕 가톨릭에서 삭발례는 평신도가수도자나 성직자로 입문하는 의미로 거행하였던 의식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법적인 규정이라기보다는 수도원 입회 의식으로 거행되었다. 아직도 그리스 동방 교회에서는 독서직에 오른 사람에게 삭발례를 거행하고 있지만, 현재 가톨릭에서 성직 희망자는 삭발례를 하지 않고부제품을 받음으로써 성직에 입문한다.
원래 가톨릭의 삭발례는 동방 국가 노예들의 머리를깎는 관습에서 유래하였다. 삭발례에 관련된 사료는 8세기 이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 후 갈리아주의 문헌에서만 찾을 수 있는데, 대략 4~5세기에 수도원에서 일반화되었다. 이것이 서방 교회에 소개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에 의해서였다(prima tonsura 혹은 ordoad faciendum clericum im Pontificale omanum ; CIC 108. 1). 가톨릭에서 거행되었던 삭발례의 직접적인 유래는 이 당시의삭발례였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그레고리오 성무집전서》(Sacramentarium Gregorianum) 부록에 의하면, 당시 삭발례는 성직에 입문함을 의미하는 관습적인 의식이었다. 삭발례는 식을 거행하는 사제가 성직 희망자의 머리를 깎고, 성직 희망자는 머리가 잘리는 동안에 규정된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9세기까지는 세 가지 유형의 삭발이 있었다. 첫 번째유형은 왕관식 삭발로 머리 둘레의 조금만 제외하고 머리 전체를 깎는 '성 베드로 형' 이고, 두 번째 유형은 아주 짧게 깎는 머리 형으로 '성 바오로 형' 이라고 불렸다.이는 동방 · 서방 교회에서 두드러졌던 형으로 제일 오래된 유형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 유형은 켈트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소위 '성 요한 형' 이라고 불렸던 머리형인데, 한 쪽 귀에서 시작하여 머리 정수리 부분을 넘어다른 쪽 귀까지를 잇는 선 앞쪽의 모든 머리카락을 깎고나머지는 길게 기르는 형이다. 교회 내에서 많은 논란이있었던 이 세 번째 유형의 머리를 로마 교회에서는 '시몬 마구스(Simon Magus)의 삭발' 이라고 불렀다. 이 머리유형들이 사도적인 원천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갈리아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중세 초에 머리 맨 윗 부분만 작
은 원형으로 깎는 머리 형이 유행했었는데, 이 머리 형이보편화되었다.
삭발례는 16세기부터 교구 사제들에게 널리 통용되었으며(Innozenz Ⅲ, 1210 ; PL 216, 313), 공식적으로 명시된것은 1917년 교회법전 136항이었다. 그렇지만 현대 교회에서 평신도가 성직에 입문하기 위한 삭발례는 순전히상징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 교회에서의 삭발례는 칠품중 제1품인 수문품(守門品)을 받기 전에 행해지는 예절이었다. 머리를 깎음으로써 세속을 끊고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봉헌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 예절은 보통 착복식과 같이 행해져 수도자인 경우 수도복을 입을 수 있었고, 성직 희망자인 경우에는 수단과 로만 칼라를 착용할수 있었다. 그러나 1972년 8월 15일에 교황 바오로 6세가 자의 교서 <미니스테리아 궤담>(Ministeria Quaedam)을통해 부제품 이하의 모든 품급을 폐지함으로써 삭발례는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불교에서의 삭발〕 불교에서는 출가하여 불문(佛門)에 귀의할 때 긴 머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삭발례를 행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삭발이 곧 출가를 상징한다. 그리고 삭발과 더불어 물들인 옷(袈裟)을 몸에 걸치게 됨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일을 '삭발염의' (削髮染衣)혹은 '체발염의' (剃髮染衣)라고 한다. 보다 엄격히 말하자면 불교에서의 삭발은 머리는 물론 수염과 손톱까지도깎는 것을 말한다. 불제자는 세상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림으로써 세상을 떠났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울러 그렇게 세상을 떠나 깨달음의 길에 정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으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이처럼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에게 삭발을 행하는 것에관하여 불교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고 있다. 《과거 현재 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에서는 불제자들이 삭발을 행하면서 "이전까지의 모든 번뇌(煩惱)와습장(習障)을 제거하고자 한다" 는 바람〔願)을 세운다고하였으며, 《구화임경》(舊華嚴經)에서는 삭발을 행하는것이 "영원히 번뇌를 버리고 궁극적인 적멸(寂滅)의 상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한편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삭발의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설명하였다. "우리들(불제자)은 머리를 자르고 물들인 옷[染衣]을 입으며, 발(鉢, 출가 승려들의 밥그릇)을 들고 걸식(乞食) 생활을 한다. 이것은 자신의 교만을 깨뜨리는방법이 된다." 옛부터 인도에서는 머리를 깎이는 것이가장 큰 치욕이었으므로 이것이 죄인에게 내리는 중벌(重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불교에서 스스로머리를 깎고 남루한 옷을 입는 것은 현세적으로 자신이 지녔던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린다는 마음 자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남김없이깎아 버림으로써 자신의 교만한 마음과 욕정(欲情)을 끊어 버리고, 오로지 깨달음을 구하는 일에 정진하려는 것이다. 이는 이전까지의 세속적인 번뇌 · 자만 · 기득권 ·소유 등을 머리털과 함께 모두 버린다는 뜻이요, 머리털을 모두 잘라버리듯이 단호하게 수도(修道)에 정진하겠 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불교의 출가자들이 이처럼 삭발을 행하는 데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모두가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불교 공동체의 이상(理想), 즉 절대 평등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아울러그러한 절대 평등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실현되는 평등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이러한 절대 평등 · 화합의 이상은 바로 불교 공동체인 승가(僧伽)가 내세우는 가장큰 특징이며, 삭발은 이러한 이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삭발은 처음 출가할 때 득도식(得度式)의의식에 따라 깎고, 그 뒤에는 보름마다 한 번씩 깎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득도식에서의 삭발 의식과 관련하여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는 "먼저 삭발을 행하고 가사(袈裟)를 입힌 다음, 출가자로 하여금 바닥에 꿇어앉아 합장하게 하고,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함을 서약한 후 사미(沙爾)의 십계(十戒)를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삭발의 의식 절차에 관해서는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妙) 등의 여러 경전에서 아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삭발례는 엄격하고 정중하게 치러야 할 일로 간주하였는데, 이를 통해서도 불교에서 삭발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삭발은 불제자로서 출가 생활을 시작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출가 생활 내내 자신이 추구하는 구도의 길에 흐트러짐 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잡아 주는 것이기도하다. → 불교)
※ 참고문헌  Christopher R. Hallpike, Hair, 《ER》 6, pp. 154~157/E.E.Sikes · L.H. Gray, Hair and Nails, 6, PP. 474~4771 小口偉一 . 堀一郎, 《宗教學辭典》, 東京大學出版會, 1989/ 望月, 《佛教大辭典》, 東京, 1974/ A. Haususling, (LThK》10, pp. 250~251/T.J. Riley, 《NCE》 14, pp.199~200/ F.L. Cross · E.A. Livingstone eds., The Oxford Dictionary oftheChristian Church, Oxford Univ. Press, 1996, pp. 1631~1632/ Richard P. McBrien ed., The Ham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Harper Co., p. 1260. [吳智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