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북구 산격3동 1285-4소재. 1982년 9월 3일 대현동(大賢洞) 본당과 고성동(古城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통고. 관할 구역은 산격2 · 3동 및 복현1동 전역과 산격4동 일부 지역. 〔교 세〕 1982년 1,333명, 1986년 3,492명, 1991년 5,436명, 1996년 3,877명. 〔역대 신부〕 초대 최영수(崔榮壽) 요한(1982. 9~1986. 1), 2대 이용길(李庸吉) 요한(1986. 1~1990. 6), 3대 김상규(金尙奎) 필립보(1990. 6~1993. 10), 4대 최홍덕(崔弘德) 야고보(1993. 10~1998. 8), 5대 이용호(李龍浩) 가브리엘(1998. 8~현재).
본당 설립 전 이 지역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례를 위해대현동 본당까지 먼 거리를 가야 하는 등 불편을 겪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산격 · 복현 지역에 아파트와 단독 주택이 많이 신축되고 신자수도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자, 산격 · 복현 · 검단 지역을 관할하는 새로운 본당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대현동 본당 주임 곽길우(郭吉祐, 베드로) 신부는 1979년 8월 25일에산격동에 거주하는 남성 신자들로 신우회를 조직하여 본당 설립을 준비하는 한편, 대봉동(大鳳洞) 본당에서는1982년에 본당 비축금을 교구에 헌납함으로써 현 성당부지를 매입해 주었으며, 대구대교구 내 성당 건립 후원모임인 백인회(百人會)에서도 기금을 마련해 주었다. 그결과 1982년 9월 3일 산격동 본당의 설립이 결정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최영수 신부가 임명되었다.
경북대학교 북문 맞은편에 위치한 3층 건물 지하를 세내어 임시 성당을 마련한 최영수 신부는, 그 해 9월 18일 현 성당 부지에서 기공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9월 20일에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결성하였다. 이어 이듬해 3월 25일에는 동정 성모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1984년 4월 28일에는 연건평 약 508평 규모의 성당과사제관 및 수녀원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86년 5월 14일에는 성북(城北) 본당이 신설되면서 산격1동 일대의 신자 72세대 245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본당에서는 그 후에도 본당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전교 활동과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활성화에 노력하였고, 1988년 6월 26일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교육관(97.4평)을 준공하였으며, 1992년에는 본당의 역사를담은 《산격 성당 10년》을 발간하였다. 최근에는 신자수의 꾸준한 증가에 힘입어 1995년 2월 4일에 복현동(伏賢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복현2동과 검단동 지역의 신자822세대 2,24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으며, 1997년 8월15일에는 복현동 본당에 성당 건립 기금을 전달하였다.(→ 대구대교구 ; 대현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산격 성당 10년》, 천주교 산격 교회,1992. [편찬실]
산격동 본당
山格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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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