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물인 산(山)이 신격화(神格化) 혹은 인격화(人格)되어 산을 담당하고 인간에게 복을 준다는 신. 이것이 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개인 · 마을 · 국가의 수호신으로 숭배되면서 산신 신앙 또는 산악 신앙이 발생하였다.
〔신앙의 역사와 성격〕 역사적으로 볼 때, 왕조의 시조와 왕조 초기의 왕들 중에는 산신으로 관념된 존재들이있었다. 예를 들어서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조>(古朝鮮條)에는 개국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산신이 되었다고 하며, 《고려사》(高麗史)에는 왕건(王建)의6대조 호경(虎景)이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또 구전 설화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되려고 무주의 덕유산(德裕山)과 남해의 금산(錦山), 경기의 삼각산(三角山) 등 여러 산신에게 빌어 지지를 얻었으나 지리산(智異山)과 광주 무등산(無等山) 산신이 반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국가의 창업에 산신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과 그 산신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산신은 그 산 주변의 백성들을 뜻하며, 산악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산신의 뜻은곧 백성의 뜻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 신라의 왕들 가운데에는 산신의 친현(親現)을 본 왕이 존재하였는데, 헌강왕(憲康王)은 경주 포석정과 금강령(金剛嶺)에서 남산의 산신과 북악(北岳)의 산신이 춤추는 것을 보았고, 경덕왕(景德王)은 삼산 오악신(三山五岳神)이 대궐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산신은 국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 결과산신 숭배는 신라 · 고구려 · 백제 등 고대 왕국의 국가적인 종교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계속 이어져 고려 시대에는 수도 근방의 큰 산(德積山, 白岳, 松嶽, 木覓山)에 무녀(巫女)로 하여금 춘추로 대제를올리게 하였고, 백두산 · 치악산 · 계룡산 등에는 지방 관원과 민간인에게 제사를 바치게 하였다. 또 조선 시대에는 태조 때 이미 제사지내는 산으로 오악(五岳) · 오진(五鎮)을 지정하였고, 등급에 따라 산에게 1~3품(品)의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국가의 수성(守成)에 산신의 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산악 숭배 현상은 민간에서도 민간 신앙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었다. 즉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산에는 독립된 산신각(山神閣)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곳에서 마을의 풍년과 기자(祈子), 산길의 안전 및 산에서 만나는해독과 질병을 물리치고자 산신제를 올렸다. 또 무속에서는 사천진별신굿 여덟째 거리에 산신령굿이 있고, 제주도에는 수렵의 풍요를 비는 산신놀이가 있으며, 사냥을 하는 집에는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는 산신멩감이라는굿도 있다. 그리고 전통 춤으로는 신라 헌강왕의 고사(古事)에 근거한 산신탈굿, 일명 상염무(霜髥舞)가 있다. 이와 함께 불사(佛寺)에는 작은 산신각이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산신 신앙을흡수한 흔적을 보여 주는 것으로 민간에 남아 있던 산신신앙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종류와 거처〕 산신은 단군의 건국 이래 국가나 민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믿어진 신앙의 대상이었다. 이의 신격(神格)은 대개 호상(虎像)이나 신선상(神仙像)이며,남성신과 여성신으로 구분된다. 아사달 산신인 단군, 토함산 산신인 신라의 석탈해(昔脫解), 대관령 산신인 김유신(金庾信), 대관령 산신이면서 강릉 단오제에서 대관령 국사 성황신으로 받드는 범일국사(梵日國師), 개성덕물산의 산신인 최영(崔瑩), 나주 금성산 산신, 남자 신선으로 나타난 전북 부안 쌍선봉 산신 등은 남성신이다.그리고 산신도(山神圖)에 나오는 백발 동안(白髮童顔)의 산신도 남성이고, 그 곁에 있는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이자 산신 자체이기도 한데 역시 남성이다. 이에 반해 서울 신촌의 할미산으로 부르는 노고산 산신, 마고할미로나와 이성계를 돕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 지리산 산신,거인으로 나오는 제주 한라산의 설문대할망 등은 여성신이다.
산신의 거처는 지리산 성모사(聖母祠)나 단군 신앙이변형된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처럼 산꼭대기에 있어 국가의 흥망과 관계가 깊은 산정형(山頂型) 호환(虎患)을 피하고 산중 생활에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산 중턱에 있는 중복형(中腹型), 동네 근처 산기슭에 있어 사람들이 풍작 등 일상사를 빌 수 있는 산하형(山下型) 등이 있다. 이의 제단(祭壇)은 떼를 입힌 흙으로 쌓은 토단형(土壇型), 돌로 쌓은 석단형(石壇型) · 석축형(石築型), 거목이 있어 섬기거나 그 아래 당집을 짓는 거수형(巨樹型), 집을 지어 산신각 · 산신당 · 산신령각 등 현판을 건 당우형(堂宇型) 등이 있다. (→ 무교)
※ 참고문헌 三國遺事》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玄容駿 편,《제주도 무속 자료 사전》, 신구문화사, 1980/ 金容德 편, 《한국 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1/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崔來沃, 《韓國口碑傳說 연구》, 일조각, 1981/ 任東權, 《한국 민속 문학론》, 집문당, 1983/ 文明大, 《한국 미술 사전》,예술원, 1985. [崔來沃]
산신
山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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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산신도에 나오는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이자 산신 자체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