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란 사람이 재화를 얻어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즉,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는 달리 양이 한정되어 매매나 점유의 대상이 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분배, 소비하는 일체의 활동이 경제이다. 윤리는 사회 집단 속에서 옳고 그름〔正誤〕이나 선악을 식별하기 위한 행동 기준이다. 따라서 경제 윤리는 경제 생활에서 인간의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윤리적 태도 내지 정신적 분위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경제 윤리는 사회 윤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 윤리는 사회 생활의 다양한 양식을 대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규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래 사회 생활 그 자체에는 사회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윤리는 사회 생활의 양식을 결정하는 물적 관계를 통해서 표현된다. 이 같은 물적 관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이다. 인간은 경제 생활을 통해 타인과 물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경제 윤리는 이 같은 경제 생활을 통해 형성된 사회 관계의 올바른 형태와 경제 운용의 올바른 양식 등을 규정한다. 따라서 경제 윤리는 경제의 여러 주체들, 즉 생산자, 소비자, 국가 등이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와 덕목들을 밝히고 자연, 노동, 자본 등의 경제 요인들이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를 당위적으로 규정하며 경제의 의미와 목표, 가치 문제 등을 윤리적 판단 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을 과제로 한다. 또한 경제 제도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과 근거, 책임 있는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경제 윤리는 사회의 계층 구 성이나 경제 체제의 차이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한다. 그러나 경제 윤리는 계층 구성이나 경제 체제와 단순한 함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고, 외관상 경제 체제가 유사하더라도 달리 규정될 수 있다. 구체적인 경제 윤리는 항상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경제 윤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신학적 관점에서의 경제 윤리는 위와 같은 일반적 경제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신학적 경제 윤리의 궁극적 출발점은 하느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접근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신학적 경제 윤리는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경제의 본질, 의미, 목적 등을 고찰하며 그것과 관련된 제반 요소와 문제들을 고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경제 행위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는지, 그것에 맞는 경제 행위는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신학적 경제 윤리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역 사〕 경제 윤리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하는 정형화된 이론은 아직 없다. 다만 노동, 소유 그리고 현세의 재화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적으로 다루어 온 정도이다. 즉 세속적 재화를 위험시하는 데서 오는 금욕적 태도와 세속적 재화는 인간 생활에 필수적이며 또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창조와 직결된다는 긍정적 태도가 함께 이어져 왔다. 따라서 가톨릭 경제 윤리의 역사적 흐름은 금욕과 필요라는 이율 배반적인 변수를 이론이나 실천 면에서 어떻게 인식하는가로 집약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하느님과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전개되는 경제 형태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점이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경제 형태가 고립되어 있었으므로 경제 윤리는 공동체적 생존을 위한 도덕적 요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자선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강조하였다. 이에 반하여 중세에는 자연법의 신학적 해석이 기반이 되어 경제 행위를 수용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으며 이 같은 경제 윤리의 원칙은 '스콜라 학파' ,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노동, 소유권, 그리고 금리(金利)에 대한 것으로 압축 정리되었다. 경제 생활의 필요성을 감안하면서 재화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당시 수도원의 금욕적 생활은 중세 경제 윤리의 실천적 표본으로 수용되어 왔다. 이 같은 경제 윤리의 원칙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Rerum Novarum, 1891)에 반영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경제 윤리가 등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비인간화에 도전하는 사회주의에 대하여 사회주의의 무신론과 사유재산의 절대적 거부, 계급 투쟁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하느님은 만물을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신앙 고백에 근거하여 물질적 자원과 부를 적절하게 분배하고 사용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적 본질과 목적을 더욱더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시민 사회는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부의 적절한 분배를 시행하고 약자와 궁핍한 자를 보호하고 정당한 생활 임금을 지불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연소자 노동의 착취를 공격했고 노동자의 결사와 노동자 단결권을 방어했다.
그 후 비오 11세는 <노동 헌장> 반포 40주년을 기념하는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을 반포하여 자본주의는 체제 자체는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 개인주의, 통제 불능의 경제적 지배, 절대적 자유 경쟁이 그리스도교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배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보는 사회 질서는 공동체의 정의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들은 경제 질서의 개혁을 통해 모든 인간의 혜택을 도모해야 한다. 그 후 교황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등을 통해 앞선 교황들의 가르침을 현대적 경제 상황에 맞게 재천명하였다. 경제 생활에서 개인의 창의성을 최우선으로 긍정하면서도 정부는 경제 성장과 사회적 진보를 함께 추구하여 전체 사회의 복지를 도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 경제는 공공 부문의 역할이 중요하고 개인의 창조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회 조직과 사회 정책이 긴요하게 작용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와 저개발국의 개발, 특히 낙후된 농촌 개발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한 국제 사회의 과학 기술적 협력과 재정적 협력을 강조하였고 가난과 기아의 근원적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급선무로 간주했다. 그 후로도 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팔십 주년>(Octogesimo Anno, 1971)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 1981), <백 주년>(Centecimus Annus, 1991) 등이 발표되면서 가톨릭의 경제 윤리 지침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경제 윤리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체계적인 연구보다는 당면한 경제 문제에 응답하기 위한 부분적 대응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당면한 경제 문제에 대한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경제 윤리가 신학적 주제로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인한 폐해의 심화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해체라는 세계적 변화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주로 진보적 신학계를 중심으로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기능과 임무〕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경제 행위를 평가하고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 윤리의 임무라면 경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 세상과 그 질서를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한편 사람은 경제 활동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경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창조의 신앙은 경제 행위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 행위가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신앙의 과제로서 경제는 창조와 종말 사이에서 전개되는 하느님의 경륜과 그것에 참여하는 인간의 실천을 전제할 때 비로소 뚜렷이 확인된다.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은 우리를 불러 그분이 보기에 좋은 피조물을 경영하여 그분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게 하였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속적인 창조 활동에 참여하는 협조자로 부름을 받았다(창세 1장). 그것은 노동을 통하여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물질 대사를 이룩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경제는 바로 이 창조와 종말 사이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계속적인 창조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불러 그분 자신과 함께 세상을 경영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 경제이다. 경제는 인간이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충족시키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되며 물질적 수요는 크게 두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불가결한 기본적 단계의 수요이며, 둘째는 기본 단계의 욕구가 충족된 후 나타나는 문화적 수요 즉 부차적 단계의 수요가 여기에 해당된다. 기본적 단계의 수요인지 아니면 부차적 단계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삶의 의미도 달라지며 개인의 사회에 대한 인식도 다르게 된다. 한편 기본적 수요와 문화적 수요에 대한 구분은 그 사회의 문화 정도에 크게 의존되므로 유동적이다. 그러나 흔히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후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이 두 단계의 상호 관계를 해석하는 경제 윤리로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경제 윤리는 경제가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하며 한 계층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루 문화적 수요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요구한다. 경제 윤리는 경제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 위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는 그 결과를 근거로 평가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에 부합되며 또 그 같은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보고있다. 절박한 물질적 욕구를 지나친 금욕으로 억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충족시켜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경제의 적절한 책임 한계는 사람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정도여야 하며 지나친 풍요는 사람을 오히려 경제에 예속시킴으로써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올바른 경제 행위의 판단 기준은 창조의 총체적 계획 안에서 경제가 지니는 내재적 의의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경제 본질로만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그리고 본질적 순명은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비로소 확인되는 것처럼, 경제 고유의 내재적 법칙도 경제 행위의 구체적 양상을 규정할 때 비로소 그 뜻을 찾게 된다. 그리고 경제 내용도 자율성을 지니게 되며 하느님의 전체적 안배에 부합하게 된다. 경제의 내재적 법칙과 본질은 실사회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므로 사회 구조에 부합될 경우 보편 타당성을 갖게 되며 동시에 제약된 양식으로서 특수성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경제 윤리도 보편적 부분과 주어진 상황에 따른 특수 부분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가톨릭 경제 윤리〕 경제 체제 : 가톨릭 교회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모두 배격한다.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과 인간의 사회적 본질을 기초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모두를 극복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격주의적 사회의 성격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소유권의 불가침 그리고 이에 근거한 사용권의 보장을 기반으로 조성되므로 끝없는 경쟁 그리고 생산과 분배 수단의 독점을 통한 부의 편재와 축적이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정신은 무한한 이윤 추구의 욕망으로 이어졌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비인간적인 가혹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사십 주년 42항). 결국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축적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낳고 말았다. 비오 11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였다. "먼저 개인주의와 집산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자본과 노동의 이중적 성격 즉 개인성과 사회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 관계는 그리스도교 애덕의 보조를 받으면서 교환 정의라고 불리는 엄격한 정의의 법칙에 따라 규제되어야 한다. 자유 경쟁과 특히 경제적 독점은 일정하고 적절한 한계 내에 묶여 있어야 하며 국가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공권력의 효과적인 통제 하에 놓여져야 한다. 국가의 공공 기관은 모든 인간 사회가 공동 선의 요청, 즉 사회 정의의 규범에 합치되도록 해야 한다"(동 43항). 이처럼 가톨릭 교회는 현존하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자유 방임적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해 엄중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편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대해서는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경제 체제라는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와 같이 개인의 소유권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통제 경제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동기 유발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이 활성화되기 어려우며 국유화 제도는 종국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마저 박탈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리스도교적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제도라고 비판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집단적 생산 방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전적인 굴복과 종속을 요구하므로 자유를 포함한 인간의 고상한 가치는 희생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오 11세는 "아무도 진정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사회주의자일 수 없다" (동 49항)고 선언하였다.
다음으로 경제 체제와 관련하여 다루어지는 핵심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소유 형태에 관한 문제이 다. 즉 사유 재산 제도의 기초 위에 설립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반대하여 그것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역사적으로 대립되어 왔고 이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 주어야 했다. 가톨릭 경제 윤리는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을 자연법에 근거해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노동 헌장 10항). 이 때의 사유 재산권은 현실 사회에서 구체적인 제도를 통해 확립되는 실정법적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이 권리는 '각자 자기 고유의 것으로 소유하고 사용할 권리' 를 뜻하는 것으로 하느님이 주신 지상 재화의 사용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정법적 차원에서 소유권 제도는 이러한 자연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 교회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소유권 제도를 상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톨릭 교회가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은 실정법 차원에서 그것이 자연권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는 측면에서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주장하는 공유 재산 제도는 그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재화 사용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한에서 거부한다. 한편 자연권인 사유 재산권은 무한한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교 전통은 공동선을 목표로 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사유 재산이 공동선과 아무런 종속 관계 없이 무제한의 권리를 주장할 때 교회는 그것이 자연권에 위배된다고 배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한 재화의 공동 용익, 목적 실현에 특히 사유 재산 분배가 이러한 목적에 지장을 초래할 때 공공 이익을 위해 사유 재산권의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과 자본 : 기업은 자본과 노동이 만나는 생산 과정의 집약체이다. 생산은 자연과 노동 그리고 자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며, 인간은 생산 과정에서 경제와 가장 긴밀하게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 과정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폭 넓게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며 기업에 관한 윤리적 문제는 기업 자체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자본과 노동의 관계, 분배 문제, 기업 경영의 문제 등 광범위한 관계를 갖는다. 특히 생산 과정에서 생산의 대상, 방법, 목적 등이 이루어지고 이것은 분배 원칙과 가치의 우선 순위에 따라 결정되므로 경제 윤리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기업은 자본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윤리 문제는 자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본은 인간의 역동적 자기 발전을 위해 필요한 물적 수단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 즉 인간의 자아 실현을 위해 복무하도록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윤의 극대화라는 경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성실과 신의뿐 아니라 심한 경우 인간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희생시키는 자본의 무한 경쟁은 반드시 사회 전체의 공공적 감독 아래 통제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자본의 경영권도 소유자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의 행사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회적 제한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기업 평의회를 통한 공동 결정권의 제도화나 노동자의 적극적인 기업 참여이다. 노동자 대표들이 기업 평의회 구성원으로서 기업주나 경영 책임자들과 함께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기업 경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공동 결정권 행사를 적극 제시한다. 이것은 기업이 경제 공동체라는 인격주의적 확신에 기초하여 기업 차원에서 공동선을 실천함으로써 잘못된 자본의 기능 방식에서 야기되는 경제 체제의 탈인간화 현상을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이러한 공동 결정권은 미래의 산업 사회에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할 인격주의적 경제 질서의 기초로 제시하고 있다. 인격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체제에서 기업은 단순히 물적 생산 단위가 아니라 자본이라는 생산 수단을 기반으로 자본가와 경영인 그리고 노동자들이 협동적 노동 관계를 통하여 형성한 생산 공동체이다. 따라서 기업 평의회는 공동체적 의사 결정 기구이며, 이러한 기업 구조를 통해 수행되는 자본의 기능 방식은 기업의 공동체적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자본의 집중과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는 자본의 폭 넓은 분포 구조의 확산을 주장한다. 사적 소유권은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기반이기 때문에 소유권의 분포 구조가 확산될수록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형성된다. 따라서 소유권의 광범위한 확산은 사회 안정을 위한 전제이다. 국민 경제의 차원에서도 산업 자본의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재벌과 대주주들에 의한 사회 지배가 실질적으로 형성되었다. 자본의 지나친 집중은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으며 특히 대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아 이탈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부의 확산적 분배 구조가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으로서 중소 기업의 집중적 육성과 종업원 지주제를 주장하고 있다.
산업 자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윤에 대한 권리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욕구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고도의 생산성을 실현해 가는 동인(動因)인 동시에 노동자를 소외의 질곡으로 몰아넣고 소비자들을 경제 객체로 전락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는 기업의 경제 활동에 따라오는 결과로서 이윤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즉 이윤은 인간의 창의적 생산 활동으로 생산한 부가 가치로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이윤은 경제의 순환 과정에서 재투자를 위한 기반이 되며 따라서 선행 단계에서 이윤의 발생과 저축은 경제 성장 혹은 확대 재생산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화폐 자본의 투자는 기회 비용이라는 사회학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투자 자본은 과거의 저축분이기 때문에 과거의 저축 주체에 이윤이 귀속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근거에서 이윤에 대한 출자자의 권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출자자의 이윤에 대한 권리는 노동자나 전문 경영인의 이윤에 대한 권리를 배제하는 배타적 독점권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이윤은 그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주장이다. 그것은 기업이 자본을 물적 기반으로 하는 생산 공동체이기 때문에 기업의 주체는 기업의 구성원이라는 인격주의적 경제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편 여유 자본과 여유 소득 사용에 관해 가톨릭 교회는 그 자체를 범죄로 보거나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휴 재원의 사용에 대해서는 사회 윤리적으로 대단히 엄격한 입장을 취한다. 유휴 재원은 우선 공동체를 위한 확대 재생산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여유 자본은 부의 편중을 극복하고 낙후 지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간 불균형이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는 낙후된 산업 분야에 우선 투자해야 한다.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있어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선진 산업 사회의 여유 자본은 세계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농업 분야에 더 많은 부분을 투자해야 하며 제3세계에 대한 지원 정책을 수립할 때도 자본가들에게 돌아올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전인류를 위한 범세계적 공동선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경제 : 가톨릭 교회는 한 사회 안에서 편중된 부의 분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국제적인 불균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불균등한 국제적 경제력과 힘은 화해에 중대한 장애물이 되며 경제력의 집중, 무역과 상품 가격의 구조적 불균형,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 세계 자원 소비의 불균형 그리고 국가 또는 국제적으로 만연된 실업과 차별적 고용 행위 등 모두가 화해를 방해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공동선의 원리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의 내용은 첫째, 연대 책임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전인류를 한 가족으로 묶는 연대성의 원리를 내세워 그리스도교인들의 의무를 강조하였다(어머니와 교사 157~159항). 이러한 의무의 이행수단은 원조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일차적 소비재에서부터 과학, 기술, 재정 원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원조는 식민주의와 같은 정치적 의도 없이 세계 공동체를 형성하고 보편적인 공동선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연대의 원칙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는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상호 연대성의 의무" ,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거래상 불균형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회 정의 의무" "국가간 인간다운 세계 건설과 한 국가의 발전이 다른 국가의 발전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사랑의 의무"를 제시하였다(민족들의 발전 44항). 둘째, 빈민 구제를 위한 세계 기금의 설립, 후진국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 계획의 수립, 무역 조건의 개선을 위한 국제 무역 경쟁의 제한 등 경제적 지침들을 제시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통상 관계에서 가격 조정과 후진국들의 생산 수단을 보호하며 특정 산업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국제 협약을 마련함으로써 국가간 상거래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동 61항). 이는 부유한 나라가 국내의 취약한 경제 부문에 대해 지원하듯이 그 체제를 국제적으로도 똑같이 가난한 나라에 대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가톨릭 교회는 국제 소득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즉, 세계적인 문제의 해결에는 합당한 규모의 능력이 있는 조직과 기관들이 있어야하고 광범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공권력이 주어질 때만이 세계적 공동선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어머니와 교사 82~83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노동 헌장> 반포 90주년 기념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국제 소득 불균형이 가난한 국가들의 노동 조건을 명백히 손상시키고 있음을 지적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설치된 다양한 사회 제도들이 필요함을 언급하였다(17항).
분배 : 분배는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소비와 연결시키는 과정이나 활동을 뜻한다. 교통, 통신 및 창고저장 등 시장 기능과 직접 관련을 갖게 되는 분야가 이에 속하는데 또 정책과 긴밀한 관련을 갖게 됨으로써 자유로운 거래 행위가 보장되는지, 중앙 계획으로 통제하는지, 아니면 혼합 형태의 정책을 추진하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즉, 분배 과정에서 개인적 이기심만을 고려하는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감안하는지 그리고 분배를 촉진 또는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맥락에서 재화 또는 서비스의 가격을 정당하게 결정하고 있는지의 여부 등이 경제 윤리와 직결된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분배의 핵심 요소인 임금은 분배 정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은 노동자로서 노동의 결실을 점유할 권리를 가지는데 그것은 인간의 모든 욕구와 인간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권리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권리는 다른 기본 권리와 같이 양도 불가능하며 불가침적 권리에 속한다. 그리고 노동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기 때문에 모든 이의 노동 결실은 공정한 분배로 모든 이들의 욕구에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범위 내에서 임금에 대한 권리를 정한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자 자신과 가족들이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품위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화의 원천을 보장해 주어야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인간과 민족들의 사용을 위해 부여하셨으며 창조된 재화는 정의와 사랑에 입각하여 모든 인간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분배는 동일한 양을 나누어야 한다는 단순한 양적 개념의 평등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부분들은 권리에 있어서 공동선을 위한 각 부분의 기여에 따라, 동등한 분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부분은 그 고유한 기여에 따라 결정된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분배 정의의 실현이다.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가 또는 공권력의 개입을 인정할 수 있다. 공권력은 모든 법과 제도를 동원하여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조직과 행정 자체나 공동체와 그 성원들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할 때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공권력은 사회의 어떤 개인이나 계급에 대해 편파성을 보이지 말고 모든 이들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모든 사회 조직의 일차적 목표는 전체 구성원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있으며 공동선의 증진은 보다 작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보다 큰 사회가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조성의 원리' (principle fsubsidiarity)로 추구해야 한다. 가정을 비롯하여 모든 중간 사회 집단이 자신의 책임 하에 솔선하여 자신의 복리를 증진하고 조화 속에 협력할 때 다양성을 일치시키는 근원인 공동선으로 바르게 이어져 국가와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되고 전체 구성원의 번영에도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제 윤리를 준수할 때 인간 사회의 경제 질서는 사회 정의와 사랑의 원리에 비로소 순응하게 된다.
이자 : 근대 산업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까지 중세 신학은 이자의 윤리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기초에는 노동만이 생산성을 가진다는 경제학적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적인 근대 산업 시대가 열리면서 노동 생산성의 제고를 위한 자본의 기여도라는 개념을 기초로 자본의 소유에는 당연히 이자에 대한 기대가 따르며 그것은 하나의 권리로 인정된다는 윤리 의식이 보편화되었다. 이 같은 새로운 경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회도 이자의 윤리적 정당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자의 정도를 따지는 이율 문제에 있어서 교회는 일정한 이율이나 그 상한선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시장 경제의 원리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경제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이율에 대해서는 엄격히 비판을 하고 있으며 이율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 들어서는 경제 발전이 가져오는 심각한 환경 파괴 현상이 경제 윤리의 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 문제는 환경 윤리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지만 환경 파괴의 궁극적 요인이 경제 문제에서 온다는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 윤리의 성찰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가톨릭 경제 윤리의 중심 과제는 현실 사회의 구체적 표현인 경제 질서 특히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비롯하여 경제 행위 결과 빚어진 도농간, 또는 선후진국간의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윤리적 해석, 그리고 가톨릭 사회 원리에 입각한 올바른 경제 질서 재건을 위한 대안 제시 등이 그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가톨릭 경제 윤리는 가톨릭 교회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기본 인식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로서 하느님과 함께 완전한 행동을 누릴 운명을 타고났다는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본질, 즉 자유 의지와 지성으로 이루어지는 영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본성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사람이 태어나서 생활하고 사람답게 계발되기 위해 사회는 불가결하며 반면에 모든 사회를 결성하게 되는 원인이 다름아닌 사람이며 또 그 목적도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 가톨릭의 인간관과 사회관의 기반이다.
이러한 가톨릭 사회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모든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경제 조직의 존재는 인정되며 또 다양한 형태의 경제 질서가 공동 발전하는 것도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경제 및 문화적 질서는 종합적인 윤리 질서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와 윤리는 각기 고유 영역에서는 자율성을 지닐 수 있지만 경제의 존재 이유가 인간을 위한 데 있고 또 그 같은 명제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당연히 보완적인 조화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참고문헌 D.S. Sills ed., 《IESS》/ T. Donaldson, Corporations and Morality, Prentice-Hall, N.J., 1982/ E.M. Dempsly, The Functional Economy, Englewood Cliffs, N.Y., 1958/ R.B. Brandt, Hopi Ethics : A Theoretical Analysis, Univ. of Chicago Press, 1954/ J. Ladd, The Structure ofMoral Code ; A Philosophical Analysis of Ethical Discourse Applied to the Ethnic Group, Cambridge, Mass ; Harvard Univ. Press, 1957/ M.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Translated by Talcott P. Allen & Unwin, London, 1962/ 潘炳吉, 《경영학 원론》, 박영 사, 1990/ 김춘호, 《사회주의와 가톨릭 사회 교시》, 분도출판사, 1991. 〔朴榮基〕
경제 윤리
經濟倫理
〔라〕ethica oeconomica · 〔영〕economic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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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