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187-1 소재. 1949년 3월 중림동(中林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설립 당시 '신용산(新龍山) 본당' 이었으나 1960년경에 '삼각지 본당'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관할 구역은 문배동, 신계동, 한강로 1 · 2가 전 지역과 남영동, 원효로 1 · 2가, 한강로 3가 일부 지역. 〔교 세〕 1967년 1,413명, 1972년 992명, 1979년 2,273명, 1985년 2,369명, 1990년 2,756명, 1996년 1,568명. 〔역대 신부〕 초대 이계광(李啓光)요한(1949. 3~1950.4), 2대 구천우(具天祐) 요셉(1950. 4~1954. 2), 3대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1954. 2~10), 4대황정수(黃貞秀) 요셉(1954. 10~1957.6), 5대 김창린(金昌麟) 필립보(1957. 6~1962. 6) 6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62. 6~1968. 6) , 7대 황인국(黃仁國) 마태오(1968. 6~1972. 9), 8대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1972. 9~1975.59대 한희동(韓熙東) 그레고리오(1975.5~1980.5), , 10대 백일성(白日星) 도미니코(1980. 5~1982. 5) , 임시 안상인(安商仁) 요셉(1982.5~8), 11대 홍성만(洪性萬) 미카엘(1982.8~1986. 8), 12대 소윤섭(蘇潤燮) 요셉(1986. 8~1990. 2) ,13대 김정남(金貞男) 안드레아(1990. 2~1993. 3), 14대전형의(全亨義) 베드로(1993.3~1998.2), 15대 박은종(朴銀鍾) 사도 요한(1998. 2~현재).
〔설립과 정착] 주일 미사에 참례하려면 먼 거리에 있는 중림동 성당으로 가야만 하였던 삼각지 일대의 신자들은, 당시 중림동 본당 보좌 최석호(崔奭浩, 바오로) 신부에게 요청하여 1947년경부터는 한강로 2가 29번지의김기련(베드로) 집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이에 신자들은 기성회를 조직하고 본당 설립을 추진하게되었는데, 이 무렵 북한 지역에서 월남해 온 신자들과 예비 신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역 교세도 급증하게되었다. 그러자 교구에서는 1949년 3월 신용산 본당을설립함과 동시에 이계광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계광 신부는 부임 직후 김기련의 집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사용하는 한편, 본당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많은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2대 주임 구천우 신부가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약 3년 동안 주임신부의 공석으로 신자들은 중림동 본당이나 명동 본당의미사에 참석하여야만 했다. 그 후 부임한 3대 주임 봉희만 신부와 4대 주임 황정수 신부가 황폐해진 성당 재건에 주력하는 동시에 전교 활동에 노력하여 본당은 점차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5대 주임 김창린 신부 때인1958년에는 본당 사목을 돕기 위하여 서울 성가 소비녀회의 분원이 설립되었으며, 6대 주임 임응승 신부 때인1963년 8월에는 청파동(青坡洞) 준본당이 설립되었다.그리고 7대 주임 황인국 신부가 부임한 이후에는 성당신축을 추진하는 한편 1968년 11월에 한강로 1가 187번지의 목조 건물에 임시 성당을 마련하였다. 또 이촌동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교세가 급증하자
1970년 12월 18일 한강(漢江) 본당을 분리함과 동시에약 150세대 62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1971년 4월11일 기공식이 거행된 총 건평 190평 규모의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건물은 착공 7개월 만인 11월 29일에 완공되어 봉헌식을 가졌으며, 이듬해 5월에는 서울 성가소비녀회가 철수하고 대신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분원이 개설되었다.
〔변모와 현재〕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석우 신부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활성화와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하여 본당의 교세 확대에 노력했으며, 9대 주임 한희동 신부는 신축 성당의 내부 및 조경 공사를 실시하였고, 10대 주임 백일성 신부 때인 1981년 8월 21일에는 새남터본당이 신설되면서 한강로 3가 일부 지역이 본당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그리고 11대 주임 홍성만 신부는 1984년 6월 9일에 사제관 및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1985년 여름 방학부터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농촌공소 봉사 활동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을 전후하여 신도시로 이주하는 신자들이 급증하면서 본당의 실제 교세는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13대 주임 김정남 신부는 1991년에 대대적으로 교적을 정리하여 행방 불명자들을 모두 교구로이관하였다. 아울러 같은 해 5월에는 관할 구역 재조정으로 용산 본당에서 당고개(堂峴,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2가 8번지 소재) 성지의 관리를 위임받아 9월 29일에 14처를 마련한 데 이어 이듬해 6월 21일에는 예수 성심상을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14대 주임 전형의 신부는1996년 7월에 한강로 1가 206-7번지의 대지와 건물을매입하여 교육관(14평)을 마련하였고, 같은 해 10월 3일에는 당고개에순교자 성상(聖像)을 건립하여 축복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또 노후화된성당과 부속 시설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7년 6월 29일에는 사무실(7평)을 신축하였을 뿐만아니라 앞으로 순교자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당고개에 기념관 및 피정의집을 건립할 계획으로 있다. (→ 서울대교구 ;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경 향잡지》 1009호(1949. 4), p. 58/ 《약현 본당 백 년사》, 약현 성당 100주년사 기념 자료집 제5집,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2. [편찬실]
삼각지 본당
三角地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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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