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송

三德誦

〔라〕 actus trium virtuum, fidei, spei et caritatis · 〔영〕 actions of three virtures, of faith, of hope, of love · 〔프〕 actes des trois vertus, de foi, d'esperance et de charité

글자 크기
6
비전례(非典禮) 기도의 하나.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이인간에게 부여해 준 세 가지 은총(로마 5, 2-5)인 믿음〔信〕 · 희망〔望〕 · 사랑〔愛〕의 삼덕(三德)을 스스로 깨달 아 현세에서는 하느님의 믿음 · 희망 · 사랑의 증인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공경하기 위해 바치는 기도. 정확히는 신망애 삼덕송(信望 愛 三德誦). '삼덕' 은 곧 하느님에 대해 인간이 지녀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신덕' (對神德, virtus theologica)으로, 위와 같은 의미 때문에 '향주 삼덕' (向主三德) 또는'주부 삼덕' (注賦三德)이라고도 한다. 또 '송' 이란 기도문을 외워 바친다는 뜻이다.
〔기 원〕 의미상으로 볼 때 삼덕송은 성서의 가르침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나, 하나의 기도문으로 완성되어 개인의 기도로 바쳐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후대였다.사도 교부의 저서들과 순교록 그리고 초기 파피루스 등에는 많은 유형의 개인 기도들이 들어 있었으며, 이 개인기도들 안에 삼덕송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확실하지는 않다. 초대 교회 때에는 개인이 바치던 이러한 기도들을 하나로 모은 책자가 없었고, 심지어 사도들과 교부들의 문헌에도 이러한 기도 모음집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즉 고대 교회 때부터 개인 기도 모음집의의미로서 전해진 개인 기도서는 없었던 것이다. 《디다케》(Didache) 《사도 헌장》(Constitutiones postolorum) , 세라피온(Serapion, +451)의 《에콜로지움》(Euchologium)에다소 짧은 기도들이 들어 있었지만, 이는 개인 기도들이라기보다는 전례 기도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중세 때에캔터베리의 주교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추기경에 의해 개인 기도들이 공식적으로 책자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는 1756년에 삼덕송을 바치는 신자들에게 특별히 은사를 베풀었으며, 교황 글레멘스 13세(1758~1769)는 삼덕송을 전심으로 바치는 신자들에게 '매번 7년 동안 40일 대사 를베풀었다. 이후 삼덕송 기도문은 신자들에 의해서 널리통상적인 기도로 바쳐졌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되어 있는 삼덕송은 18세기 중엽, 중국 사천교구(四川敎區)의 이 안드레아(Ly André) 신부가저술한 기도문에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삼덕송〕 중국에서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처음신자들에게 전파한 이래 1602년 소주에서 간행된 롱고바르디(N. Longobardi, 龍華民) 신부의 《천주 성교 일과》(天主聖教日課)에 신덕경 · 망덕경 · 애덕경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한편 18세기 중엽에는 사천교구의 이안드레아 신부가 이를 다시 '삼덕경' (三德經)이란 기도문으로 저술하였는데, 그 후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으로중국 사천성에서 활동한 복자 모예(Joan Martin Moyö,1730~1793) 신부가 자신의 저술 《천주경과》(天主經課, 즉聖教日課)에 이를 수록하였다. 이 《천주경과》에 수록된여러 기도문들은 모예 신부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사천 지역의 신자들 사이에서 이미 사용되어 오던 기도문들을 일반 신자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대중어로 바꾸어 수록한 것들이다. '천주의 섭리 수녀회' 의창설자로 잘 알려진 모예 신부는 1771년에 중국 선교사로 임명된 이래 1773년부터 프랑스로 귀국하는 1783년까지 10년 동안 사천교구에서 활동하였었다. 그러던 중1780~1783년경에 《천주경과》를 편찬하게 되었으며, 이책은 그 후 사천 지역은 물론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에의해 타이 · 말라카 · 버마 · 만주 · 조선 등지로 널리 전파되면서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그 내용 중에서 삼덕경은 조과(早課) 중 스무 번째 기도문으로 수록되어있다.
〔한국의 삼덕송〕 조선 후기의 신자들이 언제부터 '삼덕송' 을 바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학징의>(邪學懲義)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것처 럼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윤현(尹鉉)의 집에서 압수되어 소각된 천주교 서적들 가운데 "성교일과" (聖教日課)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이는 모예의 《천주경과》가 아니 라 통고바르디의 《천주 성교 일과》일 것이다. 또 척사론자 홍낙안(洪樂安)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의 신자들이 조만과(早晚課)를 외워 바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천주 성교 공과》의 조만과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따라서 그 안에 수록되어 있던 삼덕경이 이미 신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천주 성교 일과》의 삼덕경은 훗날 롱고바르디와함께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디아즈(E. Diaz, 陽瑪諾)의 저술 《수진일과)(袖珍日課)에 다시 수록되었으며, 이 책은초판이 간행(연도 미상)된 이래 160여 년이 지난 1823년에 다시 마카오에서 중간본이 간행되었다. 이기경(李基慶)의 《벽위편》(闢衛編)에 따르면, 《수진일과》 초간본은이미 1784년 초에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에 의해 전래되어 권일신(權日身, 프란코 사베리오) · 최필공(崔必恭, 토마스) 등에 의해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들 또한 삼덕경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후 1836년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였는데, 1837년 말에 입국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Inbert, 范世亨) 주교는 이미 중국 사천 지방에서의 오랜선교 경험에서 아직 조선 교회에는 모국어로 된 기도서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곧 조선어 기도서의편찬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4명의 조선인 통역들의도움을 받으며 한문 기도서-모예의 《천주경과》였을 것이 틀림없다-에서 필요한 기도문들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년이 안되어 2권의 기도서, 즉 주일과 첨 례 때 필요한 기도문들을 《천주 성교 공과》(天主聖敎功課)로, 여기서 발췌한 12개의 일상 기도문을 《천주 성교십이단)(天主聖敎十二端)으로 저술하였다. 공과에는 물론 십이단에도 삼덕송이 수록되어 있었으므로 삼덕송은1839년의 기해박해 전부터 이미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바쳐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공과는 그 후 최양업
(崔良業, 토마스) 신부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 보좌주교의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쳐 1859~1864년 사이에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감수로 목판본(4권 4책)으로 간행되었고, 십이단은 1882년에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때 대본이 된 것은 《수진일과》 삼덕경이 아니라 모예의 《천주경과》 삼덕경이었으며, 베르뇌 주교는 삼덕송을 자주 바치는 신자들을 위해이를 간략하게 축소한 '적은 삼덕송' 을 첨부하였다.
〔현행 삼덕송〕 목판본 《천주 성교 공과》는 이후 여러차례 활판본으로 간행되면서 1972년에 《가톨릭 기도서》가 나올 때까지 100여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기도서로 사용되었다. 물론 판본이 거듭되면서 그 내용에약간씩 차이는 있었지만, 삼덕송의 내용만은 바뀌지 않고 계속 수록되었다. 그러다가 《가톨릭 기도서》 편찬시에 비로소 그 내용이 훨씬 축소되어 제1편 '일상 기도'에 수록되었고, 1997년에 다시 일부 용어만이 개정되어현행의 《가톨릭 기도서》 제1편 '주요 기도' 안에 수록되었다.
현행 삼덕송의 내용 중에서, 첫째 '신덕송' 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기도문으로, 우선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그분이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없으시기 때문"이라고 가르치며, 이어 무엇을 믿는가에대해 그것은 바로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계시하신 진리"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둘째 '망덕송' 은 신덕송의 내 용을 가르쳐 주는 기도문으로,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를 설명한 다음, 우리가 희망하고 바라는 것은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임을 분명히 나타내 주고 있다. 셋째 '애덕송' 은 모든 덕행의 중심인 '사랑' 을 되새기도록 하는 기도문으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근본 이유로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기 때문"임을 내세우고, 또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다음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중에서 신덕 · 망덕이 현세에서 실천하고 간직해야 할 것이라면, 애덕은 천상에까지 지니고 가야 할 덕목이다. (→ 기도 ; 기도서 ; 대신덕)
※ 참고문헌  天主聖教 課》 《袖珍 日課》 天主經經課》 《天主聖教功課》 《가톨릭 기도서》 <달레 교회사》下/ 《韓佛字典》 《가톨릭사전》 박도식, 《주요 기도문 풀이》, 톨릭출판사, 1961/ 정대식, 《기도와 삶》, 가톨릭출판사, 1983/ 김보록, 《기도하는 삶》, 생활성서사,1988/ 崔允煥, 〈天主聖教功課의 原本〉, 《論文集》 2집, 가톨릭대학,1976 1 一, <한국 功課의 원본인 天主經課의 저자>, 《韓國教會史論叢》,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차기진, <蔓川 李承薰의 교회 활동과정치적 입지>, 《教會史研》 8집, 1992.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