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261 소재. 1951년 5월 6일 이리(裡里, 현 창인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관 할 구역은 삼례읍 일부 지역.
〔교 세〕 승격 당시 1,071명, 1963년 1,050명, 1966년 1,212명, 1971년 1,300 명, 1977년 1,676명, 1981년 1,852명, 1986년 2,270 명, 1991년 2,915명, 1996년 2,098명. 〔역대 신부〕 초 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51. 5~1958. 5), 2대 오기순 (吳基順) 알베르토(1958. 5~1961.9) 3대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1961. 9~1963. 7), 4대 강윤식(姜允植) 베네딕도 (1963. 7~1967. 3), 5대 이현석(李鉉錫) 미카엘(1967. 3~1968. 10), 6대 정재석(鄭在石) 요셉(1968. 10~1971. 6) , 7대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1971.6~1972. 7), 8대 권영 균(權寧均) 안토니오(1972. 7~1974. 1), 9대 서석기(徐錫 基) 베드로(1974. 1~1978. 4), 10대 황인규(黃寅奎) 마태 오(1978. 4~1982. 10), 11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1982. 10~1983. 6), 12대 한기호(韓基浩) 요한(1983. 6~1986. 1), 13대 이대권(李大權) 바오로(1986. 1~1987. 9), 14대 김봉희(金鳳熙) 요한(1987. 9~1992. 2), 15대 김 병엽(金炳燁) 베드로(1992. 2~1995. 2), 16대 박종상(朴鍾 相) 가브리엘(1995. 2~1998. 2), 17대 김순태(金順泰) 요 셉(1998. 2~현재). 〔공소 시대〕 1936년 초 삼례읍 삼례리에는 박종길(朴 鍾吉)과 김현순(金顯順) 두 신자 가족만이 거주하고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주(全州, 현 전동) 본당 주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삼례리 후동에 초가를 매입하여 공소 강당으로 개조한 후 같은 해 3월 3일 삼 례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3년 동안 전주 본당 소속으 로 있다가 1939년에 이리 본당 관할로 편입된 삼례 공 소는,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던 중 1951년 초에 교구에서 본당 신설을 계획하게 되자, 이 리 본당 주임 김영구 신부를 비롯한 공소 신자들은 삼례 지역에도 본당을 신설해 줄 것을 건의하는 동시에 현 본 당 소재지의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본당 승격을 본격 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51년 5월 6일자로 이리 본당관할 공소에서 삼례 본당으로 승격되어 김영구 신부 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정착과 변모〕 1951년 10월 공소 건물을 성당과 사제 관으로 개조해서 사용해 오던 본당에서는 불편이 증가하 자 새로 매입해 놓았던 부지에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 하였다. 그 후 1955년 5월에 공사에 착수하여 그 해 8 월 97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60년 3월 7일에는 삼례읍 어전리의 농지 6,700 평을 매입하였고, 1962년에는 성당 부지 61평을 추가로 매입하였으며, 1967년 2월 25일에는 성삼 신용 협동 조 합을 설립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우선 1973년 8 월 15일에 자모회가 주축이 되어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1975년에는 익산(益山)의 나환우 정착 마을인 '익산 농 장' (익산군 왕궁면 구덕리)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80년 5월에는 그곳에 부지 240평을 추가로 매입하였 다. 또 1979년 4월에는 어전리의 농지를 매도한 기금으 로 사제관을 신축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옛 사제관을 수 녀원으로 개조한 후 1981년 2월 25일에 인보 성체 수녀 회를 다시 본당에 초청하였다. 이 수녀회는 2대 주임 오 기순 신부 때 본당에 진출하였다가 본당의 재정이 어려워 철수하였었다. 1984년 8월에는 사제관(38평)을, 12 월에는 강당(41.4평)을 각각 신축하였고 1985년 4월 20 일에는 익산 공소에 지상 2층의 유치원(110평)을 설립했 으며, 8월 15일에는 본당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1,000 여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개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해 10월에는 익산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87년 6월에는 성당을 증축(40평)하였다. 그 동안 본당에서는 여러 차례 관할 구역을 분할하여 야만 했는데, 1981년 4월 금마(金馬) 본당이 신설되면 서 본당의 관할 지역 중에서 익산군 · 완주군 일부가 새 본당 소속이 되었고, 1984년 5월 25일에는 동산(東山) 본당이 신설되면서 완주군 조촌면 화전리(花田里) 공소 가 이관되었다. 이어 1992년 2월 16일에는 상삼례(上 參禮) 본당이 본당에서 분리되면서 익산 공소와 함께 1,028명의 교적이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같은 해 본 당에서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 였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신자들의 신심 강화와 소공동 체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실천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전동 본당 ; 상삼례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호남교회사연구소, 《전주교구사 연 표》, 1993/ 전동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사업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전동 본당 100년사 자료집 제1집》, 천주교 전동 교회, 1992. 〔李裕林〕
삼례 본당
參禮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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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