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중국 이름 은 필방제(畢方濟) 자는 금량(今梁). 1582년에 이탈리 아 남부 코센차(Cosenza)에서 태어나 1603년에 예수회 에 입회하였으며, 1609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일본 선 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런 다음 동료 알레니(G. Aleni, 艾 儒略) 신부와 함께 인도를 거쳐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하 여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중국 전교의 허락을 얻었다. 이 후 약 1년 동안 마카오에서 수학 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1613년에 알레니와 함께 북경 선교사로 임명되었으며, 사망할 때까지 중국 전교에 노력하였다.
〔전교 활동〕 북경에 도착한 뒤 삼비아시 신부는 리치 (M. Ricci, 利瑪竇)를 이어 북경 선교단장으로 활동하던 롱고바르디(N. Longobardi, 龍華民) 신부 아래서 전교에 열중하였다. 그러던 중 1616년 남경박해(南京迫害)로 축출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다행히 산동 순무(産 東巡撫)로 있던 신자 손원화(孫元化, 이냐시오)의 도움 으로 그의 고향 가정(嘉定)에 마련되어 있던 천주당에 머무르면서 연구와 전교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어 1620 년에 만력제(萬曆帝)가 사망하고 박해가 잠잠해지면서 그는 다시 북경으로 잠입해 들어가 명나라 말의 봉교 사 인으로 유명한 서광계(徐光啓)의 집에 머물렀다. 이때 서광계는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만주족을 토벌하기 위해 서는 조선의 원병이 필요하다는 것을 건의하였으며, 이 기회를 이용하여 삼비아시 신부와 함께 조선으로 들어가 전교할 계획까지 수립하였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게다가 조정 대신들의 시기로 인해 삼비아시 신부는 더 이상 북 경에 머무르지 못하고 1622년에 상해로 갔으며, 송강(松江) 인근에서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삼비아시 신부는 1628년부터 산서와 산동 지방 을 거쳐 남경(南京)으로 가서 전교했는데, 그 결과 1634 년에는 그에게서 세례받은 남경의 신자수가 600명에 이 르게 되면서 박해로 파괴된 남경 교회가 완전히 복구되 었다. 이때 그의 정직함과 박학한 교리, 문학, 수리학, 천문학 등이 전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 한 지식이 알려지면서 조정의 명으로 북극의 고도와 일 식 등을 관찰하였는데, 이러한 작업은 테렌츠(J. Terrenz, 登玉函) 신부와 롱고바르디 신부가 참여한 역법(曆法) 개수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1638년에 남경의 전교를 피바(N. Fiva, 徐日昇) 신부 와 월터(M. Walta, 萬密克) 신부에게 맡긴 그는 회안(淮 安) · 양주(揚州) · 소주(蘇州) · 영파(寧波)를 비롯하여 절강성 및 강소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1640년의 입 교자만도 700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어 1644년 청의 입 관(入關) 이후에는 복왕(福王) · 당왕(唐王) 등 명나라 말 황제들의 사신으로 임명되어 천주당 건립의 약속을 얻는 대신 마카오로 가서 포르투갈의 군사적 도움을 청 하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1646년에 청나라 군사가 광주를 함락하였을 때에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기도 하 였던 삼비아시 신부는, 그 후 광주와 그 인근에서 활동하 다가 1649년 1월에 사망하여 마카오에 묻혔다.
〔저술과 영향〕 삼비아시 신부가 저술한 한역 서학서들 은 《영언여작》(靈言蠡勻) 2권을 비롯하여, 위생 상식에 관한 저술로 훗날 손원화가 교정하고 이지조(李之藻)가 서문을 붙여 1629년에 《수화이답》(睡書二答) 합본으로 간행한 《수답》(睡答) 1권과 《화답》(畵答) 1권, 1639년 에 광산 · 통상 · 총포 등에 관한 현실 개혁책을 적어 올 린 《필방제주섭》(畢方濟奏摺), 그리고 1633년에 사망한 로드리게스(J. Rodriguez, 陸若漢)의 무덤을 마카오에 설 치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명나라 의종(毅宗)에게 청한 <주소>(奏疏)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서 양 철학의 입장에서 아니마(亞尼瑪, 영혼)를 설명한 《영 언여작》이다. 이 책은 삼비아시 신부가 북경에 머무르고 있던 1620년 이후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구술한 것을 서광계가 필사하고 교정을 보아 완성한 것 으로 1624년에 상해에서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1629년에 《천학초함》(天學初函)에 다시 수록되었을 뿐 만 아니라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子部) 잡가류에도 수록되었으며, 1724년 이전에 이미 조선에 전래되어 지 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삼혼설 ; 《영언여 작》 ; 중국 천주교회) ※ 참고문헌 《靈言蠡勻》 Aloys Pfister, 馮承鈞 譯, 《入華耶蘇會士 列傳》 商務印書館, 1938/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中華 書局, 1958/ 方豪, 《中國天主教史 物傳》 第一冊, 香港公教真理學 會, 1970/ 裴賢淑 <17~18世紀에 傳來된 天主教書籍〉, 《敎會 史研究》 3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Aloys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I , Chang-hai, 1932. 〔車基眞〕
삼비아시, 프란체스코 Sambiasi, Franceso(1582~1649)
글자 크기
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