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본당

三成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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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 517- 11 소재. 1988년 12월 8일 금왕(金旺) 본당 공소에서 삼성 준본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91년 6월 29일 정식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마티아. 관할 구 역은 청룡리 일부를 제외한 삼성면 전 지역과 금왕읍 석 교촌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능산 1개소. 〔교 세〕 승격 당시 952명, 1992년 1,110명, 1994년 1,331명, 1996 년 745명. 〔역대 신부〕 초대 김홍열(金洪烈) 시몬(1991. 6~1993. 4), 2대 반영억(潘永億) 라파엘(1993. 4~1994. 7) , 3대 박치영(朴治英) 안드레아(1994. 7~1997. 7), 4대 전성 호(全性鎬) 빈천시오(1997.7~현재).
〔공소 시대〕 삼성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04 년경 괴산(槐山) 고마리(叩馬里, 일명 높은 사랑) 공소에 서 세례를 받은 이 데레사의 가족이 정착하면서부터였 다. 그 후 1936년 2월에 진천 덕산(德山)에 거주하던 이 복기(프란치스코) 가족이 이곳으로 이주했으며, 얼마 후 에는 충북 장호원(長湖院, 현 감곡) 본당의 보좌 오기선 (吳基先, 요셉) 신부가 이복기의 집에서 성사를 집전함 으로써 '삼성 공소' 가 설립되었다. 한편 이복기 회장의 아들 이요옥의 전교 활동에 힘입어 공소 신자수는 1940 년에 30명에 불과하던 것이 1950년에 이르러서는 100 여 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강당 신축이 시급한 문 제로 대두되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한 끝에 면유림(面有 林)을 임대하여 20평 규모의 강당을 건립하였고, 1956 년 11월 8일에는 장호원 본당에서 다시 정식으로 삼성 공소의 설립을 발표하였다. 이 공소는 1957년 9월 6일 금왕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새 본당 소속이 되었다.
〔설립과 변모〕 공소 신자수는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1970년대 중반에는 300명에 이르게 되자 이때부터 신 자들은 본당 승격을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금왕 본 당 8대 주임 오웅진(吳雄鎭, 요한) 신부가 부임 직후 삼 성 공소의 강당 신축을 추진하였으나, 음성 '꽃동네' 조성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공소 부지를 매입 하는 일은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김복순(안 나)이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1,219평을 기증함에 따라 강당 건립 문제가 다시 논의될 수 있었고, 1987년 1월 에 이범수(李範洙, 요셉) 신부가 금왕 본당 9대 주임으 로 부임하면서 그 해 9월 10일 신축 강당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8일 147평의 강당을 완공 하여 축복식을 갖는 동시에 준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1991년 6월 29일에는 '삼성 본당' 으로 승격됨과 동시 에 김홍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승격 당시 본당에서는 금왕 본당으로부터 진천군의 광 혜원(廣惠院, 만승면 광혜원리)과 음성군의 대소(大所, 대 소면 오산리), 능산(陵山, 삼성면 능산리) 등 3개 공소를 포 함하여 총 952명의 교적을 이관받았다. 같은 해 7월 31 일 옛 공소 강당을 철거한 데 이어 1992년부터 이 지역 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교세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6년 7월 10일에 '광혜원 본당' 이, 이듬해 7월 22일 에는 '대소 본당 이 각각 분리되었다. 한편 본당에서는 1995년 5월 14일 수녀원과 교육관을 완공하고 성모 동 산을 조성하였으며, 최근에는 조경 사업을 추진하는 동 시에 반 모임 활성화와 지역 사회의 복음화 계획도 실천 하고 있다. (→ 청주교구)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감곡 본당 90년사》,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청주교구 연감》, 청 주교구청, 1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