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06년(혹은 1905년) 간도(間島)의 연길현 용정(龍井)에 설립된 초등 교육 기관.
1898년 초 간도 최초의 공소인 부처골〔佛洞〕 공소가 설립된 이래, 간도 천주교회에서는 천주교 교리와 한글을 가르치는 소규모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당시의 <교세 통계표>에도 1898~1899년에 이미 용정 근처의 싸리밭골, 호천개, 부처골 공소에 교리 학교들이 있었음이 나타난다. 그러던 중 1900년경에 부처골 공소 신자인 최문화(崔文化, 베네딕도), 김일룡(金一龍), 최병학(崔秉學, 벨라도) 등 4~5명이 용정으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학교 설립을 계획하였고, 회장인 장 고스마가 자신의 집을 희사함으로써 1906년에 간도 최초의 교육 기관인 '삼애학교' 가 설립될 수 있었다.
당시의 교과목은 국문 · 산술 · 역사 · 천주교 교리였는데, 지 타대오와 한 요셉 등이 무보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후에는 김일룡의 집을 교사(校舍)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 용정의 삼애학교는 개교한 지 3년 만에 폐교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10년 7월 22일자 <경향신문>에 삼애학교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고, 1912년 10월 29일 뮈텔 주교의 용정 방문시에도 학생들의 환영 기록이 나오며, 1909~1919년의 <교세 통계표>에도 용정 학교가 계속 보고되는 것으로 볼 때, 1919년 전반기까지는 유지되었음이 분명하다.
② 1907년 4월 17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낙양면 포내(浦內) 본당의 부이수(Bouyssou, 孫以燮) 신부가 설립한 초등 교육 기관.
삼애(三愛)란 애주(愛主) · 애국(愛國) · 애인(愛人)을 뜻한다. 본당 신자들의 모금에 의해 설립된 이 학교는 설립 당시 학생수가 80여 명이었고, 교과목은 한문과 일본어였으며 교육 목표 및 학생들이 삼가야 할 내용 등을 밝힌 12개 조의 교칙도 있었다. 설립 취지서에 따르면, 이 학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학문의 교육을 통해 생활을 이롭고 풍요롭게 하려는 목적, 즉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옛 것에 안주해서는 개인이나 국가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학교를 설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는 힘써 새 학문을 닦아 애주 · 애국 · 애인의 정신을 굳건히 함으로써 국가의 안녕에 이바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삼애학교의 설립이 실력 양성을 통해 국권 회복을 도모하려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음을 잘 설명해 준다.
이 학교는 1908년 사립 학교령(私立學校令)이 제정되어 학교와 관련된 사항이 인가제로 바뀌자 1909년 초에 학부로부터 인가를 받았고, 그 후 발전을 계속하면서 1910년에는 그 교과목도 지리 · 역사 · 수신 · 국어 · 산술 · 일본어 · 미술 · 체조 등으로 확대되었다. 기록의 미비로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으나 단지 1916년 전반기까지 포내 본당 지역 안에 있는 하나의 학교가 <교세 통계표>에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이것이 곧 삼애학교가 아니었나 추정할 따름이다.
한편 지금까지 삼애학교는 1908년에 경천 애국(敬天愛國)을 교지(校旨)로 하는 '명의학교' (明義學校)로 개칭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삼애학교는 부이수 신부가 사목하는 포내 본당 관할 내에 있었고, 1908년 9월 29일에 개교한 명의학교는 강원도 이천군 하읍면 개양리 소재로 망답(望沓) 본당의 루케트(Rouquette, 盧大有) 신부의 관할 아래 있었다. 따라서 삼애학교와 명의학교는 별개의 학교임이 분명하다. (→ 한국 가톨릭 교육 사업)
※ 참고문헌 《교세 통계표》,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경향신문>(1907. 5. 3 ; 6. 21 ; 1908. 10. 23 ; 12. 4 ; 1910. 7. 1 ; 7. 22)/ 《가톨릭 청년》 41호, 1936, pp. 5, 32, 521 <간도 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1, 1994/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뮈텔 주교 일기》 5,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p. 185. [方相根]
삼애학교
三愛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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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