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京鄉雜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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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과 1911년 1월의 《경향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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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과 1911년 1월의 《경향잡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종합 월간지.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 잡지 가운데 하나로, 1906년 10월 19일 한국 천주교회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의 부록인 〈보감〉(寶鑑)이 그 전신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경향신문>이 한일합병 이후 순전히 종교적인 신문의 발행만을 강요한 총독부의 압제로 인해 1910년 12월 30일 폐간되자, 1911년 1월 15일 그 부록인 <보감>을 격주간 종교 잡지인 《경향잡지》로 변경하여 계속 발행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발행된 잡지의 성격은 기존 신문의 성격과는 달랐지만, 호수나 명칭에서 보이는 것처럼 당시 교회 당국에서는 이를 <경향신문>과 <보감>을 잇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창간 이래 이 잡지는 80여 년 간 순수한 종교 잡지로서의 성격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 교회와 호흡을 함께해 온 점에서 그 변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해방 이전의 교회 실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각 시기별로 당시의 신학 사조나 흐름을 이해시켜 주는 내용들이 많다.
〔제1기〕 (1906. 10~1910. 12) : 일명 <보감> 시대. <경향신문>의 부록으로 간행되기 시작한 <보감>은 국판 8면의 순 한글 주간지 형태로서, 편집 겸 발행인은 드망즈(Demange, 安世華) 신부였고, 발행소는 경향신문사였다. 또 신문의 편집과 구성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잡지의 편찬도 아울러 담당하였다. 그러나 신문이 주로 일반 시사 문제나 계몽 활동에 중점을 둔 반면에 <보감>에서는 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들을 수록하였으며, 법률문답' , '대한 성교 사기' (大韓聖敎史記), 각종 논설 등 연재 기사나 따로 보관할 필요가 있는 내용들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 이 잡지는 폐간될 때까지 4권 4책 220호를 발행하였다.
〔제2기〕 (1911. 1~1945. 5) : 《경향잡지》 제1기.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기존 <보감>을 《경향잡지》로 변경 발행하면서 이를 격주간으로 바꾸는 대신 국판 16면 또는 24면으로 증면하였다. 이때 발행소의 명칭도 경향잡지사로 개칭하였다. 초대 편집 겸 발행인은 계속 드망즈 신부가 맡았으나, 그가 초대 대구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1911년 4월부터는 망(Jean Marie Georges Meng, 明) 신부가 이를 담당하다가 이후 한기근(韓基根, 바오로), 윤형중(尹亨重, 마태오), 조제(JosephJaugey, 楊秀春) 신부 등이 그 책임을 번갈아 맡게 되었다. 이 잡지는 발 행 당시부터 순 종교 잡지로 간행되었으므로 계몽적인 측면보다는 교회 소식, 교리 지식, 전교 활동 등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이것이 잡지의 발행을 어렵게 함으로써 잡지사 측에서는 1920년대부터 구독자 확보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33년 이후에는 '조선어 학회' 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에 맞추어 내용을 편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은 가중되었고, 여기에 일제의 탄압이 가속되면서 잡지사 측에서는 결국 그 면수를 줄이는 동시에 월간 · 격월간으로 축소 발행하다가 1945년 5월 15일자(제39권 제976호)로 폐간을 결정하게 되었다.
〔제3기〕 (1946. 8~1959. 7) : 《경향잡지》 제2기. 경향잡지사에서는 해방을 맞이한 뒤 1946년 8월 1일자(제977호)로 잡지를 복간하면서 의욕적인 출발을 하였으나, 당시의 경제 사정 때문에 월간 18면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6 · 25 동란이 일어나면서 제1023호를 끝으로 1950년 7월부터 휴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서울교구에서 이 잡지를 다시 간행하게 된 것은 1953년 7월 1일(제1024호)이었다. 이때부터 동 잡지사에서는 월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면수를 증면하고, 이전과는 달리 그 시대 속에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잡지의 구성은 순교자 현양과 교회 소식, 교회사, 교리 해설과 함께 반공주의 고취가 주된 내용을 이루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잡지의 편집 겸 발행을 맡은 사람은 윤형중신부였다.
〔제4기〕 (1959. 7~현재) : 《경향잡지》 제3기.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1959년 7월 1일(제51권 제7호)부터 잡지의 발행권이 서울교구로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관됨으로써 동 협의회의 기관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1961년까지는 윤형중 신부가 계속 그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았고, 내용이나 구성 체제 또한 변경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 정의에 입각하여 갖가지 사회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데 노력하는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공의회 문헌의 해설을 통해 신앙 생활의 쇄신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68년부터 신형 활자를 사용하였으며, 다음해부터 가로쓰기를 단행하였다. 이후 동 잡지에서는 꾸준히 면수를 증면함으로써 폭넓은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노력해 왔는데, 현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 발행인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 총장이 편집인을 맡고 있다. (→ <경향신문> ; ← 보감)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