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동 본당

三井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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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307 소재. 1971년 9월 12일 소사(素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지의 모후. 설립 당시의 명칭은 '오정(吾丁) 본당' 이었으나 1982년 3월 25일 '삼정동 본당' 으로 개칭하였다. 관할 구역은 약대동, 삼정동, 도당동 전 지역과 춘의동, 중동 일부 지역. 〔교 세〕 설립 당시 637명, 1976년 1,077명, 1981년 1,668명, 1986년 3,334명, 1991년 4,448명, 1996년 4,494명. 〔역대 신부〕 초대 슈미트(P. Schmidt, 심재성) 바오로(1971. 9~1975. 6), 2대 오그래디(M. O'Grady, 오) 미카엘(1975. 6~1977. 1), 3대 호반(B. Hoban) 브랜던(1977. 1~1980. 4), 4대 맥폴린(B. McPolin, 목) 브랜던(1980. 4~1981. 1), 임시 오키프(D. O'keeffe, 오기백) 다니엘(1981. 11~1982. 1) 5대 히어리(P. Healy, 현) 파트리치오(1982. 1~1986. 1) 6대 이성득(李聖得) 요셉(1986. 2~1991.2 7대 서병섭(徐丙燮) 베드로(1991. 2~1996. 2), 8대 황상근
(黃相根) 베드로(1996. 2~현재).
1970년대 초 소사 본당의 슈미트 신부는 본당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오정면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거리 관계로 불편을 겪자, 본당 분할 계획을 세우고 1970년 11월에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부천군 오정면 삼정리 327번지의 대지 1,769평을 매입하여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에 교구에서는 1971년 9월 12일에 오정 본당을 설립함과 동시에 그 사목을 마리아회에 위임하고 슈미트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어 본당에서는 같은 해 9월 20일 2층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12월 8일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72년 3월 3일 오정면 여월리(如月里) 193번지의 부지 503평을 추가로 매입한 본당에서는 이듬해 2월 여월리 공소를 설립하고 같은 해 11월 공소 강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1973년 6월 13일부터 새 성당 건립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성당을 완공하고 4월 6일 봉헌식을 가졌으며, 1977년에는 신자들의 신심 함양을 위해 성당안에 영적 도서실을 마련하였다. 한편 1973년에 소사 본당으로부터 인계받은 소래면 신천리(新川里) 공소가 1975년 12월 31일에 심곡동(深谷洞)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82년 3월 25일자로 본당 이름이 '삼정동 본당'으로 바뀌었으며, 1983년 10월 18일에는 여월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본당 신자 443명의 교적을 새본당으로 이관하였다.
1986년 2월부터는 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담당하게 되어 그 해 10월 17일 성가 소비녀회가 본당에 진출하게 되자 본당에서는 1987년 7월 19일 수녀원과 교리실을 완공 축성하였고, 1988년 9월 4일에는 다시 교리실과 성당의 증축 공사를 하면서 성가대석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지역 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매년 20여 명의 불우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또 1990년대에 들어서는 보수 및 조경 공사를 계속하는 한편, 1998년에는 2000년 대희년의 준비 작업으로 성서 100주간 교육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본당 지역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면서 신자수가 급증하자 1991년 2월 18일 오정동(吾丁洞) 본당을 분리 · 신설함과 동시에 627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