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론 또는 경험주의는 그리스어의 ἐμπειρία(empeiria, 경험)가 어원이다. 이것을 라틴어 experientia로 번역하였고, 이 두 단어에 근거하여 경험(experience)과 경험론(empiricism) 두 가지 표현으로 현재까지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경험론을 철학 용어로 사용한 것은 칸트(Immanuel Kant, 1274~1804)가 일군의 영국 철학자들을 경험론자로 부른 다음부터이다. 철학적 논의에서 경험론은 인식론의 기본 입장이다. 경험론은 감각 기관을 통해 얻는 경험이 인간의 다른 인식 능력보다 앞선다는 것, 이른바 경험적 인식이 사변적 인식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경험론은 이성이나 정신이 경험이나 역사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와는 반대 입장이다. 감각 경험이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고 하는 경험론자들의 주장은 감각 경험이 모든 인식의 원천(Ursprung)이고, 그것이 모든 인식의 타당성의 근거(Geltungsgrund)가 된다는 주장을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인식론인 경험론은 인식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인식의 생성을 심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인식론적 경험론 이외에도 경험적 인식에 바탕을 둔 존재론, 과학 방법론, 가치론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경험론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있다.
〔인접 개념〕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은 만물이 물질로 되어 있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다. 유물론과 경험론은 감각의 대상인 물질의 우위성을 인정한다는 점과, 정신적인 것의 독자적 존재를 부정(유물론)하고, 이를 평가절하(경험론)하는 면에서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유물론은 절대자에 관해 반드시 무신론의 입장을 취하지만, 경험론은 보통 불가지론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는 인식론적으로는 경험론이다. 실증주의는 지각할 수 있는 사실로 구성되어 있다는 존재론적인 기본 입장과 역사적인 진보의 이념을 동시에 포용하는 19세기 후반의 철학 사조(思潮)이다. 분석 철학(分析哲學, analytical philosophy)은 20세기 영 · 미 철학을 전반적으로 가리킬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 철학은 기본적으로 영국 경험주의 철학의 전통에 있으나, 지각이나 경험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던 원래의 경험론과는 달리 언어 분석을 철학의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실용주의(實用主義, pragmatism)는 경험주의 전통이 미국에서 발달한 형태로, 감각 경험과 실험 ·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경험론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인식의 확실성을 추구한 영국 경험론과는 달리 실생활에서의 인식을 일차적인 관심 대상으로 삼고 인식 내지 과학의 도구적 성격을 주장한다.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은 실재론(realism)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보편자(universal)는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individual)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존재론의 입장은 인식에서 감각의 우위를 주장하는 경험론과는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많은 경험론자들은 유명론의 입장을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중세의 유명론을 영국 경험주의의 철학적 배양토로
삼고 있다.
〔생성 배경〕 경험론과 합리주의는 서로 반대되는 인식론으로 17~18세기에 걸쳐 유럽의 철학 사조를 결정하였다. 당시 유럽은 중세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과 가치관을 열렬히 추구하는 계몽주의 흐름에 있었고, 특히 자연 과학과 수학을 매우 발전시켰다. 이렇게 사회가 전반적으로 새 출발을 하는 분위기에서 철학자들은 모든 학문의 시발점이자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초적 인식 규명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초 인식은 모든 사람에게 확실해야 했다.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한 합리주의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확실성을 가진 기초 인식을 논리적 필연성을 가진 불변으로 이해하여 경험과 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플라톤 전통에 서서 근본적인 인식은 선험적이고, 학문 방법으로는 연역법을 중시하며 초시간적인 기하학 내지 수학을 학문의 전형으로 삼았다.
이에 반하여 경험론은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로크, 버클리, 흄, 밀 등이 그 대표자였다. 이들은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경험적 인식을 가장 확실한 기초 지식으로 보았고,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오관(五官)을 통한 지각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유명론자인 오캄(William of Occam, 1285~1349)과 지식의 목적이 자연의 지배라고 주장한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전통을 따랐다. 그래서 사변적 사고의 비생산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고 새로운 학문 방법으로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이들은 실험과 관찰을 중요한 탐구의 수단으로 보았으며 물리학을 새 학문의 전형으로 보았다. 따라서 경험론자들이 추구한 이상은 객관성을 가진 확실한 지식과 이러한 지식을 확장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인식에 대한 필연성, 보편성, 불변성의 요구는 이러한 이상 때문에 부차적인 것이었다.
〔분 류〕 경험론은 인식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캄바텔(Kambartel)은 모든 경험론의 공통적인 기본 전제는, 언어 이전의 직접적인 소여(所與)를 인정하고, 이런 직접적 소여의 근거 위에서 구성될 수 있는 개념과 용어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통된 기본 전제 위에서라도 내용적으로 다른 여러 경험론이 가능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수학과 같은 비경험적 지식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에서 명백해진다. 가장 극단적인 경험론은 수학도 경험의 산물로 보고 수학적 지식의 선험성과 필연성을 부정한다. 반대로 가장 약한 경험론은 경험적 인식 자체의 성립을 위한 비경험적 요소의 개입을 인정한다. 이런 양 극단 사이에 수많은 경험론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경험론은 17~18세기에 걸쳐 영국에서 본격적인 철학적 흐름을 형성하고 20세 기에 와서는 다시 변형을 통하여 주도적인 철학 사조가 되었다.
초기 경험론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3/4~321/2)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에 비하여 실제의 인식을 중요시하였으나,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앞에서 규정한 의미의 경험론자로 보기는 어렵다. 최초의 명백한 경험론자는 감각을 인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본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감각은 참〔眞〕이며, 세계에 관한 판단 기준은 감각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개념(prolepsis)은 지속적 감각들로 구성된 일종의 추상적 이념일 뿐이고, 판단은 현상(phantasia)을 개념으로 조립한 것에 불과하다.
영국 경험론 : 경험론은 일반적으로 영국의 경험론이 대표적이다. 영국 철학자들이 17~18세기에 걸쳐 체계를 갖춘 사조로 정립시켰다.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경험론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영국 경험론의 시조로 불린다. 그는 무엇보다도 합리주의자들의 근본 주장인 내재 관념(innate idea)을 배격하였다.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경험에 앞서 있는 보편 인식을 플라톤의 '이데아' 또는 데카르트의 '내재 관념'으로 파악하고 참다운 인식을 이런 내재 관념의 회상 내지 자각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반해 로크는 저서 《인간오성(悟性)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인간의 정신은 백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비로소 그 내용을 갖추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갖춘 정신(mind)을 그는 이데아(idea)라고 불렀다. 이것은 정신이 사고하면서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이데아는 외부의 감각(sensation)에서 나오거나 또는 내적 성찰(reflexion)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원천은 없다. 정신의 모든 대상은 감각에 관한 이데아로 구성되며 모든 지식은 이런 이데아들의 연결, 일치, 불일치, 모순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또 사물의 속성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질량, 형태, 운동 등과 같이 그것이 없으면 사물이 존재하지 못하는 1차적 속성과 색깔, 맛과 같이 그 사물을 대표하는 이데아를 갖지 않는 2차적 속성이다. 이 구분으로 감각 인식이 가지는 상대성을 벗어나 확실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물의 실제적 존재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결국 그가 말하는 경험적 지식은 그 범위나 확실성을 좁게 한정시킨 것이었다. 로크가 내재 관념을 배격한 것은 이론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가치론적, 실천적 측면에서도 동일하였다. 기본 명제는 "경험에 먼저 있지 않은 것은 이성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은 개인이나 인종간에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의 윤리, 종교 이론도 상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그는 윤리적 선을 쾌락의 유발이나 상승 요소로 이해하고 최고의 선을 공동의 복지로 파악하였다. 종교관도 자연 종교의 입장에 가까웠고, 무엇이 신적 계시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종교의 교의가 아니라 이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는 영국 성공회 성직자로, 후에 주교가 되었는데, 신앙과 함께 경험주의자로서 철학적 신념에도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의 목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철학적 견해 정립과 이를 위해 로크에게 아직 남아 있는 비경험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감각적 사물의 본질은 그것이 지각되는 것일 뿐이다(esse est percipi). 즉 존재하는 것은 감각 또는 이데아와 그 원인인 정신밖에 없으며 하느님이 바로 이들의 원인이다. 따라서 감각 배후의 사물이란 아예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로크가 가정한 물체적 실체를 반대하고 로크의 실체 개념 및 1차적, 2차적 속성의 구별을 공격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인식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감각은 처음부터 오류를 범할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 지식은 확실성을 가지며 인간과 신 존재에 관한 지식 이외의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감각적 지식에서 도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신은 또 피동적으로 단순히 있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수학도 발견의 학문이 아닌 발명의 문제로 보았다.
흄(David Hume, 1711~1776)은 버클리의 주장에서 경험론적 입장에 맞지 않는 비경험적 요소를 배제하여 경험론을 더욱 일관성 있게 만들고자 하였다. 먼저 인식의 재료에 관해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을 구별하고, 전자를 지각 중인 정신의 내용으로, 후자를 상상력의 내용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다시 관념을 감각(sense) 관념과 성찰(reflexion) 관념으로 분류하였다. 흄은 모든 단순 관념은 그에 상응하는 인상의 복사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단지 인상과 관념의 다발(bundle)이며, 인간 오성의 활동은 이러한 내용에 제한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아나 외부 세계의 존재에 관해서도 단순한 믿음 이외에 다른 정당화의 방법은 없다는 주장으로 버클리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또 그의 《인간 오성론》에서 관념의 관계(relation of ideas)와 사실의 문제(matter of fact)를 구분하여, 수학과 같이 전적으로 관념의 관계에만 의존하는 지식은 필연적 진리와 관련을 갖는데, 이것의 부정은 모순을 포함하는 반면 사실의 지식은 단지 관찰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흄에 따르면 한 관념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인과 관계인데, 이것은 논리적 필연성을 가진 진리가 아니고 경험적 사실의 문제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철학의 주된 방법을 실험적 방법으로 불렀고, 인과의 법칙도 우연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습관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의 극단적 경험론은 보편적 자연 법칙의 성립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회의주의로 귀결되었다.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경험론을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켜, 흄이 비경험적으로 제외시켜 두었던 수학적 지식마저도 경험적 인식의 일종으로 파악하였다. 관념의 관계에 기초한 인식의 입지가 없어지고, 수학적인 인식은 고도로 확인된 경험의 일반화에 불과하며, 논리적 및 수학적 필연성은 단순히 심리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심리학에서 철학의 기초를 찾았으며, 가치론에서는 공리주의와 행복을 촉진시키는 것이 선(善)이라는 현세적 행복론을 주장하였다.
현대 경험론 : 18~19세기의 경험론이 영국의 테두리 안에서 발전한 반면 20세기의 경험론은 유럽 대륙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빈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독일 학자들과 폴란드의 논리학자들이 새로운 경험론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프레게(Frege, 1848~1925) , 러셀(Russell, 1872~1970),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 등이 전개한 논리학을 철학적 분석의 도구로 활용하여 영국 경험론자들보다 더 정교한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다. 또 영국 경험론이 주로 인식의 생성(genesis) 내지 재료(material)에 관심을 가졌으나, 현대 경험론은 인식의 경험적 기조(basis)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들의 입장을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또는 논리적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로 부르면서 고전적 영국 경험론과 구별하고 있다. 논리적 경험주의와 논리적 실증주의는 보통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면 전자는 후자보다 더 포괄적이다. 전자는 후자의 현상주의(phenomenal-ism)에 속박되지 않고, 물리주의(physicalism)를 포기하여 심리적인 것도 물리적인 것과 병행하여 독립된 현상으로 인정하는 점에서 다르다.
현대 경험론은 세 가지 중요한 면을 수정하여 경험론적인 입장을 계승하였다. 첫째, 학문적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진술의 기준(의미의 기준)을 설정하여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은 참〔眞〕도 거짓〔僞〕도 아닌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판정하여 학술 논의에서 제외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형이상학이나 신학적 명제를 바로 이와 같은 인식(지)적 의미(cognitive meaning)가 결여된 사이비 인식의 전형으로 보았다. 둘째, 모든 유의미한 명제는 종합적 명제와 분석적 명제로 나누어진다고 보았다(이분법, dichotomy). 분석적 명제는 경험적 검증에서 해방될 수 있는 인식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지식을 보태 주지는 못하며 종합적 명제는 새로운 지식을 보태 주지만 항상 경험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종합적인 성격의 인식에 대해서는 그것이 원칙적으로 직접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로 환원할 수 있어야 한다(환원성)고 보았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물체(physical object)에 관한 진술은 감각 재료(data)에 관한 언어로 의미를 잃지 않고 완전히 대체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영국 경험론의원래 의도는, 모든 인식의 경험적 원 천성의 도구는 위에 제시된 의미 기준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많은 종류의 인식이 이미 논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또 진위(眞僞)를 판별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진술 가운데서도 종합적인 것에만 적용하였다. 이렇게 제한된 경험적 인식에서만 환원성의 원칙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된 요구와 수정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현대 경험론이 새로운 경험론 정립의 첫 단계로 설정한 의미 기준은 학문적 가치가 있는 인식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전통 철학의 많은 문제를 사이비 문제(schein problem)로 돌려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준을 정하는 일 자체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경험에 의한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유의미한 인식의 범위가 너무 좁아진다. 반면, 부정 가능성(falsifiability)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그 범위는 너무 넓어져서 이들이 원래 배제하거나(예 : 형이상학) 수용하고자 한(예: 자연 과학) 인식을 처음 의도대로 구별할 수가 없었다.
콰인(Quine, 1908~ )은 《경험론의 독단》(Two Dogmas of Empiricism)에서 분석 명제와 종합 명제의 이분법도 역시 분명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방법으로서 경험론자들의 독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끝으로 환원성의 원리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카르납(Carnap, 1891~ )을 위시한 여러 경험론자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분명해졌다. 많은 물리학의 기본 개념들은 감각 재료를 표시하는 언어로 환원될 수 없거나, 환원되었을 때 의미의 잉여분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크리프케(Kripke)에 와서는 종래의 선험-필연, 후천-우연 등의 대칭 개념들이 유동적이 되었다. 과인의 《전체론》(Holism)에 와서는 경험과 사실의 부합을 개별적이 아닌 전체 인식의 연결 구조 안에서 고려해야 하는 상대적 조정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평가 및 의의〕 합리주의와 경험론은 다같이 인식의 확실한 출발점을 찾았다. 이런 확실한 인식을 합리주의자들은 경험보다 앞선 사고 능력인 이성에서 찾았고, 경험론자들은 만인이 공유하는 감각 활동에서 찾았다. 합리주의는 인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반면, 사고와 사물의 일치를 설명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느낀다. 경험론은 이와 반대로 인식과 사물의 일치를 잘 설명할 수 있으나 경험적 인식의 개별성, 우연성 때문에 인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 경험론은 인식의 확실성을 경험을 통한 인식의 증명(proof)으로 이해하였고, 개별적 경험을 귀납적 방법으로 일반화함으로써 보편적 인식에 도달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흄에서 보듯이 회의주의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현대 경험론은 인식의 경험성에 관한 요구를 제한하고 또 약화시켜서 경험에 의한 증명이 아닌 경험적 기초와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하고 상대주의로 귀착되었다.
경험론은 생산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중시하고 실험 · 관찰을 강조하여 과학적 친화력이 크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 현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쾌락주의적 도덕관의 형성을 조장하였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친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한 주장으로서 경험론은 현재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이완된 형태의 경험론은 실용주의, 분석 철학, 일상 언어학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아직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현대 문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 실증주의 ; 분석 철학 ; 실용주의 ; 합리주의)
※ 참고문헌 A.J. Ayer, Hume, Oxford, 1980/ A.J. Ayer, R. Winch, (eds.), British Empirical Philosophers, London 1952/ J. Bennett, Locke, Berkeley, Hume. Central Themes, Oxford, 1971/ G. Berkeley, Treatise Conceming the Principles of Humam Knowledge 1 R.B. Braithwaite, An Empirisitc's View of the Nature of Religious Belief, Cambridge, 1955/ R. Carnap, Der Logische Aufban der Welt, Hamburg, 1961/ R. Carnap, Meaning and Necessity, Chicago, 1960/ W.K. Essler, Analytische Philosophie I, Stuttgart, 1972/ H. Feigl, Logical Empiricism, 20th Century Philos., (hrsg.) D.D. Runes, New York, 1943, PP. 371~416/ D. Hume, Enquiry Conceming Human Understanding/F. Kambartel, Erfahrung und Struktur, Frankfurt, 1968/ L. Kriiger, Der Begriffdes Empiricismus, Berlin, 1973/ J. Locke, Essay Conceming Human Undesrtanding/J.S. Mill, System of Logic/ J. Passmore, A Hundred Years ofPhilosohy, Harmondsworth, 1966/ W.V.O. Quine, From a Logical Point of View, Cambridge Mass., 1953/ B. Russell, An Inquiry into Meaing and Truth , 1940/L. Wittgenstein, Schriffen-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Tagebicher,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 Frankfurt M., 1960/ R.S. Woolhouse, Lock' s Philosophy ofScience and Knowledge, Oxford, 1971. 〔尹敬〕
경험론
經驗論
[라]empirismus · [영]empir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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