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본당

三千浦本堂

글자 크기
6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사천시 좌룡동 341-5 소재. 1957년 6월 4일 진주(晋州, 현 옥봉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사천시 전 지역(읍 · 면 제외)과 고성군 하이면 일부 지역. 〔교 세〕 1964년 460명, 1968년 458명, 1976년 541명, 1980년 723명, 1985년 1,253명, 1991년 1,698명, 1996년 1,806명. 〔역대 신부〕 초대 칼마리니(D. Calmarini, 강지홍) 도나토(1957. 6~1963. 10), 임시 라
우리올라(G. Lauriola, 安) 굴리엘모(1963. 10~1964. 5), 2대 안선호(安仙鎬) 베다(1964. 5~11), 3대 나르지(C.Nargi, 南) 가르멜로(1964. 11~1965. 6), 임시 필라(A. Pilla, 진) 안젤리코(1965. 6~1966. 3), 4대 박재근(朴在根) 아우구스티노(1966. 3~12), 5대 임태경(任泰景) 루가(1966. 12~1970. 10), 6대 현기호(玄基浩) 시몬(1970. 10~1971. 11), 7대 제찬석(諸璨錫) 요한(1971. 11~1972. 9), 8대 김종익(金鍾益) 베드로(1972. 9~1973. 5), 9대 김석좌(金錫佐) 베드로(1973. 5~1975. 7) 10대 서원열(徐元烈) 라파엘(1975. 7~1979. 12), 11대 김영식(金煐式) 알로이시오(1979. 12~1983. 1), 12대 정중규(鄭中奎) 클라로(1983. 1~1987. 2), 13대 이제민(李濟民) 에드워드(1987. 2~1989. 7) , 14대 이응석(李應碩) 프란치스코(1989. 7~1992. 8), 15대 이억민(李億敏) 바오로(1992. 8~1994. 8), 16대 박영만(朴永滿) 요한(1994. 8~1998. 1), 17대 김민수(金珉秀) 유스티노(1998. 1~현재).
〔공소 시대와 본당의 설립〕 1940년대까지만 해도 사천 지역에는 신자가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나 한국 전쟁 직후 거주 인구가 급증하면서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게 되자, 진주 본당 주임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 신부는 1954년 3월 선구동 선창가의 판잣집에서 '삼천포 공소' 를 열고 5세대를 모아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삼천포 공소는 이듬해 6월 최학림(안드레아)의 집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김두호 신부는 삼천포가 시로 승격될 무렵인 1956년에 선구동 116번지의 구삼천포읍 사무소와 대지 264평을 매입한 뒤, 이듬해 4월 16일 신축 성당 기공식을 갖고 그 해 6월 55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러자 부산 대목구에서는 6월 4일자로 삼천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킴과 동시에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의 칼마리니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성장과 변모〕 1959년 7월 16일 사제관과 극빈자를 위한 급식소를 완공하고 이듬해 7월 교리실을 신축한 칼마리니 신부는 이 지역의 교세 증가가 예상되자 본당 분할을 계획하고, 남해읍에 1,350평의 대지를 매입한 뒤 1960년 7월 25일 새 성당 공사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28일 성당을 완공함과 동시에 남해(南海) 본당을 분리 · 신설하였다. 그리고 1965년부터 임시로 삼천포 본당 사목을 겸임하게 된 사천(泗川) 본당의 필라 신부는 그 해 5월 선구동의 대지 341평과 가옥 3채를 매입하여 무주택자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한편 1966년 2월 마산교구의 설정과 동시에 삼천포 본당은 새 교구로 편입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5대 주임 임태경 신부의 재임기를 제외하고는 1970년대 초까지 주임 신부가 자주 교체됨으로써 체계적인 사목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본당이 안정을 찾게 된 것은 1975년에 서원열 신부가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뒤였다. 그동안 본당에서는 가톨릭 구제회(N.C.W.C)의 도움을 받아 1972년에 삼천포시 실안동에서 나환우 갱생원을 위한 농로(農路) 공사를 하였으며, 고성군 하이면 정곡리에도 농로를 개설하여 농촌 지역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서원열 신부는 1977년 10월 25일에 기존 성당을 철거하고 이듬해 6월 5일 건평 265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11대 주임 김영식 신부는 1980년 5월 21일에 성모 동산을 조성하였고, 12대 주임 정중규 신부 때인 1983년 12월에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의 분원이 개설되었다. 한편 그 동안 교세가 조금씩 증가해 온데다가 1989년 1월 12일에 남해군 창선면이 본당으로 편입되자 13대 주임 이제민 신부는 그 해 6월 26일 현재의 성당 부지 1,399평을 매입하고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랫동안 미루어지다가 16대 주임 박영만 신부 때인 1995년 11월 26일에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이듬해 8월 6일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현 성당 부지 안의 가건물에서 미사를 봉헌해 오다가 착 공 1년 2개월 만인 1997년 9월 30일에 지상 3층(414평) 규모의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등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가졌다. 현재 본당에서는 성당 건립으로 다소 산만해진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활성화와 전교 활동에도 노력하고 있다. → 마산교구 ; 옥봉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 시보> 184호(1957. 9. 26),4면.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