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 본당

插橋本堂

글자 크기
6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1구 260 소재. 1967년 4월 27일 예산(禮山)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삽교읍 신가리, 두리, 상성리, 효림리, 방아리, 삽교, 평촌리, 용동리. 〔교 세〕 1967년 1,525명, 1970년 1,330명, 1978년 2,135명, 1983년 1,411명, 1988년 998명, 1991년 932명, 1996년 1,094명. 〔역대 신부] 초대 보드뱅(E. Beaudevin, 丁道平) 에밀리오(1967. 4~1972. 2), 2대 플라시에(A. Plassier, 박수범) 아우구스티노(1972. 2~1977. 10), 3대 이설(李卨) 미카엘(1977. 10~1982. 9), 4대 윤종학(尹鍾學) 벨라도(1982. 9~1986. 4), 5대 이한영(李漢永) 마르코(1986. 4~1988. 2), 6대 쿠브뢰르(P.Couvreur, 고광의) 바오로(1988. 2~6), 7대 윤성균(尹誠均) 가브리엘(1988. 6~1996. 2), 8대 이원무(李元武) 베다(1996. 2~현재) .
〔전사 및 공소 시대〕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복음이 전래되었던 삽교와 그 인근 지역에서는 1797년의 정사박해(丁巳迫害)로 인언민(印彥敏, 마르티노)이 순교한 이래 1868년에 방영창(方永昌, 안토니오)이 순교 할 때까지 여러 명의 순교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탄생하였다. 그중에서도 1817년 10월 삽교천 옆의 배나드리 공동체(삽교읍 삽교리)가 박해로 인해 일시에 폐허가 된 것은 아주 유명하다. 이 지역에 다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일제 시대 초기에 합덕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주해 오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1930년대에는 이웃에 있는 응봉면의 주령리(현 응봉
본당 구역)와 주래(삽교읍 용동리 1구)에 신앙 공동체가 이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무렵부터는 삽교 읍내와 용머리(용동리 2구)에도 신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41년에 '주령리 공소' 가 설립되었고 8 · 15 광복 당시에는 '삽교 공소' 가, 1956년 10월 24일에는 '주래 공소' 가 설립되었다.
주래 공소(회장 : 김도흥 리노)에서는 예산 본당의 지원으로 1957년에 강당을 건립했으며, 1960년에는 삽교 공소(회장 : 조성동 야고보) 강당도 건립되었다. 그 후 이 지역의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게 되자 삽교 공소 · 주령리 공소 · 주래 공소의 회장들은 본당 승격에 노력하는 한편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예산 본당의 보드뱅 신부의 도움을 얻어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1965년 3월 19일 기공식을 가진 데 이어 주래 공소 김인식(시몬) 회장의 기금 지원으로 이듬해 4월 5일 90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었으며, 4월 24일에는 봉헌식과 함께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에는 '용머리 공소' 의 강당을 건립하고 사제관과 수녀원 건립 공사도 시작하였다.
〔설립과 변모]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67년 4월 27일 삽교 본당이 설정됨과 동시에 보드뱅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보드뱅 신부는 부임 직후 부인회 · 학생회 · 청년회 등의 단체들을 설립하였고,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하였으며 1968년 10월 1일에는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를 초청하였다. 이어 2대 주임 플라시에 신부 재임기에는 강당이 건립되었고, 1972년에는 예산 본당으로부터 주령리 공소를 이관받는 한편 본당에서 가까운 주래 공소를 폐지하였다. 또 1975년에는 성당 마당을 확장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성모상을 안치했으며, 1979년 10월 1일에는 '덕산 본당' 을 분리함과 동시에 61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이후에도 본당 분할은 계속되어 1985년 7월 26일에는 홍성군 홍북면 산수리(山水里)지역이 홍성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86년 4월 10일에는 주령리 공소가 '응봉 본당' 으로 승격되면서 465명의 교적이 이관되었다.
5대 주임 이한영 신부 때인 1987년 1월에는 용머리 공소가 폐지되었고 그 해 6월에는 '모든 이의 어머니 꾸리아 가 설립되었으며, 6대 주임 쿠브뢰르 신부는 1988년 8월에 분천리 공소를 예산 본당으로 이관하고 1991년에는 기존의 용머리 공소 자리에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 사적지' 를 조성하였다. 인언민은 바로 이곳 출신으로 1797년에 체포되어 청주에서 형벌을 받고 다시 해미로 이송되어 1799년 12월 15일에 장사(杖死)한 순교자이다. 7대 주임 윤성균 신부는 1992년 8월 13일 이곳 사적지에 순교비를 건립하였으며, 1993년 4월 11일에는 기존 강당을 성모 회관으로 증개축하였다. 그리고 8대 주임 이원무 신부는 1996년 4월에 사무 전산화 작업을 완성하였으며, 지역 내에 거주하는 문맹인들을 위해 한글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1997년에는 본당의 역사를 기록한 《삽교 본당 30년사》를 발간하였다. → 대전교구 ; 보드뱅)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 교구 홍보국 편, <대전교구 30년》, 천주교 대전교구, 1988/ 《삽교 본당 3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삽교 본당, 1997.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