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본당

上溪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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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노원구 상계3동 79-7 소재. 1970년 12월 18일 장위동(長位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루가. 관할 구역은 상계3 · 4동 전역과 상계5동, 중계4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1,500명, 1976년 2,529명, 1982년 3,992명, 1988년 11,295명, 1992년 5,182명, 1996년 5,522명. 〔역대 신부〕 초대 멀둔(P. Muldoon, 조) 파트리치오(1970. 12~1974. 5), 2대 도드(M. Dodd, 도) 미카엘(1974. 5~1975. 9), 3대 브래들리(P. Bradly, 고) 바오로(1975. 9~1979.3), 4대 모나간(D. Monaghan, 민) 디오니시오(1979. 3~1981. 2), 5대 티어니(P. Tierney, 지) 베드로(1981.2~1985.2), 6대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1985. 2~1987. 10), 7대 클리어리(T. Cleary, 길) 토마스(1987. 10~1988. 8), 8대 황인국(黃仁國) 마태오(1988. 8~1989. 2), 9대 허근(許槿) 바르톨로메오(1989. 2~1991. 8), 10대 구요비(具要備) 읍(1991. 8~1993. 10), 11대 김현배(金鉉培) 프란치스코(1993. 10~1998. 2), 12대 주평국(朱平國) 베드로(1998. 2~현재).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상계동 일대는 1960년 초부터 도시 재개발 정책에 따라 전농동 지역의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오게 되었다. 이후 이 일대에 거주하던 20여 명의 신자들은 이문동(里門洞) 본당에서 신부를 모셔와 미사를 봉헌하면서 1967년경에는 소 요셉의 도움으로 얻은 시유지 250평에 '상계 공소' 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상계 공소는 이듬해 10월 18일 장위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새 본당 소속이 되었다.
이 무렵 공소 신자들은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으나 공소 부지가 그린벨트에 묶여 공사가 불가능하게 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장위동 본당의 게라티(B. Geraghty, 지) 신부가 본당 분할을 계획하고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을 얻어 1969년 3월 10일 현 성당 부지 400평을 매입하였으며, 이듬해 10월 8일 26평을 추가 매입하여 공사를 시작한 결과 2개월 만인 12월 10일에 46평의 성당을 완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 12월 18일 '상계동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멀둔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성장과 변모〕 멀둔 신부는 부임 후 먼저 신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신자 찾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72년 2월에는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조직하여 빈민 사목에 주력함으로써 1970년대 중반에는 신자수가 2,500명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3대 주임 브래들리 신부는 1977년 7월 30일에 성당 신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4월 9일 120평 규모의 새 성당을 완공하였고, 같은 해 5월 30일에는 옛 성당을 개조하여 성 루가 문화원을 마련하였다. 5대 주임 티어니 신부 때인 1981년 12월 3일에는 공릉동(孔陵洞) 본당이 설립되어 하계동 및 중계동 신자 246명이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982년 5월 19일 상계3동의 건물 15평을 매입하여 수녀원으로 개조한 티어니 신부는 9월 1일에 성심 수녀회를 초청하여 본당의 사목을 돕도록 하였는데, 이 무렵 본당은 철거민 문제로 아픔을 겪게 되었다. 1986년 4월 상계5동 지역의 철거가 공시되고 이 지역의 주민들이 강제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본당에서는 철거민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를 봉헌하는 한편, 같은 해 9월 28일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합동으로 철거민과 구속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사회 각층에 호소하였다. 그러던 중 1988년 8월 22일에 본당이 교구로 이관됨에 따라 8대 주임으로 황인국 신부가 부임하게 되었다. 황인국 신부는 중계동 일대에 대규 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신자수가 1만 명을 넘게 되자 본당 분할을 계획했고, 1989년 2월 4일에는 노원(蘆院)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총 1,776세대 5,074명의 교적이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지역 개발로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자 1990년 8월 22일 중계동(中溪洞) 본당을 분리하고 총 367세대 1,0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으며, 1992년 9월 24일에는 다시 상계2동(上溪二洞) 본당이 분리되면서 총 272세대 696명의 교적이 이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9대 주임 허근 신부는 1989년 10월 25일 '마들골 평화 잔치' 를 개최하여 지역 주민과 기쁨을 나누었고, 10대 주임 구요비 신부는 1992년 4월 23일에 마땅히 공부할 장소가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상계4동 111-170번지에 '마음터' 를 마련하였다. 이어 부임한 11대 주임 김현배 신부는 1994년 6월 본당 사무를 전산화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이듬해 10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였고 1997년 6월 1일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영어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2대 주임 주평국 신부에 의해 숙원사업인 교육관 건립 계획이 수립되어 1998년 5월 2일 지하 2층 지상 5층 정도의 규모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설립 이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 로서 가난한 이웃과 함께해 온 상계동 본당은, 전 신자가 합심하여 교육관 건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아울러 북한 동포 돕기 운동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장위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