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완주군 상관면 신리 616 소재. 1976년 12월 15일 서학동(棲鶴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 관할 구역은 상관면 전역과 전주시 색장동 일부 지역. 〔교 세〕 1977년 864명, 1981년 966명, 1985년 973명, 1989년 994명, 1992년 987명, 1996년 976명. 〔역대 신부〕 초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76. 12~1982.9) , 2대 김정원(金正元) 토마스(1982. 9~1984. 1) , 3대 김영신(金永新) 바오로(1984. 1~1986. 1), 4대 이상섭(李相變) 모이세(1986. 1~1989. 1), 5대 양석현(楊錫顯) 요한(1989. 1~1992. 1), 6대 이수현(李秀賢) 라우렌시오(1992. 1~1993. 2), 7대 한봉섭(韓奉燮) 시몬(1993. 2~1997. 2), 8대 김윤섭(金潤燮) 안셀모(1997.2~현재).
〔전사 및 공소 시대〕 상관면 지역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였다. 박해로 어려움을 겪게 된 강운집이 가족들을 이끌고 완주군 상관면 어두리(漁頭里, 현 상관면 신리)로 피신하여 정착한 뒤 이곳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1880년경에 어두리에 공소가 설정되었고, 그 후 전동(殿洞) 본당의 보두네(Baudounet, 尹沙勿) 신부가 이곳에서 성사를 집전해 주었으며, 1910년에는 상관면 반월리(半月里)와 마치리(馬峙里)에 공소가 설립되면서 복음은 더욱 확대되었다. 한편 어두리 공소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8 · 15 광복을 거치면서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강당 건립이 절실해지게 되자 이를 전동 본당에 건의하였고, 본당에서는 1952년 3월 20일 현 성당 부지 692평과 가옥을 매입하여 이를 강당으로 개조해 줌으로써 마침내 지역 공소가 합쳐진 '상관 공소' 가 설립될 수 있었다.
이후 신자들은 1955년 3월에 강당 인근의 부지 701평을 추가로 매입하였고, 1959년 3월에는 강윤식(姜允植, 베네딕도) 신부의 설계로 신축 강당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8월 22일 새 강당(74평)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상관 공소는 1967년 12월에 서학동 본당이 분리 · 신설됨에 따라 소속이 변경되었는데, 그 후 교통이 불편한데다가 서학동 본당의 교세가 확대됨에 따라 교구에서는 본당 분할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76년 12월 15일에 '상관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이상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성장과 변모〕 본당 공동체는 1977년 1월에 본당 사목회를 구성한 데 이어 그 해 3월에는 중 · 고등부 학생회를 조직하였으며, 본당 내 각종 편의 시설을 차례로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공소 시절에 건립한 성당이 협소하여 불편이 많아지자, 1982년 3월 7일부터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8월 22일 이를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본당에서는 1987년 6월에 가톨릭농민회 상관지회를 창립하였으며, 1988년 8월 15일에는 사제관(39평)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3월 5일에는 본당 레지오 마리애 '동정녀들의 모후' 꾸리아가 발족되었다. 1992년 9월 2일에는 수녀원 건립 공사에 착수하여 그 해 11월 27일에 이를 완공하였으며, 이듬해 2월에는 성모 성심 수녀회 소속 수녀 2명이 본당에 진출하였고, 1998년 4월에는 옛 사제관을 철거한 후 조립식 건물(82평)을 신축하여 본당 회합실로 사용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 《천주교 전주교구 연감》, 전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78/ 《천주교 전주교구사 연구 자료집》 1~2집 . 〔李裕林〕
상관 본당
上關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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