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동 본당

上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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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마산시 합포구 상남2동 255 소재. 1966년 12월 27일에 중앙(中央, 현 남성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상남1 · 2동, 교방동 전 지역과 중성동, 오동동, 산호2동, 회원1동 일부 지역. 〔교 세〕 1966년 1,200명, 1971년 1,785명, 1978년 2,889명, 1984년 3,012명, 1990년 3,534명, 1996년 3,258명. 〔역대 신부] 초대 김덕신(金德信) 요셉(1966. 12~1969. 4), 2대 정삼규(鄭三圭) 요한(1969. 4~1971. 11), 3대 박주선(朴周善) 안토니오(1971. 11~1975. 12), 4대 허정식(許正植) 마태오(1975. 12~1976. 7), 5대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1976. 7~1979.5 6대 김용백(金容白) 요한(1979. 5~1982. 2), 7대 김성길(金成吉) 아우구스티노(1982. 2~1985. 6) , 8대 최동오(崔東五) 아타나시오(1985. 6~1990. 6), 9대 이종창(李鍾昌) 바르톨로메오(1990. 6~1994. 8), 10대 김용민(金鎔珉) 레오나르도(1994. 8~1996. 7), 11대 김을용(金乙龍) 토마스 데 아퀴노(1996. 7~1997. 4), 12대 최용진(崔龍鎮) 이냐시오(1997. 4~8) , 13대 노영환(盧榮煥) 마티아(1997. 8~현재).
1960년대 들어 상남동 지역의 발전 가능성이 엿보이자 앞으로를 위해 본당 분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마산 중앙 본당의 김성도(金成道, 모세) 신부는 1963년 교구장 사목 방문 때 이를 건의하였다. 이때 부산교구장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는 본당 신자들이 묵주 기도 100만 단을 바치면 성당 건립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였고, 1965년 1월 8일에는 교구의 도움으로 현 성당 부지 600여 평을 마련하는 동시에 성당 건립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마산교구 설정 후인 1966년 12월 27일자로 상남동 본당이 설립되어 김덕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김덕신 신부는 우선 중앙 본당과 현 성당 소재지의 창고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1967년 5월 26일에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5월 11일 총 건평 292평 규모의 지상 2층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1일에는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고, 1969년 3월 12일에는 성심유치원(1991년 2월 12일 폐원)을 개원하였다. 이어 2대 주임 정삼규 신부 때인 1971년 11월 9일에는 창원(昌原, 현 중동) 본당을 분리하여 34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고, 3대 주임 박주선 신부 때인 1974년 5월 20일에는 수녀원(23평)을 완공하였으며, 이듬해 12월 8일에는 양덕동(陽 德洞) 본당이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리되면서 650명의 교적을 새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1979년 11월 18일에 회합실과 사제관을 갖춘 40평 규모의 사목 회관을 건립한 6대 주임 김용백 신부는 동마산 지역이 개발되자 이듬해 1월 1일 산호동(山湖洞) 본당에 이어 그 이듬해 1월 26일에는 다시 회원동(檜原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7대 주임 김성길 신부는 신자들의 순교 신심 함양을 돕고자 1982년에 성극과 유물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한편 1985년에는 수녀원(40평)과 사제관(48평)의 개축 및 신축 공사를 실시했고, 1986년과 1990년에는 성당 내부를 새로 단장하였으며, 1991년 6월 28일에는 호계(虎溪) 본당과 석전동(石田洞) 본당이 신설되면서 269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본당의 역사를 담은 《상남 본당 25년》을 발간하였으며, 1994년에는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부임 후 유아실과 사제관을 보수한 13대 주임 노영환 신부는, 1998년부터는 가두 선교 행사를 개최하는 등 친교와 사랑의 본당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마산교구 ; 남성동 본당 ①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上南本堂二十五年》, 천주교 마산 교구 상남동 교회, 199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