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동 본당

鷄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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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동구 계림3동 191 소재. 1964년 8월 15일 북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필립보 네리. 관할 구역은 계림1 · 3동과 2동 일부, 동명2동, 산수1동과 · 2동 일부, 풍향1동, 인암 공소 지역(담양군 남면 인암리). 〔교 세〕 1964년 1,654명, 1974년 2,268명, 1984년 4,094명, 1988년 5,213명, 1993년 4,955명. 〔역대 신부〕 초대 맥로린(John McLaughlin, 최) 요한(1964. 8~1968. 11), 2대 맥폴린(Brendan McPolin, 목) 브렌다노(1968. 11~1969. 1), 3대 휴거(Gregory Hughes, 유) 그레고리오(1969. 1~1969. 5), 4대 맥로린 요한(1969. 5~1970. 4), 5대 김정용(金正容) 안토니오(1970. 4~1971. 10), 6대 김용배(金容培) 안드레아(1971. 10~1972. 4), 7대 나상택(羅相澤) 요한(1972. 4~1976. 11), 8대 조철현(曹喆鉉) 비오(1976. 11~1981. 9), 9대 장흥빈(張洪彬 알로이시오(1981. 9~1985. 6), 10대 서상채(徐相彩) 유스티노(1985. 6~1989. 8), 11대 이성규(李成揆) 라파엘(1989. 8~1991. 2), 12대 김성용(金成鏞) 프란치스코(1991. 2~현재).
〔설립과 성장〕 1950년대 후반부터 광주 지역의 교세가 증가하면서 광주 동북부 지역에 하나의 본당을 설립하여 이 지역을 독립시킬 필요성이 있게 되자, 당시 광주교구장이던 헨리(Harold Henry, 현) 주교는 1959년 10월 1일자로 우선 계림3동에 2,400평의 대지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5년 뒤인 1964년 8월 계림동 본당의 설립을 발표하고, 동시에 맥로린(요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까리따스 수녀회의 김욱석(피데스) 수녀가 부임하여 본당의 사목을 도왔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 신자들로서는 자력으로 성당을 건립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1965년 3월 1일 우선 건평 90평 규모의 임시 성당 기공식을 하고, 8월 15일에는 신축된 임시 성당에서 축성식과 더불어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이후 1968년에 들어 본당에서는 새 성전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6월 1일 192평 규모의 성당 신축을 위한 기공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때 성전 건축비의 80%는 외국 은인들의 도움에 의지하고, 20%는 신자들이 부담하기로 하였다. 이 공사는 제2대 주임인 맥폴린(브렌다노) 신부 재임시까지 이어져 11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되었고, 1969년 5월 26일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이어 본당에서는 1970년 5월 30일 성모상을, 1973년 3월 15일 성 요셉 동고상을, 1978년 3월 1일 종각을 건립하였으며, 제 9대 주임인 장홍빈 신부 재임기인 1981년 11월 1일에는 현대식 건물로 신축된 사제관 · 수녀원 · 유치원 · 사무실을 동시에 축성하였다.
처음 이 지역은 토착 신앙이 뿌리 깊이 박혀 있고,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운 탓에 전교하기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사제를 중심으로 기도하며 일치된 모습으로 전교한 결과 점차 주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게 되었고, 초창기 교우들 모두가 일치의 기도 생활과 열렬한 신심 생활을 하여 어려운 성당 건립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이렇듯 1964년부터 1975년까지 12년 간은 성당 건축과 그 부대 공사의 완공에 노력하는 가운데서 본당 활동의 내실화에 힘쓰고,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사목의 역점이 두어졌다.
본당의 사도직 단체는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설립되어 왔다. 이와 함께 본당에서는 전교우들의 신심 활동을 활성화하고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게 되면서 레지오 마리애 등 많은 신심 단체가 불어나 생동감 있는 신자상을 정립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세의 증가 결과 1970년에는 지산동 본당을, 1972년에는 중흥동 본당을 독립시킴으로써 자본당들을 갖게 되었다. 이후 본당에서는 다시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하여 특히 1981년 이후에는 매년 400~500명의 영세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또 1981년 10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행사, 1983년10월 23일 한국 천주 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광주대교구 신앙 대회 등을 통해 새로운 본당상을 정립하는 데도 노력하였다. (→ 광주대교구)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