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象牙

〔히〕שֶׁנְהָב, שֵׁן · 〔라〕ebur · 〔영〕iv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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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우가리트(왼쪽),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운데) , 브엘세바 근처의 사파디에서 발견된 상아 조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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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우가리트(왼쪽),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운데) , 브엘세바 근처의 사파디에서 발견된 상아 조각물.

코끼리의 엄니를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상아질. 아름답고 내구성이 크며 조각하기에 적합하여 여러 가지 조각품 · 장식품 · 실용품 등을 제작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성서에서의 상아〕 성서에서 상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셴' (שֵׁ)은 본래 '이' [齒]를 뜻하였는데, 주로 자연산 그대로의 상아와 가공된 제품으로서의 상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1열왕 10, 18 ; 에제 27, 15 : 2역대 9, 17). 또 '셴하빔' (שְׁנַהֲבִים)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셴하브' (שֶׁנְהָב)의 복수형으로서 주로 자연산 그대로의 상아를 가리켰다(1열왕 10, 22 ; 2역대 9, 21).
성서 시대에 상아는 주로 조각된 상아 판의 형태로 목재 가구의 가장자리에 부착하여 가구의 미적 감각을 높이거나 화장품을 담는 작은 상자나 화장 도구 · 제의용칼의 손잡이 · 신상 등 매우 다양한 물품들을 조각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에는 코끼리가 살지 않았기 때문에 성서 시대의 상아는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이었고 비싼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솔로몬 왕은 페니키아 뱃사람들이 홍해의 에시욘게벨(Ezion-Geber) 항구에 세운 다르싯(Tarshish) 선박 회사를 통하여 오빌(Ophir)과 3년에 한 차례씩 국제 무역을 행하였는데, 수입 품목 중에는 금 · 은 · 원숭이, 공작새 등과 함께 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1열왕 10, 22).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아합(Ahab) 시대에 '상아 궁' (1열왕 22, 39)으로 불릴 만큼 화려했으며, 사마리아 왕궁의 상아로 장식된 가구와 침대(아모 3, 15 ; 6, 4) 등을 아모스 예언자가 맹렬히 비난할 만큼 당시 상아는 사치품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고대 국가에서의 사용 및 발굴〕 상아는 인도산 · 아프리카산 · 시리아산 코끼리의 것을 재료로 하며 나일 강 하마의 어금니도 자주 사용되었다. 주로 가나안 지역에서는 소위 아시아풍의 코끼리라고 불리는 시리아산 코끼리에게서 얻은 상아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기원전 1000년까지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이 밖에도 주로 아프리카의 코끼리에서 얻어 온 이집트 산 상아와 인도 코끼리에서 얻어 온 고대 근동 지방의 상아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 : 고대 이집트에서 최초로 상아가 사용되었던 시기는 신석기 시대(기원전 8000~4500)로, 이 당시에는 작살을 상아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일 강을 통해 남쪽으로부터 상아를 수입하였던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상아를 깎아서 인물상을 조각하고 은으로 된 칼의 손잡이를 만드는 등 상아 조각술이 발달하였다. 기원전 3100년경 최초의 파라오로 여겨지는 나르메르(Narmer)의 이름이 새겨진 상아 통도장(cylinder seal)이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나르메르가 여러 명의 포로들의 머리채를 왼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에 든 곤봉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 그림은 이후 수천 년 동안 파라오들의 대표적인 승전(勝戰)의 소재로 벽화나 조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메소포타미아 : 기원전 18세기에 건립된 시리아 북부 알랄락크(Alalakh)의 얌릴림(Yamrilim) 왕 궁전에서 상아가 가득 들어 있는 저장실이 발견됨으로써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상아가 사용되었음이 증명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 부터 상아 조각이 신상이나 장식용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우르(Ur) 제3 왕조 시대(기원전2112~2004)의 한 기록에는 150kg 정도의 상아가 수입되었다고 언급되어있는데 이는 아마도 인도산 코끼리의 상아를 페르시아만을 통하여 들여온 것으로 짐작된다. 시리아의 우가리트(Ugarit)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1550~1200)의 대표적인 상아 조각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지역 : 이스라엘 지역에서 상아는 중석기 시대(기원전 12000~8000)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후 동석기시대(기원전 4500~3000)부터는 장식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후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기원전 1200~586) , 그리고 로마-비잔틴 시대(기원전 63~서기 640)에 주로 많이 제작되었다. 이스라엘 남부 브엘세바(Beer-Sheba) 근처의 아부 마타르(Abu Matar)와 사파디(Safadi)의 유적지에서 제작 연대가 기원전 3600~3000년 사이로 추정되는 남녀 인물상을 비롯한 여러 개의 상아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함께 나온 상아 기둥과 송곳 등을 통하여 이곳에 상아 가공소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스라엘에서는 철기 시대의 상아 조각들이 자주 발견되며, 므기또(Megiddo)의 발굴에서는 기원전 12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제Ⅶa 주거층에서 382점의 상아 장식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각각 이집트, 에게 해, 아시리아, 히타이트 등의 예술 양식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어서 이를 통하여 당시 므기또가 국제적인 도시였음을 잘 알 수 있다. 므기또의 상아 보물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근동 지방의 유물 중에서는 가장 풍부한 작품들이며, 이 도시가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유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사마리아에서도 1930년대의 발굴을 통하여 아합 왕궁의 한 방에서 수백 점의 상아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이집트, 시리아, 특히 페니키아의 영향을 받은 사마리아의 상아 조각들은 이집트의 왕권을 상징하는 신(神) 호루스(Horus), 신화적 동물인 케루빔, 소를 물어뜯고 있는 사자, 창문 속의 여인, 데이지 꽃 등의 주제로 장식되어 있다. 상아를 조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아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단단한 껍데기를 벗겨 내고 칼로 깎거나 활을 이용한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원하는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지금까지 고고학적 발굴에서 드러난 조각에 필요한 도구나 조각되기 이전의 상태로 발견된 상아 기둥 등을 통하여 상아 조각의 작업장들이 이스라엘의 브엘세바, 시리아의 알랄락크와 우가리트, 그리고 아시리아의 샤가르 바자르(Chagar Bazar) 등에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 참고문헌  R.D. Barnett, Ancient Ivories in the Middle East. Qedem 14, Jerusalem, Institute of Archaeology, Hebrew Univ., 1982/ H. Kantor, Syro~Palestinian Ivories, Journal ofNear Eastern Studies 15, 1956, pp. 153~174/ H.A. Liebowitz, Late Bronze I Ivory Work in Palestine : Evidence of a Cultural Highpoint, 《BASOR》 265, 1987, pp. 3~241 一, 《ABD》 3, pp. 584~5871 J. Perrot, Statuettes en Ivoire et autres objets en ivoire et en OS provenant des quiesments prehistoriques de la région de Béersheba, Syria 36, 1959, pp. 8~19/ G.A. Reisner et al., Harvard Excava-tions at Samaria,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24/ M. Tadmor, Two Chalcolithic Ivory Figurines : Technique and Iconography, Eretz-Israel 18, 1985, pp. 428~434/ I. Winter, Is There a South Syrian Style of Ivory Carving in the Early First Millennium B.C.?, Iraq 43, PP. 101~130/ Ze'ev Yeivin, 《EJ》 9, pp. 1154~1155. 〔金 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