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상제관] 은(殷)나라 : 은나라에서 상제란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점쳐 물었던[問卜] 대상, 즉 하늘의 최고신을 가리켰다. 이러한 제(帝) 또는 상제(上帝)는 갑골 복사(甲骨 卜辭)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갑신에 제가 비를 내리게 하였다"(甲辰帝其命雨)고 함으로써 상제는 바람 · 비 · 한 해의 풍년과 흉년 · 정벌의 성공과 실패 · 길흉화복 · 성읍(城邑)의 건축 등 인간사를 모두 주관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함께 《서경》(書經), 《시경》(詩經) 등 역사적 기록에도 '상제' 가 '천' (天)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의 '상제' 와 '천' 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를들어 《서경》의 <순전>(舜典)에는 "드디어 상제께 유(類) 제사를 올렸다”(肆類于上帝)라고 하여 제위에 오른 순(舜)이 상제에게 제사를 바쳐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하였음을 보여 준다. 또 〈탕서〉(湯誓)에는 "하(夏) 왕이 죄가 많으므로 하늘이 명(命)하여 그를 벌주게 하는 것이다. ··· 하나라가 죄가 있으니, 나는 상제를 두려워하여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有夏多罪 天命殛之…夏氏有罪 予畏上帝 不敢不正)라고 하여 상제가 통치를 잘못한 지상의 군주에게 벌을 내리는 두려운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周)나라 : 주대 종주종(宗周種)의 명문(銘文)에는 높으신 신(神)을 황상제(皇上帝) 또는 황천(皇天)이라 일컬어 "오직 황상제와 백신이 우리 어린 아들을 보호하신다. 짐은 여전히 성공과 멸망의 겨룸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오직 황천을 맡아 짝할 뿐이다"(···唯皇上帝百神保)余小子 朕猷有成亡競 我唯司配皇天···· 하여 주나라에서도 '상제' 와 '천' 이 최고의 신으로 나라를 멸망시키거나 흥성하게 하는 주재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 《서경》의 <대고>(大誥)에는 "나 소자는 감히 상제의 명을 폐지할 수 없다. 천이 영왕(寧王)을 아름답게 여기시어 우리 작은 주나라를 일으켰을 적에 영왕이 점을 쳐 하늘의 명을 편안히 받았다"(予惟小子 不敢替上帝命 天休于肆王 興我小邦周 掌王惟卜用 克綏受茲命)라고 하였고, 〈강고〉(康誥)에도 "우리 서쪽 나라가 (문왕의 덕에) 의지하여 번성하니, 이 사실이 상제에까지 들리었고 제(帝)가 아름답게 여기었다. 천(天)이 이에 문왕에게 크게 명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게 하였으니, (문왕이) 그 명을 크게 받았다"(我西土惟時怙 昌開于上帝 天乃大命文王 殪戎殷 誕受厥命)라고 하여 '상제' 와 '천' 의 명에 의하여 문왕이 은나라를 멸망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 <주고>(酒誥), <소고>(召誥), <낙고>(洛誥), <다사〉(多士), <입정>(立政), 〈고명〉(顧命), <군석>(君奭) , <다방>(多方) 등에서도 '상제' 와 '천' 이 최고신으로서 통치자를 감시한다고 생각하였다.
《시경》에는 "얼마나 밝았던가 성왕과 강왕! 상제가 아름답게 보시었으니 ·내리는 그 복은 한량없고 지극히 크고도 크도다" 不顯成康 上帝是皇…降福穰穰 降福簡簡, 周頌 執競〉)라고 하여 상제가 두 왕의 덕을 아름답게 보고 한없는 복을 내린다고 생각하였다. <대아 · 문왕>(大雅 · 文王)에는 문왕의 덕을 기리어 "문왕은 위에 계시어, 아! 하늘에서 빛나도다.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천명은 오직 새롭다. 찬란하여라 주 왕실이여, 상제의 명〔帝命〕은 때에 맞게 이르렀도다. 문왕의 혼령은 (하늘을) 오르내려 상제의 곁〔左右〕에 언제나 계시도다" (文王在上 於昭于天 周雖舊邦 其命維新 有周不顯帝命不時 文王陟降 在帝左右)라고 하였다. 이것은 상제가 덕이 있는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지키게 하고 문왕은 오르내리며 상제 곁에서 주나라 후손을 돌본다는 말이다. 그 밖에 <생민>(生民)에서는 "상제가 제사 음식을 기꺼이 흠향한다" (上帝居歆)고 생각하였고, <판>(板)에서는 "상제가 무심하게 관심을 돌려 백성이 병들게 되었다“ (上帝帝板板 下民卒癉)라고 하여 상제가 왕의 실정을 외면하여 백성이 고통에 빠지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그 리고 <운한>(雲漢)에서는 제사와 제물을 다 바쳤는데도 "상제가 강림하지 않는다" (上帝不臨)고 한탄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이 맹위를 떨쳐도 "상제께서는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昊天上帝 則不我虞)고 원망하고 있다. 즉 상제는 가뭄 등 자연 현상까지 주재하여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춘추 전국(春秋戰國) 시대 : 이때에도 '천' 과 '상제'에 대한 신앙은 계속 보존되었다. 즉 유가(儒家) 사상을 대표하는 《논어》(論語)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獲罪於天 無所禱也, <八佾>)고 하였고, 안연(顔淵)이 죽자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天喪子! 天喪子, 〈先進〉)고 하여 인격적인 주재자로서의 '천' 을 언급하였다. 맹자(孟子)는 《맹자》에서 '천' 에 대한 인격적인 면과 동시에 운명적 · 의리적(義理
的)인 면을 언급하였고, '상제' 에 대해서는 《서경》을 인용하여 "하늘이 이 백성을 내리시어 임금을 만들고 스승을 만든 것은 오직 상제를 도와 사방에 은총을 베풀게 하려는 것이다" (書曰 天降下民 作之君 作之師 惟曰其助上帝 寵之四方, <梁惠王下>)라고 하여 상제는 임금과 스승을 통하여 은혜를 사방에 베푸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또 맹자는 《시경》을 인용하여 "상(商)나라 자손이 아무리 많아도 상제께서 이미 명령하셨기 때문에 주나라에 복종 하고 은나라 선비들이 주나라의 제사를 돕는다" (詩云 商之孫子 其麗不億 上帝旣命 侯于周服…殷士膚敏 祼將于京, <離婁上>)고 하여 상제가 어진 정치〔仁政〕를 행한 주나라를 돕도록 은나라 백성과 신하에게 명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상의 것은 《서경》과 《시경》을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상제에 대한 사상을 언급한 것이지만, 이외에 맹자는 직접 "비록 악인이라 하더라도 목욕 재계를 하면 상제께 제사지낼 수 있다" (雖有惡人 齋戒沐 浴 則可以祀上帝, <離婁下>)고 하여 상제를 신앙의 대상으로 파악하였다.
유가와 달리 《묵자》(墨子)에는 '천' 과 더불어 '상제'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묵자가 말하는 '천' 은 주재적이며 인격적인 의지의 천, 즉 천지(天志)가 그의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에 상제에 대한 언급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묵자는 《서경》을 인용하여 "탕왕이 천하를 차지한 천자의 귀한 몸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상제와 귀신에게 제사지내 기쁘게 하였다" (比言湯貴爲天子 富有天下 然且不憚以身爲犧牲 以祠說于上帝鬼神, 〈兼愛下〉) 고 하여 상제를 제사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또 성대한 장례와 3년상은 상제와 귀신으로부터 복(福)을 얻을 수 없고 벌을 받게 된다고 하여 상제를 상벌을 내리는 인격적 의미의 하느님으로 인식하였다. 한편 도가(道家)에서는 '천' 을 인격적 요소가 전혀 없는 '자연' 혹은 '자연의 법칙' 으로 이해하였으며, 대신 '도' (道)가 천지 만물을 생(生)하는 근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진한(秦漢) 시대 : 이때에는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 등에 '상제' 라는 용어가 약간 보이나 대체로 한대에는 음양 오행(陰陽五行) 사상과 연관된 기(氣) 철학이 우주론을 형성하였다. 즉 '천' 의 의미가 신령(神靈)의 천, 도덕의 천, 자연의 천으로 나뉘어지면서도 통합된 의미를 갖는 동중서(董仲舒)의 '천 사상' 이 이 시대의 특징이었다. 여기서 상제는 사라지고 인격적이면서도 자연적인 천이 '기' 의 운행을 통하여 인간과서로 감응한다고 생각하였다.
송명(宋明) 시대 : 이때에 와서는 '천' 이 천리(天理)로 이해되면서 인격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태극이 만유의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원리라고 인식되었다. 주자학에서 태극은 만물을 낳는 근본으로서 형이상(形而上)에 속하고 음양 오행인 '기' 는 만물을 낳는 도구(具)로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며, 만물은 이(理)와 기가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주자(朱子)는 인간 본성의 참마음은 천리가 부여한 것이라고 하여 '상제' 의 인격성을 부정하였다. 한편 명대 왕양명(王陽明)은 주자의 이본론(理本論)을 부정하고 양지(良知)를 천리라 하여 '심외무리' (心外無理)의 심본론(心本論)을 주장하였고, '이' 는 '기' 의 운동 과정에서 생긴 조리(條理)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가톨릭의 중국 전파와 상제〕 16세기 말부터 중국 선교에 임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는 중국인에게 그리스도교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문화적 적응주의를 선교 방침으로 채택하였다. 즉 그는 천주교 교리가 결코 유교적 세계관이나 윤리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적인 관념을 더욱 완전하게 보완해 준다는 보유론(補儒論)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리치는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주자학의 태극론을 비판하고, 인격적이며 주재적인 의미의 '천' 과 '상제' 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천주' 라고 《시경》과 《서경》 등 여러 고전을 인용하여 주장하였다. 그는 태극 또는 '이' 가 그 자체로 독립 된 실체(自立者)가 아니라 다른 것에 의존해서만 존재하는 속성(依賴者)에 불과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를 조리로 보는 양명학과 일맥 상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리치의 입장에 대해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치스코 수도회 선교사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천주'만을 사용할 수 있고 '천' 이나 '상제' 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의례 논쟁(儀禮論爭)의 한 쟁점이 되어 100년 동안 끌어 오다가 1715년 교황 글레멘스 11세의 칙서 <엑스 일라 디에>(Ex illa die)와 1742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의 칙서 <엑스 구오 싱굴라리>
이와 달리 서학을 신봉하던 학자들은 리치의 상제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중 이벽(李檗)은 《성교요지》(聖敎要旨)에서 "아직 백성이 생기기 전에 상제가 계셨으며 유일한 참된 신〔眞神〕이다. 어떤 거룩한 능력도 이와 비할 수 없다. 엿새 동안 힘들여 지어 먼저 천지를 열어 놓았고 만물이 많이 있었다" (未生民來 前有上帝 唯一真神無聖能比 六日 力作 先闢天地 萬物多焉)고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면서 당시 유학자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천주' 보 다는 '상제'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정하상(丁夏祥)도 <상재상서>(上宰相書)에서 옛 성현들도 만물을 주재하는 '상제' 와 '천' 을 섬겼다고 하면서 '상제' 와 '천주' 가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편 정약용(丁若鏞)은 유교 경전에서의 상제는 만유의 근원이요 신령한 지혜를 갖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절대자인 반면에, 성리학의 태극과 '이' 는 만유의 근원 및 주재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자학의 천리(天理)를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천을 푸른 창공을 가리키는 유형(有形)의 천과 밝은 이성(靈明)을 가지고 만물을 주재하는 천으로 나누면서, 후자를 '상제' 라고 하였다. 또 그는 상제가 밝은 이성(靈明)을 가지고 인간들을 굽어보므로, 인간은 상제를 대함에 있어 삼가고 두려워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진실되게해야 한다고 하였고, 상제 섬김을 통해 인(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어 "두렵고 삼가는 마음으로 상제를 섬긴다면 인을 행할 수 있지만, 헛되이 태극을 높이고 '이' 를 '천' 이라 생각하면 인을 행할 수 없고, '천' 만 섬기는 데에 돌아갈 뿐이다" (恐懼戒愼 昭事上帝 則可以爲仁 虛尊太極 以理爲天 則不可以爲仁 歸事天而已, 《自撰墓銘》라고 하여 상제와 천을 종교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狩野直喜, 吳二煥 역, 《中國哲學史》, 을유문화사, 1986/ 李元淳, 〈朝鮮後期 實學者의 西敎意識〉, 《韓國天主教會史研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崔東熙, 《西學에 대한 韓國實學의 反應》,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鄭仁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