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 불교

上座佛教

〔팔〕Theravada · 〔산〕Sthavirav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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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 불교는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하나의 불교 문화권을 형성해 온 종교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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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 불교는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하나의 불교 문화권을 형성해 온 종교 전통이다.

석가모니가 입적(入寂)한 후에 그의 교설에 대한 이해와 전승을 둘러싸고 전개된 18부파(nikaya) 불교 중의 하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부파(部派)이며, 대승(Mahāyāna) 불교의 관점에서는 소승(Hīnayāna) 불교에 속하는 학파 혹은 종파이다.
〔개 념〕 '상좌' (thera)란 장로(長老)라는 뜻이므로, '상좌 불교 는 부처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수하는 권위 있는 장로들의 전통 혹은 교설(vāda)에 충실한 불교를 의미한다. 상좌 불교는 팔리(Pali)어로 쓰여진 경(經, sutta), 율(律, vinaya), 논(論, abhidhamma)의 삼장(三藏, tipitaka)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고 완벽하게 전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부처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실천하는 출가승들의 집단이 아니라 근 2,000년에 걸쳐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하나의 불교 문화권을 형성해 온 종교 전통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상좌 불교는 동남 아시아의 사회 · 문화 · 정치 · 경제 · 윤리 · 사상 · 민속 등 삶 전체에 영향을 끼쳐온 불교 전통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불교가 그러하듯 상좌 불교도 불(佛, Buddha) · 법(法, Dharma) · 승(僧, Sangha)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삼신설(三身說, trikaya)과 같은 초월적 부처론을 전개하고 있는 대승 불교와는 달리 역사적 존재로서의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가(僧伽)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성(聖)과 속(俗), 출세간(出世間)과 세간(世間), 출가자(出家者)와 재가자(在家者)의 구별이 뚜렷하다. 상좌 불교의 전통이 강한 나라의 승가는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왕과 백성들로부터 숭앙을 받아 왔으며 양자 사이에서 매개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립과 전파〕 석가모니의 입멸(入滅) 후 100여 년이 지나면서 승가는 석가모니의 법(法)과 율(律)에 대한 해석과 전승의 차이로 분열하게 되었는데, 이 중 최초의 공식적인 분열은 계율의 준수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태도를 주장하는 대중부(大衆部, Mahāsāṃghika)와 엄격하고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로 나뉜 것(根本. 分裂)이 그것이다. 그 후 승가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되어 대중부와 상좌부를 중심으로 대중부 계통은 6부, 상좌부 계통은 12부로 분열하여 모두 18개의 부파가 생겨나게 되었다(枝末分裂) . 이러한 상황에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Asoka) 왕은 부파간의 이견을 해결하기 위해 상좌 불교의 고승 목갈리푸타티사(Moggaliputtatissa)의 주재하에 당시의 승려들을 모두 모은 다음 상좌 불교의 교설을 정통설로 확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아소카 왕이 통치하던 기원전 3세기경에는 상좌 불교가 인도에서 다른 종파들과 더불어 하나의 종파로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성립된 상좌 불교는 인도의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등 동남 아시아 지역에까지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이의 전파에는 아소카 왕의 힘이 컸는데, 특히 아소카의 아들이자 비구승인 마힌다(Mahinda)는 스리랑카의 데바남피야티사(Devānampiyatissa) 왕을 개종시킴으로써 스리랑카에 확고한 상좌 불교의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아소카의 딸이자 비구니인 상가미타(Sanghamittā)도 스리랑카에 와서 비구니 승가를 세웠다고 한다. 이때 데 바남피야티사 왕은 스리랑카 불교의 보루인 마하비하라(Mahavihara, 大寺)를 창건하였고, 두타가마니(Dutha-gamani) 왕은 북부 스리랑카에 자리잡고 있던 인도인들을 몰아내고 마하비하라의 경내에 부처의 사리를 모신 대탑(大塔, Mahathupa)을 세움으로써 불교와 왕권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국가 종교로서 불교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그러면서 스리랑카는 인도를 대신해 상좌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기원전 29~17년 사이에는 스리랑카의 승려들이 구전으로만 전수되어 오던 부처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하였고, 5세기경에 스리랑카로 건너온 북인도 출신의 붓다고사(Buddhaghosa, 佛音)는 마하비하라에 머무르면서 스리랑카어로 전수되어 오던 팔리어 삼장의 주석을 팔리어로 번역하여 상좌 불교 경전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붓다고사는 상좌 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청정도론》(清淨道論, Visuddhimagga)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상좌 불교 연구의 필독서이다. 아울러 아브하야기리(Abhaygiri, 無畏寺) 사원 출신인 한 승려의 저작으로 알려진 《해탈도론》(解脫道論, Vimuttimagga)도 권위 있는 상좌 불교 논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상좌 불교가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11세기 이후부터이다. 스리랑카의 경우, 상좌 불교는 11세기 초 남인도 촐라(Cōḷa)족의 침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가 11세기 후반에 다시 회복되었고, 12세기에는 파라크라마바후(Parākramabāhu) 1세에 의해 승가의 개혁과 재편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미얀마에서도 아니루다(Aniruddha) 왕에 의해 승가의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상좌 불교가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고, 담마체티(Dhammaceti) 왕은 15세기에 18명의 비구들을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다시 수계(受戒)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귀국한 후에는 미얀마에 스리랑카 상좌 불교의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외에 크메르-캄보디아에는 13세기 후반에, 타이에는 13세기부터, 라오스에는 14세기부터 상좌 불교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남 아시아 전 지역은 16세기 초에 스리랑카 상좌 불교의 전통이 확고히 수립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의 미〕 동남 아시아 국가에서 상좌 불교는 하나의 민족적 전통이며 거의 국교와 같은 지위를 누려 왔다. 왕은 전통적으로 승가를 정화하고 보호하는 책무를 지녔으며, 승가는 나라의 정신적 · 도덕적 지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종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또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민족 정신의 구심점 역할도 하였다. 특히 스리랑카 불교에 이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데, 이것은 스리랑카가 오랫동안 포르투갈 · 네덜란드 ·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반(反)서유럽 · 반그리스도교적 민족주의 운동의 구심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 아래에서 상좌 불교는 사상 · 학문 · 교육 · 건축 · 공예 · 의학 · 민속 등 동남 아시아인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리하여 사찰들은 근대식 교육이 자리잡기 전까지 전통적인 교육의 장이었고 의료 기관이었으며, 마을의 어른이나 유지들은 대개 절에서 문자와 산술 등 기초 교육을 익혔다. 오늘날에도 스리랑카를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재가 신자들이 출가하여 사찰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성과 속, 출가와 재가의 거리를 좁혀왔는데, 이것은 불교의 공덕(功德) 사상에 기초하여 출가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에게도 큰 공덕을 쌓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재가자들의 불교는 수행을 통해서 열반(涅槃, nibbāna)을 추구하는 출가승들과는 달리 주로 공덕 신앙에 근거한 현세 구복적 성격이 강하다. 그들은 승가에 대한 보시(布施, dana)를 통하여 현세에서 선업을 쌓아 내세의 행복을 도모하는 세간적 불교 · 도덕적 불교를 지향한다. 또한 재가자들은 각종 토착적인 혼령 신앙(spirit cult)에도 깊이 관여하여 점술이나 축귀(逐鬼) 의례와 같은 민간 신앙도 많이 따르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재가자들의 불교는 다분히 토착 신앙과 습합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러나 출세간을 지향하는 대다수 출가승들은 여전히 부처의 교설에 충실하며, 지난 2,500
여 년 동안 전수되어 오고 있는 계율과 수행 전통을 큰 변화 없이 따르고 있다. (⇦ 부파 불교 ; 소승 불교 ; → 대승 불교 ; 불교)
※ 참고문헌  吉熙星, 《印度哲學史》, 민음사, 1984. 〔吉熙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