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象徵

[라]symbolum · [영]sym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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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대한 민국의 상징이면서 애국심이나 충성심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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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대한 민국의 상징이면서 애국심이나 충성심을 갖게 한다.

인간 · 사물 · 집단 등의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게 나타내거나 표시하도록 만든 의사 전달의 한 요소. 상징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의 법률적인 관행에서 생겨난 말인데, 어원학적으로는 '함께 두다' 혹은 '함께 던지다 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쉰발레인' (συνβαλλειν)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계약에서는 대리인 · 전령 · 계약 당사자 등의 신원의 진위(眞僞)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누어진 두 조각의 물건을 맞추어 보거나 대조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부절(符節)이나 인식표(認識票)를 '상징' 이라고 불렀다. 즉 계약 내용이 적힌 돌이나 종이를 둘로 나누어 그 계약이 끝난 후 확인해 보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때 반쪽의 종이나 돌만 가지고는 계약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고 두 개의 반쪽을 붙여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상징이 가리키는 지시 대상의 다의성 · 불투명성 · 애매성 · 불명료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보통 예술이나 종교 등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며, 과학 언어에서는 기호(記號, sign)라는 용어가 더 선호된다. 상징이라는 말은 협약 · 계약 · 표지 (標識)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앙 고백의 표현인 신경을 '심볼룸' (symbolu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신경이 그리스도교 근본 진리들의 요약으로서 '함께 모아진' 교의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I . 종교학에서의 상징
〔정 의〕 현대에 들어서 상징 개념은 종교학 · 심리학 · 예술 · 문학 · 언어 · 법률 · 과학 · 논리학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널리 연구되고 사용되고 있다. 상징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감관적(感官的)인 사물이나 행위를 말하는데, 그런 사물이나 행위가 감관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미들을 열거시켜 주고 구체화시켜 주며 또 의미를 표현해 주고 현현시켜 주는 모든 현상들을 보편적인 상징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상징의 이러한 보편적 개념에는 네 가지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상징인 감관적 사물이나 행위는 물리적 차원에서는 단순히 감관적 실재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인간적 차원에서는 의미들을 담고 있는 상징들이다. 셋째, 상징들과 의미들 사이의 관계는 인간에 의해 지각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관계는 그 의미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인간 주체에 의해 보존된다.
상징은 일반적으로 그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인과적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면서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연기는 불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연기는 불의 인과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징과 의미 사이의 유사성의 관계에 있어 어떤 상징들은 상징들을 통하여 표현되는 그 실재(의미)와 완전히 다른 것도 있지만(예 : 국가와 민족 정신), 표현하는 실재(의미)와 어떤 유사한 자연적 관계성을 지니고 있는 상징들도 많다(예 : 물과 세례성사). 하지만 무엇을 상징하는 것, 즉 상징물 자체는 명료하게 지각 가능하다. 다시 말해 돌이나 나무와 같은 어떤 구체적이고 특정한 것이 통상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어떤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종교학자 콤스톡(W.R. Comstock)은 상징의 종류를 음성 상징, 언어로 표현된 신화, 언어로 표현된 신앙, 의례, 색, 상징물(예 : 십자가, 만다라, 卍 등), 자연물, 건축물 등 8가지로 구분하였다.
〔상징과 기호〕 상징은 넓은 의미에서 기호의 일종이다. 기호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무엇인가를 지시하는데, 여기에는 상징 외에도 신호(signal), 표지(token), 인덱스(index), 아이콘(icon)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틸리히(P.Tillich, 1886~1965)에 의하면, 상징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호와 구별된다고 하였다. 가령 적(赤)신호는 다만 멈추라는 행동을 지시할 뿐이지만, 태극기는 대한 민국의 상징이면서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이나 충성과 같은 특정한 태도를 갖게함으로써 태극기가 지시하는 것에 참여하게 한다. 랑어(Susanne K. Langer, 1895~1985)에 의하면, 이런 상징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그래서 카시러(E.Cassirer, 1874~1945)는 인간을 상징적 존재(homo symbolicus)로 규정하면서 상징 작용이 모든 사회적 의사 소통의 근거라고 보았다. 인간은 여타 동물과는 달리 상징을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처럼 인간이 상징을 구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라면, 인간 연구에 있어 상징 연구는 불가결한 것이 된다. 한편 피어스(C.S. Pierce,1839~1914)는 상징과 인덱스, 아이콘을 구별하였다. 여기서 상징은 집단적으로 동의된 의미를 지닌 양식화되고 관습화된 기호를 가리킨다. 인덱스는 지시 대상과 역동적 관계를 가지면서 그 지시 대상을 환기시키는 기호로서, 예컨대 기온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건강 상태나 질병 상태를 가리키는 온도계의 수은주를 들 수 있다. 끝으로 아이콘은 지시 대상에 관련된 어떤 특질을 내포하는 기호로서 가령 지도라든가 도표가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부처상은 아이콘, 부처의 유품은 인덱스, 부처라는 말 자체는 상징이라고 세분될 수 있다. 하지만 피어스는 모든 기호가 어떤 적절한 조건하에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어떤 기호를 상징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특정 대상이나 현상 속에 내재된 특질이 아니라 특정한 주관적 태도 곧 상징화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호를 상징으로 만든 조건이 사라지게 되면 그 상징적 기능도 상실된다.
〔연구의 흐름〕 상징의 출현이나 그에 대한 관심의 역사를 추적하자면 인류의 여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 사상사에서 상징에 대한 담론이 하나의 이론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낭만주의 사조에서부터였다.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이 낭만주의 사조에서 상징이 주된 관심으로 부상하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상징을 둘러싼 분위기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심미적이며,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징 자체의 논리나 문법이 부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상징은 명백히 개인이 아닌 집단 혹은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 인류학은 경험적 방법론을 통하여 낭만주의적 상징 연구의 한계를 지양하면서, 특히 상징이 발생하는 문화적 전통과 맥락을 강조하였다. 가령 말리노프스키(B.Malinowski, 1884~1942), 터너(V. Turner, 1920~1983), 더글라스(Mary Douglas, 1921~ ) 등은 기능과 역할 혹은 사회 구조의 관점에서 특정한 민족 지학적 맥락과 관련된 상징 이해에 주목했다. 또한 레비 스트로스(C. Lévi Strauss, 1908~1991)는 이원 대립항의 유형화를 시도하면서 각 상징의 구체적인 의미를 묻는 대신, 상징을 만드는 정신의 심층 구조에 관심을 모았다. 그에 따르면, 상징의 구조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말해 준다. 심리학이나 사회학 전통에서 보여 준 상징 이해 역시 기본적으로는 경험적 방법론에 입각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상징 형성에 작용하는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컨대 프로이트(S. Freud, 1856~1939)는 꿈의 상징을 신경증적인 것 즉 억압된 것의 징후로 보았다. 이에 비해 융(C.G. Jung, 1875~1961)은 집단적 무의식에서 상징이 생겨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자기 실현과 개성화를 위한 정신적 투쟁의 표출로 보았다. 한편 사회학에서는 상징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역할 및 그 결과에 주목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상징을 사회나 집단의 투사 로 규정한 뒤르켐(E. Durkheim, 1858~1917)의 상징 이해를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종교학에서의 상징 연구는 상징 그 자체의 문법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직결되어 있다. 가령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에게 있어 종교 현상에 대한 연구는 곧바로 종교 상징에 대한 해석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학은 일종의 상징 해석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리쾨르(P. Ricoeur, 1913~ )에 의하면 상징은 무엇을 드러내기도 하고(truth-proclaiming dimension) 무엇을 감추기도 한다(symptom-hiding dimension). 이때 전자의 차원에서 해석이란 곧 상징의 정화 및 나아가 해석자의 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컨대 상징 해석은 해석자 자신을 변화시키는 측면을 지닌다. 비성화(非聖化)된 현대 세계에서 인간의 변형을 통한 새로운 문화 창조 곧 새로운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종교학의 전망은 바로 이 지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종교 상징의 기능〕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카시러 등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의미 해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기본적으로 상징을 기호의 일종이 아닌 어디까지나 기호와 구별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즉 기호는 하나의 단일한 의미를 언급할 뿐이지만 상징은 다각적 · 다의적이다. 다시 말해 상징은 복수의 의미에 대해 열려 있으면서 의미의 잉여를 내포하는 말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기호는 단순히 작용할 뿐이지만 상징은 살아 있으며 재해석된다. 또한 무엇보다도 기호와는 달리 상징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종교적 존재(homo religiosus)로서의 인간은 그의 행동 전체가 상징 작용을 포함하고 있다. 곧 상징은 인간의 특별한 인식 양태로서, 성스러운 것이 스스로 성(聖)을 드러내는 방식과 관여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든 것은 상징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모든 상징은 성을 드러내는 것 곧 성현(聖顯, hierophany)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 상징의 기능으로 다음 여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상징은 직접적인 경험의 차원에서는 분명하지 않은 실재의 양식이나 세계의 구조를 드러낸다. 가령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신목(神木)은 하나의 중심을 상징하는데, 이와 같은 우주목은 세계가 살아 있는 전체이며 주기적으로 재생한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둘째, 상징은 실재하는 것, 참으로 의미 있는 것 즉 성스러운 것(성현), 힘있는 것(力顯, kratophany, 신적인 것(神顯, theophany)을 드러내 보여 준다. 가령 인도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에게 그것이 아무리 오염되어 있더라도 항상 성스러운 강으로 믿어지며 신의 은총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째, 상징은 직접적인 경험의 단계에서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는데, 그 의미들은 종종 상반적이다. 가령 물이라는 상징은 죽음, 혼돈, 정화, 풍요, 생식, 생명, 여성 등을 표상한다. 넷째, 상징은 이질적인 여러 존재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달이라는 상징은 세계의 다양한 차원(식물, 인간, 여성, 물 등)을 죽음과 재생 곧 생성의 순환이라는 존재 법칙 안에 통합시킨다. 다섯째, 상징은 삶의 역설적 정황을 이해하게 해준다. 세계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음과 양 등의 온갖 이원적인 대립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쿠사의 니콜라 오(Nicolaus Cusamus, 1401~1464)는 신의 본성을 가장 잘 규정할 수 있는 말로서 '역의 합일' (coincidentia oppositorum)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마음은 상징을 수단으로 하여 활동한다"면서 인간이 종교 상징을 통해 이 모든 대립물들의 역설적 일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하였다. 엘리아데 또한 종교 상징이 지닌 이와 같은 '역의 합일' 의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즉 인간은 종교 상징을 통해 삶의 복합성을 보다 큰 우주적 맥락 안에서 비추어 봄 으로써, 세계가 단순히 모순과 우연성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의 대립들을 넘어서서 역설적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상징은 결국 인간의 실존적 정황을 드러내 보여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다시 말해 상징은 항상 인간 실존에 관련된 실재 혹은 상황을 가리키며, 삶의 심층적 원천과 접촉을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상징은 '삶의 경험으로서의 영적인 것' 을 표출한다. 종교 상징이 신비스러운(numinous)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종교 상징은 인간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 실존과 우주 구조 사이의 통합성을 보여 준다. 상징 덕분에 인간은 우주 안에서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끼지않게 된다. 인간은 상징과 더불어 세계에 대해 열려져 있고, 상징의 우주론적 의미를 통해 주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지닌 객관성을 인식하게 된다. 요컨대 인간이 상징을 이해하게 되면, 그는 객관적 세계 앞에 자신을 개방하게 되고 동시에 닫혀진 개인적 상황에서 벗어나 우주적인 것을 이해하게 된다.
〔종교 상징의 의의〕 종교 상징은 다양한 기능을 통해 인간의 삶을 유지하도록 도와 준다. 그런데 종교 상징은 역사적으로 종종 대중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가령 힌두교의 경우 "현자는 상징을 숭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상징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혹은 실재를 상기할뿐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수한 상징을 숭배해 왔다. 이에 비해 우상 숭배를 엄금하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불교나 도교 등에 비해 상징물이 많지 않다. 그러나 박해를 받을 때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상징을 통해 표현하였다. 가령 로마 박해 시대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물고기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였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한편 신비 종교나 밀교 계통의 경우 상징은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는 해당 종교가 표방하는 신비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상징은 종교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오늘날 종교가 우리 가운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상징에 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과거 혹은 타자의 종교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상징을 통해서이다. 인류의 종교적 직관들은 신비(神秘, mysterium)에 관계되고, 종교들은 이 신비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드러내려 한다. 이러한 종교 상징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상징으로부터 영적이거나 초감관적인 영역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상징들은 추상적인 관념들과 정신 작용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종교적인 진리들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모든 종교적 표상들과 의식들과 관념들은 지상적인 실재들을 통해 초자연적인 실재를 드러내 주고 또 인간들을 신비의 차원으로 초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 상징들은 '성스러움의 현시' 〔聖顯〕인 것이다.
〔현대 세계와 상징〕 현대인은 거룩한 상징을 잃어버렸으며, 이 상징의 상실은 초월의 상실과 깊이 맞물려 있다. 적어도 산업 사회 출현 이전까지는 대표적으로 종교가 인간의 상징적 차원을 구현하였지만, 근대 이후 기술 공학의 급속한 발달, 니체(F Nietzsche, 1844~1900) · 마르크스(K. Marx, 1818~1883) · 프로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비판적 과학 정신의 압도적 지배, 대학살(holocaust)과 같은 불가해한 사건 등을 경험한 현대인들은 종교를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하나로서 상대화시켜 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징의 힘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 더불어 근래 학문적 · 대중적 · 이론적 · 실제적 측면에서 상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혹자는 여기서 종교 의식의 부활을 읽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 문화 속에서 그 부활은 이전의 형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즉 학문 · 예술 · 문학 등에서 가히 폭발적일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상징들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상징적 구조를 주어진 질서와의 관련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렸다. 그래서 한때 의미의 전달자 역할을 하였던 상징적 구조들은 더이상 기능하지 않게 되었고, 그 대신 현대인은 상징을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미학적 창조의 영역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 상징의 미래는 다분히 불투명하다고 보여진다.
종교 상징은 인류의 여명기로부터 존재해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인가? 인간이 종교적 존재이고 또 상징적 존재라면 아마도 종교 상징은 계속 존재할 것이지만 그것은 이전의 상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중의 하나로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지구적 규모의 종교 상징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민족이나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종교 상징이다. 그런 상징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 가령 전쟁 · 핵 · 환경 파괴 · 성 차별 · 인종차별 · 민족 문제 · 폭력 등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종교학)
※ 참고문헌  정진홍,《종교학 서설》, 전망사/ ─,《종교 문화의 인식과 해석》, 서울대학교 출판부/ M. Eliade, Traité d'histoire des religions(이재실 역,《종교사 개 론》, 까치) -, Symbolism, the Sacred, and the Art(박규태 역 , 《상징 , 신성, 예술》, 서 광사, 1991)/ D.M. Rasmussen, Symbol and Interpretation(장석만 역, 《상징과 해석》, 서광사, 1991)/ L.K. Dupré, The Other Dimension : A Search.for the Meaning of Religious Attitudes(권수경 역, 《종교에서의 상징과 신화》, 서 광사, 1996)/ C.G. Jung, Man and his Symbols(정 영목 역, 《사람과 상징》, 까치)/M. Eliade, 이재실 ,《이미지와 상징》, 까치. [朴奎泰]
II . 가톨릭에서의 상징
〔일반적인 정의〕 종교 생활에서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聖)을 지향하는 종교는 이미 그 자체로서 상징성-성(聖)의 드러남을 통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현상과 관련된 모든 이념이나 제도는 상징에 의해 존속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인식자 안에서 지적 동의뿐만 아니라 정감적인 반응까지도 일으키기 때문에 상징들은 정감적인 특징도 지니고 있다. 상징들이 지니고 있는 초월적인 힘을 인간이 발견하는 것은 상징들이 지닌 이러한 정감적인 특징 때문이다. 가톨릭의 전례 상징들과 성사 상징들도 역시 성스러움을 느끼도록 해주므로 이러한 범주에 놓여진다. 그리스도교적 직관들 역시 모든 종교적 직관들과 마찬가지로 신비와 관계되고, 그리스도교는 이 신비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드러내려 한다. 상징의 의미는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합적인 통찰에 의해 파악된다. 상징들은 어떠한 정해진 의미를 두는 것이기보다는 전반적인 관련 의미를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이 여러 가지 다른 의미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상징화는 하나의 통합적인 기능을 갖는다. 예를 들어 십자가는 당면한 위기, 짊어진 책임의 무게, 역경, 고난, 심지어는 죽음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내와 하느님 섭리에 대한 믿음, 희생, 화해, 구원이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상징 신학〕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특별히 상징의 계시적인 역할을 강조해 왔다. 성서와 플라톤적인 사유와 초기 그리스 교부들, 특히 알렉산드리아 학파(글레멘스, 오리제네스 등)의 영향하에서 교회는 성서와 전체 우주에 관한 그들의 상징적인 관점들을 수용해 왔다. 이러한 생각이 암브로시(340~397), 아우구스티노(354-430),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에 의해 계승되면서 상징적인 사유 경향이 그들의 우의적인(allegorical) 글들에서 표현되었다. 중세기에는 종교 미술이나 문학에서 상징주의(symbolism)가 보다 현저하게 드러났다. 일부 신학 학파 특히 생 빅톨 학파(Victorines)와 프란치스코회의 신비주의자들은, 셔뉘(M.D. Chenu, O.P., 1895~1990)가 '상징 신학' 이라고 일컬은 바를 전개하였다. 중세 후기 시대와 근대에 와서 상징주의는 신비 신학 안에 포함되었다.
후기 종교 개혁 시기에 토미즘의 부류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이 신학 경향 자체를 하나의 학파로 설립하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계시가 교의의 전달이라고 간주되었다. 일부 가톨릭 신학자들은 상상(imagery)이 소박한 마음 위에, 숙련된 지성이 명백하고 뚜렷한 이념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진리들을 각인시키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와 헤겔(G.W.F.Hegel, 1770~1831)의 견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신학적인 이성주의는 모든 신비를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대하였다. 이 낭만주의자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 20세기 초의 가톨릭 근대주의자들과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주의자들(fideists)이다. 이들은 계시는 오로지 상징들로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이들에게 있어서 상징은 전적으로 진리의 가치가 결여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표현 양상이었다.
〔상징과 계시〕 20세기 들어 상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으며, 상징은 특별하고 권위 있는 일종의 종교적 지식을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이 같은 상징 신학의 갱신은 심층 심리학 · 비교 종교학 · 비평 문학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최근의 많은 가톨릭과 영국의 신학자들은 계시 안에 내포된 교의적인 요인들을 경시하지 않으면서 상징의 절대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들은 상징주의야말로 계시를 전달하는 유일하고 적합한 방식, 즉 살아 있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이 인간과 같은 피조물을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이 오늘날 신비와 상징들은 자연히 동반적이라는 종교적 상징 구조의 특징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계시도 역시 상징적 구조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계시' 는 신비의 차원이 인간의 일상적 의식 속으로 개입해 들어옴을 의미한다. 감추어진 신비의 지평(하느님 자신과 하느님의 구원 의지)은 상징들의 수단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그 신비 자체를 드러내 보여 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계시는 보편적으로 상징적 통교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종교 상징들은 상징들이 표현하는 그 신비의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지만, 상징들은 여전히 우리를 불투명한 어두움 속에 남겨 놓는다. 이는 종교적 상징들(예 : 고목, 바위 등)이 상징되는 다른 실재와의 유비에 토대를 두지 않아서 상징들을 통해 드러나는 신비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바오로의 신비 사상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난 영원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인 신비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밝혀지게 되는데, 바오로는 교회가 지닌 상징적(가시적) 구조 때문에 여전히 감추어져 있음을 직시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시가 지닌 상징적 구조에 대한 올바른 평가 는 계시를 수용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다.
〔상징과 성사〕 표징 : 성사적 사유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교부는 테르툴리아노(160~223), 치프리아노(200?~258), 아르노비오(Arnobius, ?~327), 읍타토(Optatus)였다. 또한 도나투스주의(Donatismus)에 대한 논쟁으로 인하여 교회는 교회의 외적인 전례 의식을 강화하고 성사 신학을 구체화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 성사 신학 분야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온 교부는 아우구스티노였다. 그는 성사를 거룩한 표징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 교리론》(De doctrina christiana)에서 표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표징은 감관으로 표착되는 형상(形象) 외의 사물로서, 자기로부터 다른 무엇이 우리 사유 속에 출현하게 하는 것이다" (2, 1. 1).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의 이러한 상징 체계를 성서 안에서보다는 자연계 안에서 찾고 있다. "성사의 물〔水〕은 가시적이다.···그것은 몸을 씻어주지만 영혼에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Epist. Joannis ad Parthos 6, 11). 또한 빵과 포도주는 "성사들이라고 불려지는데, 이는 그것들 안에서 하나의 실재가 보여지고 다른 실재는 이해되기 때문이다"(Semo 272).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자연적인 종교 상징 체계 안에서 그리스도교 성사 의식들이 지니고 있는 감추어진 의미를 밝히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아우구스티노의 표징 개념은 그리스도교 성사 신학 안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설명하는 표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순한 표징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표징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알려주고 지시하는 통교 역할에 머무르기 때문이다(예 : 연기는 불을, 동물의 발자국은 동물이 지나갔음을 직시함). 그와는 달리 상징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현존하게 하고 구현하게 하며 의미하는 것이 있게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들은 사랑의 실재를 드러내 주고 있으나 사랑 그 자체는 이러한 상징들 안에서가 아니라면, 또한 이러한 상징들을 통 하지 않고서는 결코 현존할 수도 없고 체험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의 행위들은 사랑을 단지 지시하는 것만 아니라 사랑이 있게 하고 또 증대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노가 설명한 표징은 '예언적 상징'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사 설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성사들은 은총의 원인들이라는 전제하에서 성사들은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의 표징 , 은총의 표징, 영광의 표징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교회-성사들 : 현대 신학은 성서적이고 교부적인 상징 체계를 재발굴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성사들' 의 관계성을 성사 신학의 바탕으로 삼았다. 무엇보다도 신학자들은 성사의 상징 체계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 원형이 설정됨을 강조하였다. 예수는 자연적 차원에서는 인간이지만, 상징 차원에서는 하느님의 육화나 하느님의 상징으로 믿어진다. 사도 바오로의 신비(μυστήριον) 사상 안에서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 (골로 1, 15)이라는 표현이나 "하느님의 신비인 그리스도"(2, 2)라는 표현을 통해 인성을 지닌 원성사(原聖事)로 이해된다. 예수의 인격과 생애와 사건들과 행위들과 말씀들은 '신비' 로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구원 현존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상징적 구조가 그리스도교의 모든 성사성의 기초가 된다.
현대 신학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적 틀에 따라 교회를 이해하였다. 교회는 자연적 차원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상징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육화' , '그리스도의 상징' , '그리스도의 몸' 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이나 존재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간과 공간 속에 연장시켜 주고 확장시켜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 경륜 안에 놓여진 교회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구성원들 안에서, 또 구성원들을 통한 그리스도의 육화의 지속이라는 상징적 구조로 이해된다. 교회는 자신의 행위들로써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된 틀을 따르며,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행동할 때 교회의 행동들은 인간들만의 행동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행동들이기도 하다.
교회의 상징적 구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각 성사들이다. 각 사람이 자신이 처한 실존 상황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각 성사들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사들은 그리스도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여기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 현존시키는 유효한 상징들이다. 자연적 차원에서 물에 잠기거나 물을 붓거나 기름을 바르거나,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일상적인, 즉 자연적인 행위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상징의 차원에 있어서는 일상적인 자연 행위들과는 다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신자들의 죽음 과 부활, 신자들 안에 성령이 현존함,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부활한 그리스도가 자신의 성사적 몸 안에 현존함,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일치와 불가분의 결합을 선언하고 구현하고 거행하는 상징적 행위들이다. 이러한 예언적인 상징 행위들이 하느님의 상징인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여 틀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행위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되고 제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사 은총의 도구인 상징 : 성사는 은총의 원인이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비록 상징들이 언제나 의미가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성사적 상징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사적 상징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현존과 구원 행위를 선포한다. 중세 이래 교회는 성사들이 '사효론' (事效論, ex opere operato)을 의미하는 그 은총을 수여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성사가 은총을 수여하는 것이 어떤 마술적인 행위 혹은 의식 때문이 아니며, 성사 행위 자체(opus operatum)는 그리스도의 행위이고 하느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사적 상징이 효과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사적 상징 안에 은총으로 중개되는 위격적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고 복종하고, 그분 안에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의 적극적인 행위가 필요하고, 그러한 사람에게 상징은 효과적 상징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때만이 성사적 상징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구원 현존인 은총을 선언하고 구현하고 거행한다. 효과적인 성사적 의미를 위한 이러한 위격적인 인효성(人效性, ex operes operantis)의 근본적 필연성은 "은총을 얻기에 장애가 없는 이에게" 라는 전통적인 표현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 성사는 은총의 원인이라는 성사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들을 이해할 수 있다.
성사들의 원인성은 상징적인 도구적 원인성이다. 남녀 사랑의 유비는 이러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남녀가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사랑할 때, 사랑이 구체화되고 실재가 되게 하는 '효력의 주원인' (causa principalis)은 남녀 자신이고 '도구적 원인' (causa instrumentalis)은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들이다. 성사 은총의 주원인은 은총 자체인 하느님 자신이고, 도구적 원인은 성사적 행위들이다. 그러므로 상징을 말하는 것은 이미 도구적 원인을 말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만이 은총 현존의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사는 상징, 더 정확하게는 예언적 상징이다. 성사는 하느님의 상징인 그리스도에 의하여 설정되었고, 또 그리스도를 본떠서 세워졌다. 또한 성사인 예언적 상징 안에서 그리스도의 상징인 교회는 하느님의 현존과 행위, 즉 은총을 아무런 장애를 지니지 않는 신자들에게 선언하고 구현하고 거행한다. (→ 성사 신학 ; 전례)
※ 참고문헌  M.G. Lawler, Symbol and Sacrament, New York, Mahwah, 1987/ S. Happel, Symbol, 《NDT》, 1990/ K. Rahner, The Theology of Symbol, Theological Investigations Ⅳ, Baltimore, 1966/ A. Dulles, 《NCE》 13, p. 862. 〔河星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