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로 시작되는 미사 중의 감사송 후에 암송되거나 노래부르는 찬미가. 첫머리의 내용이 이사야서에 언급되어 있는 하느님을 시중드는 스랍 대천사들이 부르는 찬미가라는 의미에서 '세라핌의 찬미가 (Hymmus Sersphicus)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전 례〕 전례상으로는 좁은 의미의 미사 통상문이라고 불리는 기도문들(자비송, 대영광송, 신경,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 양) 중에서 네 번째 부분이며, 미사에서 사제가 혼자 장엄하게 낭송하던 감사송의 연장 기도문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체 축성 기도인 카논(Canon, 典文) 앞에 나온다 하여 서문경(序文經, praefatio)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감사송' 이라고 부른다. 감사송 끝 부분은 대부분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 이다" 혹은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식의 문장으로 끝나고, 이어서 상투스(거룩하시도다)가 암송되거나 노래불려진다. 이는 감사송과 상투스가 하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용 : 상투스의 전반부는 이사야서 6장 3절의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라는 구절이다. 이 삼성창(三聖唱, trishagion)은 아마도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른 듯하다. '거룩하시도다' 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은 하느님이 절대적으로 모든 독성적이고 이교적인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삼성창에 삼위 일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후반부의 내용은 마태오 복음 21장 9절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연결한 것인데, 이러한 연결은 하
느님 찬미의 신약성서적인 재해석이다.
유래와 변모 :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들이 아침 성찬식 때 외웠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기도문은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하나였다.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는 초대 교회 때 이 찬미가가 미사 전례에 삽입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찬미가를 공동으로 노래하였다고 했다. 상투스는 가장 오래된 미사 전문을 전해 주는 히폴리토(170~236)의 《사도 전승》의 성찬 기도문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상투스가 발견된 곳은 3세기 파피루스 <데르 발리제>(Der Balyzeh)의 전례문과 4세기 세라피온(?~362?) 주교의 《찬미 기도문》(Euchologium)이며, 4세기의 《사도 헌장》(Constitutiones Apotolicae)에서도 신자들이 상투스를 불렀음을 알려 주고 있다. 한편 4세기 이후 동방 교회의 미사, 예를 들어 380년경의 소위 글레멘스 전례에서는 상투스가 이미 확고하게 성찬 기도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었고, 일부 서방 교회의 성찬 기도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성 암브로시오(339-397)의 《성령론》(De Spiritu Sancto)에 이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PL 17, 1010),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기도문이 사용되었음은 아스테리오(Astrius)의 설교집(15, 16 : 29, 10)과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의 《세레론》(De Baptismo)과 요한 그리소스토모(344/354?~407)의 서간(In Eph. 14, 4)에서 증명된다. 요한 그리소스토모는 그리스 전례에서는 상투스를 '승리의 찬미가' ('ἐπινίκιον)로 불렀다고 했다. 한편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에게는 본래의 상투스보다 더 내용이 첨부된 상투스가 있었다. 로마 전례의 상투스는 교황 식스토 3세(432~440)에 의해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서서히 서방 전 지역에 확산되어 529년에 열린 베종(Vaison) 교회 회의를 통하여 정착되었다. 이 로마 전례의 상투스는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도 나타나 있다. 감사송과 상투스를 핵심으로 하는 로마 전례의 전문(典文)은 4세기 말에 확립된 것 같다.
[미사곡] 그레고리오 성가 시대에는 단선율 성가로서 상투스가 '베네딕두스' (Benedictus, 찬미받으소서)라는 제목의 노래와 함께 한 곡으로 노래되었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다성 음악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전반부(이사야서 부분과 "높은 데서 호산나")는 상투스라는 제목으로 작곡되어 감사송에 이어 부르고, 후반부(마태오 복음서 부분과 반복되는 "높은 데서 호산나")는 베네딕두스로서 성체 축성 이후에 사제 혼자서 노래하였다. 그 후 베네딕두스 는 사제 혼자 하던 것에서 성가대에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탄나바우르(P.J. Thannabaur)는 11~16세기의 상투스 곡 231개를 목록화하였는데, 이 중에서도 11세기에 작곡되어 교황청에서 편곡한 제18 상투스 곡이 가장 오래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상투스의 작곡이 가장 절정을 이룬 시기는 11 ~ 12세기였다.
상투스를 누가 맡아 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라바르댕(Lavardin)의 힐데베르(Hildebert, +1134), 오툉(Autun)의 호노리오(Honorius, +1156), 크레모나(Cremona)의 시카르도(Sicardus), , 두란티(Wiliam Duranti) 등이 언급하였는데 이들에 따르면 초기에는 상투스를 미사에 참례한 신자 전체가 하였다가 차차 성직자와 성가대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신자 전체의 몫으로 권장되었다. (→ 감사송 ; 미사곡)
※ 참고문헌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mwart, dtv. Barenreiter, 1989/ 《NGDMM》, 1980/ 《ODCC》, p. 1452/ H. Hucke, 《NCE》 12, pp.1047~1048. [白南容]
상투스
〔라 · 영〕Sanc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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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