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동(華東) 지구 북부의 중앙 직할 도시. 동중국해 연안에 있으며 북으로는 양자강(揚子江) 어귀, 남으로는 항주(杭州) 및 옥반만(玉盤灣)과 맞닿아 있다. 상해는1842년의 남경조약(南京條約)으로 개항되었는데 한국 천주교회와 관련을 맺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개항 이래 중국의 상업 및 산업 중심지로 성장해 왔으며 1990년 현재 면적 6,185k㎡에 인구는 약 1,200만 명이고, 주민의 대부분은 한족(漢族)이다. 행정 구역은 12개 구(區)와 9개 현(縣)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역의 역사〕 신(申) 또는 호독(滬瀆)이라고 불렸던 상해는 송대(960~1126) 이전까지 한적하고 고립된 어촌에 지나지 않았으나 송대 이후 농업 경제가 발전하고 북의 한족들이 몽고족의 침략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인구도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11세기 초에는 세관(稅關)이 들어섰고, 남송(南宋, 1127~1279) 말인 1267년에는 무역 감독 관청인 시박사(市舶司)의 분소(分所)가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동점해 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즉 1842년 8월 아편전쟁(阿片戰爭) 결과로 체결된 남경조약에 의해 구미 열강에 개방되었고, 외국인의 조계(租界)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반면에 이를 계기로 중국의 첫째가는 대외 무역 및 상공업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동시에 1949년까지 중국의 민족 해방 운동이나 노동 운동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천주교회의 변모〕 상해에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알려지게 된 것은 이곳 출신인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입교한 뒤부터였다. 그는 1596년 소주(韶州)에서 카타네오(Cattaneo, 郭居靜, 1560~1640)를 만난 뒤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1600년에 남경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를 만나 천주교와 서양의 과학 기술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고, 1603년에는 남경에서 《천주실의》를 보고 로차(Rocha, 羅如望, 1566~1623)에게 세례를 받은 후 1604년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면서 리치와 교유하였다. 그런 다음 1607년에 고향인 상해의 서가회(徐家匯)로 돌아와 이듬해 서가회 성당을 창설하였고, 이지조(李之藻, 1565~1630), 양정균(楊廷筠, 1557~1627) 등과 함께 상해를 중심으로 선교에 힘써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상해에는 1663년경에 이미 2개의 성당과 66개의 경당, 4만여명의 신자가 있었고 18세기 초에는 강소성(江蘇省) 전체 교우 10만 명 중 약 8만 명이 상해 부근에 거주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 후 상해는 1844년 황포조약(黃埔條約)의 체결로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1842년에 다시 중국에 진출하였던 예수회가 1847년에 그 본부를 서가회에 두면서 교세가 더욱 확대되었다. 이에 1850년대 중반에는 동가도(董家渡)의 주교좌 성당 외에 황포강(黃浦江) 우안(右岸)의 금가항(金家巷) 장가루(張家樓) 망첨(網尖) 등 3개의 본당구가 설정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예수회 외에 여러 남녀 수도회가 상해에 진출하여 고아원 · 병원 · 교육 사업 등에 종사하였는데, 1855년에는 중국인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수녀회인 헌당회(獻堂會)가 상해에서 창립되었고, 1869년에는 가르멜 수녀회가, 1892년에는 마리아회, 1904년에는 '가난한 자의 작은 동정회' 가 진출하였다. 한편 예수회에서는 1903년에 진단대학(震旦大學, Aurora Universitas)을 상해에 설립하였다.
상해 천주교회는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하여 1933년 12월 13일 대목구(代牧區)로 설정되었고, 1946년 4월 11일에는 교구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949년의 공산화 이후 중국 교회는 1958년 4월 자체적으로 주교를 선출함으로써 교황청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지상 교회와 지하 교회로 분열되었다. 그러다가 1966년의 문화 혁명으로 심한 타격을 받아 유형의 교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나, 1976년에 문화 혁명이 끝나고 중국 정부가 개방 정책과 현대화 운동을 추진하면서 종교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79년에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 가 활성화되었으며, 상해의 성당들도 활동을 재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4년 현재 상해에는 14개의 성당과 45명의 신부, 72명의 수녀가 있고 신자수는 약 10만 명이다.
〔성당 및 주요 시설〕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은 1608년에 서광계와 선교사 카타네오에 의해 창설된 서가회 성당이다. 이 서가회 지역은 약 300년 간 상해 천주교회의 중심지로서 가톨릭의 중국 전교와 문화 사업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으며, 성당을 중심으로 박물관 · 도서관 · 천문대 · 의료원 등이 갖추어져있다. 현재의 성당은 1906년에 다시 착공하여 1911년에 완공한 것으로, 공산당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79년 11월 1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 밖의 주요 시설로는 1981년에 다시 문을 연 동가도 성당과 1860년에 건립된 후 역시 1981년에 다시 문을 연 성 요셉 성당, 그리고 1848년 서가회에 세워졌다가 1950년대 후반 폐쇄된 후 1982년에 사산(佘山)에서 다시 문을 연 상해 신철학원(上海 神哲學院) 등이있다.
〔한국 교회와의 관계〕 상해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가 서품된 곳이었고, 19세기 중반 이후 선교사들의 입국로였다는 점에서 한국 천주교회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상해는 1842년에 마카오의 조선 신학교를 떠나 북상을 하던 김대건 · 최양업 신학생이 조선 선교사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와 함께 잠시 머무른 곳이었다. 그후 김대건 신부는 아직 부제였을 때인 1845년에 조선에 입국하였다가 같은 해 6월 4일 프랑스 선교사들의 영입을 위해 11명의 조선인 교우들과 함께 상해로 다시 가서 이곳에서 약 2개월 간 머무른 뒤 8월 17일에 상해 연안에 있는 금가항(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Ferréol, 高)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8월 24일에는 상해에서 약 30리 되는 횡당(橫塘)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이어 그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8월 31일에 상해를 떠나 귀국 길에 올랐다.
다음으로 최양업 신부는 아직 부제였을 때인 1847년 7월 28일에 프랑스 함선을 타고 홍콩을 떠나 조선 입국을 시도하다가 고군산도(古群山島)에 난파함으로써 그해 8월 26일에 상해에 도착하였다. 그런 다음 상해의 서가회 신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1849년 4월 15일에 강남 대목구장인 마레스카(Maresca, 1806~1855) 주교로부터 서가회 신학원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한편 19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박해가 계속되고 국경 감시가 강화되자 파리 외방전교회의 조선 선교사들은 육로를 피해 해로 입국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상해는 조선 선교사들의 출발 기점이 되어 1845년의 페레올 주교 이후,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조선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와 함께 상해에는 1864년에 파리 외방전 교회의 대표부가 설치되어 초대 대표로 카즈나브(Caze-nave) 신부가 임명되었고, 1886년에 한국에 입국한 코스
트(Coste, 高宜善, 1842~1896)도 1874년부터 약 1년 동안 3대 대표로 재직했었다. 이 대표부는 설립 이후 한국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중국으로 탈출한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도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재입국을 시도하다가 제6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었고, 최선일(崔善一, 요한, 일명 智嚇) · 최인서(崔仁瑞) · 심순여(沈順汝) 등 조선의 밀사들이 리델 신부를 만난 곳도 상 해였다. (⇦ 서가회 성당 ; → 서광계)
※ 참고문헌 상지대학 편, 《カ 卜 リ ソ 7 大辭典》 2, 1954/ 史式徽, 《江南傳教史》, 上海譯文出版社, 1983/ 《달레 교회사》 下/ 《中國天主 教指南》, 中華公教聯絡社, Singapore, 1985/ Cittta del Vaticano, Annuario Pontificio, 1998. [方相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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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박물관 · 도서관 · 천문대 · 의료원 등이 들어선 서가회 성당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