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형 문자

象形文字

〔라 · 영〕hieroglyph

글자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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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에 쓰여진 상형 문자(왼쪽)와 상형 문자 해독의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로제타 석' (대영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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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에 쓰여진 상형 문자(왼쪽)와 상형 문자 해독의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로제타 석' (대영 박물관 소장)

문자의 가장 초기 단계로 물체의 형상을 본떠서 그림 문자 체계로 만든 글자. 특히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의 문자 체계와 고대 이집트 기념비에 쓰인 형태를 의미한다. 상형 문자란 뜻의 '히에로글리프' 는 그리스어 '히에로스'' ('ιερός, 거룩한)와 '글루페' (γλυφή, 새김)가 합쳐진 말로, '신(神)의 말씀' 을 뜻하는 이집트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문자는 인간이 발명한 의사 소통의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이며 문자의 발달과 함께 인간은 역사 시대를 영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사물의 모습을 동굴 벽이나 돌 바닥에 간략하게 그려 서로의 뜻을 전하려는 시도가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그림들이 상호간에 약속된 징표로서의 상형 문자로 발전한 획기적인 도약은 기원전 35세기경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수메르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수메르인에게서 문자라는 개념을 빌려 온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는 개연성이 부족하며, 사실 그렇다고 해도 두 문자 체계는 기호 사용법이 판이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발달되어 온 것이 분명하다.
〔수메르인의 문자〕 기원과 용도 : 수메르인들이 만든 상형 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간략하게 그림으로 표기하여 뜻을 전하는 표의 문자(表意文字, ideogram)였다. 그리고 이들의 문자 발달과 함께 성곽을 짓고 도시 생활을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당시 가장 빈번히 접할 수 있는 상형 문자의 기록은 경제 활동에 관한 것들이었다. 문자가 급속히 발달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축적된 부(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보다 상세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고, 시장 경제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정확한 문자의 개발에 주력하였던 데 있었다. 수메르인들은 물품을 빌려 주고 그 내용을 기록한 차용 증서나 물품을 주고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 혹은 신전에 공물을 바치고 받은 증서 등을 집에 보관하였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점토를 빚어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판을 만들어 그 표면에 글자를 기록하였는데, 점토 판은 오래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용구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계약서에 계약 내용과 여러 증인들의 이름, 그리고 공증인의 날인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보상금을 지불하거나, 거짓으로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첨부하였다. 인류의 문자 시대를 열었던 것은 이렇게 문자로 자신들의 생활을 기록하였던 수메르인이었다.
상형 문자는 단순히 어떤 사물을 보고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여 생긴 문자는 아니다. 상형 문자의 기원은 기원전 5000~3500년에 사용되었던 물표(物標, token)의 유통 과정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표는 조약돌 모양의 크기로 만든 점토 덩이로 물품의 명목 가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물표의 활용성을 대치하여 점토 판으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상형 문자가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기원전 8000년경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점토 덩이를 물표로 사용하여 보관하였었다. 처음 단계에는 아마도 사람들이 강가에서 조약돌을 주어 비슷한 모양끼리 모아 물품을 대신하는 물표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약돌을 찾아 물표로 사용하는 방법을 버리고 대신 점토로 세모나 네모 또는 원 등의 조약돌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 여러 지역에서 기원전 8000~5000년경에 사용된 비슷한 모양의 점토 덩이들이 한군데 모여 있는 것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은 형태가 비슷한 점토 물표들을 사용하여 물품을 빌려 주고 물표를 점토로 쌓아 보관하는 경제 활동을 하였
음을 알 수 있다. 시장 경제가 점차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한 종류의 여러 품목을 구별하기 위해 물표의 위 표면에 개별적인 모양의 상징적인 선(線)을 그어서 세분화하였다. 이때까지도 물표를 점토로 쌓아 보관하였다. 그러나 점차 물량 거래가 커지면서 여러 종류의 물표를 점토에 쌓아 보관하다 보니 부피를 많이 차지하여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물표의 활용 과정에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났는데, 즉 물표를 점토로 쌓아 봉판(封板)으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점토로 토판(土板)을 만들어 그 위에 물표의 표면에 새긴 내용을 그려서 물표를 대신하고 그 수효를 옆에 찍는 방법이었다. 이로써 생겨난 것이 바로 상형 문자였다.
특징 : 많은 양의 물표 덩이를 보관하였던 방법보다는 점토 판에 수효를 찍어 그 내용을 기록하는 방법이 훨씬 효능적이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시장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작은 물표는 작은 수를 뜻하고 큰 물표는 큰 수를 뜻하였다. 그리고 토판에 작은 점은 1, 조금 큰 점은 10, 좀더 큰 동그라미는 60을 나타냈고 반(半)을 뜻하는 기호는 작은 점 중간에 금을 그었다. 더하기는 큰 숫자 오른쪽에 작은 숫자를(예 : 10 1 즉 11), 빼기는 작은 숫자 오른쪽에 큰 숫자를(예 : 1 10 즉 10에 1이 부족함), 곱하기는 큰 숫자 안에 작은 숫자를 표기하였다. 또한 숫자 1을 표기하기 위해 작은 점을 찍거나 10을 가리키기 위해 1보다 조금 큰 점을 표기하였으며, 60을 가리키기 위해 10의 숫자 모양보다 큰 반타원형을 표기하였다.
십진법을 사용하였던 셈족들과는 달리 수메르인들은 60진법을 썼다. 옛날 사람들은 손과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 전달하였을 것이다. 60진법일 경우 1에서 60까지 숫자를 세어 나갈 때에 한 손으로 손가락을 펴서 1부터 5까지 세고 6은 다른 한 손의 손가락 하나를 펴 올렸다. 이렇게 계속하여 다른 손을 다 펴면 30이 되고 다시 다오무린 주먹은 60이 된다. 손을 셈에 이용하면 주먹 모양의 반타원형은 60을 가리킨다. 곱셈의 시작이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점토 판의 왼편에 숫자를 찍고 물표의 윗 모양을 그려 토판이 경제 활동의 매개체로 사용되면서 수메르(Sumer) 도시 국가 체제의 시장 경제는 점차 전문화되어 갔다. 물표의 윗 모양을 글자로 사용하듯이 사물을 대표할 수 있는 모양을 간단하게 그린 상형 문자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물표의 윗 모양에 양(羊)을 가리키는 표식으로 동그라미 안에 십자를 그었는데, 토판에도 같은 모양을 그대로 사용하여 동그라미 안에 십자는 양을 뜻하는 표의 문자가 되었다. 새 · 물고기 · 나귀 · 황소 등의 글자는 그 물체를 닮았으며, 산 위에 떠오르는 둥근 모양인 태양, 나무가 자란 모양인 정원, 사람의 발 모양인 발, 그리고 발은 걷다 · 서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어 명실공히 표의 문자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기원전 3500~3300년 사이에 이러한 상형 문자가 갑자기 많이 생겼지만 글자의 모양이 오랜 시간을 두고 진화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상형 문자는 남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우루크(Umk)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도시 국가에서 발굴된 1,500여 개의 토판에 있으며, 그 가운데 서로 다른 문자의 수효는 1,000여 개에 이른다. 수메르인들의 상형 문자는 기원전 3200년경부터 쐐기 모양의 설형 문자(楔形文字, cuneiform)로 변해 갔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 상형 문자는 곧 동서로 전파되어 기원전 29~28세기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집트식의 상형 문자를 만들어 냈다. 수메르에서는 매년 범람으로 강가에 쌓인 풍부한 고운 점토를 빚어 토판을 만들고 그 표면에 뾰족한 갈대 펜으로 글을 썼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가에 무성한 풀의 줄기를 이용하여 파피루스를 만들어 그 표면에 갈대 붓으로 잉크를 찍어 글을 기록하였다. 수메르에서는 토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상형 문자에서 설형 문자로 변하였지만, 붓으로 그리는 편의함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림 글자를 유지하여 벽이나 돌에도 상형 문자를 부조하였다.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의 수효는 750여 개 정도이다.
이후 수메르인들은 음절로 설형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이와 유사하게 고대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상형 문자 중 상당수를 음절로 그리고 24개 문자를 알파벳으로 사용하였다. 2~3세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이집트 고대 종교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체계도 차츰 쇠퇴하여 결국 소멸하였다. 이집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 자모를 이집트어 표기에 적합한 기호 형태로 바꾸어 사용함에 따라 이집트 토착 문자는 점점 쓰임새가 줄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최근에 사용된 상형 문자는 394년의 비문에 새겨진 문자이다.
알파벳 문자로의 발전 : 고대 이집트어는 함-셈어(Hamito-Semitic)이다. 아카드어나 우가리트어 혹은 히브리어 등 셈어의 특징은 대부분의 동사가 삼근 자음(三根子音)을 가지고 있으며, 동사 활용에 삼근 자음은 거의 탈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자로 음역하여 'KTB' 는 히브리어로 '글을 쓰다' 는 동사의 삼근 자음이다. 예를 들어 KaTaB' (그가 글썼다), KoTeB' (그가 글쓴다), KaTuB' (글이 쓰여 있다), KaTBu' (그들이 글썼다), 'yiKToB' (그가 글쓸 것이다) 등 KTB' 의 삼근 자음은 항상 동사형에 들어 있고 오직 모음만 변한다. 이러한 모음의 변화는 동사 형태에 따라 거의 규칙적이다. 이런 까닭에 상형 문자를 음절로도 사용하였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음절의 어두음(語頭音)을 대표음으로 그 음절을 때로는 알파벳(음운 문자)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한편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의 약화체 문자(hieratic)가 이집트뿐만 아니라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페니키아 등 북서 셈어권에서는 22개의 알파벳으로 고정되었으며, 기원전 12세기경 고대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의 알파벳을 차용하여 자기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어는 삼근 자음의 규칙성을 특징으로 하는 셈어가 아니기 때문에 동사의 활용에 단순히 자음만 표기하여서는 의사 소통을 전혀 할 수 없었음으로 몇몇 자음을 빌려 모음으로 대치하였다. 예를 들어 빈소리 자음 (' )을 [a] 음가 모음자(母音子)로, [j] 자음자를 [i] 모음자로, [w] 자음자를 [u] 모음자로, 거친 후음
( `)을 [o] 모음자 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음자와 모음자가 구비된 완전한 알파벳 문자가 생겨난 것은 기원전 10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문자부터였다.
고대 히브리어 문자체는 기원전 1000년경에 지중해 주변 지역에 광범하게 해상 무역을 하였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정착된 페니키아 문자에서 파생되었으나 기원전 6~5세기까지 사용된 흔적이 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고대 근동의 국제 통용어는 히브리어와 유사한 아람어였으며, 바빌로니아에 유배 갔다가 유대 땅으로 돌아오거나 그곳에 남아 살았던 유대인들은 아람어 문자를 택하여 히브리어를 표기하였다. 이때까지도 히브리어 문자는 오직 자음자만을 사용하였으나 서기 9~10세기에 모음 부호를 만들어 자음자에 첨가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회당에서 사용하는 모세 오경 두루마리는 여전히 모음 부호가 찍히지 않은 자음자만으로 기록한다.
〔연구 상황〕 처음으로 상형 문자를 해독하려고 한 사람은 1600년대 중반에 활동한 독일의 학자 키르허(A.Kircher)였으나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 것은 1799년에 발견된 '로제타 석' (Rosetta stone)이었다. 이 비석에는 상형 문자와 민중 문자, 그리스 문자 등 3종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이를 완전히 해독한 사람은 프랑스인 상폴리옹(J.-F. Champollion)이었다. 그는 하나의 기호를 다른 기호와 비교함으로써 상형 문자의 음가를 결정할 수 있었는데, 그 후의 연구는 샹폴리옹의 성과를 확인하고 다듬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 설형 문자 ; → 메소포타미아 ; 수메르)
※ 참고문헌  J. Naveh, Early History ofAlphabet, Jerusalem, The Magnes Press, The Hebrew Univ., 1987/ Sign, Symbol, Script. An Exhibition on the Origins of Writing and the Alphabet, Univ. of Wisconsin-Madison, 1984. [曹哲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