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윤리

狀況倫理

[라]ethica situationis · [영]situation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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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윤리 규범을 부정하면서,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개인은 자신의 윤리적 당위(當爲)를 스스로의 직관을 통해 식별해야 하거나 윤리 규범을 글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리 학설.
크게 '율법 제일주의' (legalistic style)와 이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현대의 반율법주의 즉 '무법주의' 無無法主義, antinomistic style)로 나뉘며, 좁은 의미로의 상황 윤리는 주로 후자를 말한다. 이러한 형태의 상황 윤리는 현대 그리스도교 윤리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이며, 자연법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상황 윤리는 윤리상의 분별(discermmen)을 지니고 있지 않거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해 무엇이 항구적이고 합법적으로 변화 가능한가를 식별하려는 노력마저 거부한다.
〔형 태〕 율법 제일주의 : 이 형태는 이미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화' (루가 10, 29-37)에서 강도한테 얻어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피해 지나갔던 제관과 레위 사람은 분명 율법을 준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 의식을 거행하러 바삐 서둘러 가고 있었으며, 율법에 따라서 만일 죽은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을 타서 소정의 의식을 거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결의론(決疑論, casuistry)에 준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도 안식일에 관한 외적 법률 준수에 더 철저했던 것이다. 또 제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의 사소한 조목들까지 소심하게 준수하였으므로, 예수는 "어찌하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립니까?... 여러분의 전통 때문에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듭니다"(마태 15, 3-6)라고 질책하였다.
오늘날에도 율법 제일주의는 자애와 동정과 사회 정의를 명하는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법률을 글자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고집하여 가치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율법주의는 법적 상황에 초점을 두는 까닭에 추상적 원리 하나만 내세우면서 가치의 서열에 전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지 이웃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지상 명령에 입각하여 고찰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율법주의자들은 내용 없는 법적 형식들을 매우 중시하면서도 인간의 삶과 그 인격 문제는 도외시한다.
무법주의 : 율법 제일주의와는 정반대의 극단적 상황 윤리론자들은, 일반적인 상황의 전제하에서 인간 본성으로부터 연역된 추상적인 윤리 규범은 구체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의 윤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개인의 양심만이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개인의 양심만이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 상황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무법주의는 개인의 양심 판단만을 유일한 절대적 행동 규범으로 인정하면서 보편적 윤리 규범을 부정하거나 배격하는 윤리이다.
이러한 상황 윤리는 본질(本質)보다 실존(實存)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보편(普遍)보다 개체(個體)를 중요시하는 실존주의(實存主義)를 토대로 인간의 보편적 본성으로부터 객관적 윤리 규범을 연역하는 본질 윤리, 법 중심주의적 윤리에 대한 극단적 반동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실존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보편적 본성 속에 해소될 수 없는 개별적 단독자, 즉 주체적인 존재이다. 실존이란 바로 이러한 주체적 존재로서의 현실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은 보편적 본성에 의해서 그 본질이 이미 규정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자유로운 주체적 선택과 결단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본질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존은 본질에 앞서며, 실존은 주체성 이외의 다른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주의는 인간을 객관적 대상으로 해석(解釋)하고 사유(theoria)하는 객관주의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의 주체적 사고와 결단과 실천을 강조하는 주관주의 철학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는 상황 윤리에 의하면, 인간 본성으로부터 연역된 보편적 윤리법은 인간의 실존적 차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반(反)실존적 윤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편적 윤리법은 인간의 절대적 개체성(個體性) , 즉 주체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불가해(不可解)한 고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 보편적 윤리법은 그 법이 적용되어야 할 모든 상황을 총망라해서 제정된 법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로 제정된 법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는 개인의 윤리적 당위를 제시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개별 인간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은 모두 유일무이한 상황인데, 보편적 윤리법은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 의지를 구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공회의 신학자 플레처(Joseph Flecher)가 '새 도덕' (new morality)을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내놓은 윤리 사상이었다. 그 후 이 사상은 체계적인 철학적 관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청년 운동에 의해서, 또 상황 윤리와 죄 신비설 간의 관계를 다루는 그린(H.G.T. Greene, 1904~1991), 르 포르(G. von Le Fort, 1876~1971), 모리아크 (F. Mauriac, 1885~1970) 등 소설가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을 통해서 발전되었다. 그리고 플레처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 1966)라는 저서를 발표함으로써 무법주의적 상황 윤리가 미국에서 지대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영향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교 윤리에 위협을 감지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1952년에 '가톨릭 청년 여성 세계 연합회' (Fédération Mondiale des Jeunesses Feminines Catholiques)에 보낸 훈시를 통하여 이를 비난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자유의 궁극적 규범으로서 보편적 윤리 규범을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개인은 자신이 해야할 바를 오로지 스스로의 직관을 통해서 식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절대적 상황 윤리, 곧 무법주의적 상황 윤리는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고 판단하였다.
〔극단적인 상황 윤리설〕 교회는 이 밖에도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 윤리설을 배격하고 있다. 신학적 맥락주의(theological contextualism) : 이 관점에 따르면 하느님은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며, 구체적인 상황과 역사적 · 사회적 배경은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결정적으로 계시하는 유일한 때와 장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문화된 윤리법은 역동적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창조와 계시, 곧 자연법과 신적 실정법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계시하였으므로 하느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는 자연법과 신적 실정법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계시된 하느님의 뜻을 성문화한 윤리법들이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항상 진지하게 검토함으로써 수정 · 보완될 필요는 있겠지만, 성문화된 윤리법이 하느님의 뜻을 가로막거나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 의지를 구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윤리적 잠정주의(ethical provisionalism) : 원죄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부터 연역된 윤리 규범들은 은총에 의해서 의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타당성이 없는 규범이며, 다만 의화되지 못한 비그리스도인들에게만 잠정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회는 원죄를 통한 인간 본성의 근원적인 타락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자연적 인간 본성은 초자연을 지향하고 있으며, 은총은 자연적 인간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때문에, 인간 본성으로부터 연역된 윤리 규범 역시 은총을 통해서 의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타당한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아가페적 상황론(agapist situationism) : 이 이론은 아가페적 사랑만이 유일한 절대적 윤리 규범임을 주장하면서 다른 모든 윤리 규범들을 부정한다. 그리고 유일한 규범인 사랑은 그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아가페적 사랑은 그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위라 하더라도 모든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인 사랑을 논하는 것일 뿐 사랑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윤리법은 참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규범으로서, 참사랑의 구체적인 내용과 최소한의 하한선(deadline)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로마 13, 8-10).
〔문제의 해결〕 개체성과 보편성 : 인간은 보편적 인간성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개체성, 곧 그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고유성을 소유하고 있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개별 인간의 이러한 개체성은 하느님의 창조 의지의 표현이며, 그 인간이 하느님께 받은 특별한 소명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개별 인간의 절대적 개체성은 보편적 인간성에 환원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개체 인간이 인간 안의 보편성을 이탈하여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윤리 · 도덕은 인간을 보편적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그 인간의 유일성, 곧 절대적 개체성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처해 있는 개별 상황에는 보편적 윤리법이 고려할 수 없는 차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보편 규범을 내세워 구체적인 상황을 과소 평가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은 하느님이 그 상황에 처한 개인에게 당신의 뜻을 개인적으로 드러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체적인 윤리적 요청을 식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윤리적 요청은 '때' (루가 19, 44)라고 일컬을 수 있는 변화하는 상황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가 처해 있는 역사적 · 사회적 상황은 각자에게 특별한 소명이 주어지는 '때'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바로 그곳에서 그는 하느님의 윤리적 요청을 식별하고 자신의 구원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 상황 역시 윤리적 진리의 식별을 위해서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윤리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오면서 축적된 지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윤리법은 무류(無謬)하지 않고 항상 오류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개인의 양심이 올바른 실천적 판단을 내리도록 결정적인 빛을 던져 주며,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해 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리적 진리는 인간의 본질적 차원과 실존적 차원 가운데서 그 어느 한 가지 차원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양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차원 모두를, 곧 보편성과 개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성찰을 통해서 비로소 식별해야 할 진리이다.
윤리적 형평 : 보편 규범으로서의 윤리법(규범 윤리)과 구체적 상황 안에 처해 있는 실천적 판단으로서의 양심(상황 윤리)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윤리적 진리를 식별하기 위한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개인의 양심이 삶의 지혜가 축적된 윤리법을 배척하면서 자신을 절대화한다면 스스로 엄청난 정신적 빈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윤리법은 이기적 성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이상적 실현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윤리 행위의 하한선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윤리법을 부정하면서 양심만을 절대적 행동 규범으로 주장한다면 이기심에 쉽게 사로잡혀 윤리 생활을 위한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윤리법을 절대화함으로써 양심을 법의 시녀로 전락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윤리법은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로 추상적 원리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 주지 못하며, 인간의 인식 능력과 표현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완전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윤리법 역시 그 본성상 한계와 결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법이 예상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이나 법을 자구적(自救的)으로 준수하는 것이 법의 근본 정신을 명백히 위배할 경우에는 양심의 창조적인 법 해석, 곧 형평(衡平, epikeia)이 요청된다. 양심은 법의 요청과 자신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을 주도 면밀하게 고려함으로써 법을 자구적으로 준수하는 것보다 훨씬 심원하고 탁월한 형태로 법의 근본 정신을 구현할 수있는 바람직한 도리를 식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법과 양심은 서로의 결함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윤리법이제외되고 양심만이 강조되면 무법주의를 낳게 될 것이며, 반대로 양심이 희생되고 윤리법만이 강조되면 율법주의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과 양심 사이의 상호 배타적 형태로서의 율법주의나 상황 윤리는 단호히 배격 되어야 한다.
〔의 미〕 인간의 보편적 차원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규범 윤리에 대한 반동으로서 인간의 실존적 차원을 강조하는 상황 윤리는 규범 윤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건설적인 비판이며, 그 결점과 장점을 보완해 주는 적극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 윤리법을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개인의 양심만을 절대적 행동 규범으로 주장하는 극단적인 무법주의 상황 윤리는 단지 개인의 주관적 영감이나 신념만을 토대로 윤리 생활을 영위하려는 지극히 주관적 · 상대적 · 독단적 윤리이다. 상황 윤리의 오류인 무법주의와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의 상황 윤리는 문제의 접근법이 근본적 으로 다르고 주장하는 바에 차이가 있지만 결국 비슷한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이 "법을 따르라, 그것이 곧 사랑이다" 라고 한다면, 무법주의적 상황 윤리론자들은 "사랑을 따르라, 그것이 곧 법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전자는 인위적 법률에 절대 복종을 요구하면서 사랑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이고, 후자는 사랑 이외의 어떤 것에도 윤리적 절대성을 부정하며, 사랑이라는 정의되지 않은 감정에만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양자는 모두 윤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결국 윤리 · 도덕은 윤리적 보편성과 인간의 개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어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 윤리 체계)
※ 참고문헌  Franz Bockle, Grundbegriffe der Moral, Aschaffenburg, 1966(성염 역, 《기초 윤리 신학》, 분도출판사, 1975)/ Karl H. Peschke, Christian Ethics, Dublin, 1986(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분도 출판사, 1990)/ 베른하르트 헤링, <상황 윤리>, 《신학 전망》 22호 (1973. 9), pp. 28~341 Waldemar Molinski, 《SM》 3, pp. 94~98/G. Angelini, Dizionario enciclopedico di teologia morale, Firenze, 1985, pp. 1013~1018/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pp. 1200~1201/ J. Griindel, Handbuch der Pastoraltheolgigie V, Freiburg-Basel-Wien, 1972, p. 512. 〔劉永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