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

誡命

[라]mandats · [영]command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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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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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있다.

I . 윤리신학에서의 계명
권위 있는 말씀 또는 명령.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자들이 따라야 할 하느님의 명령을 뜻함. 사회 유지를 위해 만든 사회적 개념인 법과 성격이 유사하다. 그러나 계명과 법은 발생 기원에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계명은 신(神), 법은 사람들간의 약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립의 기초가 된 '십계명' 의 생성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계명도 역시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다. 계명의 형태는 '~하라' 는 명령과 '~하지 말라' 는 금령 두 가지로 되어 있다.
〔구약성서의 계명〕 구약성서에서 계명은 '토라' (律法)이다. 히브리어 토라는 본래 '가르침' 을 뜻한다. 하느님이 정하신 것으로 믿는 토라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다른 모든 백성과 구별하는 공동체로 부각시킬 수 있게 하였다. 토라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십계명(출애 20, 1-17), 종들에 관한 규정(출애 21, 1-11), 살인 및 과실 치사, 과실 치상에 관한 규정(출애 21, 12-36), 안식일 계명(출애 35, 1-3),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대한 계명(레위 11, 1-47 ; 신명 14, 3-21),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정(레위 25, 1-55), 십일조 규정(레위 27, 30-34 ; 신명 14, 22-29) 등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중 제3계와 제4계는 '~하라' 는 명령이고 다른 것은 모두 '~하지 말라' 는 금령이다. 십계명은 성서에 출애굽기 20장 1-17절과 신명기 5장 6-21절에서처럼 두 가지 형태로 나온다. 이 둘 가운데 출애굽기의 내용이 더 오래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출애굽 전승보다 훨씬 후대인 기원전 7~6세기에 엮은 신명기 전승은 출애굽 전승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다르다. 출애굽기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후 이레째 되는 날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전한다. 반면 신명기는 사회적 동기를 들었다. 곧 이스라엘 자신도 노예 생활을 했으니 자기들이 부리는 종들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가축까지도 아껴야 한다는 이유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둘째, 둘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출애굽기에는 이웃 사람의 집이나 아내, 종, 소나 나귀 등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탐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명기는 이웃 사람의 아내를 제일 먼저 말하여 다른 소유물과 구별하였다. 구약 말기에 유대인들은 이 십계명을 기초로 365개의 금령과 248개의 명령으로 구성된 613개나 되는 계명을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이 계명들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하였다. 계명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면 하느님의 보상을 받게 된다고 확고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계명들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려는 잘못된 열의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알고서 내는 열정이 아닙니다"(로마 10, 2). 유대인 교사들은 613개의 계명을 더 작은 숫자로 줄여, 모든 계명을 합한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려 했다. 필로는 10계명이 모든 계명의 요약이라고 했다. 3세기 팔레스티나의 랍비 심라이(Simlai)는 613개로부터 1개까지 계명이 요약된 과정이 성서 안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하였다. "모세는 613개의 계명을 계시하였다. 곧 1년의 날짜 수에 따른 365개의 금지 조항과 신체의 부분에 따른 248개의 긍정적 명령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와서 11개(시편 15), 이사야가 6개(이사 33, 15) 그리고 미가가 3개를 선택하였다(미가 6, 8). 그리고 다시 이사야가 2개(이사 56, 1), 마지막으로 아모스가 와서 하나를 선택하였다. 너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 5, 4)." 전체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한 힐렐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너에게 해로운 일을 너의 동료에게 하지 마라”(바빌론 탈무드 샤바트 31a).
〔신약성서의 계명〕 계명은 그리스어로 엔톨레(entole)인데, 이것은 본래 왕의 명령 또는 공적인 명령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 일반적인 용어가 70인역에서 종교적 성격을 띤 용어가 되었다. 복음서에서 계명은 주로 예수와 바리사이들의 논쟁 안에서 발견된다. 이 논쟁들을 살펴보면 예수는 유대인들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식일 계명(마르 2, 23-3, 6), 정결 계명을 어겼다(마르 7. 1-23). 그러나 복음서 전체를 살펴보면, 예수가 유대교 계명들을 지킨 사례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수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다(마르 1, 21). 해방절 의식을 거행하셨다(마르 14, 12-16).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후, 치유된 몸을 제관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다(마태 8, 1-4). 옷단의 네 모퉁이에 하느님의 계명을 상징하는 실 묶음을 다셨다(마태 9, 20). 또한 어떤 부자 청년이 찾아왔을 때, 예수는 하느님의 계명을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지키라고 가르치셨다(마르 10, 17-22 : 마태 19, 16-22 : 루가 18, 18-23). 예수는 왜 이처럼 계명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취하셨을까? 그것은 모든 계명을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환원시키셨기 때문이다. 곧 예수는 모든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다. 예수가 유대교 계명을 어긴 경우에는 언제나 이 사랑의 계명이 침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사랑 · 이웃 사랑' 이라는 이중 계명은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윤리 지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을 기준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랑' 이라는 말뜻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호하다. 마태오는 이른바 황금률에서 사랑의 계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마태 7, 12). 바울로도 사랑의 계명이 다른 모든 계명의 요약이라고 말하면서 마태오와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탐하지 말라' 는 계명과 그 밖에 어떤 계명도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는 이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사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 13, 9-10).
〔의의와 적용〕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이 지킨 계명들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생각이다. 구체적인 예로 먹어서는 안될 음식을 정해 놓은 음식 규정과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정해 놓은 안식일 계명들을 지금 우리 시대에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다. 예수는 613개나 되는 계명들을 지키는 데 지쳐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 30)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계명을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계명은 여전히 하느님의 뜻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 있는 하느님의 계명이 2,000여 년 동안 서구 문화의 근본 질서를 확립,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인정받고 있는 <인권선언> 안에 십계명이 들어 있다는 것은 계명이 현대에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계명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되게 하려면 그것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해석해야 한다. 물론 그 해석의 기준은 사랑의 계명이다. 그리고 이때의 계명 준수는 옛 이스라엘인들에게처럼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윤리적 결단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 참고문헌  Johannes Gründel, 김윤주 편역, 《십계명 - 어제와 오늘》, 분도출판사, 1978/ K.H. Peschke, 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
학》, 분도출판사, 1991/ Hans Rotter, 안명옥 역, 《사랑의 기본 계명》,
분도출판사, 1989/ Emil Schürer, The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in the age of Jesus Christ, vol. 2, Edinburgh, T. & T. Clark, 1979/ R. Schnackenburg, The Moral Teaching of the New Testament , trans. J. Hollard-Smith & W.J. O' Hara,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5/ Louis Isaac Rabinowitz . Warren Harvey, Torah, 《EI》 15, 1971, pp. 1235~1246/ S.M. Polan · B. Häring, Commandments, Ten, 《NCE》 4, pp. 5~8/ W.J. Harrelson, Commandment, 《IDB》 1, pp. 662~663/ G. Schrenk, entole, 《TDNT》2, pp. 545~556. 〔白承眞〕
II . 종교학적 관점에서의 계명
종교 도덕적으로 꼭 지켜야 할 규범. 그리스도교에서는 '계명' 을, 불교에서는 '계율' 을 많이 사용한다. 특히 불교의 경우 불교 신자들의 생활 기준이나 불교 교단의 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을 가리켰는데 엄밀히 말할 때 '계' 와 '율' 을 구분하였다. '계' 는 계율을 지키는 주체적 · 자발적 측면을 말했다면 '율' 은 타율적 · 객관적인 규범을 가리켰다. 그러나 타율적 · 객관적 규범이라 할지라도 내적 완성을 위한 제도였기 때문에 주체적 · 자발적 계율과 서로 모순되지 않으므로 '계율' 이라는 합성어로 사용되었다. 한편 유대교에서는 '토라' (Torah), 이슬람교에서는 '샤리아' (Shariah), 힌두교에서는 '다르마' (Dharma)라는 말을 쓰는데, 그리스도교에서도 계명과 함께 율법을 혼용하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하느님의 법이 모세 오경(Pentateuch)에 계시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모세 오경을 총칭하여 '율법' 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가 유대적 율법 해석을 일신하여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으로 요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슬람교도 유대교와 같이 율법 종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율법적 규율을 중시한다. 경전인 코란 가운데 세세하게 율법적 규칙이 규정되어 있고, 특히 세속법에도 그들의 종교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힌두교의 법(Dharma)이 세속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과 같다.
〔기 원〕 문화 인류학자들은 원시인들의 종교와 의례를 연구하고 모든 도덕이나 법의 기원을 종교적인 것, 특히 터부(taboo)에서 찾고 있다. 터부는 개인이나 집단을 불문하고 일찍이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여 양자의 접촉이나 접근을 금지했던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왕이나 사자(死者), 월경 중의 여인들은 접근이 금지되고 터부시되었다. 만약 그것을 범하게 되면 일종의 종교적 재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 터부 현상은 매우 광범위하여 인간의 어떤 지위나 신분, 동물이나 식물, 결혼이나 병, 전투, 수렵, 언어가 터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터부 현상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가 항상 일치되지는 않았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계율이나 규범, 법의 원시적인 형태를 터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 둘째, 고대인들이 소박하나마 종교적인 금제(터부)를 설정하여 넘을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강렬하게 경험하였다는 점. 셋째, 그 성스러운 영역을 본능적으로 위험시하고, 그 위험을 사회적 · 문화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터부라고 볼 수 있으나, 그 터부를 통해 내적 완성을 이룰 만큼 내면화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시적인 터부를 계율의 기원으로 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각 종교 전통에 나타난 계율〕 자연 발생적이고 비문자적인 성격이 강한 계율이 터부라고 한다면 종교가 교단을 이룬 후에 문자를 사용한 종교적 · 성문법적 성격을 띠는 계율의 세세한 항목이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명실상부한 계율이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터부도 초자연적인 것이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신비적으로 금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 인간이 정당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신의 사랑과 관용을 더 잘 깨달을 수 있으며, 인간의 자율적인 행동의 제한이 사회 발전이나 도덕 질서 유지에 필요하다는 감각도 있었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계율은 세속과 종교의 세계가 분화되는 단계에서 발전하고 그 이전에는 계율의 세세한 조목이 등장하지 않는다. 계율의 일차적 목표는 세속적 인간적 욕구의 제한과 금지를 포함하고 있으니 성과 속의 분명한 이분법적 분리의 구조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종교에서 추구하는 더욱 완전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자는 금욕적 계율의 실천을 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지나친 금욕적 계율은 동방 교회의 일부 정적주의(靜寂主義)나 유대교의 바리사이파들처럼 현실 도피적이 되거나 형식적 율법주의자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율은 이러한 부정적 경향보다는 특정한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고 완덕(完德)을 이룩하기 위한 적극적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교단의 교계 제도나 권위를 뒷받침하는 방법으로서 계율은 반드시 요구되었다. 교단의 구성원은 계율을 준수함으로써 계급적 질서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고, 대부분 영성적 깊이에 따라 결정되는 종교적 가치관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영적 권위들이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계율은 세속 집단의 교계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고 영성적 집단의 교계 제도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계율이 아직도 개인적인 자기 완성의 소극적 위치에 있는 한 성과 속을 분리하고 있으며, 출가와 재가의 미분화인 대승적 계율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불교 : 재가자들은 불법승(佛法僧) 삼귀의계(三歸依戒), 살(殺) · 도(盜) · 사음(邪淫) · 망어(妄語) · 음주(飮酒) 등의 다섯 가지 계(戒), 단식 · 금욕 등의 팔계(八戒)를 지키고, 출가자는 사미(沙彌) 10계, 비구(比丘) 250계, 비구니(比丘尼) 348계 등을 지키며, 어떤 종파에서는 걸식 생활을 이상으로 하여 개인 소유물을 삼의일발(三衣一鉢)에 한정하는 철저한 극기 생활을 하였다. 이것을 위반하면 출가자인 경우 승가 추방이라는 가혹한 처벌도 한다. 그러나 대승계인 경우 보시(布施, 박애) · 지계(持戒, 절제) · 인욕(忍辱, 자비) · 정진(精進, 修善) · 선정(禪定, 持心) · 지혜(智慧, 예지)의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승가의 구조를 떠나면서도 출가자와 동일하게 사회 구원을 위한 이타(利他)를 목표로 삼는다.
힌두교 : '다르마' 를 계율의 의미로 사용하는데, 불교 가운데는 불 · 법 · 승 3보(三寶) 중의 하나인 법(法)이라는 말로 계승하고 있다. '다르마' 라는 말은 '보편적 진리' 또는 '궁극적인 것' 을 뜻하는 것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나 인간을 지배하는 법칙이 하나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결코 '다르마' 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종교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한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의미에서는 영원 불변한 '다르마' 가 사회의 규범이 되는 구체적인 법이나 규칙으로 전개되어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일반적인 의무를 규정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계급이나 카스트 제도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마' 는 종교법인 동시에 사회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 : 하느님의 앎과 힘은 무한하고 보편적이라고 믿으므로 원칙상 그 하느님에 의한 행위 규범은 당연히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세 구원의 문제나 선악 판단의 기준과 같은 중대한 문제는 미소한 인간의 지혜로는 깨닫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공동체 전체는 그 하느님 앞에서 하나의 교회가 된다고 보기 때문에 대개 정치적 · 사회적 문제로 보는 것들이 모두 종교의 문제로 여겨진다. 때문에 종교법이 국가의 법이나 사회 규범으로 구체화하는 경우는 이슬람의 '샤리아' 에서 더욱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범죄 행위를 신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날은 금요일 정오의 기도나 단식의 준수와 같은 종교적인 의무를 무시할 때에만 그들의 '샤리아' 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유대교 : 모세 십계를 개인적 · 민족적으로 종교 및 윤리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계약이라는 성격을 띠므로 다른 종교의 계율과 다른 특색을 이룬다. 그 계약은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철저히 이행해야 하는 명령의 형태를 띠며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은혜가 주어진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신의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엄격히 지킴으로써만 구원의 확실성을 믿었다. 이러한 율법은 유대 민족의 결속과 동일성을 이룩하기도 했지만 후에 율법 정신을 망각하고 형식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스도교 :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율법을 계약으로서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로 파악하였다. 즉 십계명을 종교적 금지법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킴은 하느님의 은혜를 인식하는 중심적 사실로 이해하도록 하였다. 유대교의 종교 생활은 십계명을 시작으로 성경의 기본적인 율법을 상세히 규정하여, 예수 당시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종교적 금지법을 39종류로 나누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적 율법 해석을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라는 말로 전체 율법을 요약하였다. 그리하여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그 후 신학사상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종교적 계율이 세속법에 미친 영향〕 한편 종교적 계율이 세속의 법에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종교 언어와 법률 언어 사이에 공통점이 많은 것을 오늘날도 살펴볼 수 있다. 정의 · 죄 · 책임 · 심판 · 보상 · 증인 · 증언 · 계약 · 구제 등의 언어는 세속적인 법률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들은 종교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 가톨릭의 교회법은 세속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의 경우 오늘날도 국가와 종교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보아 율법을 공동체의 기본을 구성하는 법으로 보는 경향이 잔존하고 있다. 힌두교도 '다르마' 가 사회제도에 작용하는 경우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 질서의 규칙을 범하는 것은 종교적인 배교 행위로 간주되어 벌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차츰 종교법과 세속법의 일체성이 무너져 가고 있다.
※ 참고문헌  Frederick J. Streng., Understanding Religious Man, Dickenson Publishing Company, Inc. 1969/ J.N. Moody, Church and Society, Arts Inc., New York, 1953/ F. Steiner, Taboo, Cohen & West, London, 1956/ A. William, Lessa & Evon Z. Vogt, Reader in Comparative Religion, Harper & Row, New York, 1972. 〔李恩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