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심 운동

信心運動

〔라 · 영〕Devotio mode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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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4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15세기에 독일 · 프랑스 · 스페인 · 이탈리아 등으로 보급된 그리스도교 영성 운동.
〔기원과 쇠퇴〕 이 운동은 부제이자 설교가였던 그로테(G. Groote, 1340~1384)가 창시한 것으로, 그의 제자 라드윈스(Florens Radewijns, 1350~1400)가 설립한 두 개의 수도회 즉 '공동 생활 수도회' (Brethren of the Common Life)와 '빈데스하임 참사 수도회' (Canons Regular of Windesheim)를 통해서 교회 안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교회 개혁에 이바지했다. '새 신심' 이란 '새로운' 또는 '근대' (moderna) 신심을 뜻하는 것으로 13~14세기에 그리스도교 세계를 풍미하였던 영성에 대립되는 영성으로 등장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스콜라 철학적인 영성에 대항하였으며, 특별히 에크하르트(M. Eckhart, 1260~1327)와 타울러(J.Tauler, 1300~1361)의 신비주의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 운동을 시작하였다. 15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이 영성 운동은 16세기에는 에라스무스 영성, 이냐시오 영성, 베네딕도회 영성, 프란치스코회 영성, 도미니코회 영성에까지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이들 영성에 흡수되고 말았다. 종교 개혁 시기에 '공동 생활 수도회' 와 '빈데스하임 참사 수도회' 의 수도원이 대부분 파괴되었을 때 '새 신심 운동' 은 그 자체로서의 모습을 거의 상실하였다.
〔영성과 시대적 영향 및 파급〕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영성 : 진리와 완덕을 획득하는 일을 하느님과 개개인 사이의 신비로 본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 안에 내재(內在)하는 하느님을 역설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안에 내재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 신심 운동' 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강조하였는데, 이들에 의하면 인간이 된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 안에 내재하여 인간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새신심 운동은 영성 전체를 삼위 일체의 하느님보다 인간이 된 그리스도에게 집중시켰으며, 하느님의 신성(神性)과 속성(屬性)을 고찰하고 묵상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덕을 묵상하여 그 성덕을 실천에 옮기려고 하였다. 특히 이들이 강조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사랑중에 특히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가정, 수난, 십자가 위의 죽음,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심 등의 신비였다.
①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심 :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영성은 무엇보다 그분의 수난에 대한 신심으로 나타났다. 이 당시 《준주성범》(Imitatio Christi)을 비롯한 많은 저서에서 십자가에 대해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십자가는 자기 포기 · 고행 · 생명 · 힘 · 완덕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 수난의 신심이 13세기에는 환희와 황홀이었다면, 14~15세기에 이르서는 비탄으로 변하여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십자의 길 신심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고 14처, 십자고상, 게쎄마니 동산, 피에타(Pieta), 무덤, <그리스도의 칠고(七苦)> · <성모 칠고> 등의 성화(聖畵)와 성상(聖像)이 많이 등장하였으며, 그 묘사는 비참하고도 사실적이었다.
② 성체에 대한 신심 :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사랑은 성체에 대한 사랑도 강화시켰다. 성체를 감실에 안치하고 성체 조배를 하는 관습은 12세기에 시작되었지만, 14~15세기에 와서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준주성범》 제4권에는 '성체성사' 에 관해 설명되어 있다.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는 1264년에 그리스도의 성체 대축일(지금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을 제정하였는데, 이때 교황의 명령으로 미사 전례문과 시간 전례의 기도문을 편찬한 사람이 보나벤투라(1217?~1274)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였다. 또한 성체 행렬의 신심과 예수 성명(聖名)에 대한 신심이 신자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고 번성하였다.
③ 마리아의 통고에 대한 신심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사랑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랑으로 흘러갔으며,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심은 저절로 마리아의 통고에 대한 신심으로 연장되었다. 당시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감탄과 애정으로 충만된 것이었다. 보나벤투라는 매일 종을 쳐서 성모송을 외워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수도자와 평신도에게 권장하였는데, 이것은 훗날 '삼종 기도' 를 바치는 신심의 기원이 되었다. 또 그리스도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이 하나로 융화된 <성모 통고 기도문>(Stabat Mater Dolorosa)은 교황 인노천시오 3세(1198~1216) 또는 프란치스코회 수사 자코포 다 토디(Jacopo da Todi, 1230~1306)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세기 전체에 걸쳐 마리아 신심은 '하느님의 어머니' 인 마리아가 중심이었으나 14세기에는 마리아를 '자비로운 중개자' 로서 공경하였고,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의 <성모 찬송가>에서 처음으로 '공동 속죄자' 라는 마리아의 호칭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주된 환희 · 고통 · 영광을 묵상하면서 성모송을 150번 외우는 묵주 기도가 신자들에
게 보급되었다.
세상 종말과 공심판에 대한 두려움 : 중세 시대의 교회는 '지상의 낙원' 이라고 할 만큼 번성하였으나 신자들은 내세의 천국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 종말과 공심판이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믿고 기다렸으며, 1000년을 세상 종말의 때로 믿었던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성당에는 세상 종말과 공심판에 대한 성화가 그려져 그에 대한 공포를 일깨웠다. 이와 같은 세상 종말에 대한 공포의 사상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때부터 시작되어 산튼의 성 노르베르토(Norbertus v. Xanten, 1080~1134)에 이어 설교가 빈천시오 페레리오(Vincentius Ferrerius, 1350~1419)의 시대에 절정에 달하였다. 세상 종말의 표징을 보았다고 하는 성인들도 적지 않았으며, 그들도 신자들과 똑같이 죽음과 공심판을 자주 묵상하며 두려워하였다.
염세주의와 금욕주의 : 세상 종말과 공심판에 대한 공포는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는 염세주의로 몰아넣았다. 그래서 인간 세계의 문화 · 문명 · 학문 · 과학 · 예술 · 경제 · 정치 · 오락 등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들을 멸시하고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세상과 인간 사회는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의 장소이며, 사람은 가능한 한 세상과 인간 사회를 떠나 고독과 침묵 속에서 성덕을 닦아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은 원죄(原罪)의 결과로 본성적으로 죄악에 기울어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와 용서 없이는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아야 하는 비참한 신세에 처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 이며 고통과 고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의 모든 행복과 기쁨과 쾌락은 공허한 것이므로 이를 추구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포기와 금욕 과 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교 · 자선 · 봉사를 행하는 것보다 고독 · 침묵 · 묵상 · 희생 속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실천적 수덕주의와 도덕주의 : '새 신심 운동' 은 관상보다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실천이 따르지 않는 관상에는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의지의 노력과 수행의 가치를 더 중시하였다. 완덕은 심오한 관상 · 탈혼 · 황홀 · 기적 등의 신비적 체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고 모든 임무를 완수하며 모든 죄악을 피하고 성덕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실생활에 있다고 여겼다. 이와같이 새 신심 운동은 완덕을 사랑과 관상보다는 윤리 도덕적 실천에 두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묵상을 체계화하여 보급시키려는 저서가 많이 나왔는데, 대부분은 그리스도 수난의 묵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양한 영성 수련법과 묵상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지도하며,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명상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 수련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보다 신심과 성덕을 닦기 위해 묵상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성서 번역이 학문적인 정확성에 의거하기보다는 통속적 용이성에 의거하여 이루어졌고 보다 많은 신자들이 성서를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면주의와 주관주의 : 새 신심 운동은 외적 활동과 예식의 외면적 부분보다 사람의 내면성과 지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새 신심 운동의 관점에서 행동의 가치와 공덕은 행동의 크고 작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마음의 지향과 동기에 달려 있다. 즉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피상적이고 열정적인 감정보다 내면적이고 이성적인 정서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이 영성은 시토회 영성이나 프란치스코회 영성, 카르투지오회 영성과 유사하였다.
〔대표적인 영성가〕 그로테 : '새 신심 운동' 의 창시자 그로테는 1374년에 샤르트르회에 체류하면서 단기간 수련을 받았는데, 겸손한 마음에서 사제가 되기를 거부하였지만 강론을 하기 위해 부제가 되어 평생 설교가와 선교사로 살았다. 그러나 강론이 너무 과격하여 교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단자나 시대의 변혁자 대우를 받다가 사망하기 1년 전에 강론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저서와 편지로 교회 안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그는 적극적이고 행동적 성격을 지녔으며 이론을 경시하였다. 그의 저서와 강론은 범신론과 신비주의의 오류를 약간 내포하고 있지만, 영성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회개 · 성덕의 실천 · 시련에 대한 인내 · 사도직 · 영원한 생명이라고 가르치면서 줄곧 실제적인 교훈을 남겼다. 또 성격상 사변적 신비주의에 큰 거부감을 느꼈던 그는 관상을 '구식 영성가 와 신비주의자보다 쉽게 설명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그가 설명하는 관상은 사변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완덕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는 영적 청빈과 성덕의 실천을 강조하였고, 그것을 실현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모방하는 것밖에 없다고 가르쳤으며, 당시 교회와 수도 생활에 만연된 세속주의와 나태하고 미온적인 풍토를 비판하였다. 그를 프로테스탄티즘의 선구자로 보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그의 '새 신심 운동' 의 정신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많은 부분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교회와 수도 생활 의 악폐와 퇴폐를 공격하였지만 교회와 수도 생활을 사랑하였고 그의 장상을 존경하고 순명하였다.
라드윈스 : 그로테의 제자였던 라드윈스는 스승이 사망한 후, 1383년에 창설된 형제회와 자매회의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 공동체들도 여러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와 공동체 회원들은 잘 인내하여 얼마 후 이러한 비판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1387년에 창설한 '빈데스하임 참사 수도회' 를 다른 수도원들과 합병하여 거대한 수도회를 이루었으며, 이 수도회는 새 신심 운동을 독일과 프랑스 등에 널리 보급시켰다.
체르볼트(Gerhard Zerbolt aus Zutphen, 1367~1398) : '공동 생활 수도회' 의 수사였던 체르볼트는 그로테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 《인간 영혼의 개혁》(De refor-matione virium)과 《영적 상승》(De spiritualibus ascensionibus)에 요약된 내용은 그로테의 강론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 는 회개 · 묵상 · 그리스도의 생활과 죽음에 대한 모방·세속의 포기 · 애덕 · 겸손 등을 강조하였고, 묵상의 주제 · 시간 · 시기 등을 정하여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신비적 관상을 준비할 수 있으나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강력히 권장하였던 그는 효과적인 지도를 받기 위해 같은 신부에게 성사를 받도록 권유하였다.
페터즈(Gerlach Petersz, 1378~1411) : 그로테의 제자였던 페터즈 역시 새 신심 운동에 참여하였던 인물로, <단평>(Breviloquium)과 《독백》(Soliloquium)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의 중심 사상은 '진리를 직관함으로써 정신이 해방되는 것' 이며, 그 해방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모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 즉 관상이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와 관상을 체험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천국을 미리 맛보게 된다. 그의 저서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 신심, 실천적이면서 심리적이고 감정적이면서 신비적인 신심이었다.
에가르(Heinich Egar von Kalkar, 1328~1408) : 새 신심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이자 샤르트르회 원장이었던 에가르는 그로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으나 체어볼트의 정신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가르침에는 일정한 원칙이 발견되지 않고, 다만 독서 · 묵상· 감정 · 기도 · 양심 성찰 · 통회 · 관상 등은 신심의 여러 분야가 되면서 동시에 묵상의 주제 및 조건이 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만데(Heinich Mande, 1360~1431) : 빈데스하임의 참사 수도회에서 가장 탁월한 신비가였던 만데는 《인간의 세가지 상태에 관한 책》(Liber de tribus statibus hominis)과 《사랑하는 영혼의 사랑스러운 비탄》(Amorosa querela amantis animae) 외에 10편의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그의 저서들은 근대 네덜란드의 언어학자와 문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79~1471) : '새신심 운동' 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독일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의 한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는데, 그가 집필한 많은 저서들 중에서 제일 잘 알려진 것이 《준주성범》이다. 그 밖에도 《영혼의 독백》(Solilo-quium animae), , 《최고의 선(善)을 추구하려는 정신의 상승》(De elevatione mentis ad inquirendum Summum Bonum) , 《수련자들의 대화》(Dialogus novitiorm), 《장미꽃 정원》(Hortulus rosarum), <백합 골짜기》(Valis liliorum),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관한 강론》(Sermones de vita et passione D.N. Jesu Christi) 등이 알려져 있다.
모부르누스(Johannes Mauburnus von Mombaer, 1460~1501) : '새 신심 운동' 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저서가 모부르누스의 《수행의 장미꽃 동산》(Rostum Exercitiorum)으로 새 신심 운동의 백과 사전과 같은 것이다. 이 저서는 수도자의 최고의 목표인 사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사랑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사랑으로 불탈수록 완전한 수도자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기도와 묵상의 여러 단계를 명시한 이 저서에서 모부르누스는 16세기를 풍미하였던 영성의 경향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 데보시오 모데르나 : → 《준주성범》 ; 토마스 아 켐피스)
※ 참고문헌  R. Haass, 《LThK》 3, p. 314/ P. Pourrat, 《Cath》 3, pp.712~714/ 《ODCC》, p. 4751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414/ R.Garcia-Cilloslada, 《NCE》 4, pp. 831~832/ Reinhold Mokrosch, 《TRE》 8,pp. 605~616/Pieme Debongnie, 《DS》 3, pp. 727~747. [金保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