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 근대 산업 사회의 산물인 노동 조합주의의 한 형태. 역사적 의미에서 생디칼리즘은 19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처음 형성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발전하였던 혁명적 성격의 노동 조합 운동을 뜻한다. 프랑스어로 생디칼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노동자들의 조합(syndicat) 활동' 즉 노동 조합주의' 를 지칭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 시기의 노동 조합 운동을 특히 혁명적 생디칼리즘(syndicalisme révolutionnaire) 또는 무정부적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e)이라 부른다. 그들은 사회 안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계급 투쟁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조합 활동을 사회의 파괴 수단으로 보고 프롤레타리아의 해방과 국가 자체의 전복을 목표로 하였다.
한편 영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노동 조합주의(trade unionism)가 영국식 노동 조합주의를 지칭하는 용어로 구분되고 있다. 영어 '신디칼리즘' 을 "총파업이나 노동 쟁의(sabotage) 등의 직접 행동을 통하여 의회 민주주의를 전복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함으로써, 노동 조합이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그 목표로 하는 과격한 형태의 노동 조합주의로서 프랑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혁명적 정치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원과 특징〕 이른바 '총파업 신화' 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이는 생디칼리즘의 탁월한 이론가로 알려져 있는 소렐(G. Sorel이지만, 생디칼리즘 형성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프루동(Prouchon)주의 · 마르크스주의(Max-ism) · 블랑키(Blanqui)주의 · 바쿠닌주의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혁명적 전통 및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의 경험 등이다. 생디칼리즘의 형성에 중요한 국면이 된 것은 특히 19세기 말 무정부주의자들(anarchistes)과의 결합이었는데, 그 이유는 1890년대에 이르러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그들 가운데 일부가 조합을 그들의 새로운 투쟁 영역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생디칼리즘의 근간을 이루는 다섯 가지 특징 중에서 우선 첫 번째는 국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이는 파업과 같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 국가 공권력이 자본가를 보호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는데, 생디칼리스트들이 생각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는 착취자들 편에 서서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헌병의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비(非)정치성의 추구이다. 이는 정치적 중립 유지와 정당, 특히 사회주의 정당과의 연계에 대한 거부 혹은 의회 정치에 대한 불신 경향으로 요약된다.생디칼리즘 이론에 의하면 계급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창출되는 것이지만 정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합 구성원들은 동질적이어야 하나 정당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유사한 이념을 토대로 하여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 결합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전적으로 대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조합의 활동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며 조합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연맹주의(fédéralisme)적 성격이다. 생디칼리스트들은 프랑스 노동 총동맹의 조직 구조가 중앙 집권적이지도, 독재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다고 자부하였다. 조합 구성원들은 그들 스스로가 주인이고 따라서 그들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부추기는 외압은 전혀 없으며,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유였다. 조직적인 면에서도 각 단위 노조별로 대표를 파견하여 노조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전체 대의원 대회가 최고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각 단위 노조는 자율적인 단위로서 인정되어 그들 구성원의 수에 상관없이 한 표씩을 가질 수 있었다.
네 번째로 생디칼리즘은 노동자의 해방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권고하고 있다. 직접 행동의 형태는 거리 시위부터 불매 동맹(boy-cott), 부호(label), 쟁의, 파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직접 행동이자 생디칼리즘 전략의 으뜸은 파업이다. 성공하였을 경우 고용주로부터 임금 인상과 같은 즉각적인 양보를 얻어내어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시키고 그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으며, 만일 실패했을지라도 계급간의 갈등을 극대화시켜서 무관심한 노동자나 비조합원들을 조합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노동자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파업의 정수(精髓)는 특히 총파업이었는데, 그것은 모든 생산의 중단을 의미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의 최종적 해방을 가져오게 될 사회 혁명의 서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섯 번째로 생디칼리즘은 의식이 없는 다수 노동 대중을 경멸하는 조합 중심주의, 즉 열정적인 노조원 중심주의로 표현할 수 있는 소수 엘리트주의였다. 이는 선거를 통해 다수의 의견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정치에 대하여 생디칼리즘이 가지고 있는 불신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노조원의 수가 많다는 것보다는 각 노조원들의 의지를 중요시하였다. 조합은 의지를 가진 대담한 소수의 모임이자 모든 노동 계급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조직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조합이 모든 노동 대중을 이끄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변모와 가톨릭 생디칼리즘〕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프랑스 노동 조합 운동의 중추 조직이던 노동 총 연맹'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CGT)을 주도하고 있던 세력은 바로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이었으며, 따라서 노조 활동도 주로 이 혁명적 생디칼리즘에 맞추어 결정되었다. 노동 총 연맹' 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하여 세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프랑스 노동 조합 운동의 유일한 구심점 역할을 유지하였 다. 그러나 1919년 11월에 프랑스 가톨릭 노동자 연맹' (Confédération Frangaise des Travailleurs Chrétiens, CFTC)이, 1921년 말에 혁명적 소수파에 의해 '통일 노동 총연맹'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Unitaire, CGTU)이 각각 결성되면서 그 동안의 독점력을 상실하였다. 더욱이 후자는 레닌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이후 공산당(PCF)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노조의 비정치성이라는 생디칼리즘 고유의 특성이 상실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혁명적 생디칼리즘은 1914년 이후 더 이상 프랑스 노동 조합 운동의 주류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후 프랑스 노동 운동에 결정적인 흔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노동 운동(CGL)과 스페인 노동 운동(CNT),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으로 퍼져 그곳 노동 운동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였다. 이 무렵 영국에서 대두한 길드(guild) 사회주의에서도 프랑스 생디칼리즘적인 성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미국의 노동 총동맹(AFL)의 온건한 성격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탈퇴하여 결성한 '세계 산업 노동자 연맹'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생디칼리즘은 가톨릭 신자 노동자들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제들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는데, 특히 1891년에 교황 레오 13세(1878~1903)에 의해 발표된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에 기반을 두고 있다. 회칙의 정신에 입각하여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고용주와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혼성 조합(syndicat mixte)이 아 니라 노동자들만의 노동 조합이었고, 이들은 노동 총 연맹' 의 무정부주의적이고 반(反)교회적인 성향 및 계급 투쟁적인 노선을 거부하였다. 사무원 노조와 같이 거의 중간 계급에 가까운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이 여기에 많이 참여하였으며, 지리적으로는 대도시 근교의 밀집 지역보다는 종교적 전통과 자치주의적 경향이 강한 곳에서 발전하였다. (→ 노동 조합 ; 사회 ; 사회주의 )
※ 참고문헌 F. Challaye, Syndicalisme révoluiomaire et syndicalisme réformiste, Félix Alcan, 1909/ G. Lefranc, Le Symdicalisme en France, PUF, 1953/ R. Mouriaux, Le Symdicalisme en France, PUF, 1992/ J.-D. Reynaud, Les syndicats en France, Seuil, 1975/ 신행선, <생디칼리즘>, 《서 양의 지적 운동》, 지식산업사, 1998/ 안병직 외, 《유럽의 산업화와 노동 계급》, 까치, 1997/ 오광호, <생디칼리즘의 성격>, 《프랑스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서울대학교 프랑스사 연구회 편, 느티나무, 1989. 〔申倖先〕
생디칼리즘
〔프〕syndicalisme · 〔영〕syndi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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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혁명적 소수파에 의해 결성된 '통일 노동 총 연맹' 은 레닌의 영향력을 강하게 반영함으로써 생디칼리즘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