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움직이는 한 존재의 능력 혹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본성에 상응한 본체. 생명을 뜻하는 라틴어 '비타' (vita)는 '살다' 라는 의미의 동사 '비베레' (vivere)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생명은 움직임이라는 특징으로 묘사되는 그 어떤 실체로,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추상 명사이다. 일반적으로 생명은 "목숨, 사물을 유지하는 기간, 사물의 중요한 점,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세포 상호간의 활동에 의한 생물의 생활 현상 일체에서 추출되는 것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생명은 과학의 연구 대상으로 되어 있는 생물이 나타내는 속성이다. 보통 생명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의 경우 개체 내의 생명을 의미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개체 · 기관 · 조직 · 세포 등의 생물체의 구성 단위도 생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과학적 ·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생 명 현상은 복잡한 유기체 내의 특수한 에너지계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생명 자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나 인간의 생명을 전적으로 자연적 · 생리학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하려는 생명관에는 한계가 있다. 성서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논하는 데 있어 인간이 구별할수 있는 유기물의 세계와 무기물의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구별을 거의 서술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세계만을 인정한다. 성서는 모든 분리가 바로 어두움에서 빛이 갈라진 최초의 분리에서 시작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명의 한 표현이다(창세 1, 4). 즉 하느님 없이는 모든 것이 무(無)요 혼돈이요 공허한 것이다(1, 2). 모든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움직이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Ⅰ . 성서에서의 생명
〔구약성서〕 용어 : 구약성서에서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로는 '하이임' (חַיִּים), '네페스' (נֶפֶשׁ), '너샤마'(נְשָׁמָה), '루아흐' (רוּחַ) 등 네 가지이다. 이 단어들은 주로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뜻한다. 본래 '바람' , '숨' , '영' 을 의미하는 '루아흐' 는 주로 생명을 뜻하였고 너샤마' (숨결)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욥기 34, 14-15). 또 구약성서에 360회나 등장하는 피(דָּם)는 구약의 생명 이해에 매우 중요한 용어인데, 이는 생명력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다. 피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명령은 이같이 피는 생명이 머무르는 곳으로, 나아가 생명 자체로까지 간주되었기 때문이다(창세 9, 4-6 : 레위 3, 17 : 7, 26-27 ; 17, 1-16 ; 19, 26 ; 신명 12, 16. 23-27 등). 모든 피는 생명의 원천이며 온갖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기 때문에 사람의 피뿐만 아니라 동물의 피까지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구약성서의 생명관이다.
인간 창조와 생명 : 구약성서에서 생명은 숨과 피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야휘스트계(J) 창조 설화에서 두드러진다. "그때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 7)는 구절 안에는 인간의 위대함과 연약함이 함축되어 있다. 인간은 하느님이 손수 흙을 빚어 만든 작품으로서 그분의 숨결이 불어넣어짐으로써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세상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과도 겨를 수 없는 인간의 위대성이 두드러진다. 다른 한편 하느님이 만든 흙덩어리 자체는 아직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였으며, 그분 친히 그에게 불어넣어 준 '생명의 숨' 을 통하여 비로소 인간은 생명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이 부여한 생명의 숨을 거두어 가면 더 이상 생명체로 살아 남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는 한없이 연약할 수밖에 없다(잠시 있다 사라지는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서는 시편 39, 6 : 49, 13 : 이사 40, 6-7을 참조). 인간은 흙으로부터 나와 결국 그곳으로 되돌아갈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는데(창세 2, 7), 이 같은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인간은 범죄하 게 되었고, 여기서 그의 불행은 시작되었다는 내용이 창세기 3-11장의 핵심 내용이다.
하느님이 모든 생명의 원천임을 말하는 내용은 창조 설화(창세 1-2장)를 비롯하여 성조사(창세 12-50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설명되는 후손의 번성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력을, 가축의 번식은 가축의 생명력을, 땅의 풍요로운 '소출은 땅의 생명력을 말해 준다. 이러한 축복 이야기는 결국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임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인간의 죄가 많아질수록 그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도 하느님이 인간 생명의 원천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사제계 전승 참조 : 창세 11, 10-27a. 31-32). 구약성서는 곳곳에서 하느님이 인간 생명의 원천임을 고백한다. "진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시편 36, 10). 또한 하느님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야훼께서는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1사무 2, 6 ; 신명 32, 39 ; 욥기 14, 13-17).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을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구절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구절도 등장한다(이사 17, 7 ; 42, 5 ; 욥기 10, 8-9 ; 시편 139, 13-16).
죽은 인간의 생명 :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 생명은 우연적 또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선물인 인간 생명은 천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보다는 현세적인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장수(長壽)는 바로 그분이 베푸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시편 21, 4 ; 34, 12 : 91, 16). 구약의 사람들은 육체적 죽음을 인간 생명의 끝이라고 보았다. 죽은 자들은 어둠침침한 지하 세계인 '셔올' (שְׁאוֹל)에 내려가 있게 된다고 여겼다. 지하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를 뜻하는 '셔올' 은 구약 성서에 65회 등장하지만,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서 로 일치하지 않는다(잠언 1, 12 : 15, 11 : 27, 20 : 시편 88, 12 : 욥기 26, 6 등)
죽은 인간의 생명에 관한 진술은 구약성서 후기 문헌에서 발견된다. 에녹과 엘리야는 세상 삶을 마치면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승천하였다고 한다(하느님이 에녹을 데려갔다는 이야기와 에녹의 승천기는 창세 5, 24 : 집회 44, 16 : 49, 14, 그리고 엘리야의 승천기는 2열왕 2, 11 : 집회 48, 9을 참조). 이 같은 일련의 승천기 이면에는 이미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삶은 지속된다는 사상이 깃들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후대에 삽입된 부분으로 간주되는 이사야 묵시록(이사 24-27장)에는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이사 26, 19). 다니엘 예언서에는 죽은 이의 부활과 더불어 심판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 "티끌로 돌아갔던 대중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히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원한 모욕과 수치를 받을 사람도 있으리라"(다니 12, 2).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구약성서의 진술은 마카베오 후서에서 절정에 이른다. "너는 우리를 죽여서 이 세상에 살지 못하게 하지만 이 우주의 왕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위해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2 마카 7, 9 ; 7, 14. 23 ; 14, 46). 또한 마카베오 후서에는 의인은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겠지만 죄인은 그에 걸맞는 심판과 벌을 받으리라는 상선 벌악 및 부활에 관한 신학적 진술도 들어 있다. "나는 지금 사람의 손에 죽어서 하느님께 가서 다시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으니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너는 부활하여 다시 살 희망은 전혀 없다" (2마카 7, 14 : 참조 : 7, 36). 또 산 이들과 죽은 이들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유대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는 내용도 등장하는데, 세상 사람이 저승으로 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은 괄목할 만하다.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2마카 12, 42). 그뿐만 아니라 죽은 이들 또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분은 하느님의 예언자 예레미야이십니다. 이분은 우리 민족과 거룩한 도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2마카 15, 14). 또한 제2 경전 중에서 가장 늦은 작품으로 꼽히며,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영향을 많이 받은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이 저승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강조하였다(지혜 1, 15 : 3, 1-9 : 5, 15).
〔신약성서〕 공관 복음서 : 생명(목숨)에 해당되는 신약성서의 용어는 '프쉬케' (ψυχή)와 '조에' (ζωή)이다. 흔히 '프쉬케' 가 '세계 내의 생명' 을 뜻한다면, '조에' 는 죽은 후에 구원의 은총으로 선사되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세상에) 살다' 또는 '영원히 살다' 를 의미하는 동사 '초오' (ζω)에서 유래된 명사 '조에' 는 요한의 복음서에 36회 등장하는 반면에 공관 복음서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마태오의 복음서에 7회, 마르코의 복음서에 4회, 루가의 복음서에 5회). 공관 복음서에서 생명 (ψυχη)은 대부분의 경우 종말론적인 의미를 띤 '영원한 생명' 을 뜻한다(다만 루가 12, 15 ; 16, 25에서는 현세적 · 지상적 생명을 뜻함). 공관 복음서 저자들은 이 같은 종말론적 구원 선포에 '생명' 이라는 표현보다는 '하느님 나라' 또는 '하늘 나라' 를 자주 사용하였다. 반면에 '하느님 나라'는 요한의 복음서에 단 두 번 등장한다(요한 3, 3. 5).
예수는 현세적 삶과 현세의 생명을 평가 절하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였다. 그는 인간 생명을 구하는 일(마르 3, 4)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그의 삶 전체가 결국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삶이었다. "사실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르 10, 45). 세상 삶과 현세의 생명을 존중하는 예수의 모습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두드러지는데,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 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마르 10, 21 : 마태 19, 21 : 루가 18, 22). 예수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현세 생명을 위하여 투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현세 생명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삶에 목표를 두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따르도록 가르쳤다(마르 8, 35). 죽음 후에 오는 새 시대의 삶,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하여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 (ζωή αἰώνιος)에 대한 희망은 이미 구약성서의 의미에서 보았듯이 마르코 이전 전승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마르 10, 17. 30 참조), 이는 유대교 묵시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바오로의 생명관 : '삶' (생명)과 '죽음' 은 바오로 구원론의 핵심 용어이다. 바오로 서간에서도 '프쉬케' 는 대부분 현세적 생명을 뜻하였으며, '조에' 는 거의 하느님이 주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였다. 바오로 신학에서 영원한 생명은 곧 그리스도교 실존의 궁극적 목표로 이해되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을 섬기는 종이 되었으니 이제 여러분이 맺는 열매는 성덕으로 이끌고 그 종국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 22).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는 인류 구원 사건의 결과를 말할 때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 이라는 표현보다는 '의화(의로움)' (δικαιοσύνη. 1, 17 ; 3, 5. 21. 22. 25. 26 등)나 '속량' (ἀπολύτρωσις. 로마 3, 24 : 8, 23)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이전에 인간은 누구나 죄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하였다. "실상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모두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논증한 바 있습니다"(로마 3, 9 : 3, 23). 죄는 아담의 범죄로 이 세상에 들어와 전 인류에게 퍼졌다(로마 5, 12-21). 또 바오로는 율법의 굴레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죄의 굴레 안에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죄가 여러분을 지배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니, 실상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는 것입니다"로마 6, 14 ; 참조 : 갈라 3, 23 ; 4, 4-5).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죄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의화된다(로마 3, 21-25).
바오로는 성령을 통한 생명과 새로운 삶을 강조하였다.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으며 이로 인해 죽음이 모든 사람을 덮쳤으나(로마 5, 12)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ὁ ἔσχατος ᾽Αδὰμ εἰς πνεῦμα ζῳοποιοῦν, 1고린 15, 45c). 바오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에 도달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한다고 말하였다(로마 8, 10-11 ; 2고린 4, 10. 12 ; 로마 14, 7-8 ; 갈라 2. 20 ; 필립 1, 21). 따라서 신앙으로 의롭게 된 이들(로마 5, 1)과 성령을 받은 신앙인들(로마 8, 15)은 "새로운 생명 안에서"(로마 6, 4) 살아감으로써 '성령의 열매' 를 선사받게 된다(갈라 5, 22-23) .
요한의 생명관 : 요한의 복음서 저자는 자연적 · 세계내적 생명을 나타내는 '프쉬케' 와 구별하여 신적(神的)생명을 말할 때는 늘 '조에'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점은 "자기 생명(ψυχή)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것이며···미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원한 생명(ζωή)으로 보존할 것이다" (요한 12, 25)라는 구절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요한 복음서의 생명관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론에 근거한 것이다. 생명은 '평화 · 빛 · 기쁨 · 진리 · 말씀' 등의 명사와 '믿다 · 깨닫다 · 사랑하다' 등의 동사와 더불어 요한 복음의 신학, 특히 요한의 그리스도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생명' 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복음서를 집필하였다고 했다. "이런 일들을 기록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한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ζωὴν ἔχητε)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20, 31).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이미 천지 창조 때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 이로서(1, 1) 믿는 이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세상에 파견되어(3, 16),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며(6, 33) 생명의 빛이다(8, 12). 다음 구절에서 예수는 생명 자체와 동일시되고 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14, 6).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ἡ αἰώνιος ζωὴ)이란 오직 한 분의 참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또한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 3). 또한 하느님 아버지가 파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일로 이해하였다.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를 여러분이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느님의 일(τὸ ἔργον τοῦ Θεοῦ)입니다" (6, 29). 이를 달리 말하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믿는 것이며, 이는 곧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 친교를 나눔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이미 이 세상에서 생명을 얻고 있다고 보았다(3, 15-18 : 5, 24 ; 6, 47). 이같이 요한은 믿는 이들에게 현세에서부터 선사되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하면서도 미래적 성격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5, 27-29 ; 6, 39-40. 44. 54 : 12, 48 ; 17, 24).
※ 참고문헌 김영남, <그리스도교의 생명 이해 -성서 신학적 고찰>, 《가톨릭 신학과 사상》 20호(1997. 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64~89/ G. Dauzenberg, Leben, 20, pp. 520~530/ A. Sand, yuch,《EWNT》3, pp. 1197~1203/L. Schottroff, zwh, 《EWNT》2, pp. 261~271. [辛敎善]
II . 윤리 신학에서의 생명
〔그리스도교적 생명관〕 성서적 의미를 바탕으로 그리 스도교적 생명의 의미를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 간 생명의 본질은 하느님의 모상성이다. 인간 생명의 원 인자 하느님은 진흙으로 빚은 사람의 코에 입김을 불어 넣었는데(창세 2, 7), 코에 불어넣은 하느님의 숨결은 인 간 생명의 영혼이기에 인간 생명은 하느님스러우며 신성 하다. 인간 생명의 기원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 게 있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침해는 곧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신성한 인간의 생명은 소유물이 될 수 없고 다만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부여한 선물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 선물인 생명 의 관리자로 삼고 그 관리자에게 충성을 요구한다(1고린 4, 2). 셋째,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생명의 신성성에서 하 느님의 자녀다운 품위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이 런 인간의 품위는 인간이 갖는 생명성의 목적 안에서 발 견될 수 있다. 넷째, 인간의 생명은 지상에서 끝나는 존 재가 아니라 하느님성을 분유(分有)하고 있기 때문에 진 복(眞福)으로 초대된 존재이다. 그 진복의 실체는 하느 님의 사랑을 받아 부패하지 않는 신령한 생명과 영원한 일치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사목 18항). 그러므로 인간은 앞으로 누릴 부활 영광의 후보자이며, 이제 평범한 피조 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모두 물려받을 후보자이다. 다섯째, 인간 생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의 완전 성에 참여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에페 4, 13)이며 이
를 위해 매순간 인격적 응답으로 불 린 존재이다. 또한 생명은 인간의 자 유와 공동 책임에 맡겨져 있다. 인간 은 자기 생명의 독단적 주인이 아니 고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서 자신의 생명을 관리하는 존재이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은 은약(恩約)의 윤리를 사는 으뜸가 는 증거이다. 서로의 생명을 돌보고 책임성 있게 전수하며 그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참된 유일신 사상의 표 현이며, 인간 모두 한 하느님 아래에 서 한 가족임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 창조 신학적 측면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신앙의 주된 증언은 성서의 첫째 장 에 나타나 있다. 즉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그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창세 1, 26-27). 그러므로 인
간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성서의 첫 번째이자 근본적인 증언이다. 여기에 인간의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서 인간의 초월적인 개방은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의 주된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사회 질서에 있어서 양도할 수 없 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또 하나 의 근거는 하느님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하느님과 직접적 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 의 모상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신의 피창조성 위에서 자 신의 개인적인 존엄성의 최후 근거인 하느님을 지향한 다. 인간의 최고의 존엄성은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관계 가 드러나는 곳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론적 · 구원론적 측면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 성은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철회될 수 없다는 것이 성자의 육화를 통해서 증명되었다. 말씀이 실제로 인간 이 되어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예수는 하느님을 위 한 인간이며, 예수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완전히 드러났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존엄성까지도 회복시켜 주었고, 고통에 빠 뜨리는 죄의 굴레로부터 자유를 주었다. 그러므로 인간 의 고유한 존엄성은 죄로 인해서도 상실되지 않는 것으 로, 이 존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에게 영원히 보장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 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사랑으로 모든 인 간들을 부르고 구원한다는 것을 믿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는 출신이나 능력에 좌 우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종말론적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인간 생명의 존엄 성에 대한 근거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영원한 삶으로 의 초대에 놓여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하느님에게 있어서 자신이 아 주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자
신이 영원한 삶으로 초대되었다는 것을 믿기에, 인간 생 명의 존엄성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안에 아주 뿌 리깊게 근거하고 있다. 종말에 관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드러나는 인간과 세상의 완 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역사적인 현 존 재를 벗어날 때, 인간에게는 단지 불멸의 영혼, 그리고 사랑과 사랑의 업적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선사된 미래로 받아들여지는 자신의 실제적인 현 존재가 남을 것이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이 목표로부터 현재의 인간은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 않고, 아직 완성되 지 않았지만 완성으로 불린 존재로 인식된다.
〔생명에 관련된 문제〕 생명에 관한 회칙 : 생명에 관련 된 윤리 신학적인 문제는 생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문 제이다. 생명의 역사는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자기 형성 과 인간 완성의 역사이며, 생명은 개인적인 존재와 자유, 유일회적인 역사의 가능성이며 인간 사이의 관계의 역사 이다. 이러한 인간 생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교회는 오늘날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면서 실천적인 가르침을 제 시하였다. 그 관심을 표명한 첫 번째 회칙이 1968년 7 월 29일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발표한 산아 조절에 관한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이다. 이어 서 교회는 1970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인공 유산과 그 법적 자유화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에 대 항하여 강력하게 반대 운동을 펼쳤고,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선언이 교황청 신앙 교리성에서 발표한 <인공 유 산 반대 선언문>(Quaestio de Abortu, 1974. 11. 18)이다. 이 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 )의 사도적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1981. 11. 22)에서 재확인되었으며,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 3. 25)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그 불가침성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재천명하였다.
인간 생명의 침해 문제 :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윤리 에서 생명은 지고(至高)의 선(善)이며, 이 생명에 대한 침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해 금지 규정은 하느 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였으 며, 윤리 신학 교과서에서는 인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한을 제시하였다. 생명에 대해 인간은 사용 권만을 갖고 있으므로 인간은 생명을 손상됨이 없이 보 존하여야 한다. 살해 금지 규정에서 무죄한 이에 대한 직 접적인 살해는 전통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되지 않 으며, 간접적인 살해에 해당하는 정당 방위나 사형 혹은 정당한 전쟁에서의 살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에 대 한 침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된다. 물론 교회는 생명 의 보존을 위하여 존재하는 더 높은 가치들을 모두 포기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 그리고 최종적 목적, 즉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 다. 그리스도의 완전성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이웃에게 내어 주는 사랑과 이웃에 대한 형제적 책임성에서 열매 를 맺는다. "이 가치들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잃을 위험을 무릅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수도 있다"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 9항). 그러므로 현실적인 육체적 생명은 최고의 선은 아니다. 즉 그 가치 는 하느님에 대한 봉사와 이웃에 대한 봉사에서 그 가치 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생명을 바쳐 순교하거나 위급한 상황에 있는 이웃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은 더 큰 선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자발 적 사랑의 표현으로서 자기 희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덕 목이지만, 타인에 의해 "인간 생명이 더 높은 목적을 달 성하기 위한 하나의 단순한 수단으로서 취급될 수는 결 코 없다" (동 9항).
그리스도교 윤리의 책임성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 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안에 근거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 생명은 동등한 권리를 지 닌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은 태아, 정신병 환자, 임종자 등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생명을 단지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 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 복제나 인간 배아 복제 · 인공 수정 · 안락사 · 인공 임신 중절 등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며, 뇌사 또한 신중한 판 단이 요구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형도 서유럽 윤리 신학자들 안에서 정당한 살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 교 회의 일치된 공식적 가르침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십계명에 의한 타인의 생명에 대한 보 호의 의무와 자기 생명에 대한 보장의 권리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히 보 호되어야 한다. 인공 유산과 유아 살해는 저주할 죄악이 다" (사목 51항)라고 단죄하였으며, <인공 유산 반대 선언 문>에서는 "생명은 너무나 근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극 히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도 그 가치를 보존한다"(14항) 라고 하였다.
인간 생명의 시작 이론 : 오늘날 인간 생명에 대한 문 제 중에서 특히 윤리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이다. 급속히 성장하는 생명 공 학의 기술은 인간 생명의 조작을 통해 미래를 위한 발전 이라는 명목으로 인간 생명에 대한 침해가 가속화되고 있고, 또한 인간 생명 시작의 기준에 따라 낙태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문제는 오늘날 매우 심각한 문제 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교회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유전자형 의 시작 이론' 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 순간에 영혼이 주 입되고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의 생명이 시작한다는 주장으로, 오늘날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분할의 시기 이론' 은 수태 후 약 14일 간 일어나는 세 포 분열은 분열 이전의 세포들이 가진 형질과 똑같은 형 질의 것들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데 착안하여 수태 후 14일 간의 미분화 배아 세포는 인간적인 인격 개체라고 불릴 수 없으며, 개체화 없이는 어떠한 인격화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개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에 한 사람의 인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개 체화가 되었을 때 인간의 생명이 논해져야 한다는 것이 다. '착상 이론' 은 생명의 시작을 착상에서부터 보는 이 론이다. 이러한 견해는 수정된 세포가 모체에 정착되지 않고 그전에 소멸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시 작을 대뇌 피질의 형성에서부터 보는 '대뇌 피질의 인간 화 이론' 은, 대뇌의 형성과 함께 인간의 인격을 위한 결 정적인 가능 조건이 발생하며, 그 결과 영혼의 주입이 발 생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뇌의 형성은 인간 생명의 기 원을 확정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 죽음의 시점을 결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였 다. 대뇌의 기능이 중지되면 인간을 더 이상 인간 존재로 볼 수 없듯이, 이 대뇌의 형성 이전에도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 중 에서 교회는 '유전자형의 시작 이론' 외에는 모두 거부 하고 있다. (⇦ 생사 ; → 죽음 : → 낙태 ; 사형 ; 살인 ; 생명 윤리학 ; <생명의 복음> ; 안락사 ; <인간 생명>)
※ 참고문헌 Waldemar Molinski, Herders Theologisches Taschen- lexikon, Bd. 454, Verlag Herder, 1972, pp. 282~288/ 이동익, 《생명의 관 리자》,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4. [金政友]
생명
生命
[라]vita · [영]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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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느님의 숨결이 불어넣어짐으로써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