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啓蒙主義

[라]illumiminismus · [영]enlightenment · [독]Aufklä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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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리고 작).

루이 14세(리고 작).

17세기 후반에서 시작되어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근대 사조의 하나. '계몽' 이란 말은 본래 '빛이 들게 하는 것' 즉 '어둠을 밝히는 것'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계몽주의' 또는 '계몽 사상' 이란, 어리석고 몽매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이성(理性)에 토대를 둔 지식이라는 광명의 세계로 이끌어 주려는 사조를 뜻한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러한 계몽사상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에까지 소급된다. 그러나 그것이 철학의 영역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쳐 인간의 의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발생 배경〕 계몽주의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크게 역사적 배경, 사상적 배경, 문화적 배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그 역사적 배경으로는 우선 16세기에 시작하여 특히 프랑스의 루이 14세(1643~1715)로 대표되며 18세기까지 계속된 '절대 군주제' (絶對君主制)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절대 군주제 아래에서 군주는 신(神)의 대리자로서 모든 법을 초월하고 있다. 그는 신 앞에서만 책임을 지며, 지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백성 또는 신하가 군주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불충일 뿐 아니라 독성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16세기 초부터 17세기 중기까지 계속된 '종교개혁' 내지는 '종교 전쟁' 을 들 수 있다. 즉 슈말칼덴 전쟁을 위시하여 30년 전쟁(1618~1648)에 이르기까지, 새로 대두한 프로테스탄트 계통과 가톨릭 계통이 대립하여 종교의 이름으로 — 비록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재산의 문제와 영토의 문제가 더중요한 문제였다 할지라도 — 서로를 살륙하는 참극을 벌였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깊은 실망을 안겨 주었고, 특히 종교를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배척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러한 배경 아래서 인간 이성에 토대를 둔 삶의 좌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둘째, 그 사상적 배경으로는 근대의 경험론(經驗論)과 합리론(合理論)을 들 수 있다. 그중 경험론은 베이컨(F. Bacon, 1561~1626)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학문의 최대 과업은 자연을 서술하는 것이며, 이것을 토대로 하여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자연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표상들 즉 우상(偶像)들을 제거해 버려야 했고, 인간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미신들을 타파해야 하였다. 또 그는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인식의 원천은 관찰과 실험을 토대로 한 경험이며, 유일하고 참된 방법은 귀납법(歸納法)으로 이렇게 얻어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험론은 로크(J. Locke, 1632~1704)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룬다. 다음으로 합리론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 라 일컬어지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이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토대는 '생각하는 존재' 인 '나' [我〕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내 이성으로 명백하고 확실하게 인식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진리였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한없이 신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근대의 인간은 이제 전통과 권위에 맞서서 인간의 이성을 앞세우게 되었고, 또한 사회 체제 특히 절대 군주에 맞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게 되었다.
셋째, 문화적 배경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이미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유럽 사회에 많은 영향을 준 르네상스(Renaissance)이다. 인본주의(人本主義)를 표방하는 르네상스는 이전 학문과 철학적 권위 내지는 원리에 반기를 들고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새로운 과학과 함께 자연에 관한 연구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러는 '과장된 이성주의' 로 나타나게 되었고, 개혁의 물결은 권위의 원리에 반기를 드는 종교적인 차원에로까지 확대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등에서는 개혁의 정치적인 동기가 종교적인 동기와 서로 맞물리게 되었으며, 권위의 원리에 반기를 든 투쟁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또 데카르트의 합리론 역시 명석한 이데아의 요청과 함께 자아의 영역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아(自我)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주요 조건은 18세기 과학이 이룩해낸 거대한 업적 때문이었다. 실제로 계몽주의의 노선을 결정적으로 자극한 요소는 과학 특히 천체관이었다. 끊임없는 철학적 논쟁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결론들에 직면하여—적어도 계몽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갈릴레이, 뉴톤(Newton), 파스칼(Pascal), 보일(Boyle) 등이 주장해온 과학은 나름대로 무엇인가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논증해 주었다. 이는 이성이 형이상학적 추상이 아닌, 현상들의 분석에 방법론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형성과 확대〕 계몽주의는 베이컨이나 홉즈(T. Hobbes, 1588~1679)로부터 시작되어 1781년에 저술된 칸트(I. Kant, 1724~1804)의 《순수 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이 사조가 각국으로 번져 가는 동안 새로운 이론을 낳고 더 깊은 시각에서 계몽 사상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는 로크에 의해 제기된 계몽 사상이 도덕관을 중시하는 철학자들이나 이신론(理神論, Deism)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에게로 확산되어 허치슨(Hutcheson) 흄(Hume), 틴달(Tindal, 콜린스(Collins), 기본(Gibbon) 등이 이를 이어갔고, 더 나아가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계몽주의는 볼테르(Voltaire) 디드로(Diderot), 루소(Rousseau), 달랑베르(D'Alembert), 돌바크 (D'Holbach) , 콩디약(Condillac) 등으로 이어지면서 만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트라시(Destutt de Tracy), 카바니(Cabanis)와 같은 유물론적 입장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사상가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으며, 그 문화와 함께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계몽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계몽주의는 단순히 프랑스의 그것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소아베(Soave), , 조이야(Gioia), 로마노시(Romagnosi), 보렐리(Borelii) 등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계몽주의는 프랑스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단일성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사실들을 보다 생생히 접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노선을 마련함으로써 참된 '경험 철학' 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라이마루스(Reimarus) , 멘델스존(Mendelssohn), 니콜라이(Nicolai) 에베하르트(Eberhardt), 헤르더(Herder) 등이 계몽주의를 주창하고, 이어 계몽주의자 또는 낭만주의적 관념론자라고 설명되는 칸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헤르더 같은 사상가는 정신의 발전 개념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18세기 후반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가던 계몽주의는 같은 시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에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몽주의의 요소는 이후까지 유럽의 사조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는 현대의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대의 사상 속에서 이성과 자유의 발견, 가치와의 문제 등을 통해 계몽주의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의 인문 과학은 계몽주의 시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조에 따른 것인 만큼 계몽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일어난 개혁과 혁명, 전쟁과 파괴,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탄생, 새로운 교육학 · 심리학 · 인간학의 탄생은 계몽주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과학 · 기술 혁명은 점점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본래의 계몽주의적인 요소들이 발 붙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특성과 이념〕 1783년 죌너(J.F. Zöllner, 1753~1804)는 <베를린 월보>에 발표한 글 속에서, "오늘날 계몽주의란 말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고,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어디에서도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없다" 고 한탄하였다. 곧 그 물음에 대한 몇 개의 글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칸트의 해답(1784)이다. 칸트는 계몽주의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계몽이란, 인간이 자기 탓으로 초래한 미몽(未蒙) 또는 미성숙(未成熟)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미성숙이란, 자기 자신의 이성(理性)을 남의 도움 없이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자기 이성의 결함 때문이 아니고 다만 자신의 결단과 용기의 결함 때문인 경우이다. 그러므로 계몽의 목표는, 첫째 인간을 그 후견인(後見人)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고, 둘째 인간이 자기 이성을 즈스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그 이성의 힘으로 확실하고 명백하게 인식한 진리를 토대로 하여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계몽주의의 특성은 인간 이성의 자율성(自律性)과 독자성(獨自性)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계몽주의에서는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 자기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 법칙을 토대로 하여 모든 것, 즉 세계 · 인간 · 신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것을 하나의 완결된 체계로 작업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이성은 그 자체로 진리의 척도가 되며, 입법의 존엄성뿐 아니라 종교의 '거룩한 것' 까지도 그 계몽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계몽 사상의 터전에는 그 확대 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한 모습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념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이념들을 살펴보면, 첫째로 '미래 지향적인 이념' 즉 '계몽 이념' 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삶의 좌표를 제시해 주는 '보편적인 인간 이성의 이념' 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 · 독일 등 대륙의 계몽 사상가들이 이성을 완결된 것으로 본 반면에 영국의 계몽 사상가들은 이성을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들 모두에 있어 이성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능력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삶의 좌표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셋째로 계몽 사상에는 '관용과 화해의 이념' 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서 관용의 이념은 서로 다른 신앙 형태를 인정한 것으로 훗날 영국에서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화해의 이념은 특히 라이프니츠(G. W. Leibniz)를 위시하여 독일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면서 종교나 철학 논쟁에서의 화해에 바탕이 되었다. 넷째로 계몽 사상가들은 진리 발견에 방해가 되는 '편견을 비판하는 이념' 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념은 후에 많은 의미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베이컨의 이론인 '우상론' 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 의' 에서, 그리고 독일의 사상가 토마지우스(C.Thomasius)의 이론에서 발견되고 있다.
〔종교와의 관계〕 계몽주의는 종교, 특히 당시의 계시 종교(啓示宗敎)가 인간에게 타율을 조장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미성숙을 강요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계시 종교를 그 일차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단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로 설명해 버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의 이름으로 계시 종교를 극복해 버리려고 하였다. 그 결과 계몽주의와 계시 종교 사이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긴장 관계 내지 적대 관계가 성립되어 왔으며, 이러한 긴장 관계 내지 적대 관계로부터 서로 대립되는 주의(主義)가 생겨나게 되었으니,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이성주의와 신앙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계몽주의와 계시 종교는 그 긴장 관계 내지 적대 관계를 통해 서로 얻은 바가 많았다. 즉 양편이 서로 자기 자신을 좀더 명백히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계시 종교는 계몽주의와 대결하면서 자기 이해에 있어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계몽주의는 계몽의 의미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참된 계몽이란 이성이 전통 · 권위 · 계시 종교 등 다른 것을 계몽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계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성 자체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또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계몽된 이성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한계성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검토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이처럼 계몽주의나 계시 종교 사이에 대두된 문제는 앞으로도 결코 끝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계시 종교가 계몽 사상을 피해 버리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해 나갈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진면목을 명백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몽 사상이 계시 종교를 피해 버리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해 갈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계몽을 소홀히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참된 계몽 사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루소 ; 볼테르)
※ 참고문헌  E. Cassirer, Die Philosophie der Aufklärung, 2. Aufl., Tübingen, 1932/ M. Horkheimer, Th. W. Adomo, Dialektik der Aufklärung, Amsterdam, 19471/ M. Seckler, Aufklärung und Offenbarung, Christlicher Glaube in moderner Gesellschaft, Teilband 21, hrsg. von F. Böckle, F.X. Kaufmann, K. Rahner, B. Welte, pp. 5~78/ Was ist Aufklärung? Beiträge aus der Berlinischen Monatsschrift(1783-1786), hrsg. von M. Albrecht und N. Hinske, Darmstadt, 1973. 〔鄭達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