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 샤를-카미유

Saint-Saens, ChadesComime(18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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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카미유 생상스.

샤를-카미유 생상스.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가장 지적인 음악가로 손꼽히며, 대표적인 음악 작품으로 <제3 교향곡>(Troisieme Sympho-nie)과 <삼손과 들릴라>(Samson et Dalila)가 있다.
〔생애와 음악 활동〕 1835년 10월 9일 파리 근교의 센 마리팀(Saie-Maritime)이라는 작은 마을의 작곡가 가문 에서 태어났다. 디에프(Dieppe)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에는 7세기에 메로빙거 왕조의 티에리 3세(Thiery Ⅲ)가 설립한 수도원이 하나 있었는데, 영주는 이 수도원을 성 필베르 드 주미에즈(Philbert de Jumieges)의 제자이고 세례명이 시도니오(Sidonius)인 아일랜드의 한 수도자에게 위임하였다. 훗날 성 시도니오라는 이름을 딴 성(城)이 수도원 한 권에 세워지고 온 마을이 이 성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 시도니오라는 성(城)의 이름은 점차 프랑스식 발음인 '생 상' 으로 불려지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기원된 것이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5세에는 베토벤 소나타를 훌륭히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생상스는, 6세 때 라틴어 · 그리스어 · 수학 · 천문학 등을 배웠으며, 7세부터는 스타마티(Camille-Mane Stamaty) 에게서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아 11세 때에는 '화려한 기교의 천재적 피아니스트' 라는 극찬을 받기까지 하였다. 스타마티는 그에게 피아노와 함께 작곡 이론 등 음악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지도해 주었었다. 12세 때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이듬해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알레비(J.-F.F.-E. Halévy) 등으로부터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작곡을 배웠으며, 졸업 후인 1853년부터는 파리의 생 메리(Saint-Merry) 성당에서, 그리고 1857년부터는 20년 동안 생 마들렌(Saint-Madeleine)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며 탁월한 즉흥 연주가로 명성을 굳혔다. 또 1861년에는 파리 국립 음악 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발탁되어 4년의 재직 기간 동안 포레(G.- U. Fauré, 1845~1924)를 비롯한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1865년에 생상스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였으며, 프랑스-독일(보불) 전쟁 이후인 1871년에는 뷔신(R. Bussine)과 함께 '국립 음악 협회' (Société Nationale de Musique)를 창설하고, '갈리아 예술 (Ars Galllica)이라는 모토를 앞세우고 차세대의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 활동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는 첫 교향시 <옴팔르의 물레>(Le Rouet d'Omphale)를 작곡했으며, 1877년 12월에는 리스트(F. Liszt, 1811~1886)의 추천을 받아 독일 바이마르(Weimar)에서 자신의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를 공연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독일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성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공연이 거부되었고 런던 · 뉴욕 · 브뤼셀에서는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오페라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 것은 1890년 10월 31일 에덴 극장(Theatre Eden)에서였는데, 이를 계기로 생상스는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1878년에 첫아들을 잃은 후 6주 만에 또다시 작은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은 생상스는, 이러한 비극이 아내의 태만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3년 후 아내와 이혼하고 이듬해 유럽과 미국, 남아메리카, 근동과 극동 지역 등을 두루 순회하였다. 이러한 순회를 통하여 그는 자신의 협주곡 5곡과 다른 작품들을 연주하였으며, 자신의 교향악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바그너(W.R. Wagner, 1813~1883)와 프루스트(M. Proust)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그는, 1880년부터 생애 마지막 날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두루 포함하여 수많은 음악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피아니스트로서 화려한 기술이 돋보였던 생상스는 1921년 12월 16일 알제(Alger)에서 사망하였다.
〔음악 세계와 작품〕 생상스는 오늘날 베를리오즈(H.Berlioz, 1803~1869)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최대의 작곡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베를리오즈의 진보주의적인 창작 방향을 포기하고, 표현의 상징성보다는 직접적인 묘사를 통한 효과를 선호하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를 개척하였다. 그의 포괄적인 음악 인식은 특정 음악가를 모방하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음악을 창작하도록 하였다. 또 모든 장르에 걸친 그의 많은 작품들은 독창적 선율, 균형 잡힌 형식, 그 안에 담긴 내용, 엄격하면서도 화려한 고전적 세련미로 긴장감과 친근감을 주고 있다.
생상스의 오르간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은 화려한 기교와 정확하고 명료한 연주를 요구하는데, 특히 피아노 곡들은 유년기부터 그가 즐겨 연주하였던 모차르트(W.A.Mozart, 1756~1791), 베토벤(L. van Beethoven, 1770~1827) , 리스트, 바그너의 영향을 보이면서도 프랑크(C. Franck, 1822~1890)와 함께 독특한 프랑스적인 분위기를 느끼게한다. 실내악과 관현악은 대부분 그가 리스트와 함께 프랑스 기악 음악의 발전을 꾀하던 20여 년 간의 창작 절정기에 작곡되었으며, 1872~1878년에 작곡된 4곡의 교향시(Le Rouet d'Omphale, Phaeton, Danse Macabre, La Jeunesse d'Hercule)와 1860년부터의 교향곡들이 유명하다. 특히 리스트의 명복을 기리며 헌정한 오르간 편성의 교향곡>(Symphonie avec orgue, 1886)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사했다는 작곡가 자신의 언급처럼 그의 오케스트라 음악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전통적인 4악장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2악장씩 묶은 이 교향곡은 구노(C.F. Gounod, 1818~1893)의 지적대로 생상스를 '프랑스의 베토벤' 으로, 고전주의 대가들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그리고 5곡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오케스트라 모음곡들은 생상스의 민족주의와 역사주의 성격을 짙게 표현하고 있다.
생상스는 또한 성악 음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많은 오케스트라 가곡 특히 <삼손과 들릴라> 등 13곡의 오페라는 형식 면에서 바그너의 서정적 음악극과 역사적 오페라 사이에서 이 둘을 엮어 주었으며, 베를리오즈와 구노와 함께 시대를 주도하였던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벗어나 프랑스적인 음악 문화 창달에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또한 혁명과 왕정 복고의 와중에서 크게 손상된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 음악 복구에도 베를리오즈, 르쉬외르(J.F. Lesueur, 1760~1837), 구노, 프랑크, 뒤부아(F.-C.-T. Dubois, 1837~1924)와 함께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는데, 그의 <장엄 미사곡>(Messe Solennelle, 1856)과 <레퀴엠>(Requiem, 1878)은 대작으로 꼽힌다. 또 낭만주의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악적 표현 기법을 동원한 오라토리오 <노엘>(Noel, 1860), <시편 18>(1865), <노아의 홍수>(1875), <약속된 땅>(1913)은 장엄하고 웅장하면서도 중세의 종교극을 연상하게 한다. 이들은 신비극 혹은 성극으로 선호되던 19세기 프랑스 오라토리오의 전형이었다. 이외에도 칸타타 <프로메테우스의 밤〉(1867)과 <하늘 위의 불〉(1900), 35여 곡의 모테트와 8성부의 <지존하신 성체>(TantumErgo) 등이 있다.
[영 향] 생상스는 다양한 음악 작품과 예언자적이며 비판적인 글을 통해 개혁 정신과 새로운 음악 운동을 주창해 왔으며, 이는 샤브리에(A.-E. Chabrier, 1841~1894)를 비롯하여 길을 달리하던 드뷔시(C. Debussy, 1862~1918)와 라벨(M. Ravel, 1875~1937) 등 20세기의 프랑스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년에 부친의 생가를 손질하여 문을 연 생상스 박물관이 디에프에 있으며, 1897년과 1907년에 파리의 뒤랑에서 그의 작품들이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 가톨릭 음악)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2, 세광음악출판사, 1991, pp. 459, 463, 487f, 495, 498f, 505/ M. Briquet, 11, pp.1272~1284/ J. Harding, 《NGDMM》 16, pp. 400~407/ W. Gurlitt ed.,Riemann Musik Leaikon, Personenteil 2, Schott's sohne, 1961, pp. 565~566/Michel Louvet, 《EU》 20, p. 513/E.Lockspeiser, (EB) 19, pp. 922~923.〔趙善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