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율리오. 한국 이름은 차려송(車麗松) . 1886년 4월 29일 프랑스 뤼송(Lucon) 교구의 방데(Vendée)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1911년 4월 1일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11월 18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주교관에 머무르면서 한국어와 한국 풍습을 익히다가 황해도 봉산(鳳山)의 검수(劍水) 본당(사리원 본당의 전신)으로 파견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한 샤보 신부는 사리원(沙里院) 지역까지 관할하면서 성당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공사 비용 일부를 부담하였
던 신자들이 훗날 냉담하여 강당의 소유권을 주장해 오면서 . 한때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1913년 11월 매화동(玫花洞) 본당 3대 주임으로 임명된 샤보 신부는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소집되어 귀국하였다가 전쟁이 끝난 뒤인 1919년 10월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매화동 본당 주임으로 복귀하였다. 낡은 학교 건물을 개수하는 등 사목에 힘쓰다가 1920년 12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전임되어 20여 년 동안 당가 겸 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인 사제 양성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1952년 10월에 정규량(鄭圭良, 레오) 신부의 후임으로 용산 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한국 전쟁으로 성당이 파손된데다가 신자들도 많지 않았고 그 역시 66세의 고령이어서 별다른 활동을 전개하지는 못 하였다. 그러다가 심장성 천식증이 악화되어 성모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1953년 6월 29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128호(1953. 7. 7), 4면/ 《경 향잡지》 1025호(1953. 8), p. 36/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4/ 용산 본당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용산 본당 50년사》, 천주교 용산 교회, 1992. 〔李裕林〕
샤보, 줄 에드몽 귀스타브
Chabot, Jules Edmond Gusave(1886~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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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샤보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