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봉, 장-알렉시스

Chambon, Jean-Alexis(187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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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알렉시스 상봉 대주교.

장-알렉시스 상봉 대주교.

일본 동경(東京) 대주교. 초대 요코하마(橫濱) 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일본 선교사. 1875년 3월 18일 프랑스 발로르-빌(Vallore-Ville)에서 태어나 몽페랑(Mont-ferrand)의 대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1898 년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이듬해 9월 15일 부제품을 받고 12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1900년에 일본 하코다테(函館)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10월 24일 프랑스를 떠난 상봉 신부는, 1901년에 센다이(仙台) 소신학교의 교장직을 맡았으며, 1905년에는 하코다테 교구의 주교좌 성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1914년까지 재직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랑스로 귀국하여 간호병으로 참전하였고, 종전과 함께 1919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1920~1921년에는 일본 교황 대사 푸마소니 비온디(Fumasoni Biondi)의 비서관으로 재직하였다. 이어 1922년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중앙위원회의 재일 선교사 대표로 파견되어 파리에서 위원 겸 총장 비서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동경 대주교였던 레이(Rey) 주교가 1927년 3월에 사임하자, 그 후임으로 동경 대주교에 임명되어 그 해 12월 22일 주교좌 성당(關口敎會)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교구장으로 임명된 상봉 대주교는 점증하는 일본인 사제를 위해 계속하여 본당 분할을 모색하는 한편, 일본인 사제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9년에는 신학교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건물을 신축한 뒤 '성 프란치스코 사 베리오 신학교 라고 명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체회(聖體會), 가르멜회 등 여러 수도회의 교구 내 활동을 장려 하였으며, 특히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Franciscaines missionnaires de Marie)에서 1930년에 세운 국제 성모 병원(國際聖母病院)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그러던 중 교황청에서 1937년에 방인 사제인도이(土井辰雄) 신부를 동경 대교구장에 임명하면서 상봉 대주교는 그 해 11월 요코하마 교구장으로 전임되었고, 1940년 12월에는 다시 교구장직을 방인 사제인 이데구치(井手口三代市) 신부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48년 초까지 파리 외방전교회 요코하마 지부장직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건강의 악화로 지부장직을 사임한 후에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의 수련원(光の園) 지도 사제로 있다가 1948년 9월 8일 요코하마 병원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한편 상봉 주교는 같은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이라는 점에서 한국 교회와 교세 통계를 교환하는 등 교신이 잦았다. (→ 일본)

※ 참고문헌  《Cath》 Ⅱ , pp. 882~883/ 《カトリック大辞典》 5, 상지 대학 출판부, 1960, p. 623/ Les Missions Catholiques(1927. 3. 25), p. 137.[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