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서구 검암동 255-13 소재. 1987년 2월 1일 가정동(佳亭洞) 본당과 석남동(石 南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관할 구역은 검암동, 경서동, 시천동, 심곡동, 연희동 전 지역과 백석동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백석 1개소. 〔교 세〕 1987년 1,147명, 1992년 1,418명, 1996년 2,135명. 〔역대 신부〕 초대 타르디오(M. Tardio, 이만우) 마누엘(1987. 2~1988. 11), 2대 에자파람프틸(M. Ezhapparamptil, 인만희) 마누엘(1988. 11~1992. 7), 3대 안굴로(Diaz Angulo, 구하영)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2. 7~1993. 7), 4대 김기범(金基範) 안드레아(1993. 7~1994. 11), 5대 피디야파람필(Jos Peediyaparampil, 도요섭 ) 요셉(1994. 11~1997. 2), 6대 한관우(韓官友) 가누토(1997. 2~현재).
지금의 인천 서구 지역에 제물포(현 답동) 본당 주임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신부에 의해 '서곶 공소' 가 설립된 것은 1943년 12월이었다. 그 후 1952년에 부평동(富平洞, 현 부평2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가 부평1동 본당 · 송림동 본당 · 석남동 본당·가정동 본당으로 소속이 자주 변경되어 신자들은 많은 불편을 겪었다. 그러던 중 '글라렛 선교 수도회' 가 이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면서 1987년 2월 1일자로 서곶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타르디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타르디오 신부는 100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교리실(20평)을 증축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했다. 그리고 1990년 6월 5일에는 교구 지원으로 인근 부지 1,199평을 매입한 데 이어 1993
년 7월 1일에는 넓은 관할 구역을 효율적으로 사목하기 위하여 평신도 선교사를 본당에 초청하였다. 그러던 중 1997년 2월 18일자로 본당의 사목이 교구로 이관되면서 6대 주임으로 한관우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같은 날 오류동(梧柳洞) 본당의 분할로 191세대 591명의 교적을 이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관우 신부는 부임 즉시 노인 공경을 위한 '이순(耳順) 모임' 을 조직하였고, 같은 해 12월 23일에는 사제관을 수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당 신축 계획도 수립하여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인천교구 ; 가정동 본당 ; 석남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천주교 답동 교회, 《답동 대성당 100년사》, 1989. [편찬실]
서곶 본당
西串本堂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