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서귀포시 중앙동 277-2 소재. 1970년 11월 9일 서귀포(西歸浦)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설립 당시의 명칭은 '서귀포 중앙 본당 이었으나 1980년 7월에 새 성당을 완공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관할 구역은 서귀동, 서홍동, 대륜동, 대천동 전 지역과 동홍동, 천지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718명, 1979년 1,009명, 1985년 2,331명, 1990년 2,104명, 1996년 2,473명. 〔역대 신부〕 초대 이젤(H. Eisel, 양) 해롤드(1970. 11~1973.8) 2대 월름젠(G. Wilmsen, 진) 제라르도(1973. 8~1976. 4), 3대 이태수(李泰壽) 미카엘(1976. 4~1981. 2), 4대 양덕배(楊德培) 요한(1981. 2~1983. 2), 5대 러셀(J. Russell, 설) 요한(1983. 2~5), 6대 놀란(J. Nolan, 노) 야고보(1983. 5~1986. 4), 7대 이대원(李大元) 미카엘(1986. 4~1988. 1), 8대 허승조(許勝照) 바오로(1988. 1~1990. 7), 9대 양명현(梁明鉉) 토마스(1990. 7~1995. 8), 10대 김석순(金石淳) 마태오(1995. 8~1997. 9), 11대 임문철(林文喆) 시몬(1997.9~현재).
1960년대 들어 현재의 서귀포 지역 인구가 증가하게되자 서귀포 본당 주임 이젤 신부는 본당을 분리할 목적으로 1965년 6월에 서귀 2리 324번지(현 서귀포시 중앙동)의 부지 713평을 매입하였는데, 이 부지는 이듬해의 도시 계획에 따라 189평이 체비지로 군에 이양됨과 동시에 지번이 277-2번지(524평)로 변경되었다. 1969년 10월 1일 휴가를 얻어 자신의 거처를 서귀리로 이전한 이젤 신부는, 성당 건립에 노력하여 이듬해 3월 성당(60평)과 사제관(26.5평) 및 부속 건물(10평)을 완공하였으며, 그 해 5월에는 성모회를 설립하였다. 그러자 광주대교구장 헨리(Henry, 玄海) 주교는 같은 해 11월 9일자로 '서귀포 중앙 본당' 을 서귀포 본당에서 분리함과 동시에 이젤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면서 호근 공소 · 중문 공소 · 예래 공소를 본당 관할로 이관해 주었다.
1973년 6월에 이젤 신부가 서귀리 277-3번지 일대의 부지 207평을 추가 매입하여 성당 부지를 731평으로 확장한 데 이어 2대 주임 월름젠 신부는 부임 직후 예래 공소를 중문 공소에, 호근 공소를 본당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3대 주임 이태수 신부는 1976년 9월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를 초청하는 한편 성당 신축 계획을 세운 뒤 1979년 10월 28일 공사에 착수하였다. 이듬해 7월 5일 성당(177평)과 수녀원(35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한 본당에서는, 한국 순교 복자들의 신심을 이어받는다는 뜻에서 본당 이름을 '서귀포 복자 본당' 으로 개칭하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를 주보 성인으로 정하였다.
한편 5대 주임 러셀 신부는 본당에 얼마 재임하지는 않았지만 1983년 4월에는 한때 토평 · 법환 · 남성동 일대의 사목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7대 주임 이대원 신부 때인 1987년 5월 16일에는 사제관이 개축되었고, 1988년 1월 29일 중문(中文) 본당이 분할되면서 동시에 8대 주임으로 임명된 허승조 신부는 그 해 3월 상효동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여 '서귀포 교회 공원 묘역'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3월 8일에는 본당 주보 <삶의 자리>가 창간되었고, 1997년 11월에는 공원 묘역 안에 30평 규모의 장재소가 완공되었다. 아울러 본당에서는 교구와 협의하여 1998년 8월에 동홍동 1379번지 일대의 부지 2,345평을 매입하여 성당을 신축할 계획이다. (→ 제주교구 ; 서귀포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제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편, 《천주교 제주교구 100년사 출간을 위한 자료집 제1집》, 1991. [편찬실]
서귀포 복자 본당
西歸浦福者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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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