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의 두 번째 본당. 제주도 서귀포시 송산동 586-1 소재. 1900년 6월 12일 정의군 한논(大沓, 현 서 귀포시 好近洞)에 설립되었다가 1902년 7월경 홍로(烘爐, 서귀포시 西烘洞)로 이전되었으며, 1937년 8월 15일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 관할 구역은 서귀포시 송산동, 정방동, 동홍동 전 지역과 토평동, 보목동, 상효동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가나안 공소' (서귀포시 상효동) 1개소. 〔교 세] 1901년 137 명, 1902년 35명, 1904년 101명, 1927년 140명, 1951년 203명, 1964년 1,651명, 1971년 1,464명, 1980년 1,400명, 1985년 1,600명, 1990년 1,687명, 1996년 1,728명. [역대 신부] 초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1900. 6~1901. 4), 2대 무세(G. Mousset, 文濟萬) 제르마노(1901. 4~1902. 4), 3대 타케(E. Taquet, 嚴宅 基) 에밀(1902. 4~1915.6), 4대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1915. 6~1916. 5), 5대 이경만(李景萬) 요한(1922. 9~1923. 5), 6대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1923. 5~1926. 5), 7대 최덕홍(崔德弘) 요한(1927. 5~1929.9), 8대 허일록(許日錄) 타대오(1929. 9~1933.5), 9대 김창현(金昌鉉) 바오로(1933. 5~1936. 6), 10대 라이언(T.D. Ryan, 羅) 토마스(1936. 6~1941. 12, 1947. 10~1952. 4), 11대 새비지(J. Savage, 元) 요한(1952. 4~1953. 4), 12대 로한(P. Rohan, 韓) 파트리치오(1953. 4~1956. 4), 13대 브레디(R. Brady,牟) 로베르토(1956. 4~1960. 12), 14대 로세(J. Roche, 廉) 요한(1960. 12~1963. 10), 15대 이젤(H. Eisel, 梁) 해롤드(1963. 10~1969. 10), 16대 퀸( Quinn, 高) 요한(1969. 10~1971. 9) 17대 김병준(金丙準) 요한(1971. 9~1972. 10), 18대 새비지 요한(1972. 10~1975.2), 19대 매과이어(D. Maguire, 梅) 데스먼드(1975. 4~1979. 5), 20대 러셀(J. Russell, 薛) 요한(1979. 5~1983. 2), 21대 고승헌(高升憲) 마르코(1983. 2~1985. 9) 22대 페리(F. Ferrie, 黃) 프란치스코(1985. 9~1989. 3) 23대 머레이(A. Murry, 咸) 예단(1989. 3~1995. 8), 24대 이영조(李榮祚) 파트리치오(1995.8~현재).
〔본당 설립과 신축교안〕 서귀포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1898년 4월경 육지를 왕래하다가 세례를 받고 돌아온 양용항(梁用恒, 베드로)이 고향인 대정군 색달리(穡達里, 현 서귀포시 색달동) 인근에 신앙을 전하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신 아우구스티노와 바오로 형제, 김 생원, 강 도미니코 등 새 예비 신자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들이 곧 제주의 첫 신자들이었다. 이 무렵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제주 지역에 복음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1899년 4월 22일자로 페네(Peynet, 裴嘉祿) 신부를 주임으로, 김원영(아우 구스티노) 새 신부를 보좌로 임명함으로써 '제주 본당'을 설정하였다. 이들은 그 해 5월 16일 제주도로 들어가 제주 대로동(大路洞, 현 제주시 삼도1동)에 거처를 마련하는 한편, 양용항이 입교시킨 신입 교우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하였다.
뮈텔 주교의 기원대로 페네 신부와 김원영 신부는 곧 제주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김원영 신부는 페네 신부를 대신하여 전교를 거의 전담하였는데, 제주의 남쪽 한논(大沓)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대정군과 정의군 각 지역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1900년 5월에 신자수 20명과 예비 신자 30명이던 것이 1년 뒤에는 신자수 137명(정의군 101, 대정군 36)과 예비 신자 620명(정의군 382, 대정군 238)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페네 신부는 상경하였다가 1900년의 연례 피정 이후인 5월 4일에 전북 수류(水流)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동시에 수류 본당에 있던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제주로 임명되어 6월 5일 제주에 도착하였다. 연례 피정 때 제주 본당을 분할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김원영 신부는 6월 12일 제주를 떠나 한논에 정착하였고, 이로써 '한논 본당' 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제주의 전교 활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1901년 5월에 발생한 신축교안(辛丑敎案)으 로 제주 교회는 큰 시련을 맞게 되었는데, 이 교안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일어난 것으로, 특히 전교가 활발하였던 한논 본당의 신입 교우들 상당수가 순교하거나 희생을 당해야만 했다. 이에 앞서 김원영 신부는 1901년 4월에 피정차 상경하였다가 다시 본당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며, 4월 27일에는 무세 신부가 2대 한논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교안의 와중인 5월 10일에 입도하였다. 그 후 무세 신부는 교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다가 이듬해 4월 20일 마산포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타케 신부가 3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한논 본당 신자수는 교안 직전까지 137명을 기록하였으나 타케 신부 부임 직후에는 겨우 35명에 불과하였다.
〔본당의 이전과 정착〕 타케 신부가 1902년 6월 17일 이후 한논을 떠나 홍로(烘爐)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한논 본당은 '홍로 본당' 으로 변경되었다. 타케 신부는 이후 1915년까지 재임하면서 본당 정착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으나 초기에는 제주 본당의 라크루 신부와 마찬가지로 신축교안의 희생자 매장지 문제, 배상금 문제, 그리고 끊이지 않는 교 · 민(敎民) 사이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러면서도 전교에 노력하여 1904년에는 다시 교우수를 101명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또 1906~1907년에는 선배 선교사인 포리(Faurie, 方) 신부와 함께, 1908년 이후에는 단독으로 식물을 채집하여 왕벚나무(천연 기념물 제156호)를 비롯하여 애기나비나물 · 능수버들 · 산버들 · 섬잔대 등을 학계에 보고했다.
1915년에 타케 신부가 목포 산정동으로 전임된 이후 홍로 본당의 주임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특히 1916~1927년에는 전담 신부가 임명되지 않음으로써 나주 계량 본당 주임이 홍로 본당 주임을 겸임하였다. 이어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덕홍 신부는 명도회 · 소년회 · 남녀 친목회 등을 구성하고 야학을 운영하였으며, 1929년에는 본당 출신 최초로 고군삼(高君三, 베네딕도)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다가 1933년에 전라남도 감목 대리구가 분리 · 설정되면서 제주 지역이 여기에 포함되었고, 1936년 6월에는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라이언 신부가 10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이미 1934년부터 본당의 보좌로 재임해 오던 라이언 신부는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서귀포의 중심지로 본당을 이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서귀포 586번지에 새 부지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목조 함석집(20평)과 초가(15평)를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조한 후, 1937년 8월 15일에 본당을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현재의 '서귀포 본당 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서귀포 본당은 일제 말기와 8 · 15 광복, 6.25 한국 전쟁 등으로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어야만 하였다. 우선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라이언 신부가 일제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광주에 투옥됨으로써 본당은 다시 공석이 되었고, 일본군이 성당에 주둔하여 신자들은 성당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라이언 신부는 광복 직후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국하였다가 1947년 10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본당에 재부임하였다. 또 1949년에는 새 농지 개혁법이 공포되어 본당의 토지를 매각하게 되었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성신대학의 대신학생들이 옛 홍로 성당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다.
1952년에는 11대 주임 새비지 신부가 부임하여 같은해 '해성(海星)유치원' 을 개원하였으며, 1953년에 부임 한 로한 신부는 그 해 모슬포 공소(대정읍 하모리)를, 다음해에는 서귀포의 서호리(西好里) 공소를, 그리고 1955 년에는 성산포(城山浦) 공소(성산읍 고성리)를 설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당 신축에 노력하여 1955년 7월 9일 에는 현재의 성당(80평) 및 강당 겸 유치원(53평)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본당 산하의 공소 설립은 13대 주임 브레디 신부 때에도 계속되어 1956년 6월 서귀포의 중문(中文) 공소, 7월에 가나안 공소, 8월에 남원(南 元) 공소(남원읍 남원리), 1957년 8월에는 효돈(孝敦) 공소(서귀포시 하효동)가 연이어 설립되었다. 아울러 브레디 신부는 1957년 초부터 모슬포 공소에 성당 건립을 시작하여 이듬해 6월 29일 이를 완공하고 광주 대목구장 헨 리(H. Henry, 玄海)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 바로 직전인 6월 8일에는 '모슬포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캠피온(L. Campion, 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됨으로써 모슬포 본당은 서귀포 본당의 첫 번째 자 본당이 되었다.
〔본당의 성장과 현재〕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당 신자수가 처음으로 1,500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그 결과 다시 본당 분할이 예견되었다. 이 무렵인 1960년 12월에 부임한 14대 주임 로세 신부는 이듬해 새 사제관을 완공한 뒤 전임되었고, 그 뒤를 이어 부임한 이젤 신부는 1964년에 표선 공소(표선면 表善里)를 설립하고 성산 공소의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 4월에는 효돈 공소를 서귀포시 신효동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한편 1965년 6월에는 본당 분할을 위해 서귀 2리의 부지 700여 평을 매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1967년 10월 13일자로 해성유치원을 정식 인가받았고, 서귀 2리의 새 성당 신축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1969년 10월 1일자로 퀸 신부가 16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자신의 거처를 서귀 2리로 이전한 이젤 신부는 성당 신축에 노력하여 1970년 5월 20일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같은 해 11월 9일 교구에서는 '서귀포 중앙 본당' (지금의 서귀포 복자 본당)의 신설을 결정함과 동시에 이젤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것이 서귀포 본당의 두 번째 분할로, 이때 서호 공소와 중문 공소 지역이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971년 7월 14일 제주 지역이 광주대교구에서 분리되어 제주 지목구로 설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10대 주임이었던 라이언 신부가 사망하여 서흥리 교회 묘지에 묻혔다. 제주 지목구는 1977년 3월 21일에 교구로 승격되었다. 한편 18대 주임 새비지 신부 때인 1973년 8월 28일에는 세 번째 자 본당으로 '성산포 본당' 이 분리됨과 동시에 기존의 성산포 공소와 표선 공소 지역이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19대 주임 매과이어 신부 때인 1976년 4월에는 성당과 사제관 지붕을 수리하였으며, 같은 해 8월 15일에는 성모 동굴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가졌고, 1977년 7월에는 남원 공소의 강당을 신축 이전하였다.
1980년 9월 16일에는 20대 주임 러셀 신부의 초청으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이 본당에 진출하 였고, 1984년 3월 19일에는 21대 주임 고승헌 신부에 의해 현 사제관(70평)이 완공되어 낙성식을 갖게 되었으며, 1988년 2월 10일에는 '효돈 본당' 이 네 번째 자 본당으로 분리되면서 남원 공소 지역이 함께 이관되었다. 23대 주임 머레이 신부 때인 1989년 11월 5일에는 신축 교육관 및 수녀원의 축성식을 가졌는데, 이 건물들은 이미 페리 신부 때인 1988년 7월부터 신축이 추진되어 왔었다. 그러나 머레이 신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당 신축을 계획한 뒤 1991년 4월 17일자로 '신축 성전 건립위원회' 를 구성하였으나 이 사업은 본당 형편으로 인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어 1995년 8월에 임명된 24대 주임 이영조 신부는 같은 해 9월 10일 본당 주보인 <서귀포>를 창간하였으며, 평신도 단체들의 활동과 전교 활동의 활성화는 물론 15개의 본당 구역을 중심으로 소공동체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해 오고 있다. (⇦ 한논 본당 ; 홍로 본당 ; → 제주교구 ; 김원영 ; 모슬포 본당 ; 서귀포 복자 본당 ; 성산포 본당 ; 효돈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제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편, 《천주교 제주교구 100년사 출간을 위한 자료집 제1집》, 1991/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초기 본당과 성직자들의 서한》 2, 제주 복음 전래 100년사 자료집 4집, 천주교 제주교구, 1997/ 천주교 서귀포 본당, <본당 연혁과 주요 활동보고서>, 1997. 〔車基眞〕
서귀포 본당
西歸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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