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본당

西大門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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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서대문구 냉천동 147소재. 1958년 3월 중림동(中林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 설립 당시에는 '송월동(松月洞) 본당' 이었으나, 이듬해 현 소재지로 이전하면서 '서대문 본당' 으로 개칭하였다. 관할 구역은 서대문구 냉천동, 영천동, 옥천동, 천연동, 충정로, 현저동과 종로구 교남동, 교북동, 무악동, 송월동, 평동, 행촌동, 홍파동 및 중구 정동 일부 지역. 〔교 세〕 1964년 1,784명, 1971년 2,000명, 1978년 2,910명, 1984년 2,977명, 1990년 3,037명, 1996년 2,605명. 〔역대 신부〕 초대 이석충(李錫忠) 요한(1958. 3~1961. 1), 2대 유수철(柳秀徹) 도미니코(1961. 1~1962. 9), 3대 백일성(白日星) 도 미니코(1962. 9~1964. 8), 4대 이용선(李容善) 베드로(1964. 8~1965. 7), 5대 김병기(金炳基) 암브로시오(1965. 7~1970. 1), 6대 최용록(崔鏞錄) 프란치스코(1970. 1~1972. 7), 7대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1972. 7~1974. 9), 8대 최석호(崔奭浩) 바오로(1974. 9~1977. 4), 9대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1977. 4~1982. 8), 10대 탁현수(卓鉉洙) 아우구스티노(1982. 8~1988. 2), 11대 신정순(申正淳) 베네딕도(1988. 2~1992. 2), 12대 김호영(金浩榮)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2. 2~1997. 2), 13대 김명은(金明恩) 사도 요한( 1997. 2~현재).
1940년대 초까지도 서울 4대문 밖의 전 지역은 약현(藥峴, 현 중림동) 본당의 사목 관할 지역이었으나, 1942 년의 용산 본당 설립을 시작으로 8 · 15 광복을 전후한 시기에 여러 본당들이 분리 ·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대문 일대 신자들을 중심으로 본당 설립 계획이 추진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였다. 그 결과 1958년 3월에 '송월동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이석충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이석충 신부는 처음에 송월동 112번지의 목조 건물에 임시 성당을 마련하였다가 1959년에 현재의 부지 317평과 건물 3동을 매입한 뒤 성당을 이전하면서 본당 이름을 '서대문 본당' 으로 바꾸었다.
2대 주임 유수철 신부 때에는 사제관과 제의실이 마련 되었고, 1964년 10월에는 성당 신축을 목적으로 임시 성당인 상가 건물 한 채를 제외한 건물 전부가 철거되었다. 5대 주임 김병기 신부는 1965년 10월 15일부터 성당 건립에 착수하여 같은 해 12월 성당 1층을 완공한 뒤 공사를 일시 중지하였는데, 이어 부임한 6대 주임 최용록 신부에 의해 1970년 9월부터 다시 증축 공사가 시작 되어 이듬해 6월 29일 2층 성당(10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아울러 7대 주임 김득권 신부는 예전의 사제관을 수녀원으로 개축한 뒤 1973년 3월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를 초청하였으며, 8대 주임 최석호 신부는 성당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하였다.
1977년 11월에는 관할 구역의 재조정으로 충정로 3가의 일부 지역이 본당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7월에는 도서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2년 12월 31일에는 인근의 가옥을 매입하여 수녀원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이 건물은 11대 주임 신정순 신부 때인 1989년 12월 20일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신축되었으며, 1994년 5월 22일에 2층을 증축하고 1996년 5월 11일에 다시 3층으로 증축되었다. 한편 본당에서는 최근에 추진된 지역 재개발 사업 때문에 사목상의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개발 후의 인구 급증에 따르는 선교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大敎區 敎區總覽》, 가톨릭출판사, 1984/ 약현 성당 100주년사 편찬위원회 편, 《藥峴本堂百年史》,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