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초등 교육 기관으로 출발하여 1994년 현재 유치원, 국민학교, 여자고등학교를 포함하는 유아 · 초등 · 중등 교육 기관으로 발전한 사립교육 기관. 교명인 '계성' (啓星)은 샛별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을 인도할 인재를 키워 나가는 배움의 터전을 상징한다.
〔계성국민학교〕 1994년 현재 서울 중구 명동 2가 1-3번지에 소재. 리델(F.C. Ridel, 李福明, 1830~1884) 주교가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국외에서 활동하고 있던 1882년, 당시 종현(鐘峴) 본당 관하에 11명의 학생을 갖고 있던 인현학원이 계성학교의 전신이다. 훗날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여 용산 신학교에서 신학교 교육을 마친 후 사제로 서품된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1870~1938) 신부가 1882년에 이곳 인현학원에서, 1883년에는 한기근(韓基根) 바오로(1868~1939),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1863~1943) 신부 등이 종현학원 - 일명 한한학교(韓漢學校) - 에서 페낭유학을 떠나기 전 한문 교육을 받았는데, 종현학원은 인현학원의 후신으로 이들 학교들은 모두 가톨릭 교회에서설립한 근대적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1886년경 종현학원에서는 국어, 한문, 교리 등을 가르쳤던 것으로 나타난다. 1909년 9월 정식으로 학교 설립 인가를 얻어 계성학교로 교명을 개칭하고 수업 연한을 4년으로 하였는데, 남녀 학생을 구별하여 남학교를 '계성학교' , 여학교를 '계명학교' 라 불렀다. 1924년 4월에 계성보통학교 로교명을 개칭하고 수업 연한을 6년으로 하였으며, 1938년 4월에는 경성 계성심상소학교 (啓星尋常小學校)로, 1941년 4월에는 경성 '계성학교' 로 교명을 개칭하였다가 8 · 15 해방 후인 1945년 9월에 '계성국민학교' 로 개칭하였다. 계성국민학교는 6 · 25 동란으로 임시 휴교 하였다가 1964년 3월 천주교 경성구 유지 재단으로 다시 개교하여 2학급, 100명의 아동으로 시작하면서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이 학교는 가톨릭 정신에 입각하여 어린이들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 바탕을 익히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지닌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성장하도록 슬기롭고, 아름답고, 씩씩한 정신을 길러 주는 것을 건학 이념으로 하고 있다. 1964년 재개교 이래 1978년과 1980년에 학교 경영 우수교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과학 교육 우수교, 자연 보호 우수교 등으로 표창을 받았다. 1975년 국무 총리기 쟁탈 전국 남녀 탁구 대회에서 여자부가 우승, 1976년 서울시 종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농구와 여자 탁구가 각각 우승을 하기도 하는 등 체육으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1970년대부터는 수영과 빙상 교육을, 1988년부터는 스키 학교를 개설하였다. 1990년에는 경기도 가평에 수영장을 포함한 야외 학습장을 준공하여 아동들의 심신 수련과 체력 향상에 더욱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는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악기를 배우는 특정 음악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국가의 교육 목표와 가톨릭 개교 이념을 조화하여 전교생을 대상으로 적절한 종교 교육도 실시하여 많은 비신자 아동들을 신자로 개종시키는 등 전교상의 성과도 올리고 있다. 박준호(朴準鎬), 민윤식(闕潤植) , 장면(張勉), 이재훈(李載壎), 문의윤(文義潤), 양리선 수녀, 방 마리아 수녀, 안혜택 수녀, 박상일 수녀, 강경옥 수녀, 이종후 수녀 등이 역대 교장으로 재임해 왔으며 1994년 3월부터 최 루치아 수녀가 제14대 교장에 취임하여 임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1994년 5월 현재 각 학년 3개 학급씩 모두 18개 학급, 850여 명의 아동이 재학 중에 있으며, 1994년 2월 제51회 졸업식까지 모두 6,85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한국 교회 성직자, 수도자의 온상이 되고 있다.
〔계성유치원〕 1966년 12월 계성국민학교 병설로 설립 인가되어 천주교 샌뿔 수도원 유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아 교육 기관. 설립 당시 명동에 있었으나 1989년에 이전하여 1994년 현재까지 서울 용산구 산천동 1번지 1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가 당시 6개 학급 240명으로 시작하여 1994년 현재 9개 학급 270명의 유아들을 교육하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의 원영희, 박상일, 강경옥, 오순옥, 이현숙, 서옥순, 유태순 수녀 등이 1994년 5월 현재까지 차례로 역대 원장직을 맡아 오고 있으며 12명의 교사가 재직 중이다. 착하고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을 원훈으로 하여 언어, 수, 문화, 과학(감각), 일상 생활 등 모두 5개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1994년 2월까지 모두 27기 3,67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계성여자중고등학교〕 1944년 8월 10일 천주교 경성구 유지 재단에서 설립한 한국 가톨릭 최초의 여성 중등교육 기관으로, 설립 당시의 명칭은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啓星女子商業專修學校)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번지 소재.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봉사로 이웃과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인 여성을 교육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사랑과 믿음의 표본인 성모님을 닮은 여인상을 구현하고 변천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지도적 여성을 육성해 오고 있다. 일제 말에 학교 설립을 위하여 당국의 요구대로 계성여학원을 폐지하고 3년제 3학급으로 시작하였으나 해방과 함께 인문계 여학교로 재출발할 수 있게 되어 1946년 6월에 6년제 12학급의 계성여자중학교로 개편하였다. 1951년 8월 학제 변경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자 이 학교도 1954년 3월에 학급을 증설하면서 중학교 15학급 외에 고등학교 9학급에 대한 인가를 받았으며 1957년에는 다시 고등학교가 12학급으로 인가받게 되었다. 1957년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 관구에서 학교의 운영권을 이관받고 계속 학급을 증설하여 1987년 계성여자중학교를 폐교하고 대신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30학급으로 증설하여 인가를 받았다. 1986년 학교 재단의 명칭이 재단 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 재단으로 변경되는 것을전후하여 633평 규모의 도서관과 218평의 행정관이 준공되었고 아울러 교사를 대개축하여 성미관, 성지관, 샛별관, 운동장, 정원 등을 갖추게 되었다.
계성여고는 과열화된 입시 경쟁으로 인성 교육이 무시되어 가는 풍조에 대항하여 무감독 교사제를 도입하여 양심 교육의 성공을 거두고 <종현》지를 발간하여 종교 교육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예의, 실력, 봉사의 교훈을 구현하여 가톨릭적 여성 교육을 심화하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계성여자중학교는 1987년 폐교하기까지 38기에 걸쳐 총 14,22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계성여자고등학교는 1994년 2월까지 43회에 걸쳐 총 14,660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오고 있다.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대주교,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등이 역대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장발, 이재훈, 이계선, 최성소 수녀, 정욱진(丁旭鎭,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박상일, 고두희, 양리선 수녀, 조규옥 수녀 등이 중고등학교 분리 이전의 교장직을 맡았으며 분리 이후에는 고영희, 김화순, 정영금 등 수녀들이 중학교 교장직을, 박복주, 안혜택, 박재순, 조규옥 수녀들이 고등학교 교장직을 맡아 왔다.
※ 참고문헌 《계성국민학교》, 계성국민학교, 1992/ 《계성 어린 이》 제66호, 계성국민학교, 1994/ 《1994학년도 학교 교육 계획》, 계 성국민학교, 1994/ 《계성》 제175호, 계성여자고등학교, 1993/ 《1993 학년도 학교 교육 계획》, 계성여자고등학교, 1993/ <1994학년도 계 성여자고등학교>, 계성여자고등학교, 1994/ 《서울대교구 교구 총 람》, 1984, pp. 906~911, 920~924/ 《가톨릭 사전》. 〔元載淵〕
계성학교
啓星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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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방송국에 출연한 계성유치원 어린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