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본당

西面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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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1동 417-4소재. 1960년 12월 11일 부산진(현 凡一) 본당과 양정 (楊亭)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부전1 · 2동, 부암1 · 2동, 당감 2동, 범전동, 범천2 · 4동 일부 지역. 〔교 세〕 1961년 1,677명, 1967년 4,634명, 1973년 4,839명, 1979년 4,474명, 1984년 5,790명, 1989년 6,533명, 1993년 6,435명, 1997년 5,880명. 〔역대 신부〕 초대 김남수(金南洙) 안젤로(1960. 12~1966. 12), 2대 이철우(李喆雨) 바오로(1966. 12~1969. 4), 3대 김경우(金慶佑) 알렉시오(1969. 4~1971. 11), 4대 박태산(朴泰山) 요아킴(1971. 11~1972. 12), 5대 이병만(李炳萬) 요셉(1972. 12~1974.2) , 임시 이홍기(李洪基) 세례자 요한(1974. 2~3), 6대 이옥군(李玉君) 타대오(1974. 3~1975. 5), 7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75. 7~1980. 2), 8대 김창대(金昌大) 임마누엘(1980. 2~1984. 2), 9대 한영일(韓永日 니콜라오(1984. 2~1987. 1), 10대 안달원(安達遠) 베드로(1987. 1~1994. 2), 11대 김정수(金正洙) 대건 안드레아(1994. 2~1995. 2), 12대 이동한(李東翰) 토마스 아퀴나스(1995. 2~현재).
6 25 한국 전쟁 직후 서면 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부전동 · 전포동 일대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 지역 관할인 부산진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많은 불편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에 1955년 무렵 박덕현(朴德賢, 마태오) · 이기성(李基盛, 바오로) · 이운성(李雲盛, 라우렌시오) 등 이 지역의 뜻 있는 신자들이 현 성당 부지 386평을 교구에 희사하면서 본당 설립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1957년에 인근의 양정 본당이 먼저 설립됨에 따라 뒤로 미뤄져 1960년 12월 11일에 가서야 설립이 결정되었고, 초대 주임도 양정 본당의 김남수 신부가 겸직 임명되었다. 한편 360평 규모의 성당 봉헌식도 이날 함께 이루어졌다. 김남수 신부는 1961년 1월에 '치명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고 1966년 10월에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초청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마련한 뒤 전임되었다.
1967년 3월 13일에는 '서면유치원' (1989년 2월 15일 폐원)을 개원하였으며, 1972년 11월 25일에는 전포(田浦) 본당을 분리하였고, 이듬해 7월 5일에는 가야(伽倻)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또 1974년 12월 29일에는 교리실과 회의실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9월 5일에는 무료 진료 활동을 위한 '성년회' (成年會)를 조직하였다. 그 후 본당에서는 1978년 1월 9일에 당감(堂甘) 본당을 분리하면서 267세대 740명의 교적을 이관한 데 이어 두 달 만인 3월 13일에 다시 성지(聖池) 본당을 분리하면서 186세대 604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이처럼 본당 분할의 어려움 속에서도 신자들은 1978년 6월 4일에 도서실을 마련하였고, 1980년 11월 30일 에는 청년회 회지 <광야의 소리>를 창간하였으며, 1987년 2월에 사제관에 이어 이듬해 7월에는 수녀원을 각각 개수하였다. 1993년 9월 17일에는 본당 마크와 본당기를 제작하는 등 본당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 으나, 최근 들어 관할 주택가의 상가 전환 등으로 전출 인구가 늘어남으로써 새로운 전교 활성화 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 부산교구 ; 범일 본당 ; 양정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西面本堂三三年史》, 천주교 서면 교회, 1993. [편찬실]